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외국어 교육 ‘메카’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 커리큘럼 + 내실 교육으로 ‘월드 리더’ 키운다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12-28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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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 수준의 통역번역대학원을 갖췄다. 유연한 학사 시스템으로 급변하는 사회 요구에 대응한다. 외국어와 실용학문 교육을 결합해 강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낸다…. 국제화 교육의 원조 한국외대를 찾았다.
    외국어 교육 ‘메카’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이문동에 자리잡은 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외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볼리우드(인도의 할리우드) 영화 감상’ ‘아랍어학회’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대자보가 눈에 띄었다. 이문화(異文化)와의 자연스런 만남은 국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외대의 학풍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캠퍼스를 걷다보면 학생들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외대는 50년 동안 ‘국제관계의 전문 실무자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충실히 이행해왔다. 외대 전체 졸업생의 10%인 1만명 정도가 세계 200여 나라에서 무역을 담당하는 기업인으로, 사업가로,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어느 땅에도 외대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다. 요즘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표방하는 세계화·국제화 열풍이 외대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4년으로 건학 50주년을 맞은 외대가 제2의 도약에 나섰다. ‘독특한 개성과 최고의 실력(Unique & Best)’이란 특성화된 컨셉트로 글로벌대학의 전형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외대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학과정원 자동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글로벌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화의 디딤돌이 될 외국어 교육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조직으로 재편할 준비도 마쳤다.

    ‘반짝 특수’ 극복할 자유전공제

    외대는 2005년 ‘자유전공제’를 도입하며 변혁의 신호탄을 쐈다.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학생들에 한해 1년 동안 다양한 전공과목을 수강할 수 있게 한 뒤 2학년 진급시 사범대를 제외한 모든 학과 중 전공학과를 선택하게 하는 제도다. 2005학년도 입학 전형에선 서울캠퍼스 121명, 용인캠퍼스 175명이 자유전공학부 학생으로 선발된다.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과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자유전공제가 전폭적인 환영을 받으며 탄생한 건 아니다. 자유전공학부는 각 학과가 5~15%의 정원을 내놓으며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비인기학과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일부 학과 교수들의 반발이 특히 거셌다. 그러나 안병만(64) 외대 총장은 자유전공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외대의 전공과목 중에는 ‘반짝 특수’를 누리는 것이 많습니다. 가령 이라크전이 한창일 땐 아랍어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평상시엔 그렇지 않아요. 다른 특수어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결국 대학의 인재 배출은 사회적 수요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일찍이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다른 대학들이 수요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자유전공학부 정원을 끝까지 고집해 실패했지만, 우리는 2년마다 한 번씩 과 정원을 조정하면서 시대 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응할 것입니다. 이른바 ‘살아 숨쉬는 체제’로 거듭나겠다는 거죠.”

    학사구조 개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04년 영어학부를 영어대학으로 승격시키는 한편, 신문방송학과와 경영학과를 각각 언론정보학부와 경영학부로 승격시켰다. 국내외 유수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지키기 위한 특성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영어기숙사 설립은 외대가 야심만만하게 추진하는 또 하나의 발전계획. 빠르면 2005년 8월부터 신입생 전원이 의무적으로 6개월(서울캠퍼스)~1년(용인캠퍼스)간 영어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기숙사별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RA(Resident Advisor)가 배치되는데 이들이 방과 후 학생들의 생활회화를 유도하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간다. 서울캠퍼스에는 현재의 학생회관과 테니스장 자리에 12층 이상의 건물을 짓고 있으며, 용인캠퍼스에는 기존 기숙사 건물을 대형 기숙사로 증축하는 중이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세계적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외대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 중심축이 통역번역대학원이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외대 통역번역대학원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통역사·번역사 양성소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통·번역사의 60% 이상이 외대 통역번역대학원을 거쳤다. 25년간 배출한 1300명의 인재가 88올림픽, 아셈회의(아시아-유럽 정상회의), 한일월드컵 등의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튼튼한 가교 역할을 했다.

