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파트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지 반년. 중동에는 평화의 기운이 조금씩 솟아나고 있다.
-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일방정책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없다’는 이스라엘 강경파의 태도엔 여전히 변화가 없다. 중동평화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중동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라파트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뒤 팔레스타인의 간판이 바뀌었다”는 말이 오간다. 아라파트는 아랍인들이 ‘케피예’라고 일컫는 줄무늬 머릿수건을 두르고 카키색 군복을 입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후계자 압바스는 아라파트와는 대조적으로 비즈니스맨처럼 말쑥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나온다.
압바스와 그의 측근들은 이러한 겉모습의 변화가 외부세계에 ‘새로운 팔레스타인’의 상징으로 비치길 바라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팔레스타인’이란 이스라엘과 총격전으로 맞서는 ‘무자헤딘(아랍 전사)’이 아닌, 평화협상 테이블에서 이스라엘과 마주앉은 팔레스타인이다.
아라파트 사후의 또 다른 특징은 부시 행정부가 압바스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온건파인 압바스가 아라파트의 후계자 자리에 오르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는 사실은 지난 1월 팔레스타인 대선에서 선관위가 압바스의 당선을 공식발표하기도 전에 백악관이 축하전화를 건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압바스는 이미 5월 중으로 워싱턴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부시 행정부는 아라파트를 단 한 번도 워싱턴에 초청한 적이 없다. 부시와 그의 대외정책 참모들은 아라파트를 ‘테러리스트의 수괴’라고 직접 거론하지 않았을 뿐 그가 ‘중동평화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 부시 행정부와 이스라엘 샤론 정권은 온건파인 압바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그가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활동에 재갈을 물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샤론 총리도 “팔레스타인 당국은 테러를 막는 데 나서야 한다”고 거듭 주문해왔다. 그가 말하는 ‘테러’란 1967년 6일전쟁 이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무단통치를 해온 이스라엘군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저항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하마스는 “우리의 저항이 테러라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에 맞서는 테러의 균형일 뿐”이란 논리를 편다(2002년 6월 가자 현지에서 하마스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한 인터뷰). 2004년 6월 필자가 가자에서 만난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대(對)이스라엘 저항운동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합법적 권리”라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 1월 치러진 대선에서 62%의 득표율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뽑힌 뒤 집권 4개월을 넘긴 압바스의 행보는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편이다.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내부의 다른 강경파 정치세력과도 가능하면 충돌하지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한편으로, 하마스의 군사부문 조직인 이즈 알-딘 알-카삼 여단을 어떻게 무장해제시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즈 알-딘 알-카삼 여단은 하마스 창립 4년 만인 1991년 출범했으며 규모는 2000명에 이른다.
압바스는 기회 있을 때마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지만, 거리에서 총을 들고 이스라엘을 성토하면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하마스 요원들을 단속하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마스의 투쟁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속한 보안군도 하마스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지난 5월 가자지구에서 한 하마스 요원이 로켓추진 총류탄(RPG)을 자동차 뒷자리에 싣고 다녔다는 이유로 체포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틀 뒤 풀려났다. 팔레스타인 보안군 책임자인 라시드 아부 슈바크는 “이스라엘군과 맺은 휴전협정을 어기는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단순히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가둬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 일들이 압바스 정권이 지닌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압바스의 정치행보를 가리켜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압바스는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강경파에게는 “무기를 내려놓고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나서자”는 주장을 펴고, 하마스 요원들을 잡아들이라고 요구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극하는 과잉 군사행동을 삼가고, 팔레스타인에 저항투쟁 명분을 주는 정착촌 확대행위를 그만두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느 쪽도 압바스의 요구에 진지하게 귀기울이지 않을뿐더러 압바스에겐 이를 강제할 만한 힘이 없다.
지지부진한 중동평화 일정표
현재 중동에는 막연한 희망 속의 불안한 평화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월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만난 뒤 휴전이 선포되는 등 봄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샤론 총리는 “올여름에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걸핏하면 유혈충돌이 벌어져 희생자가 줄을 잇는 상황이다.
흔히 말하는 중동평화를 위한 일정표(road map)도 2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그 일정표는 지난 2003년 당시 3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맡았던 압바스가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부시 미 대통령의 중재 아래 합의했던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제1단계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서로 국가로서 공존할 권리를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팔레스타인은 폭력행위를 그만두는 동시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정착촌을 동결한다. 제2단계에서는 중동평화 로드맵 구상에 참여한 4자(미국·러시아·유엔·유럽연합) 합의 아래 주권과 영토를 지닌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 과정으로 들어가며 이를 위해 지방선거를 치른다고 되어 있다.
