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눈을 떠서 기(氣)를 받는 사람들을 슬쩍 엿보았다. 몇 사람이 슬슬 뒤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는 울기까지 했다. 나는 ‘이거 웃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꼼수가 있는 게 아닐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면 철저하게 무시하던 한 기업인이 최근 월악산 기공수련원에서 겪은 기의 세계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가 만난 덕산 선생, 그리고 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기의 효험.
지금까지 나는 보약 한 번 먹어본 일이 없다. 기껏해야 풀뿌리나 나무뿌리 또는 나무 열매나 동물의 뿔을 달여낸 보약이 어떻게 그리 몸에 좋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과학적 분석과 임상실험을 통해 벌써 약으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나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다.
“쓸데없는 짓 하고 있구만…”
대학 동창 20여 명이 모여 만든 모임이 하나 있다. 오래 전부터 만났기 때문에 아내들끼리도 서로 잘 안다. 우리는 다달이 골프를 치기도 하고 여행을 함께 가기도 하며 연말에는 부부동반 송년회도 연다.
이 모임회원 중 한 명인 K. 그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사업가다. 그런데 지난해 10월과 11월 모임에 K가 나타나지 않았다. 10월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나는 K가 자주 오가는 미국에 갔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11월 골프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됐다. 모 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는 한 친구는 종적을 감춘 K가 충청도 어느 깊은 산골에 가서 기(氣)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원인을 찾고 치료를 해야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나’ 하고 생각했다.
K는 몇 개월 전부터 위장 출혈과 함께 귀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이명(耳鳴) 현상으로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두 달 동안 몸무게가 14kg이나 빠졌고 온몸에 힘이 없어지며 식은땀이 흐르고 밥맛도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봄 서울 강남에 빌딩을 짓고 회사를 이전하면서 신경을 많이 쓴 탓으로 돌렸다. K는 종합병원에서 온갖 치료를 다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실망했다. 병원에 가서 정밀진찰을 받고 치료하면 낫겠거니 생각했던 K의 아내도 점차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K는 충북 제천 월악산 자락에 있는 한국원극학(元極學)연구회의 원극학 기수련원이라는 곳엘 가게 됐다. K를 만난 친구는 K가 몇 차례 그곳에 가서 기공 수련과 함께 덕산(德山)이라는 ‘도인’에게서 기를 받은 후 건강이 거짓말처럼 회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월악산에 끌려가다
K와 그의 아내가 우리들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지난해 12월 송년회 때다. 우리는 그를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듣던 대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온몸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우리는 모두 K의 회복을 축하했다. 그리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기를 받고 기수련을 했더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믿지 않았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서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기 때문에 나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K는 병원 약 복용은 벌써 그만뒀으며 이렇게 회복된 것은 전적으로 기수련과 기를 받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K의 아내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 송년회 자리, 예년과 마찬가지로 각자 돌아가면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한 해를 맞으면서 덕담하는 시간에 K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건강할 때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서양 의학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기공 수련을 통해서 기를 모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은 기를 이용하여 병을 치유할 수 있다. 기를 무시하지 말고 한번 체험해보라고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충북 제천의 기공수련원 입구.<br>한국원극학연구회가 운영한다.
우리는 지난 1월 중순 올해 첫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도 기공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K는 더 강하게 같이 한번 가자고 제의했다. K 부부는 기에 대해 맹신 수준의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기를 믿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1월 말 친구와 아내들을 따라 마지못해 K가 말하는 월악산 원극기수련원에 갔다. 아니, 끌려갔다. 우리는 토요일 오전 9시쯤 그곳에 도착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수련원 주위의 경치는 참 좋았다. 우리가 올라온 길 뒤가 바로 월악산 자락이었다. 그리고 수련원 앞에도 높은 산이 병풍을 치고 있어 마치 활짝 핀 연꽃 가운데 수련원이 있는 형국이었다. 나는 풍수지리를 전혀 믿지 않지만 명당자리 같아 보였다.
