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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70여 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배철현 서울대 교수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홍중식 기자|free7402@donga.com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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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슨 비판

인간적으로 온화한 건 사실이지만 학자로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양날의 도끼였다. 그 한쪽은 인류가 남긴 정신적 가치를 폄훼하는 과학을 향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종교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 둘은 그에겐 무지의 동의어나 다름없는 근본주의라는 괴물이었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맹신을 초래해 인류의 정수가 담긴 고전과 인문주의 정신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막아서는 가시나무이자 독초였다.

“찰스 다윈이 1859년 발표한 ‘종의 기원’은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던 종교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표상합니다. 하지만 그 서문에서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든 자연’이란 테니슨의 시구를 인용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상의 씨앗을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인류의 진화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기초했다는 인문학적 이타주의를 부정하는 ‘이기적 유전자’류 사고방식이 유행하게 됐습니다.”

그는 도킨슨 비판을 위해 같은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란 칼을 빌린다. 윌슨은 1975년 ‘사회생물학’을 발표하며 개미와 인간처럼 사회를 형성하는 생물은 상호이익을 추구한다고 설파했다. ‘내가 도움을 받기 위해 남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호혜적 이타주의다. 그다음 해인 1976년 발표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는 결국 이 호혜적 이타주의를 극대화, 대중화한 것이라는 게 배 교수의 비판이다.

윌슨은 2010년 발표한 ‘지구의 정복자’에서 그런 이기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타주의를 비판하고 나선다. 한 존재가 자기가 태어난 집단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진화한 생물군이 지구의 정복자가 됐다며 이를 ‘집단선택(group selection)’으로 설명한 것. 도킨슨은 이 역시 자신이 주장한 ‘혈연선택’(유전자 보존을 위해 혈연성이 강한 개체를 돕도록 진화했다)의 일종이라며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도킨슨의 이타주의에는 인간적 이타주의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의도성과 도덕성입니다. 슈바이처가 의대에 진학하고 아프리카로 간 것이나 오스트리아 수녀 두 분이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본 게 본능적 선택입니까? 의도적 선택이잖아요. 또 내가 큰 회사 경리사원인데 회사 돈을 훔쳐 노숙자를 돕는다면 이타적이라고 할 순 있어도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인슈타인과 베라 루빈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터키 남동부에서 발굴된 인류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 테페’ 건축 상상도. 1994~2014년 본격 발굴된 이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1만1500년 전으로 인류가 농업혁명을 이룬 시기보다 1500년이나 앞선다. 농업혁명 이후 도시문명과 종교가 생겨났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일러스트레이션 페르난도 밥티스타]

배 교수의 비판은 겸손하지 못한 과학에 대한 비판이다. 인문학적 성찰이 빠진 과학에 대한 비판이다. 그 핵심은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다.

“우리가 아는 과학은 10년 뒤 100년 뒤면 오류로 판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정적 가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과학 근본주의입니다. 20세기 과학의 영웅인 아인슈타인은 달랐습니다. 모든 과학과 예술과 인문의 원천은 신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죠. 허블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별이 2000억 개라면 이를 대체할 웹 망원경이 관측할 별은 2조 개라 하더군요. 하지만 우주의 별은 그 2조 개의 다시 2조 배가 됩니다. 무한에 가까운 거죠. 무한의 세계에서 우리가 아는 지식은 낫싱(nothing)에 가깝습니다.”

배 교수는 특히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 베라 루빈의 발견을 강조한다. 20세기 초 천문학자들은 은하수 성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물질’을 가정하며 이를 ‘둔클레 마테리에’, 즉 암흑물질이라고 명명했다. 루빈은 우주상에 우리가 아는 물질은 4%에 불과하며 우리가 모르는 암흑물질(22%)과 암흑에너지(74%)가 96%를 차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암흑물질이 우주를 수축시키는 인력의 근원이라면 암흑에너지는 이를 팽창시키는 척력의 근원이다.

“루빈은 이를 성냥개비의 작은 불씨로 주변만 잠시 밝히는 상황에 비견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깨달았던 ‘알 수 없음’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신학도 출신이어서 자연에 대한 경외와 신비를 강조하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배 교수는 “20세기 후반 이후 종교는 시대를 이끌고 갈 지도력을 상실했다”고 매섭게 비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 역시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그런 신을 믿지 않습니다. 배타적 종교의 신이니까요. 자신이 우연하게 경험한 세계를 진리라고 착각하는 종교,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종교는 난센스에 불과합니다. 중동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유일신은 결코 그런 신이 아니었습니다. 힘없고 약한 자를 배려하는 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듣는 신이었어요.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너희들이 고생할 때 내가 두 눈으로 봤고 너희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신이고 ‘시편’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하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노래하는 신이었습니다. 전복적이고 민주적인 신이었습니다. 성경 번역을 통해 독일이란 나라를 재구성하고, 미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원천이었습니다.”

그처럼 기존 시스템을 바꾸고 혁신을 가져왔던 일신교 신앙이 왜 지금은 그런 역할을 못하게 된 걸까. 배 교수는 역시 근본주의에서 그 문제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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