    외국어 교육 ‘메카’ 한국외국어대학교
    특히 2004년 5월23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번역통역대학원(교)협회(CUITI)에 정규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외대 통역번역대학원은 국제적 입지를 굳혔다. CUITI의 까다로운 실사와 승인 절차 때문에 전세계 통역번역대학 중 미국 1개교, 캐나다 1개교, 유럽 22개교 등 12개국 25개교만이 이 협회에 가입해 있다. 외대는 동양에선 최초, 레바논을 제외한 북미, 유럽 이외 대학 중에서도 최초로 CUITI에 가입했다.

    외대 통역번역대학원이 이처럼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통역번역대학원 이두선 원장(아랍어과)의 설명이다.

    “우수한 교수진과 엄격한 학사관리 덕분이겠죠. 우리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기는 무척 힘들고 어렵다고 소문나 있습니다. 제때 졸업하지 못해 3년씩, 5년씩 졸업시험에 매달리는 학생도 많아요. 양질의 통·번역가를 배출하겠다는 학교측의 의지가 반영된 겁니다.”

    통역번역대학원이 세계적 명성을 떨치면서 외국인 학생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나 일본 학생도 많이 눈에 띈다. 2004년에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한국 학생 100여명이 지원했다. 통역번역대학원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8개 언어에 대한 온라인 다국어 전자사전을 구축하고 통·번역 자료실을 운영하는 등 전문가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마련에도 노력하고 있다.

    다른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외국어 관련 전공은 외대만의 특출한 경쟁력이다. 소수 언어를 습득한 외대 졸업생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외대 졸업생들이 ‘민들레’에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대에는 영어·중국어 등 주요 언어를 비롯해 26개 외국어 전공학과가 개설돼 있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더 많은 외국어와 지역학 연구가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2004년에는 그리스·발칸어학과와 중앙아시아어과를 신설했다. 중앙아시아어과는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카자흐어와 우즈베크어를 주로 가르친다. 중앙아시아 일대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유라시아 대륙으로 건너간 고려인 후예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자 석유 부국(富國)들이 자리잡아 강대국들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곳.

    손영훈 교수(중앙아시아어과)는 “국내에 중앙아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전략적·경제적 중요성을 고려해 이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스칸디나비아어나 아프리카어, 유고·폴란드·체코·헝가리·루마니아어 등 동유럽 5개 국어 역시 외대만이 보유한 고유 전공 분야이며, 아랍어·베트남어·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 등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소수 언어학과다.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이들 학과는 해외교류 확대에 이바지하는 공인된 ‘프런티어 양성소’로 통한다.

    외대는 ‘외국학 연구의 메카’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용인캠퍼스 외국학종합연구센터는 이러한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외대는 1999년 5월, 12개 지역 연구소와 11개 전문분야 연구소, 정보자료실, 영상문화실, 멀티미디어 시청각실, 대회의실 등 첨단시설을 갖춘 국내 최고 수준의 지역학 및 외국학 연구센터를 세웠다.

    숙박·복지시설이 완비된 복합생활공간으로서 연구센터에 들어선 생활관도 눈길을 끈다. 세계 각국의 주재원들과 국내 연구원들이 함께 연구에 참가하고, 산업체 학술단체 정부기관이 힘을 보태면서 연구센터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역연구 활동 이외에도 일반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지역전문가 연수과정, 해외 역사문화 연수과정, 한국문화 연수과정 등을 설치해 평생교육기관으로도 자리매김했다.

    최근 외대는 외국어고등학교와 어학교육기업 설립에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은 외국어고등학교 설립. 고등학교 교육의 강화야말로 국제 무대의 주인공을 키우는 결정적 토대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2005년 3월 개교를 앞둔 외대부속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대부속외고’)는 입학시험 경쟁률이 10대 1을 넘어설 만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입제도 개선안에 따라 다른 외고들의 경쟁률이 낮아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선발된 학생의 토플 성적이 평균 260점을 넘는다. 24명을 모집하는 교사 채용공고에 무려 591명이 몰려들었다. 이들 중 98명이 박사학위 소지자고 대학강사나 EBS 강사, 외고 등 특수목적고 현직 교사도 상당수였다. 외대부속외고가 개교도 하기 전부터 이렇듯 명문고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박하식 외대부속외고 교감(전 민족사관고 교감)의 말이다.

