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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 특별기고

한류(韓流)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上)

홍콩에 떨어진 물 한 방울, ‘아시안 로컬리즘’의 바다가 되다

  • 글: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국문학

한류(韓流)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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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신조어의 문화코드로 보면 한류란 말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안티(anti) 한류’의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한류를 ‘한미(韓迷)’라고 쓰는 경우가 있어 더욱 그렇다. ‘미(迷)’는 영어의 ‘마니아’를 음역한 것이지만, ‘미로(迷路)’ ‘미아(迷兒)’ 등 여러 관련어에서 느낄 수 있듯 한국의 대중문화에 중독되어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한류라는 용어보다 앞서 대만에 등장했던 ‘하한쭈(哈韓族)’란 말을 생각해 보면 그 이미지는 더욱 명확해진다. 하한쭈는 한류와 같은 뜻이지만 ‘韓’을 ‘寒’으로 바꾸면 말라리아 같은 열병에 걸려 추위에 떠는 병자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일본문화를 추종하는 ‘하르쭈(哈日族)’가 대만의 방언인 민남어로 ‘일사병(日射病)’을 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을 나타내는 ‘日’이 뜨거운 열을 뿜는 태양의 ‘日’로도 읽히는 까닭이다.

‘중화주의’를 뒤흔드는 징후

그렇다면 한류의 ‘流’자는 어떤 문화적 코드를 나타내는가. 원래 ‘流’라는 한자는 물의 흐름이 아니라 물에 떠내려오는 시체를 가리키던 글자라고 한다. 중국에는 홍수가 잦아 냇물에 시체가 떠내려오는 일이 많았는데, 뒤에 그 글자가 물의 흐름만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白川 靜의 ‘字統’ 참고).

이렇게 글자의 기원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류’ 역시 좋은 뜻을 내포한다고 할 수 없다. 흘러왔다 흘러가는 냇물의 흐름은 공자의 그 유명한 천상탄(川上嘆·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인간의 죽음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처럼 가역불가능한 시간의 무상성과 죽음을 암시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류’라는 말에는 유행, 유언비어, 유배, 유찬 등 일시적으로 근거 없이 떠다니거나 멀리 떠나버리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단순히 ‘강물’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중립적인 의미로 쓰일 때에도 한류는 결코 ‘황하(黃河)’나 ‘장강(長江)’같이 중국을 상징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준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한자문화권’이라는 말이 있듯 중화사상의 강물은 1000년 이상을 두고 언제나 동북아시아의 주변국으로 흘러갔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아시아를 관통해온 ‘화이질서(華夷秩序)’라는 강물이다.

그러기에 비록 그것이 대중문화라 해도 한류는 한국의 물이 중국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의미에서, 중국인들에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충격적인 역류현상인 것이다. 중국의 과장법을 빌리자면 몇천년 동안 흘러온 황하가 요즘에 이르러서 갑자기 단류(斷流) 현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국민복 세대’가 주지 못한 것들

100년 전 서구의 근대 문명과 접촉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 동도서기(東道西器)라 하여 느긋해했다. 청 말 서태후는 군함은 샀어도 서구 근대의 군대 시스템과 제도를 들여오려고 하지는 않았다. 소프트의 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하드만 들여왔다. 에토스는 배우려 하지 않고 결과의 실용성만을 가져오려 했다. 그 결과, 상하이의 바오산(寶山)제철소는 보석은커녕 쇳조각 하나 생산할 수 없는 제철소로 이름값도 하지 못한다는 비웃음을 샀다.

중국에 한류가 들어가기 이전에 사람들은 어째서 바오산은 한국의 포항제철이 될 수 없었는가에 대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대나무와 나무는 붙지 않는다.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 중국의 근대화는 나무를 대나무에 붙이려는 것과 같다. 중국의 문화는 황하나 장강처럼 천천히 흐른다”고.

그런데 한류가 흐르는 오늘의 중국은 확실히 변했다. 옛날의 미국 부모는 밥투정하는 어린애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중국에서 끼니를 굶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렴.”

그런데 오늘의 부모들은 다르다.

“얘야 밥을 안 먹으면 장차 중국 사람들과 싸울 힘이 없어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단다.”

13억의 중국인과 한반도의 44배가 넘는 거대한 중국대륙에서 보면 한류는 아주 작은 도랑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서용(西用)이 아니라 중체(中體·중국의 문화와 정신)를 흔드는 징후라면 황하와 장강의 물살에 변화를 일으키는 큰 강물일 수도 있다.

틀린 시각이 아니다. 중국 포털 사이트에서 ‘한류’라는 낱말을 검색해보면 ‘휴대전화 한류’ ‘바둑 한류’ ‘자동차 한류’ ‘자본 한류’ ‘한류 경제’ ‘IT 한류’와 같은 생소한 말들이 거미줄처럼 줄줄이 이어진다. ‘韓’자는 대한민국을 나타내는 약자만이 아니다.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있지만 한류가 차가운 흐름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듯이 서양에서는 ‘아시아인들에 의한 아시아 대중문화의 발견’을 ‘아시안 쿨(Asian cool)’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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