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산병원 임상 1상시험 통과 임박
- 국가공인 연구소에서 안전성·효능 입증
- ‘천지산’ 공동연구 의학자 6명 최초 공개 증언
- ‘천지산 사건’ 수사비화 “복용환자 중 암 전문의도 있었다”
- 상품가치 2000억, 2상시험 중 코스닥 상장 계획
- 2상시험 비용 마련 못해 세계 최고기술 死藏 위기
- 이영순 전 식약청장, “천지산 개발, 국가가 지원해야”
천지산 제조자인 배일주씨.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천지산(약품명 ‘테트라스’)이다.
그후 9년. 천지산이 돌아왔다. 몇 년 전부터 이따금씩 언론을 통해 재기의 움직임을 내비치던 천지산은 이제 완연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며 대중의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맨 먼저 특허 인정
천지산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은 특허출원과 임상시험이다. 특허출원은 1998년부터 시작했는데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최근 유럽 14개국에서 특허가 나옴으로써 천지산 특허가 등록된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모두 23개국으로 늘었다.
2003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임상시험 허가가 났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1999년부터 3년간 원자력의학연구원, 바이오톡스텍 등에서 전(前)임상시험(동물시험, 시험관 시험, 독성시험)을 거친 천지산은 2005년 5월 중순 현재 임상 1상시험을 ‘거의’ 마치고 2상시험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험은 끝났지만 일부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이 미처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1상시험을 주도한 서울아산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시험결과는 배일주씨를 비롯한 천지산 연구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상시험 보고서는 상반기 중 식약청에 제출될 예정인데, 지금까지의 진행경과에 비춰보면 돌발변수가 없는 한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따라서 천지산은 늦어도 올 하반기 초엔 2상시험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1상시험은 약물의 체내 반응과 적정용량을 찾는 시험이다. 약의 효능, 즉 항암효과를 검증하는 것은 2상시험이다. 그런데 천지산의 항암 기능은 1상시험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입증된 것으로 알려져 2상시험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다.
일반 의약품은 장기적인 부작용을 점검하는 3상시험을 거친 후에야 시판할 수 있다. 하지만 천지산처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암치료제는 2상시험을 통과하면 곧바로 판매가 허용된다. 천지산 연구진은 2상시험 기간을 1년으로 잡고 있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 천지산은 공인된 약품으로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비소의 독성을 거꾸로 이용
‘신동아’는 천지산의 1상시험 완료에 맞춰 그간의 진행과정 전반에 대해 취재하면서 제조자인 배일주씨와 연구에 동참해온 의대교수들, 투자회사 대표, 식약청 관계자 등을 인터뷰했다. 배씨가 작심하고 인터뷰에 응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더욱 뜻 깊은 것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던 의학자들의 등장이다. 이들의 연구는 민간요법 차원에 머물던 천지산을 현대의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임상시험을 통과해 시판이 되면 천지산은 최초의 국산 항암제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선플라주’(SK케미칼) 등 기존 약물의 분자구조를 변형한 ‘응용 항암제’가 개발된 적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자구조를 가진 국산 항암제로는 천지산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배일주씨는 “비소가 탁월한 항암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이미 FDA(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인정됐기 때문에 비소화합물인 천지산이 실패할 확률은 0%”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주사제가 아닌 경구제라는 점도 천지산의 상품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간 개발된 항암제는 대부분 주사제다. 주사제는 해당 부위에 직접 자극을 주는 효과는 있지만 입원을 해야 하는 등 사용이 불편한 점이 흠이다. 이에 비해 경구제는 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천지산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세계 최초의 비소화합물(As4O6·육산화비소) 항암제라는 점이다. 비소(As)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독성을 갖고 있어 일반 의약품으로 쓰이는 것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천지산의 주성분인 육산화비소는 각종 실험을 통해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비소의 암치료제 가능성은 1996년 중국 하얼빈 의대 연구팀이 삼산화비소(As2O3)가 백혈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 각종 논문을 통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삼산화비소로 만든 ‘트리세녹스’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APL)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 초에 이미 비소화합물 합성에 성공한 배씨는 이 방면에서 선구자라 할 만하다.
천지산이 비소화합물이라는 점은 약품명인 ‘테트라스(TetraAs)’에서도 드러난다. ‘테트라(Tetra)’는 4개의 원자를 뜻하고, As는 비소다. 즉 비소가 4개라는 뜻이다.
