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부산경찰 실세’ 이춘성 경무관 직권남용 논란

관용차 주차단속한 해운대구청 불법 압수수색 의혹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5-23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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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경무관으로 승진한 이춘성 경남경찰청 차장의 행적이 논란을 빚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던 지난해 자신의 관용차를 불법주차 단속으로 적발한 해운대구청을 영장도 없이 불법 압수수색한 것.
    ‘부산경찰 실세’ 이춘성 경무관 직권남용 논란
    ‘부산경찰 실세’ 이춘성 경무관 직권남용 논란

    ‘신동아’가 해운대구청에서 입수한 ‘주차위반 행위자 적발 통보서.’

    지난해 12월 부산경찰청 수사과는 영장도 없이 해운대구청 교통지도계를 불법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은 당시 부산경찰청 수사과장이던 이춘성(53) 현 경남경찰청 차장의 관용차량이 해운대구청의 불법주차 단속으로 적발된 다음날. 이를 두고 이 경무관이 사적인 감정으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수사권을 남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경무관으로 승진해 화제가 됐다.

    이 경무관의 직권남용 의혹을 접한 것은 지난 3월말. 부산지역 기자들이 불법 압수수색 의혹에 대한 취재에 나섰으나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즉시 해운대구청 교통지도계로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담당자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한 한 지역신문 기자는 “‘부산경찰청 수사과 직원들이 서류를 가져갔다’는 구청 직원의 진술은 확보했지만, 정작 이 경무관의 차량이 불법주차 단속을 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취재를 접었다”고 했다.

    사건의 진상은 쉽게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구청이 속시원히 입을 열지 않은 데다 뚜렷한 증거도 잡히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4월말 해운대구청의 한 직원에게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의 관용 승용차 번호를 알려주고 이 번호의 차량이 불법주차로 적발된 사실이 있는지 조회를 의뢰한 결과 실마리가 풀렸다.

    경사 2명 보내 자료 압수

    ‘신동아’가 입수한 해운대구청의 ‘주차위반 행위자 적발 통보서’에 따르면, 부산경찰청 수사과장의 관용 승용차인 ‘부산 30가 XXXX’ 검은색 아반테 XD 차량이 부산 해운대구 우1동 까르푸 매장 앞에서 지난해 8월8일과 12월15일 두 차례 불법주차로 적발됐다. 모두 이 경무관이 부산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던 당시다. 그리고 12월16일, 해운대구청 교통지도계에 대한 부산경찰청 수사과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다음은 당시 교통지도계 관계자의 증언이다.



    “지난해 12월16일 오전 11시경 부산지방경찰청 수사2계의 두 경사(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사무실로 찾아와 공문도 제시하지 않고 서류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우리가 ‘함부로 서류를 내줄 수 없다. 구청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며 항의하자, 부산경찰청 수사2계장이 전화를 걸어와 ‘민원관계로 서류를 확인할 게 있다’며 서류 제출을 요구했다.

    경찰측이 요구한 서류가 워낙 많아 자료를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결국 두 경찰관이 오후 2시에 다시 방문해서 요청한 서류를 가져갔다. 주차단속 이의신청서철, 2004년도 주정차 위반 과태료 부과 및 견인 스티커 인쇄철, 스티커 훼손·오손 현황, 스티커 발부 후 이의 신청 및 면제 현황, 과태료 고지서 2004년 11월분 등이 그들이 챙겨간 서류다. 그들은 이튿날 서류를 돌려줬다.”

    통상 경찰이 공무집행기관인 지방자치단체의 서류를 가져가는 경우는 수사를 위해서거나 업무 협조가 필요할 때다. 수사가 필요하다면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기관간 업무 협조를 구하려면 공문을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시 한 구청의 교통지도담당관은 해운대구청의 사례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사법경찰관리직무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이 있어야 다른 기관의 공문서를 가져갈 수 있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만 임의로 영장 없이 수색할 수 있다”며 “증거를 은폐할 정도의 긴급한 상황도 아닌데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많은 분량의 서류를 가져간 것은 경찰의 명백한 직권남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찰이 대외 민원에 대한 참조용으로 구청에 자료 제출을 요청할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공문서에 자료 사용 용도를 밝혀 협조를 구한다”면서 “자료를 가져간다는 것은 기관의 정보를 유출하는 일인데, 무작정 찾아와 자료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경찰의 위압적 태도는 ‘힘 과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사할 필요는 느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이춘성 수사과장이 자신의 차량을 단속한 구청에 대해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도록 지시한 일이 내부적으로 은밀하게 알려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아무 탈 없이 경무관으로 승진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며 “경찰 간부가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대한 내부 각성이 모자란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한편 이춘성 경무관은 자신의 직권남용 의혹에 대해 “부하직원에게 해운대구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의 해명이다.

