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가평·춘천, 물과 숲의 나라

새벽 호수에 빈 마음 담그네

  • 글·이나리 기자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2003-06-23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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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평·춘천, 물과 숲의 나라

    아침 6시, 춘천시 동면 지내리에서 바라본 소양강. 멀리 세월교가 보인다

    새벽 4시. 강촌유원지는 어린 처녀 같다. 아직 밤의 푸른 기운이 서려 있는 뺨은 싱그럽고, 물안개 피어오른 눈동자는 촉촉하다. 웃옷자락 풀어헤치고 그 시린 호흡 속으로 몸을 던진다. 해와 달이 입 맞추는 신성의 시간. 강바람 속엔 이미 대낮의 열기를 예감케 하는 달뜬 공기가 붉은 혀를 반쯤 내밀고 있다. 여기는 춘천, 풋사랑과 가슴 아린 추억의 땅이다.

    하루 전 서울을 출발해 먼저 닿은 곳은 경기도 가평이었다. 가평과 춘천은 많은 이들에게 ‘한 묶음’으로 다가온다. 서울 청량리역 혹은 성북역에서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출발하는 경춘선 기차를 타면 마석, 대성리, 청평역을 거쳐 가평역에 가 닿는다. 거기서 다시 강촌, 남춘천역을 지나 춘천역에 이르기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가평군 하면 흔히 청평호수, 그리고 마석·대성리 등 대학생들이 주로 찾는 민박 밀집지역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가평은 물만큼 숲도 아름다운 고장이다. 특히 자연휴양림(031-584-5487)이 있는 유명산(해발 864m)의 크고 작은 소(沼)와 계곡은 여름 가족 나들이 장소로 그만이다. 가평에는 그 외에도 명지산, 운악산, 청계산, 주금산, 중미산, 촉대봉, 국망봉, 강씨봉 등 아기자기한 등산 코스와 깊은 숲을 자랑하는 산들이 꽤나 많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아침고요수목원’(031-584-6702~3)은 이제 가평의 대표 관광상품이 됐다. 진입로와 주차장이 좁은 편이라 주말에는 아침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눈이 번쩍 뜨이는 드라이브 코스를 발견했다. 청평호반을 끼고 도는 362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구리소방소 옆으로 86번 군(郡)도로가 나 있다. 그 초입에서 양수발전처 경비초소로 이어지는 숲길이 대단하다. 오른편으로는 간간이 청평호의 절경이 훤히 내려다 뵈고, 도로 양편으로 우거진 숲에서는 새소리가 어지럽다. 경비초소에 다다르면 가평8경 중 제2경이라는 호명호수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양수발전소의 사유지라 미리 허가를 얻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031-580-1215~6).







    가평까지 와 민물매운탕 한 그릇 먹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가평천 철로 벼랑 아래 위치한 마산집(031-582-2053)은 경춘가도에서는 매운탕을 가장 잘 끓인다고 소문난 집이다. 3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산집 잡어매운탕(小 2만원)은 맵디매우면서도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흙내음이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가을에 담가 1년 내내 먹는다는 시래기장아찌, 고들빼기, 백김치와 김장김치, 강화순무김치의 깊은 맛도 입맛을 당긴다. 원하는 손님에게는 장아찌와 김치를 팔기도 한다. 더불어 잣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면 몸도 기분도 확 풀어진다. 잣은 가평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가평을 출발해 이른 저녁, 춘천에 도착했다. 의암호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놓칠세라 중도선착장 인근 춘천MBC 언덕, 그 한참 위 소양2교 앞에 있는 봉의산(해발 301m)과 소양정까지를 바삐 오갔다. 강원도청 바로 뒤에 있는 봉의산은 적당히 땀 빼기에 딱 좋을 정도의 등산로를 품고 있다. 낮은 산이지만 숲이 울창한 데다 도보로만 오르게 돼 있어, 어린아이를 동반한 여행객이라도 춘천호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전환하기에 제격이다. 사실 높은 곳 찾을 것 없이 호반순환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춘천의 저녁은 충분히 아름답다.

    늦은 식사를 하러 막국수로는 1, 2위를 다툰다는 ‘부안막국수’(033-254-0654) 집을 찾았다. 춘천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부안막국수의 자랑은 메밀에 밀가루 대신 전분을 첨가해 뽑은 면발과 강원도의 명물인 총떡이다. 갖가지 야채를 메밀 부침에 돌돌 만 총떡은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막국수, 총떡, 빈대떡, 메밀부침, 도토리묵이 모두 4000원. 1만7000원 하는 보쌈 맛도 예사롭지 않다.

    다시 가평 방향으로 차를 돌려 지난해 7월 개장한 강촌리조트(033-260-2000)에 짐을 풀었다. 잘 정돈된 스키장과 골프장, 특히 새 집 냄새 폴폴 나는 콘도가 가족·단체 휴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품을 많이 판 덕분인지 여명은 급히도 왔다.



    춘천의 진면목을 보려면 호숫가에서 새벽을 맞을 일이다. 여름이라면 오전 4시30분에는 숙소를 나서야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반의 신비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또 의암호 주변이나 횡 돌아본 것으로 춘천의 아침을 다 보았다 만족해서도 안 된다. 길을 서둘러 소양댐으로 가자. 희끄무레 밝아오는 아침 햇살 속으로 아직 채 녹지 않은 물안개가 의암호의 그것보다 훨씬 더 포실한 모양새로 수면을 어루만진다. 소양댐을 구경한 후 몇백 미터만 더 내려오면 세월교라는 예쁜 이름의 오래된 다리가 눈에 띈다. 차를 세우고 걸어서 다리를 건넌다. 속이 환히 들여다뵈는 맑은 물 위로 조약돌 점점이 떠 있고 외로운 새 한 마리 허공을 짚는다. 깨끗하고 또 깨끗한 아침이다.

    소양댐 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오봉산(해발 779m) 기슭에 자리잡은 청평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뱃길 끊어지면 밤새 못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이 곳은 사실 차로도 갈 수 있다. 세월교 아래쪽 천천리 삼거리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오음리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청평사 이정표가 나타난다. 비포장도로를 1km쯤 달려야 하는 것이 흠. 그러나 주위 풍광은 볼 만하다.

    해 떨어진 한참 후 명동 닭갈비 골목을 찾았다. 수십 개의 닭갈비 전문점이 밀집한 그 곳에서 손님이 가장 많은 집을 찾아 들어갔다. 1인분에 7000원. 원하면 밥도 볶아주고 국수도 넣어준다.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친절하고 음식 양도 많은 편이다. ‘춘천하고 닭갈비하고 도대체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엉뚱한 생각으로 고개 갸우뚱거리다 찬 맥주 한 잔 쭈욱 들이켰다. 캬, 좋다!

    가평·춘천, 물과 숲의 나라

    1. 춘천 명동의 닭갈비 골목<br>2. ‘부안막국수’의 막국수와 총떡(사진 위쪽)<br>3. ‘마산집’의 민물매운탕과 갖은 밑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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