테트라스에 대한 임상 1상시험 책임연구원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강윤구 교수다. 강 교수는 2004년 2월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원자력병원 환자들 중 여러 차례 암수술을 받거나 각종 암치료제를 쓰고도 호전되지 않은 중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약을 복용케 한 후 일정 기간 체내반응을 관찰해야 하므로 3개월 미만의 시한부 환자는 제외했다. 암 부위별로 보면 자궁경부암, 두경부암, 방광암 환자가 많았고 위암, 폐암 환자도 일부 포함됐다.
적정용량 시험 끝나
1상시험의 주 목적은 2상시험에서 사용할 적정용량을 구하는 것이다. 적정용량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용량에서 부작용, 즉 독성반응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것을 용량제한독성(Dose Limiting Toxicity)이라 한다.
적정용량 시험은 통상 4단계까지 진행한다. 먼저 환자 3명에게 똑같은 양의 약을 쓴 다음 인체 내 부작용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것이 1단계 시험이다. 3명 모두에게서 용량제한독성이 발견되지 않으면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에서는 다시 3명을 대상으로 용량을 늘려 독성반응을 확인한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양을 늘려 4단계까지 진행해 별 문제가 없으면 그것을 적정용량으로 삼는다.
그런데 1단계에서 3명 중 1명이라도 이상반응을 보이면 2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같은 용량으로 또 다른 환자 3명에게 약을 사용해 본다. 여기서 또 1명이 거부 반응을 나타내면, 즉 6명 중 2명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면 위험하다고 보고, 그보다 한 단계 적은 양을 적정용량으로 삼는다. 만약 1단계에서 3명 중 2명에게서 용량제한독성이 나타나면 약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바로 실험을 멈춘다.
1단계 용량은 동물 독성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한다. 강 교수는 “1단계 용량을 결정해놓고 보니 공교롭게도 과거 배일주씨가 환자들에게 사용했던 양과 같았다”고 말했다. 배씨가 주먹구구식으로 약을 처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테트라스의 경우 2단계 용량을 적정용량으로 삼아 2상시험에 들어가기로 결정됐다. 3단계 시험에서 일부 환자에게 이상반응이 나타난 까닭이다.
최적 용량을 찾는 것이 주요 목적이므로 1상시험을 통해 약의 효과까지 검증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종양표지자(암세포가 있는 것을 나타내주는 물질) 농도 측정을 통해 효능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 농도가 묽어지면 암세포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1상시험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에게서 종양표지자 농도 수치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1상시험의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은 약물의 체내반응, 곧 약을 쓴 후 흡수·분포·대사·배설 4가지 작용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약물역동학 검사라 하는데, 시간별로 피를 뽑거나 소변을 수거해 약의 주성분(테트라스의 경우 비소) 농도를 검사함으로써 약물에 대한 인체의 반응정도를 확인한다. 즉 약 성분이 얼마나 빨리 인체에 흡수돼 분포되는지, 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피 속에 약 성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테트라스의 약물역동학 검사결과에 대한 분석작업은 서울아산병원의 의뢰를 받은 한국과학기술원이 진행하고 있다. 천지산 1상시험 보고서를 식약청에 제출하는 일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도 바로 약물역동학 검사결과를 분석해 통계 처리하는 작업이 늦어진 탓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은 혈액 샘플 등 약 2500개의 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강 교수는 테트라스의 항암효과에 대해 “정확한 것은 2상시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비소가 항암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테트라스가 항암효과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면서 “다만 이를 (2상)시험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2상시험은 특정 암세포를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제로 약효가 얼마나 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배일주씨는 “항암효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면서 “부작용이 없는 것도 효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천지산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23개국에서 특허를 인정받은 데 이어 식약청으로부터 임상시험을 승인 받았다.
2상시험 통과하면 곧바로 시판
항암제의 성격에 대한 배씨의 주장은 식약청 관계자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약청 의약품안전국 관계자는 “완치가 아니라 암의 진행속도를 늦추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효과만 내더라도 항암치료제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2상시험은 통상 6개월~1년이 걸린다. 하지만 탁월한 효과가 인정될 경우 2~3개월 안에 시험이 끝날 수도 있다. 2상시험을 마치면 다양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장기적 부작용을 검증하는 3상시험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항암제, 에이즈 치료제 등 희귀병 의약품은 2상시험만 통과하면 바로 시판허가를 내준다. 당장 며칠 또는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환자에게 몇 년 후 머리가 빠지는 등의 부작용은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암환자처럼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나중에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나든 우선 약을 쓰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효과가 있다고 인정되는 약에 한해서다.
