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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좌파이론은 정치적 슬로건… 현실과 타협하는 실용주의자들

  • 글: 곽재성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라틴아메리카학 kwakwak@khu.ac.kr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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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에 ‘좌경화’ 바람이 불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등 이른바 좌파 지도자들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 현지 언론에서는 ‘좌파 부활은 중남미 민중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중남미에서 좌파의 집권은 불가능하다”며 “좌파 열풍은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중남미 좌파 열풍, 과연 그 실체는 무엇인가.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1990년대 그토록 요란스러웠던 중남미 ‘부’의 잔치는 세기가 바뀌면서 막을 내렸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활발했던 민영화 바람은 주춤해졌으며 국가신용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에서는 경제위기의 차원을 넘어 국민들이 서로 파괴와 약탈,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1980년대 외채위기에서 탈출한 후 공고한 민주주의 하에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둬온 중남미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런 중남미에 최근 ‘좌경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 언론에서는 ‘좌파 부활은 중남미 민중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우고 있고,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등 이른바 좌파 지도자들이 속속 정권을 잡고 있다. 하지만 좌파 지도자나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중남미 전체에 좌경화 바람이 일고 있다’, 더 나아가 ‘좌경화된 국가들이 연대한 반미·반세계화 연합이 출현할 것이다’는 관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필자는 현재 중남미의 좌파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것의 허구성과 자기모순, 그리고 주요 국가들에서 좌파 지도자들이 집권한 현상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중남미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좌파의 ‘마음의 고향’ 쿠바

우선 중남미 국가들이 좌파로 회귀한다는 명제에는 세 개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부와 같이 ‘현 단계의 자본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도입한다’는 고전적인 의미. 둘째, 반미·반세계화 움직임에 동참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의 영향. 마지막으로 일종의 수정 자본주의인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도입을 생각할 수 있다.



한때 쿠바는 세계 좌파의 표상이었다. 극악한 독재와 외세를 몰아낸 영웅적인 투쟁과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펼친 쿠바의 카스트로는 전세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후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는 데도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또 쿠바는 중남미 좌파 바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959년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쿠바는 국내외적인 도전으로부터 국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의 통일성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반정부 세력들은 대부분 해외로 망명했기 때문에, 체제 변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세력이 국내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 1990년대 자본주의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돼온 미국의 경제제재 정책에도 경제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강경한 제재정책이 쿠바 집권층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카스트로의 국내적 존립기반을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 게다가 미국의 반인륜적이며 불필요한 제재로 인해 아무 죄 없는 쿠바 민중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물론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제재를 철회할 수 없는 것은 미국 정계의 보수·강경세력과 재미 쿠바인들의 정치력 때문이다. 특히 반(反)카스트로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재미 쿠바인들이 대부분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면서 지역 정치인들과 언론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가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하고 있는 현실이 미국의 쿠바에 대한 정책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미 쿠바인들은 현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위기로 카스트로가 무너지면 자신들이 쿠바에서 권력을 잡고 빼앗긴 재산과 권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사회주의 쿠바 정권은 카스트로와 반카스트로 재미 쿠바인, 미국의 보수정치권이 합작해낸 하나의 특수한 작품일 뿐이다. 이 모델을 재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쿠바는 전세계 모든 좌파에게 있어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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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재성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라틴아메리카학 kwakwak@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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