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쇼크! ‘바다의 난폭자’ 백상아리가 몰려온다!

“톱니 이빨, 칼날 비늘, 온몸이 흉기… 서·남해 안 ‘비상’, 동해안도 안전지대 아니다”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5-05-24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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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96년 서해 연안에서 잠수부 등 6명 피습, 사망
    • 1996년 이후 포획된 개체, 공식 확인된 것만 14마리
    • 보령·군산, 단위면적당 사고율 세계적 수준
    • 동해안엔 연중 출몰, 해수욕장을 조심하라!
    • 잠수어민들, “굶어 죽으나, 물려 죽으나 매한가지”
    • 여수에서 포획한 백상아리 2마리 더 있다!
    쇼크! ‘바다의 난폭자’ 백상아리가 몰려온다!
    “저게대체 뭐야?”

    4월21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 동방 0.5마일 해상. 18t급 정치망(定置網) 어선 ‘청해호’를 타고 삼치를 잡기 위해 쳐둔 그물을 살피던 선장 조선현(46·여수시 돌산읍 율림리)씨의 두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닥치는 대로 그물을 찢어발기며 삼치떼를 삼켜대고 있었다.

    잿빛 등, 흰색이 유난스레 도드라진 배, 스포츠카처럼 탄탄하고 날렵한 몸체, 한껏 벌린 아가리, 그리고 그 주위를 빼곡히 둘러치며 돋아난 날카로운 삼각형 이빨. 놈은…백상아리였다.

    서울과 전주에서 각기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 대학생 딸과 고3짜리 아들 생각도 짬짬이 해가며 오래간만에 만선의 기쁨을 누려보려던 어부의 소박한 꿈은 무자비한 침입자와 조우(遭遇)하는 순간 산산이 깨졌다.

    벌건 대낮에 자행되는 백상아리의 ‘홀로코스트’. 하지만 조씨는 침착했다. 여수가 고향으로 25년간 줄곧 고기만 잡아온 노련한 어부답게 날뛰는 놈의 정체가 범상치 않은 상어란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이내 찾아온 건 ‘일용할 양식’을 완전히 망쳐버린 놈에 대한 분노.



    일단 그물에 걸려든 이상, 천하의 백상아리라 해도 인간의 적수가 될 순 없는 법. 그럼에도 놈을 인양하려 그물을 거두던 조씨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솔직히 겁났지. 아, 생각해보쇼. 만약 그놈이 풀쩍 뛰어올라서 달려들면 어쩔 거여?”

    먼저 잡혀간 동족을 못내 그리워한 걸까. 그로부터 사흘 뒤인 4월24일 낮 12시 또 한 마리의 백상아리가 조씨의 어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놈 역시 데릭(derrick·하역용 기중기)에 의해 뭍으로 끌어올려져 대롱대롱 매달리는 처지가 됐다. 숨이 끊어져가면서도 사력을 다해 요동치는 백상아리의 몸뚱이 위로 어민들의 몽둥이 세례가 날아들었다. 블랙홀 같던 백상아리의 입에서는 삼킨 삼치들이 주르륵 쏟아졌다.

    쇼크! ‘바다의 난폭자’ 백상아리가 몰려온다!

    1996년 6월 군산(①), 1997년 8월 양양(②), 1998년 5월 태안(③)에서 포획된 백상아리들.

    앞서 잡힌 백상아리는 암컷으로 몸길이 4m에 무게는 3t. 뒤이어 잡힌 수컷은 3m에 1.5t이었다. 조씨는 이 백상아리들을 마리당 35만∼36만원을 받고 여수수협 위판장에 팔았다. 예기치 않게, 그것도 하필이면 쌍(雙)으로 걸려든 백상아리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씁쓰레했다.

    “내 그물에 걸렸으니 어쩔 수 없이 잡은 거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겨먹고 잡아도 처치곤란한 놈을 일부러 잡으려는 얼빠진 어민이 어디 있겠어? 어부 노릇하면서 참상어, 귀상어 같은 놈들은 곧잘 잡아봤지만, 백상아리는 처음이여. 여수에 놈들이 나타난 것도 그렇고. 지금까진 ‘식인상어’ 하면 다른 나라 얘긴 줄 알았지. 참내, 무슨 ‘고래사냥’도 아니고….”