이를 의약품의 ‘동정적 사용’이라 한다. 비록 안전성과 유효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임상시험단계 신약이지만, 기존 치료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마지막 치료기회를 준다는 뜻에서 주치의의 책임아래 환자의 동의를 거쳐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약청도 항암제를 비롯한 몇 가지 희귀병 의약품의 경우 2상시험 결과가 좋으면 곧바로 시판을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동정적 사용’이 허용된 항암제로는 ‘글리벡’(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스위스), ‘이레사’(폐암 치료제·영국) 등을 꼽을 수 있다. ‘동정적 사용’이 인정된 의약품에 대한 3상시험은 시판 중에 이뤄진다.
식약청 관계자에 따르면 임상 1상시험에서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상시험이 끝났더라도 그 결과가 식약청이 제시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2상시험 허가가 나지 않는다. 또 2상을 통과하더라도 3상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그만큼 신약개발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테트라스에 대해 “임상시험 중이기 때문에 효능을 논하기엔 이르다”고 잘라 말했다.
암세포의 혈관신생 억제
1상시험을 주도한 강윤구 교수나 전임상시험 단계에서 이 약을 연구해온 몇몇 의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테트라스의 2상시험 진입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2상시험에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드는 만큼 자금조달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강윤구 교수는 “최근 FDA에서 시판 허가가 난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의 경우 다른 항암제와 같이 쓰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추측이긴 하지만 테트라스도 다른 특성을 가진 기존의 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일주씨에 따르면 테트라스는 혈관신생 억제(Angiogenesis Inhibitor), 암세포 사멸(Apoptosis), 방사선 치료효과 증대(Radiosensitization)라는 세 가지 항암효과를 갖고 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밝혀낸 사람이 한국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교수 이창훈 교수다. 배씨는 “이창훈 박사를 만나면서 천지산 효능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식약청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받는 데도 이 박사의 공이 컸다”고 이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이 교수가 천지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6월 방영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씨는 천지산의 원료가 비소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방송을 보고 흥미를 느낀 이 교수가 수소문 끝에 배씨의 연락처를 알아냄으로써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배씨와 만난 후 천지산에 빠져든 이 교수는 연구에 동참, 이와 관련된 논문을 세 편이나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민간요법 또는 한방 차원에서 거론되던 천지산의 물질구조와 효능을 현대의학 관점에서 설명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 교수는 또 암 관련 국제학술회의(미국 1회, 중국 2회)에 참석해 천지산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2002년 미국 암학회(AACR) 학술회의에는 배씨가 동행했다.
이 교수는 논문 발표에 대해 “(비과학의 영역에 머물던) 천지산이 연구자를 통해 학문적 비판의 무대에 오른 것일 뿐”이라며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천지산의 효능 중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혈관신생 억제작용이다. 암세포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계속 자라면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차단해 더는 암세포가 확산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혈관신생 억제다.
이 교수는 천지산이 임상시험에 들어간 것에 대해 “동물시험에서 성공했으니 사람에 대한 시험을 해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라며 “임상시험 결과가 나와 봐야 (효능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창훈 교수와 더불어 천지산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동대 생의학연구소장인 김종배 교수다. 김 교수는 특허출원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 교수가 천지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고등학교 동기인 Y교수(당시 강북삼성병원 암 전문의)의 제의를 받고서다. Y교수는 의사들 중에 가장 먼저 천지산의 의학적 효능을 인정하고 연구에 동참한 사람이다.