3단계(2004~2005)에서는 그동안 미뤄온 쟁점 사안인 양측의 국경문제와 예루살렘 분쟁,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를 다룰 국제회의를 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제2단계 계획을 2003년 말까지 마치도록 했음에도 유혈사태에 따른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동예루살렘 영유권 문제, 난민귀환 문제 등 워낙 민감한 사안이 많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의 입장 조율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압바스 정권 출범 뒤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물러나고 팔레스타인 쪽에 치안권을 넘기는 작업도 걸핏하면 벌어지는 총격전과 유혈사태로 인해 늦춰진 상태다. 지난 2월 샤론-압바스 회담 뒤 양쪽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샤론 총리는 서안지구의 5개 주요 도시(라말라·베들레헴·칼킬야·예리코·툴카름)의 치안권을 팔레스타인 보안병력에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껏 예리코와 툴카름 두 곳에서만 이스라엘군이 철수했을 뿐이다. 샤울 모파즈 국방장관을 비롯한 이스라엘측 인사들은 “팔레스타인이 무장세력에게서 무기를 압수하기로 해놓고선 이행하지 않아 치안권을 넘길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 쪽에서는 “샤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스라엘 감옥에 장기간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죄수들의 석방 여부도 심각한 문제다.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는 8000명가량의 팔레스타인 죄수가 갇혀 있다. 그들 가운데는 15~20년의 징역형을 받은 정치범이 많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각료 가운데는 ‘죄수업무장관(Minister for Prisoner Affairs)’이란 직함을 지닌 장관이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죄수업무부를 이끌어온 수프얀 아부 자이데 장관은 영국 공영방송인 BBC와 한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15~20년씩 갇혀 있는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중동 평화협상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라파트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미국이 세운 중동정책의 뼈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가 중동에 공존하는 형태다. 지난해 11월 아라파트 사망 직후 부시 미 대통령은 ‘2009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안을 새로운 중동평화 이정표로 내건 바 있다.
이보다 앞서 2003년 초여름 부시-샤론-압바스가 요르단의 휴양지에서 만나 내놓은 청사진은 ‘2005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였다. 그러나 2개월 뒤 압바스가 물러나고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한 반(反)이스라엘 무장봉기인 인티파다가 이어지면서 ‘2005년 독립안’은 물 건너간 상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분쟁지역인 헤브론 지구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그동안 중동전문가들은 샤론 총리의 가자지역 철수안이 워낙 일방적이어서, 철수 절차를 진행하고 기존 시설물 재활용 방안 등 이후의 현안을 다루기 위해서는 이-팔 양쪽 의견을 조율할 제3자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바로 그런 중재자 역할을 맡을 울펀슨 특사도 유대인 출신이다. 그러나 후임 세계은행 총재를 맡은 폴 월포위츠 전 미 국방부 부장관과 달리 네오콘은 아니다. 2004년 5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쪽 끝에 자리잡은 라파 난민수용소를 마구잡이로 파괴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을 때 세계은행 총재 울펀슨은 이스라엘 중도파 신문 ‘마리브’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작전은 신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유대인으로서 그런 식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만약 이스라엘이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경제기구에 재정지원을 요청한다면, 라파 난민수용소 파괴행위로 말미암아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이렇듯 울펀슨은 세계은행 총재 시절 팔레스타인 재건에 적극적 관심을 보임으로써 이슬람권 지식인들에게서 ‘좋은 유대인’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그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면서 ‘나쁜 유대인’으로 꼽힌 인물이 폴 월포위츠다.
또 하나 바람직한 변화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지난 3월 1기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의 중근동지역 책임자로 일한 윌리엄 번스 차관을 물갈이 하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데이비드 웰치 전 주(駐)이집트 미국대사를 후임자로 임명했다는 점이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그 자리에 유대인이자 네오콘인 다니엘 플레트카(미국기업협회 선임연구원)가 임명되길 강력히 원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기업협회(AEI)는 워싱턴에 자리잡은 네오콘의 싱크탱크로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내세워이라크 침공론을 펴는 데 앞장서왔다. 유대인 네오콘인 플레트카는 반미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펴온 강경파 논객. 샤론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리쿠드 정권을 열렬히 지지해온 그녀는 미 국무부 중근동 담당 차관에 기용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막판에 탈락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온건한 울펀슨 중동특사와 웰치 차관의 임명으로 미뤄 2기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이 친이스라엘 편향성에서 벗어나리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을 주무르는 실무자들 중에는 유대인 출신이 많고, 그들은 ‘태생적 모국’인 이스라엘을 위한 정책을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유대인 네오콘인 엘리엇 에이브럼스다. 1기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직속 국가안보위원회(NSC)의 근동(Near East)-북아프리카 지역 책임자로 중동정책을 사실상 주물러온 에이브럼스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에이브럼스는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에서 이스라엘의 생존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담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문건을 돌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온건파는 이러한 구상에 대해 “미국이 주도한 후세인 체제 전복이 오로지 석유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에이브럼스의 장인이 바로 어빙 크리스톨과 함께 ‘유대인 네오콘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노먼 포드호레츠라는 사실이다. 포드호레츠는 ‘코멘터리’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네오콘 이념을 퍼뜨리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영토확장 전략
중동 정치판에서는 누가 이스라엘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풍향계가 달라진다. 이스라엘 좌파인 노동당이 집권하던 1990년대 전반기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평화협상(오슬로 평화회담)을 통해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그러나 1995년 라빈이 암살당한 뒤 우파와 극우파 색깔이 뒤섞인 야당인 리쿠드당의 벤야민 네탄야후 총리와 아리엘 샤론 총리가 집권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중동 정치판이 얼음장처럼 차거워졌고 ‘인티파다’라고 하는 팔레스타인의 유혈투쟁이 이어져 많은 피를 뿌렸다.