    동료 어민 이영학(48)씨가 거든다.

    “이빨이 송곳이여, 송곳. 그놈이 물고기여? 괴물이지.”

    말수 적은 조씨는 찢긴 그물을 손질해야 한다면서 “백상아리 얘긴 그만하자”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예언 같은 한 마디가 그의 발자국 끝에 남아 맴돌았다.

    “또 와. 또 온다고. 예감이 그래.”

    ‘화이트 데스(White Death)’

    백상아리(학명은 ‘Carcharodon carcharias’로 ‘톱과 같은 이빨’이란 뜻)의 영문 표기는 ‘Great white shark’. ‘백상어’로 직역되지만, 정확한 우리말 명칭은 ‘백상아리’다. 이는 1977년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를 펴낸 어류학자로, 한국 수산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정문기 박사가 명명(命名)한 것. 하지만 그가 작고한 터라 현재로선 왜 많고 많은 상어 가운데 유독 백상아리와 청상아리에만 ‘아리’라는 독특한 접미사를 붙였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두 종(種)이 우리 해역에서 볼 수 있는 난폭한 상어의 대표격이라 다른 상어와 구분하기 위해 그런 접미사를 붙인 게 아닌가 추측할 따름이다.

    세계 각처의 바다엔 무려 400여 종의 상어가 돌아다닌다. 우리 연안에서 볼 수 있는 상어는 40종. 이중 12종 가량이 인간에게 위협적이다. 뱀상어, 청상아리, 귀상어 등이 그것이다. 청상아리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악전고투 끝에 잡은 청새치를 뼈만 남기고 모조리 먹어치운 얄미운 놈. 귀상어는 머리가 해머처럼 생긴 기이한 생김새의 상어다.

    쇼크! ‘바다의 난폭자’ 백상아리가 몰려온다!

    상어 전문가인 군산대 최윤 교수(왼쪽)와 최근 백상아리 2마리를 잡은 여수 어민 조선현씨.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전세계적으로 인간에게 큰 피해를 안기는 녀석은 ‘화이트 데스(White Death)’란 별칭을 가진 백상아리. ‘바다의 무법자’로 통한다. 큰 놈은 몸길이가 6m에 육박하는 데다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습성이 있는 ‘못 말리는 상어’다. 수명은 대략 25∼30년으로 보지만, 명확히 밝혀진 적은 없다.

    백상아리의 면모 중 압권은 단연 무시무시한 이빨.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생긴 삼각형 이빨이 몇 겹으로 열(列)을 이루고 있다. 백상아리의 이빨은 턱에 깊이 박혀 있지 않아 단단한 것을 물 때 쉽게 빠진다. 하지만 앞의 이빨이 빠지면 곧 뒷열의 이빨이 빈 자리를 채운다.

    상어의 턱은 위아래로만 움직인다. 좌우로는 움직이지 못한다. 먹이를 문 뒤 그것을 자르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심하게 흔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상아리는 그럴 때면 한술 더 떠 눈알까지 뒤로 굴린다. 제대로 된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몸부림치는 먹이를 물고늘어질 때 예상치 못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백상아리의 청각은 뛰어나다. 1km 이상 떨어져 있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후각도 예민해서 100만분의 1로 희석한 피냄새까지 맡는다. 이는 94ℓ의 물에 떨어뜨린 한 방울의 피에 해당한다. ‘개코’는 명함도 못 내민다.

    온몸이 살상무기, 타고난 감각

    상어 피부는 까칠한 돌기가 무수히 돋아난 방패 모양의 비늘로 덮여 있다. 물의 흐름과 동일한 방향으로 비스듬히 돋아난 이 미세한 돌기들은 상어가 전진할 때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여 속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런 방패비늘의 특징은 요즘 수영복에 응용되고 있다. 2000년 ‘세계 쇼트코스 수영선수권대회’에서 15개의 세계 신기록을 쏟아내며 집중조명을 받은 전신(全身) 수영복은 옷 표면에 상어 피부의 돌기 같은 미세한 홈을 파서 물의 저항 중 하나인 표면 마찰력을 최소화한 것. ‘패스트 스킨(Fast Skin)’이란 첨단소재를 사용했다.