    “무엇보다 외국어 교육기관으로 정평이 난 외대가 운영하는 외고여서 커리큘럼에 대한 신뢰도가 높습니다. 게다가 경기도 용인시가 학교 설립 및 운영비용으로 2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요. 이 학교가 국제적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심어준 셈입니다.”

    외대부속외고는 용인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외대의 교육 시스템이 결합된 최초의 관·학 협력 외고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지역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용인시의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외대부속외고는 호텔 수준의 여건을 갖추게 됐다. 교사는 개인 연구실을 갖고, 학생들은 샤워장과 화장실이 완비된 2인1실의 기숙사에 머물게 된다. 도서관이 학교 건물과 기숙사에 모두 들어서 있고, 장애인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다.

    단순히 어학실력만 뛰어난 인재가 아니라 국제적 감각과 소양을 갖춘 명실상부한 ‘세계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게 외대부속외고의 목표. 영어권 외국대학 진학을 꿈꾸는 유학반은 전과목 영어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박하식 교감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고교 교육과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어와 실용학문의 결합

    외대가 추진하는 어학교육산업도 눈길을 끈다. ‘i-외대’는 외대가 국민의 국제적 감각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설립한 산학협력 형태의 어학교육기업. 2004년 5~7월 용인지역 초등학교에 무료로 시범서비스를 실시했고, 9월 말부터 회원을 모집하면서 KT와 함께 수신망 구축작업에 들어갔다. 외대가 구축한 양질의 콘텐츠를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은 학교 발전을 위해 쓰겠다는 사업목적을 갖고 있다.

    국제화 사회의 기본 경쟁력은 외국어에서 나온다. 그러나 외대는 외국어 교육에만 집착하지 않고 실용학문을 발전시키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외국어를 토대로 세계 각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게 하고 있는 것. 특히 각종 외국어를 바탕으로 한 국제경영실무와 정치·외교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고, 서반아어 사업팀과 경영학과 및 정치외교학과 사업팀은 1999년 두뇌한국(BK21) 핵심분야 사업팀으로 선정됐다.

    1974년 9월 정부와 무역협회 후원으로 설립된 외국어연수평가원 (FLTTC FLEX) 역시 외국어와 실용학문의 성공적인 결합 사례다. 국가의 외교 및 무역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공무원이나 무역상사 직원에게 외국어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1만3000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한 것.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불어, 서반아어 교육과정과 함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다.

    외대 서울캠퍼스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협소한 공간과 낡은 건물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캠퍼스는 외대가 보유한 교육환경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외대의 무대는 세계 여러 나라와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대되어 있다는 것.

    외대는 현재 55개국 140개 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세계화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도 자랑거리. 예를 들어 미국 동부의 명문인 델라웨어대와 ‘2+2프로그램’을 도입해 외대에서 2년, 델라웨어대에서 2년을 수학하면 두 대학의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자매대학과 학생을 1대1로 교환하는 교환학생제도, 방학에 각 언어권별로 어학연수자를 파견하는 단기 어학연수단제도, 매년 10여명의 학생을 선발해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하는 파견학생제도 등도 운영하고 있다.

    외대는 사이버 공간에 또 하나의 캠퍼스를 지었다. 멀티미디어센터가 SK C&C와 기술·자본을 제휴해 2004년 3월 개교한 사이버 외국어대학교는 국내 사이버대학 최초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시켰다. 학생들이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을 넘나들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교수가 다른 과의 학생으로 등록할 정도로 대학 구성원 모두가 사이버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섰다. 개교 당시 5개 학과, 정원 1000명 규모로 출발한 사이버대는 2007년 15개 학과를 보유한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아남는 길 가운데 하나는 우수한 인재를 해외로 진출시켜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외대는 이러한 사회적 요청에 적극 부응하는 프런티어 양성에 사활을 걸며 위풍당당한 비상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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