눈엣가시 같던 아라파트와 그를 지지해온 이라크의 후세인이 사라진 지금, 이스라엘 강경파의 중동지배 전략은 ‘군사적 우위에 바탕을 둔 현상유지’로 요약된다. 그들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는 중동지역의 군사적 우위를 깨뜨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샤론 총리와 집권당인 리쿠드당의 전략은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강제 점령한 뒤 오늘에 이른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되도록 시간을 끌며 팔레스타인 지역에 더 많은 유대인 정착촌을 세워 이스라엘 영토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라 샤론 정권은 한편으로는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겠다”고 요란스레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점령지 곳곳에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가 지난 2월 말 특종보도한 바에 따르면, 샤론 정권은 올해 안에 유대인 정착민을 위해 6391가구 규모의 정착촌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또 이스라엘 토지국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자료에 따르면 2003년에는 1225가구, 2004년에는 1783가구의 정착민이 서안지구에 새로 건설된 정착촌에 입주했다. 현재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는 120개 정착촌에 22만5000여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정착촌은 언젠가 있을 국경선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쪽을 곤혹스럽게 만들 게 뻔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언젠가 들어설 독립국가의 수도로 꼽아온 동예루살렘 일대다. 이미 동예루살렘 주변은 유대인 정착촌으로 포위된 상태다. 북쪽은 피스가트 제브 정착촌과 네베 야아콘 정착촌, 동쪽은 마알레 아두민 정착촌과 미쇼르 아두민 정착촌, 남쪽은 베타르 정착촌과 구시 에치온 정착촌이 자리잡았다. 정착촌 건설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2002년 6월 필자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예루살렘 동쪽 마알레 아두민 정착촌 바로 남쪽에 새로운 정착촌이 건설 중이었다. 그런데 꼭 2년 뒤인 2004년 6월에 가보니, ‘케다르 정착촌’이란 이름의 또다른 주거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수도가 유대인에 포위?
그렇다면 2003년 12월 샤론 총리가 일방적으로 가자지구 철수안을 발표, 세계를 놀라게 만든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난해 여름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그곳 지식인들은 샤론 총리의 가자지구 철수 제안이 기만적인 것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가산 카티브 팔레스타인 노동부 장관은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서안지구 곳곳에 마구 들어선 유대인 정착촌들을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장기적 전략에 비춰보면 가자지구 철수는 아주 작은 양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샤론이 친이스라엘 일방주의 논조를 펴는 미국 언론들에 의해 평화를 상징하는 월계수를 입에 문 ‘중동의 평화주의자’로 그려지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와 샤론 정권이 ‘중동평화협상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해온 아라파트가 숨을 거두고 온건한 새 지도자가 나타났지만, 중동에 평화가 찾아들 희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중동평화 이정표가 단계별로 순조롭게 이뤄지리라는 낙관론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샤론 총리, 네탄야후 재무장관, 모파즈 국방장관 등 이스라엘 정치를 끌어가는 강경파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출현을 바라지 않는다.
중동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바르일란대학 제럴드 스타인버그 교수(국제정치학)는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가 들어서고 독자적으로 군대를 조직한다면,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란 논리 아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신생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들어서더라도 군대를 가지되 무장을 강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팔레스타인 쪽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러한 비무장 논리는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몸담고 있는 리쿠드당은 물론 이스라엘 극우파 군소 정당의 기본 방침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중동에 유혈사태가 그치고 평화가 깃들일 것인가. 나아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언제 출현할 것인가.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인정하는 평화지향적 온건파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지금의 샤론 정권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적 상황을 활용하면서 시간을 끌고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늘려감으로써 사실상 이스라엘 영토에 편입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워싱턴의 중동정책이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거나 좀더 중도적인 정권이 워싱턴에 들어서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충족될 확률은 현재로선 매우 낮아 보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관계는 유럽사에 등장하는 신성동맹에 빗대 ‘신성하지 못한 동맹(Unholy Alliance)’라는 비판마저 받아왔다. 중동평화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미국-유엔-유럽연합(EU)-러시아로 이뤄진 ‘4자 협의체(Quartet)’가 있지만, 사실상 미국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슬람권의 반미 지식인들은 이 협의체가 미국의 중동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교묘한 위장술에 지나지 않다고 여긴다.
4자협의체를 갈음할 대안으로 유엔이 안전보장이사회 내에 중동평화협상을 맡는 협의체를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2000년 9월말 이래 5000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된 중동 땅은 지금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이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