    기자는 까치상어의 돌기를 만져본 적이 있는데, 비스듬히 돋아난 돌기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쓸어보다 자칫 손가락을 찔릴 뻔했다. 해수 관상어로 인기가 높아 대형 수족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까치상어는 지난해 11월 제주에서 인공 번식에 성공하기도 한, 비교적 순한 놈이다. 다 자라봐야 몸길이가 1.5m도 안 되는 작은 놈의 돌기가 이럴진대 백상아리야 오죽하랴. 사람의 몸은 백상아리 비늘에 스치기만 해도 살갗이 단번에 벗겨진다.

    상어는 인간으로 치면 중증도의 ‘지방간 환자’다. 여느 물고기와 달리 부력(浮力)을 조절하는 부레가 없다. 대신 지방질로 가득 찬 아주 큰 간이 상어가 물에 뜨는 것을 돕는다. 간은 내장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해서 상어는 입을 벌린 채 지느러미와 근육을 부지런히 움직여 쉼없이 유영해야 산소를 공급받아 생존할 수 있는 동시에 물에 뜰 수 있다.

    이렇게 ‘온몸이 흉기’이자 타고난 감각까지 갖춰 막강한 전투력을 뽐내는 백상아리지만, 범고래(killer whale)와 맞닥뜨리면 ‘몽구스 앞의 코브라’ 신세다. 가장 사나운 고래로 ‘바다의 제왕’이란 닉네임을 지닌 범고래는 몸길이가 7~10m로, 상어는 물론 저보다 훨씬 더 큰 고래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강한 입과 포유동물로서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범고래는 꼬마 친구의 도움으로 해양공원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자유를 되찾는다는 줄거리의 영화 ‘프리 윌리’(1993)의 주인공. 범고래와 백상아리는 둘 다 바다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한 포식자지만, 백상아리가 범고래와 다른 점은 인간을 빈번히 해친다는 사실이다.

    백상아리 vs 범고래

    이렇듯 백상아리는 생태학적 측면에서 학자들에게 연구의 재미를 요모조모 선사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어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범인(凡人)에게 선연히 각인된 백상아리에 대한 고정관념은 단연 ‘공포’라는 두 음절. 이는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75년작 영화 ‘죠스(Jaws·아가리)’의 영향 탓이다. 백상아리가 미국의 한 해변도시를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는 설정의 이 납량물을 잊은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몇몇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해수욕장에 들이닥쳐 피서객을 두 동강 낸 뒤 너덜너덜해진 인간의 살점이 낀 무시무시한 ‘피범벅 이빨’을 드러내는 가공할 아가리….



    피서객을 겨냥한 백상아리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기 전 상황을 묘사한 피터 벤츨리의 소설 ‘죠스’(영화 ‘죠스’의 원작)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야말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 마리의 거대한 물고기가 초승달 모양의 꼬리지느러미를 가늘게 움직이며 밤바다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은 안 보이고, 다른 기관 역시 왜소하고 원시적인 뇌세포에 아무런 것도 전달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물고기는 잠들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영구불변하게 이어져온 본능 그대로 헤엄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영구불변이라! 그렇긴 하다. 상어가 지구상에 나타난 때는 4억1500만년 전. 공룡의 등장보다 두 배나 앞선 시기다. 인류에 비해서는 100배 이상 긴 세월을 바닷속에서 보내왔다.

    백상아리가 분포하는 곳은 전 대양의 열대 및 아열대 해역. 수온이 상승하면 온대 해역에도 나타난다. 5∼6월에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출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백상아리가 출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태원씨의 책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보면, 한국 최고(最古)의 어류학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자 정약전이 ‘극치사(戟齒?)’, 속명으로 ‘세우사(世雨?)’라고 언급한 물고기가 백상아리임을 알 수 있다.