‘천지산 사건’이 나기 얼마 전인 1995년 어느 날 Y교수가 김 교수에게 연락을 해왔다. “(천지산 효능이) 임상적으로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실험적으로 이를 입증할 수 없겠느냐”는 일종의 공동연구 제의였다. Y교수의 설명을 듣고 귀가 솔깃해진 김 교수는 샘플을 얻어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Y교수는 천지산을 복용한 암환자들의 상태를 조사한 자료를 갖고 있었는데, 자료에 따르면 상당한 항암효과가 있었다. 내 연구는 이미 사람한테 (천지산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자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천지산은 정상적인 신약개발과정과는 반대로, 비공식이긴 하지만 먼저 임상시험을 거친 다음 시험관 시험과 독성시험 등 전임상시험에 들어간 셈이다. 시험관 시험은 동물과 사람의 암세포를 시험관에 넣고 다양한 농도로 약물, 곧 천지산을 집어넣어 암세포가 얼마나 죽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암세포 100개 중 50개를 죽이는 약물 농도를 ED(Effective Dose)50, 이른바 세포독성이라 한다. ED50을 나타내는 수치가 낮을수록 항암성이 좋다.
한약재는 항암효과와 상관없어
시험결과 천지산의 ED50 수치는 기존에 개발된 항암제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시험관 시험결과만으로도 흥분할 만했다. 그런데 이미 사람한테 써서 효과를 봤다고 하니 계속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그 다음 단계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독성시험이었다. 김 교수는 국내 독성시험의 권위자인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에게 독성시험을 의뢰했다. 통보받은 시험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독성시험은 치사량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것인데 천지산의 경우 치사량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마디로 독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동물에 대해서는 직접 독성시험을 할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해선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의 오줌이나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비소를 갖고 측정하는 간접적 시험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시 배씨는 이미 그런 작업을 해놓은 상태였다. 천지산에 함유된 비소는 일반 비소에 비해 독성이 매우 약하다. 배씨는 환자들에게 처방하기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시험과 별개로 김 교수는 포항공대 연구팀에 천지산의 물질구조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런 구조는 처음 봤다. 신물질이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김 교수에 따르면 신물질은 아니었다.
“당시 포항공대 연구팀은 As4O6라는 물질이 천지산을 통해 처음 발견된 줄 알았다. 나도 그렇게 알았는데, 뒷날 우연히 이미 1960년대에 As4O6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만 당시 발견자는 항암성이 있다는 건 몰랐다. 따라서 배씨가 제조한 As4O6는 엄밀하게 말해 물질특허가 아니라 용도특허에 해당한다. 항암작용이 있다는 건 배씨가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한창 천지산 연구에 몰입할 때 배씨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구속되는 사건이 터졌다. 법원에서 천지산에 대해 가짜 판정을 내린 후에도 김 교수는 배씨 곁을 떠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 배씨가 1998년 한국을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특허를 출원하게 된 것도 김 교수 덕분이다.
배씨는 김 교수의 도움을 받아 특허출원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준비해 이를 이덕록 변리사(예일특허법률사무소 대표)에게 넘겼다. 이 변리사에 따르면 천지산에 대해 인정된 특허는 물질, 용도, 제법(製法), 조성물 특허 네 종류다. 물질특허는 비소화합물(As4O6)에 대한 특허로 일부 나라에서만 인정됐다. 용도특허는 항암 기능, 제법특허는 제조방법에 관한 것이고, 조성물특허는 비소화합물에 첨가되는 한약재 성분과 관련된 것이다.
배씨에 따르면 한약재 성분은 항암효과와는 관계가 없다. 배씨는 “초기에 (천지산을) 환으로 만드느라 한약재 성분을 약간 섞었지만, 지금 임상시험 중인 천지산은 비소화합물만으로 제조한 것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천지산을 한약재라고 말한다”며 “항암효과를 내는 것은 비소지, 한약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종배 교수와 비슷한 시기에 천지산 연구에 발을 내딛은 또 한 명의 의사는 부산 인제의대 대학원장을 역임한 은충기 교수(방사선과)다. 인제의대는 지방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가 지정 임상시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은 교수와 천지산의 인연은 부산에 사는 어떤 암환자가 CT 사진을 들고 은 교수를 찾아온 데서 비롯됐다.
“처음엔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인 줄 몰랐다. 신장암 환자였는데, CT 사진을 보니 원래 주먹만한 크기였던 암세포가 손톱 크기로 줄어 있었다. 무슨 약을 썼냐니까 천지산이라는 걸 몇 개월째 먹었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부작용도 없고 힘이 나고 밥맛도 좋아졌다고 했다. 참 신기하다고 여겨 그때부터 천지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은 교수는 그후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를 몇 명 더 진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중엔 좋아졌다 나빠진 경우도 있었다. 나중엔 직접 CT를 찍어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암 뿌리가 뽑히지는 않았지만 천지산 복용 여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났다. 상태가 좋아져 약을 끊은 환자가 몇 개월 후 찍은 CT를 보니 암세포가 다시 커져 있었다.