    “12월15일 밤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느라 까르푸 앞에 잠시 주차했는데, 다녀와 보니 차가 없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다른 차들을 견인해가는 것이었다. 결국 해운대구 견인차량보관소에 가서 직원에게 ‘무전기 달린 관용차를 못 봤냐’고 물어본 뒤 견인된 차를 찾았다. 물론 내 신분을 밝혔다.

    문제는 내 차량을 단속한 사람이 해운대구청 공무원이 아니라 견인차량보관소 직원이었다는 점이다. 그날 밤 해운대구청 공무원은 근무하지 않았다. 견인차량보관소 직원이 차량을 임의로 끌고 가는 일은 법에 저촉되므로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 10시경 부하직원에게 행정 공무원과 견인차량보관소의 유착 관계를 추후 수사해보자고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이 직접 수사에 들어가는 것은 오전 11시경 중지시켰다. 해운대구청 노조측에서 ‘이춘성의 자녀가 음주운전 후 불법주차한 것을 무마하려고 구청을 수사하려 한다’는 등의 음해성 소문을 퍼뜨린 데다 보복성 수사라는 오해도 받을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의 해명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가 수사를 중지시켰음에도 왜 부산경찰청 수사2계 직원들이 해운대구청 교통지도계의 서류를 가져갔을까. 상관의 지시 없이 직원들이 독자적으로 압수수색을 강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경무관은 이에 대해 “부하직원이 서류를 압수수색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구청의 서류를 가져왔다면, 내 메시지가 중간에서 잘못 전달된 모양이다. 내가 수사를 지시했다면 이렇게 조용히 넘어갔겠냐”고 반문했다.

    이 경무관의 주장은 해운대구 견인차량보관소와 해운대구청측의 진술과 엇갈린다.

    해운대구 견인차량보관소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15일엔 야간근무를 하지 않았고, 해당 차량이 우리 보관소에 온 기록도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차량보관소 직원들은 구청이 발부한 파란색 주차위반 고지서가 붙여진 차량을 견인할 뿐 임의로 견인한 적은 결코 없다”고 반박했다.

    해운대구청 교통지도계측은 “파란색의 불법주차 고지서는 금전과 관련된 것인 만큼 구청의 이중 캐비닛에 엄격히 보관하는데, 어떻게 견인차량보관소 직원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겠냐”며 “12월15일 밤 구청 공무원이 2인1조로 단속에 나섰고, 그 기록이 자료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그날 단속에 나선 공무원이 누구인지는 알려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자가 입수한 ‘주차위반 행위자 적발 통보서’에도 당시 구청 공무원이 찍은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 경무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해운대구청 노조측도 “우리는 이 경무관의 압수수색 논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며 이 경무관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부산청 출신 세 번째 경무관

    지난 1월28일 경무관으로 승진한 이춘성 경남경찰청 차장은 경남 함양 출신으로, 1979년 간부후보 27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 경무관은 수사 분야에서 주로 근무한 수사통으로 경남 김해경찰서장, 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장, 부산 금정경찰서장을 지냈다. 그는 2000년 7월부터 1년6개월간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경찰서장을 지냈으며, 경찰 내부에서 노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인물로 꼽힌다. 그의 형은 이화춘 국가정보원장 정책특보다.

    이 경무관은 부산경찰청 출범 이래 1994년 박정호 정보과장 이후 부산경찰청 출신의 세 번째 경무관 승진자다. 지방 근무 경험이 대부분인 총경의 경무관 승진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자신의 승진 이유에 대해 “참여정부 들어 지방 출신에 대한 배려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라 분석하며 “26년간 부산·경남 지역에서 근무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조직 내에 적도 생기고, 음해에 휩싸이게 된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점들을 잘 살피며 공복(公僕)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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