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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책읽기, 정신의 이행을 상징하는 ‘周遊天下]

  • 글: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책읽기, 정신의 이행을 상징하는 ‘周遊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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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기에 읽은 소설 중에서는 박경리의 ‘토지’가 기억에 남는데 나는 이 책을 내리 두 번 읽었다. 카뮈의 ‘이방인’ 역시 살인의 이유를 강한 햇빛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는 뫼르소 때문에 잊을 수 없다. 부피감 있는 문학작품에 도전하는 일은 요즘 들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근년에는 ‘삼국지’를 읽은 게 그나마 기록적인 분량이다. 중·고교 시절 축약판으로 때운 나로서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회생활에 대한 콤플렉스가 마치 ‘삼국지’를 통해 치유되기라도 할 것처럼 벼르곤 했다. 이문열 평역본을 택해 그 소원을 풀었다.

영화계에 종사하면서부터 나를 사로잡은 것은 유럽 예술영화 감독들이었다. 이때 김소영의 ‘시네마, 테크노문화의 푸른 꽃’은 내 관심을 한국영화사 쪽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흑백영화들을 대상으로 세련되고 진지한 사고를 전개하는 이 책에 매혹돼 한동안 글을 쓸 때마다 모방·인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화 외에도 내가 책방 서가에서 자주 고르는 분야의 책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심리치료용 실용서들이다. 살면서 견디기 힘든 순간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내부에서 거듭 반복되는 어떤 종류의 징후에 직면했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름다운 상처’는 하버드대 교수이자 상담치료사인 애니 로저스가 인턴 시절에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심리장애와 맞닥뜨렸던 경험과 상호 치유과정을 기록한 경험담이다.

속도보다 느림을, 전선(前線)이 아닌 이면을 보고 느끼라고 말하는 에세이가 유행하는 추세를 나 역시 따라다니고 있다. 다비드 르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읽은 직후엔 한동안 느리고 고요한 느낌으로 살았다.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에 미셸 투르니에가 글을 붙인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은 사람들의 다양한 뒷모습에서 어쩌면 그렇게 부드럽지만 촌철살인 하는 글과 이미지를 길어올릴 수 있는가 감탄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 멜로 드라마와 로맨틱 소설이 담당하는 역할은 의외로 크다. 특히 최근엔 불륜과 이혼·재혼이 남녀불문하고 큰 관심사가 됐는데, 안나 가발다의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갑작스런 이혼으로 상심한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사랑 이야기로 감정 변화를 수용하자는 쪽으로 부드럽게 설득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여자, 너 스스로 멘토가 되라’(쉘라 웰링턴 & 캐털리스트 지음)는 조직생활에 취약한 경향이 있는 여성들에게 실용적인 용기를 주는 책이다.



흥미로운 ‘과학과 영성의 세계’

최근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문은 과학과 영성(靈性)의 만남이다. 개인적으로 과학분야는 어려워서 책읽기가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대중적으로 쓰여진 과학사나 이론물리학 책들은 간혹 결정적인 독서체험을 제공한다. 브라이언 그린이 쓴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시공간으로 통합돼 있으며 그 시공간은 휘어져 있다는 등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주요한 물리학 지식들을 쉬운 말로 풀어나간다. 이 책이 우리를 끌고 가려는 궁극적인 지점은 가장 미세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과 가장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우주물리학이 초끈 이론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이론이 광범위하게 입증된다면 형이상학과 신학도 환골탈태시키고 급기야 20세기 내내 서로 등을 돌린 채 달려왔던 과학과 종교, 철학이 조화롭게 만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과학과 영성이 대통일을 이루는 것은 아직은 현실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철학적 결단에 속한다. 물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에모토 마사루의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이 같은 결단을 지지하는 하나의 아름다운 우화라고 할 만하다. 닐 도널드 월쉬가 신과의 대화를 기록했다는 ‘신과 나눈 이야기’ 3부작은 이 같은 믿음이 낳은 극단적 우화이거나 아니면 궁극적 진실인지도 모른다. 지난 설 연휴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꺼내 읽었다. 17세기 서양철학의 이단자에게서 위와 같은 믿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철학체계가 발견된다는 게 그저 놀라웠다.

신동아 200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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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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