은 교수는 “천지산을 복용하면 어떤 형태로든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나서 한번 과학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연구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독성시험에서 기존 항암제와 큰 차이
바이오톡스텍은 식약청 인가를 받은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 전문업체다. 의약품에 대해 임상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독성시험 자료가 필요하다. 천지산의 독성을 시험한 곳이 바로 바이오톡스텍이다. 말하자면 김종배 교수가 서울대 수의학과 이영순 교수를 통해 실시한 독성시험은 비공식적인 것이고 바이오톡스텍 시험은 공식적인 것이다.
충북대 수의대학장이기도 한 바이오톡스텍 대표 강종구 교수는 “단회 독성시험, 3개월 투여 독성시험, 4주 회복시험 등 각종 독성시험 결과 독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천지산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어떤 항암제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그 점에서 천지산은 기존 항암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국내에서 사용되는 항암제는 대부분 외국제이거나 외국제의 분자구조를 변형해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천지산은 한국인이 고유의 기술로 만든 독창성이 뛰어난 약”이라며 “임상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뛰어난 약은 빨리 상품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동대 김종배 교수의 의뢰를 받아 천지산 독성시험을 했던 서울대 수의학과 이영순 교수는 2002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식약청장을 지냈다. 식약청장에서 물러난 지 한 달쯤 후 대학 연구실로 수염이 더부룩한 40대 사내가 찾아왔다. 이 교수는 처음에 사기꾼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배일주씨였다.
배씨는 천지산에 대해 한참 설명한 후 식약청 임상시험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교수가 “뭘 보고 당신을 믿겠느냐. 학문적 증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자 “원자력병원 이창훈 박사의 연구논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성시험은 예전에 교수님(이영순 교수)께서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배씨의 얘기를 듣고 이 교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년 전 한동대 김종배 교수의 요청으로 독성시험을 한 일이 있었다. 김 교수가 따로 설명하지 않은 탓에 이 교수는 그것이 천지산인 줄도 모르고 독성시험을 했던 것이다. 그는 배씨에게 이창훈 교수의 논문을 보자고 했다. 다음날 배씨가 논문을 갖고 왔다.
“서울대 의대 출신이고 원자력병원에서 연구하는 의사의 논문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논문 내용은 천지산의 약리작용과 약효, 독성 등을 의학적으로 분석해놓은 것이었다. 이 교수에게 전화해 천지산의 효능에 대해 물어보니 ‘아주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영순 교수는 이창훈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천지산을 약으로 개발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미국에서도 비소가 주성분인 약에 대해 시판허가가 난 상태였다. 이 교수는 평소 ‘암 치료제는 일반 약과 달리 독성이 있어도 효과만 있다면 시판을 허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터라 곧바로 식약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천지산의 임상시험 신청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했다.
그래도 일이 잘 진척되지 않자 이창훈 교수와 강윤구 교수를 동반해 식약청을 방문해 청장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식약청은 그해 8월 천지산의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이영순 교수는 “지금까지 드러난 연구성과에 비춰 천지산이 2상시험에 들어가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처럼 많은 의학자가 효능을 인정하는 천지산을 배일주씨는 어떻게 개발했을까. 강원도 삼척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난 배씨는 한약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약과 의술에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돌이 막 지난 손자를 산으로 데리고 가 움막에서 함께 지내며 약초에 대해 가르쳤다.
배씨는 할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침을 놓을 줄 알았으며 웬만한 약초는 척 보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알아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배씨의 표현대로라면 어느 순간 ‘몰미가 터진’ 것이다. ‘몰미가 터졌다’는 말은 강원도 사투리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나의 원리에 통하면 나머지 모든 원리에 통한다는 것이다. 배씨는 또 한문 공부도 열심히 해 ‘동의보감’이나 ‘향약집성방’ 같은 의서에 통달했다.