동공법·정공법 기공체조
수련원은 폐교된 조그만 시골 학교를 개조한 건물이었다. 수련원 복도 좌측에는 교실을 개조한 방이 4개 있는데, 수련생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방, 기공수련실, 제자들이 사용하는 방, 그리고 수련원 원장이 사용하는 방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우리는 여장을 풀자 바로 식당으로 가서 잣죽에 월악산 배추와 고추와 마늘로 담근 김치, 그리고 나물과 야채로 아침식사를 했다. 월악산의 야생 도토리로 만든 묵과 근처 밭에서 캔 고구마도 나왔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한국원극학연구회 회장이자 이곳 기수련원장인 덕산 김찬규 선생과 중국산 보이차를 들면서 40여 분 담소했다. 우리 나이 또래인 덕산 선생은 내공이 깊은 도인 풍모였으며, 한 마디 할 때마다 무언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원래부터 고유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이 에너지를 기(氣)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를 잘 활용하면 인간의 육체에 생기는 병도 치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가진 엄청난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가지 고민과 탐욕 때문에 기가 잘 발현되지 않죠. 또한 마음을 얼마나 깨끗하게 잘 비웠느냐에 따라 기의 발현에 차이가 나기도 하며 아예 기가 생기지 않거나 기가 약해지기도 하고 강한 기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덕산 선생은 우리의 일정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낮에는 수련원에서 기공수련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기를 주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기공수련은 마술이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 들어 있는 기라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이곳 수련원은 기가 잘 발현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1박2일의 짧은 기공수련으로 기를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도시생활로 마음속에 쌓인 고민과 번민을 완전히 비우고 정신을 맑게 해보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를 한번 경험해보기 바랍니다.”
덕산 선생은 30여 년간 산중의 바위 밑이나 토굴 속에서 기공수련을 하고, 전국의 유명한 도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기공수련을 받았다고 했다. 1990년대 초에는 중국에 가서 중국 3대 대기공사(大氣功師) 중 한 사람인 장지상(張志祥) 선생 문하에 들어가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간택될 정도였다. 그는 속세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풍모에 기골이 장대하고 피부가 곱고, 눈동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맑고 깨끗했다.
중국에서 원극기공을 수련한 덕산 선생의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맑고 깨끗했다.
바쁘게만 생활해온 우리는 이렇듯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차를 타고 40여 분 떨어져 있는 숯가마로 갔다. 숯가마는 월악산과 견줄 만한 금수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숯가마에 들어가서 도시에서 묻혀온 고민과 잡념 덩어리를 땀으로 분출시켰다. 두 시간 남짓 숯가마 찜질을 한 후 인근 민가 음식점에서 닭백숙을 먹었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는 찻집으로 갔다. 찻집 주인은 삼성그룹 출신으로 15년 전 금수산에 올랐다가 덕산 선생을 우연히 만나 선생의 제자로 입문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40대 중반의 찻집 주인은 덕산 선생처럼 피부가 곱고 인상이 참 좋았다. 우리가 마신 차는 금수산에서 자생하는 50여 가지 야생초로 만들었다는 선차(仙茶)였는데 뒷맛이 개운했다. 그는 옛날 산에서 수도하던 도인들은 이런 차로 건강을 유지했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밤 8시경 기공수련원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는 제천 심심산골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주위는 매우 조용했다. 공해라곤 없는 밤하늘에는 몇 년 만에 보는 별들이 별밭을 이뤘다.
우리는 조금 쉰 후 기공수련실로 들어갔다. 수련실에는 우리말고도 10여 명의 다른 일행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동공법 기공체조와 정공법 기공체조를 한 시간 남짓 했다. 정공기공을 하면서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으니 숨소리는 물론 내 몸 속 피 흐르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기공체조를 마치고 조금 있으니 덕산 선생이 들어왔다. 밤에 보니 덕산 선생의 피부는 더 맑고 깨끗했다.
그가 한 사람씩 기를 넣어 주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조용히 서 있었다. 덕산 선생은 모든 잡념과 고민, 생각을 떨쳐버리고 지금부터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제자 2명을 대동하고 눈을 감고 있는 우리 앞으로 온 덕산은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머리 정수리를 통해 기를 넣어줄 것인데 그때 몸이 뒤로 넘어가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울음이 나오더라도 참지 말고 웃거나 울라”고 말했다. 또 “제자들이 뒤에서 받쳐줄 테니 넘어가면 그냥 뒤로 넘어가서 편안하게 그대로 누워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라고 생각했다. 손을 몸에 대지 않는데 어떻게 뒤로 넘어간다는 말인가.
