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충사에서 솟았다는 불기둥은 혹 이런 모양새였을까
사명대사는 13세에 출가, 선문에 들었다가 어느 여름날 소나기에 지는 낙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절에서 열반한 조계종 초대종정 효봉스님은 “무(無)” 한마디를 남기고 입적했다던가. 비는 오는데 가야할 길은 멀다. 어제저녁 그토록 감싸안는 듯하던 산사는 오는 사람 반기지 않았듯 떠나는 손에게도 아쉬움을 표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한 조각 구름 서쪽으로 날으더니 / 굴리던 염주소리 문득 끊어지고 / 마지막 다만 한마디 ‘무’ 라는 말씀 남겨놓고 / 가부좌 하신 채로 어디로 가시는고’.
효봉선사 비문을 소리내어 읽으며 절을 내려오는데 동행한 밀양신문 장현호 기자가 “너무 감탄하지 마세요. 밀양엔 보고 감탄할 게 아직 많습니다”며 소맷자락을 끈다.
그의 말은 맞았다. 표충사를 나와 삼랑진 읍으로 내려갔다가 왼쪽 산길로 꺾어 30여 분을 올라가 만난 것은 경이, 그 자체였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꼬부랑 산길이 지겹게 느껴질 무렵 느닷없이 그 너덜겅이 나타났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숲이 어느 순간 뚝 끊기더니 크고 작은 물고기 형태의 검은 돌밭이 한눈에 가득히 들어왔다.

비 오는 날의 밀양시내는 고즈넉하다
돌은 두드려보면 경쇠소리가 난다. 돌 하나하나가 다 고개를 치켜든 것도 신기한데 몸에선 쇳소리가 나니 문득 이 돌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인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이 모든 돌을 다스리고 호령했음직한 불영석과 마주하는 순간 극에 달했다.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신비를 만났을 때의 떨림이 뱃속 깊숙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