배씨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각각 위암과 장암으로 돌아가신 후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염증치료제로 사용하는 황하비소(As4S4)의 독성을 분석하면서 제대로 된 비소화합물 치료제를 만들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배씨가 천지산의 주성분인 비소 합성에 성공한 것은 1983년이다. 그후 분자구조에 관심을 갖고 어떤 상태에서 최상의 약효를 내는지 알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As4O6가 가장 많은 종류의 암에 듣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배씨는 아무 환자에게나 다 약을 내주진 않았다. 수술을 받고 암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 중 ‘죽 한 공기 먹을 힘이 남아 있는’ 환자에게만 약을 지어줬다.
환자가 많이 몰리자 배씨는 1994년 한의사를 고용해 아예 한의원을 차렸다. 당시 천지산 약값은 한 달치에 200만원이었다. 배씨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과 10세 이하 아이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또 일정 기간 약을 먹은 후 효과를 본 환자에게는 약값을 절반으로 깎아줬다고 한다.
청와대 경호실 간부의 선처 호소
그 시절 배씨는 별의별 사건을 다 겪었다. 한번은 말기암 환자에게 처방을 해줬는데 몇 개월 후 그 환자가 죽었다. 가족들은 배씨를 그다지 원망하지 않았는데, 환자의 친척이라는 모 기자가 “사기꾼”이라며 난리를 쳤다. 배씨는 영안실로 불려가 상복을 입고 턱을 얻어맞는 수모를 겪었다.
암 환자를 낫게 해줬다는 ‘죄 아닌 죄’로 시달린 적도 있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던 암 환자의 아내가 “(남편이) 빨리 죽어야 하는데 낫게 하면 어떻게 하냐”며 배씨의 뺨을 올려 붙인 것. 이후 배씨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이 일치한 경우에만 처방을 했다.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돈을 싸 짊어지고 찾아와도’ “못 준다”고 버텼다.
배씨는 처방을 하는 틈틈이 공부를 계속했다. 그의 공부 목표는 동양의학을 서양의학에 접목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을 알아야 했다. 독학으로 CT와 차트 보는 법을 배웠다.
1996년 1월 배씨는 한의원으로 출근하던 길에 경찰청 특수수사과 직원들에게 연행당했다. 3일간 집에 전화도 못하고 구타도 많이 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 제약회사가 청와대에 투서한 진정서에서 비롯된 수사였다.
“병원에서 못 고친 환자를 고쳐주는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겁대가리’가 없었던 것이다.”
배씨가 구속되자 그간 천지산을 복용하던 암 환자들의 가족 20여 명이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대부분 천지산으로 효험을 봤거나 약이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경찰청에서 서울지검으로 이첩된 이 사건은 권성동 검사(현 인천지검 특수부장)에게 배당됐다.
난소암 환자이던 부인이 천지산을 먹고 치유됐다는 청와대 경호실의 한 간부는 권 검사를 직접 찾아와 배씨를 선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따르면 그의 부인은 서울대병원에서도 포기한 3개월 시한부 환자였는데, 천지산을 석 달 복용한 후 깨끗이 나았다는 것. 병원에서 CT촬영을 한 결과 암세포 덩어리가 녹아 직장으로 빠져나간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천지산의 임상시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배일주씨.
배씨는 검찰조사에서 “천지산의 약효를 보증할 사람이 있다”며 강북삼성병원 암전문의 Y교수를 내세웠다. Y교수는 천지산 복용 후 병세가 호전된 환자들의 슬라이드 필름을 갖고 검찰에 출두했다. 그러잖아도 암환자들의 천지산 체험담과 선처 호소에 고민하던 권 검사는 Y교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배씨를 불구속기소하기로 결심하고 석방했다. 그가 비록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긴 했지만 사기를 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배씨가 석방되자 청년의사회 등에서 “돌팔이를 풀어줬다”며 검찰에 진정을 넣는 등 일부에서 비난여론이 일었다. 권 검사의 사무실은 전국 각지의 암환자 가족들로부터 빗발치듯 걸려오는 문의전화로 며칠간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중에는 K대, S대 등 유명대학의 의대교수들도 있었고 판·검사와 장관도 있었다. 하나같이 배씨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권 검사는 “인간적으로 동정은 갔지만 검사 입장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사람을 소개해줄 수는 없었다”며 “생존 앞에서는 신분이고 체면이고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1996년 10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배씨는 분노와 절망감에 항소를 포기했다. 천지산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의학계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은 Y교수는 강북삼성병원에서 사직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비소의 항암효과를 연구해 국제학술회의에서 논문까지 발표했다.