손바닥의 ‘싸∼아’한 느낌
나는 뒤쪽 줄에 서 있었다. 그래서 가끔 눈을 뜨고 앞에서 기를 받는 사람들을 슬쩍 엿보았다. 그런데 몇 사람이 슬슬 뒤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어느 친구의 아내는 조용히 울기도 했다. 나는 이거 웃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꼼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드디어 내 옆 사람이 기를 받을 차례였다. 눈을 감고 여러 생각을 했다. 정신 차려야지! 그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되고 납득할 수 있는 것만 믿었다. 덕산이라는 이 사람은 지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이런 지식과 상식으로 기를 테스트하고 평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완전히 마음을 한번 비워보자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려고 애를 쓰자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서 힘을 빼보았다. 조금 지나니 몸이 가벼워지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덕산 선생이 들어오기 전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배꼽 밑 하단전에 기를 모으는 정공법 기공수련을 할 때보다도 더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그가 내 앞에 서는 것 같았다. 덕산은 내게 “몸에서 완전히 힘을 빼고 그냥 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 상태에 빠지기를 바랐지만 의식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지나자 머리부터 몸 전체가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 서 있었기 때문에 몸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의식적으로 넘어가는 몸을 앞으로 당겨 똑바로 섰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맡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90~95%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또다시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자 나도 모르는 순간에 다시 한 번 몸을 앞으로 당겨 똑바로 섰다. 다시 무의식 상태에 들어갔다. 그때 왼손 손바닥 가운데서 뭔지 모를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그것이 기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나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샤워꼭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으며, 싸한 박하사탕 같기도 하고 무척 가려운 느낌도 들었다.
‘답’은 하나가 아니다
희미한 의식으로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몸은 점점 뒤로 넘어갔다. 몸을 세우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분명히 덕산 선생이나 그 제자들이 내 몸에 손을 댄 것은 아닌데 나는 슬슬 뒤로 쓰러지고 있었다. 제자 두 사람이 넘어가는 나를 뒤에서 잡아주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다. 그러나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그후 나는 20여 분 동안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덕산 선생은 나에게 기를 주고는 내 옆 사람에게 갔다. 나는 계속 누워 있었다. 의식은 완전히 돌아왔으나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싸∼아’한 느낌은 계속됐다.
그날 밤 덕산에게서 기를 받을 때 한 친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음이 나와 울었다고 했다. 10여 년 동안 동네 기공수련원에서 수련을 했다는 친구 아내는 평소 기를 받거나 수련할 때 배꼽 아래 하단전으로 기를 내리려고 노력해도 가슴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고 했다. 체증이 가시는 것처럼 기가 하단전으로 쑥 내려가 속에서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별소리를 다한다고 했지만, 내 손바닥의 ‘싸아’한 느낌은 잘 때도 계속됐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근처 호숫가를 산책한 후 덕산 선생의 제자들에게서 기공 마사지를 받았다. 방바닥에 배를 대고 누우면 제자들이 손에 기를 모아 우리들 몸 위를 한두 번 훑어주었다. 그런 후 몸에 안 좋은 부분을 가리키면서 그곳에 손을 대고는 몇 번 주물러주었다. 여러 사람이 시원하고 가뿐하다고 말했다. 나도 기공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해준 제자는 누운 내 몸을 한 번 훑고는 “건강해서 기공 마사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때 한 친구가 어제 먹은 닭백숙이 얹혔는지 배가 몹시 아프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자 제자 중 한 사람이 기공 마사지를 해줬는데, 마사지를 시작한지 1분 정도 되자 그 친구는 먹은 것을 토해냈다. 대여섯 번 토하자 그는 활기를 되찾으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기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기에 관한 여러 자료도 보았다. 수련원에서 가져온 원극기공에 관한 책도 대충 읽어 보았다. 좀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기를 강하게 부정하지는 않게 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K와 저녁식사를 같이하게 됐다. 나는 K에게 “기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덕산 선생 제자 몇 사람과 효험을 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청했다.
지난 2월 말 토요일 오후 K와 나는 다시 원극학기공수련원에 갔다. 일본까지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도예가, 중앙부처의 고위공무원, 사업가, 약학과 대학원생, 서울 모 종합병원 임원 등 그날 참석한 사람은 모두 11명이었다. 덕산 선생은 중국에 가고 없었다. 그의 스승인 장지상 선생의 부름을 받고 중국에 갔다고 했다. 그날 밤 우리는 기공수련실에 모여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후 나는 기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판단하는 인식체계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익힌 지식과 상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의 뿌리는 서양의 과학적 인식체계다. 예를 들면 물은 수소 두 분자와 산소 한 분자가 결합된 것이며, 1 더하기 1은 어떤 경우에라도 2가 돼야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약을 복용하면 감기가 나아야 한다. 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은 감기약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런 것은 과학이 아니다.
기공수련생들과 토론하는 필자(왼쪽에서 두 번째). 덕산 선생의 제자가 배에 기를 모으고 있다 (오른쪽).
서양의 과학은 크게 보면 17세기 데카르트 시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역사가 매우 짧다. 그러나 동양에는 수천년 경험이 축적된 고유의 과학이 있다. 동양 과학의 특징은 받아들이는 상대편의 수용 태세에 따라서 1 더하기 1이 3이 될 수 있으며, 4도 되고 1.5도 될 뿐 아니라 마이너스도 될 수 있다.