사건 이후 배씨는 더는 처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찾아와 약을 부탁했다.
“생명이 먼저냐, 법이 먼저냐. 정말 고민 많이 했다. 환자 가족들이 찾아와 울부짖으며 호소할 때는 몹시 괴로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약을 버렸더니 그걸 주워가더라.”
그는 “지금도 몰래몰래 찾아와 약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2000년 3월 자본금 21억원으로 주식회사 천지산을 설립했다. 이로써 ‘천지산’은 회사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상 2상시험이 끝나기 전 코스닥 시장에 천지산을 상장할 계획인데, 그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잡고 있다.
투자전문회사인 넥서스 민봉식 대표는 자신이 잘 아는 말기암 환자 2명이 예전에 천지산을 복용한 후 치유된 것이 계기가 되어 천지산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둘 다 시한부 환자로 한 사람은 후두암, 다른 한 사람은 위암 환자였다. 민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 4년 반, 2년 동안 천지산을 복용했는데 치료효과가 좋아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다.
“1상 끝나면 천지산 가치 10배 뛸 것”
민 대표는 천지산의 투자가치에 대해 무엇보다 암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꼽았다. 전세계적으로 BT(생명공학)산업이 IT(정보기술)산업을 앞지르는 추세인데 천지산 같은 항암제는 어떤 바이오상품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의 근간은 인간의 몸이다. 그런 점에서 BT 쪽은 한번 선점하면 IT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우월성을 유지한다. 우리나라가 사는 길도 BT에 있다. IT는 향후 2~3년 내에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다. 하지만 BT의 경우 천지산과 같은 세계적인 신약을 개발하면 중국과의 격차를 8년 이상 벌릴 수 있다.”
민 대표가 평가하는 천지산의 기업가치는 200억원대. 하지만 임상 1상시험이 끝나면 10배가 뛰고 2상시험을 통과하면 다시 10배가 상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국의 바이오시장 투자 동향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한다.
민 대표는 “바이오산업 투자는 그야말로 미래를 보고 해야 한다”며 “지금 천지산에 투자하는 것은 모험이고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 투자수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천지산에 대한 투자를 권했다.
그가 천지산의 상품성을 특히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비공식’ 임상시험에서 이미 효능을 인정받았다는 점” 때문이다. 비록 불법행위로 처벌받긴 했지만 많은 암환자가 천지산을 복용해 효과를 본 만큼 임상시험을 거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또 암치료제로는 드물게 복용하기 편한 경구제이면서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점도 천지산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민 대표에 따르면 임상 2상시험 진입을 눈앞에 둔 천지산은 현재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 1상시험 비용으로 50억원이 들었는데, 2상시험에는 수백억원대, 시판 후 부작용을 검증하는 3상시험까지 마치는 데는 약 1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 식약청장 서울대 이영순 교수는 “정부가 천지산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s2O3를 이용한 ‘트리세녹스’가 미국에서 백혈병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는데, 천지산 성분인 As4O6는 그보다 훨씬 더 우수한 비소화합물이다. 국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좋은 신약을 개발하고도 기술을 외국에 넘겨주게 된다. 임상 2상시험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한동대 김종배 교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펴면서 천지산 개발의 의미를 강조했다.
“배일주씨의 천지산 제조는 제약산업에서 금기로 여기는 비소를 역으로 이용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임상시험 허가가 났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항암제는 대부분 주사제다. 천지산이 대단한 약품이라는 것은 경구제로 항암효과를 내면서 독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약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정부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천지산 개발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하는 배일주씨는 현재 임상 2상시험에 들어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제약회사들이 국내에서는 신약개발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를 안 한다”며 천지산에 대한 투자를 호소했다.
신약개발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의지는 천지산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그는 “천지산말고도 연구해놓은 약이 많다”며 “천지산 임상시험이 완전히 끝나는 대로 새로운 신약개발에 들어가겠다”고 의욕을 과시했다. 그가 제2의 천지산으로 준비하고 있는 약품은 항생제, 관절염약, 녹내장 치료제 등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질 때, 선해 보이는 눈빛과 더부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그가 특유의 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좀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