동양 의학에서는 수용 자세에 따라서 병이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을 수도 있다. 기라는 무형의 에너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나타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강하게, 어떤 사람에게는 약하게 나타날 수 있다. 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연회비 1000만원 받는 기공사
원극기수련원에 두 번째로 갔을 때 내가 집중적으로 물어본 것은 정말 기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여러 사람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다 각각의 고유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기공수련을 통해서 나의 뇌파를 우주의 파장과 맞추면 기가 생긴다.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기공수련과는 다른 것이다.”
어떤 자료에는 기가 무술기공, 보건기공, 의료기공 등 세 가지로 나뉘는데, 사람에 따라 무술기공이 강한 사람, 보건기공이 강한 사람, 의료기공이 강한 사람이 있다. 중국 무협지에 등장하는 소림파나 무당파는 무술기공이 강한 기공파다. 195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동양의학의 한 분야로 의료기공을 장려하여 대규모 기공병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기공파 중 하나인 파룬궁(法輪功) 문제로 지금은 중국 내 모든 기공파가 폐쇄된 상태다.
국내 기공수련원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국내에서 생긴 기공파가 만든 기공수련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기공을 배워온 사람들이 연 기공수련원이다. 최근 10년 사이 40~50대 도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공수련원이 많이 생겼다. 서울 어느 곳에는 유명한 기공사가 연간 1000만원을 낸 회원에게만 기를 주고 수련시킨다.
기공이 유행하게 된 배경은 20~30년 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으나 병원과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이 많아서다. K처럼 직접 기공수련을 하러 다니면서 병을 고친 사례를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고 이것이 광범위하게 퍼진 결과다. K는 이렇게 말했다.
“다리의 혈관이 썩는 버거씨 병으로 30년 이상 고생하던 60대의 어느 사업가는 처음 수련원에 들어왔을 때 산 송장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수련원 운동장을 한 바퀴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는데 4개월 기공수련을 받고는 완전히 회복되어 얼굴에 윤기가 나고 운동장을 50바퀴나 돌 수 있게 됐다. 군 장성 출신의 73세 노인은 25년 전부터 당뇨병을 앓았고,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족회의를 열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공수련을 받았는데, 3개월도 되지 않아 완치되어 나갔다. 고교 국사교사인 45세의 폐암 환자는 11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고도 완치되지 않았는데 원극기공으로 완치됐다.”
그러나 내가 직접 본 사실이 아니기에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환자의 처지에서는 수련 이후 어떤 이유에서든 조그만 차도라도 보이면 강한 정신력이 생겨 치유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어떤 경우에는 주위 사람들이 사소한 차도를 목격하고는 과장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한 가지 확실한 사례는 내 친구의 아내에 관한 것이다. 그는 유방암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다섯 차례 받았다. 하지만 치료가 끝나도 기력이 없어 무척 힘들어했다. 그런데 기공수련을 한 번 받고는 기력이 회복되어 생기가 돌았다. 1주일쯤 지나 기력이 없어지면 다시 기공수련을 받았고 이젠 매주 다닌다. 마치 매주 한 번씩 배터리 충전하듯 기공수련을 하고 있다.
내가 두 번째로 수련원에 갔을 때 덕산 선생의 제자 중 한 사람이 “기공수련을 오래 하면 무슨 일을 하다가도 그 자리에서 바로 기를 모을 수 있으며, 머리끝에서 하단전으로 자유자재로 기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배를 보라면서 그 자리에서 웃옷을 벗고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감은 눈이 조금 씰룩씰룩 하더니 다음 순간 바로 입 안에 뭔가 살아 있는 것을 넣은 것처럼 두 뺨이 우물우물거렸다. 그리고 조금 있더니 배에 큰 뱀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크게 요동치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무리 배에 힘을 주고 힘을 빼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어도 만들어낼 수 없는 움직임이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나는 다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역시 똑같은 움직임이 반복됐다. 그는 눈을 뜨더니 자기 하단전을 만져보라고 했다. 배꼽 밑에 있는 하단전에 따뜻한 열기가 뭉쳐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기공을 직접 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무술 기공수련을 통해서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순간적으로 기를 모아 일격에 상대를 제압하거나 몸을 가볍게 만들어 한 번에 몇 걸음을 뛰어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의료기공이 강한 기공의사는 손끝에 기를 모아 몸의 병을 찾아내서 기로 병을 고칠 수도 있으며, 의념이 강한 기공 고수는 몇백리 밖 특정한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전할 수도 있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