    여수대 한경호 교수(양식생물학)는 “출산기에 접어든 백상아리가 난류를 따라 남해를 거쳐 서해 연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곧잘 포획된다”며 “백상아리가 좋아하는 수온대는 바닷물 표층 수온이 11∼22℃일 때인데, 5∼6월의 서해 연안은 수온대가 이 범위에 속하는 15∼22℃에 이르는 데다 양태, 망둥어, 새우 같은 새끼 백상아리의 먹이가 풍부해 이들이 자라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한다.

    백상아리는 국외자(局外者)에겐 신묘(神妙)하기 이를 데 없는 생명체. 하지만 출몰 해역 주민에겐 극복할 수 없는 재앙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백상아리에게 희생된 사람은 6명. 다른 종(種)의 상어에 피해를 당한 사례는 전혀 밝혀진 바 없다.

    소음과 비린내가 공격 원인?

    백상아리에 의한 최초의 피해자는 1959년 여름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던 대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워낙 오래 전의 일이어서 정확한 피해 일시와 경위, 피해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후로도 5명이 더 죽임을 당했다. 1981년 5월 전복 채취 해녀 1명(보령시 외연도 앞바다), 1986년 5월 키조개 채취 잠수부 1명(군산시 연도 앞바다), 1988년 5월 전복 채취 해녀 1명(보령시 삽시도 앞바다), 1995년 5월 전복 채취 해녀 1명(보령시 장고도리 앞바다) 등 사망자가 이어졌다. 마지막 피해자는 잠수어민 이모(당시 33세)씨. 그는 1996년 5월10일 군산시 옥도면 연도리 앞바다에서 키조개를 캐던 중 백상아리에게 허리를 물려 숨졌다.

    발생 일시가 불명확한 최초 사례를 제외하면 다른 5건은 모두 패류 채취가 한창인 5월에 집중돼 있고, 발생 장소도 ‘서해 연안’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백상아리에 의한 피해가 발생한 보령·군산 일대는 단위면적당 사고율로 볼 때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백상아리는 왜 인간을 공격하는 걸까. ‘상어에게 수면에서 헤엄치는 인간의 두 다리는 원숭이에게 바나나와 같은 것이다’는 내용의 글을 어릴 적 우연히 읽은 기억이 난다. 물론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해답은 오로지 백상아리만이 알 뿐이다.

    군산대 최윤 교수(어류분류생태학)는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다만 백상아리가 수중에서 작업중인 잠수부나 해녀를 자신이 좋아하는 먹이인 바다표범이나 바다사자, 물개 등으로 오인해서 공격하는 게 아닌가 추정되며, 그들이 수중에서 패류를 채취할 때 나는 소음과 비린내가 백상아리의 지극히 예민한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라 분석한다.

    그래도 아직 국내에선 백상아리가 자신이 죽인 인간을 먹어치운 경우는 없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식인상어(men-eater shark)’라고 하긴 힘든 셈이다. 실제로 최 교수는 지금까지 백상아리 3마리의 배를 갈라보았는데, 모두 위장 속에서 반쯤 소화된 쇠물돼지(고래목에 속하는 돌고래의 일종. 서해 어민들은 ‘상쾡이’라고 부른다)가 발견됐다고 한다.

    반면 청상아리는 난폭성을 지녔으면서도 즐겨 먹는 먹이가 대형 어류와 오징어 등으로 바다 포유류를 좋아하는 백상아리의 식성과 달라서인지 사람을 먹이로 오인해 공격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크! ‘바다의 난폭자’ 백상아리가 몰려온다!

    백상아리의 공격에 의한 인명피해 장소

    최 교수는 국내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상어 전문가. 1996년부터 상어 연구에 진력해왔다. ‘한국어도보’에 기록된 국내 서식 상어 36종 외에도 우리 연안에 홍살귀상어, 흰뺨상어, 검은꼬리상어, 흰배환도상어 등 4종의 새로운 상어가 더 서식하고 있음을 밝혀냈고, 1999년엔 상어의 생태와 특성을 소개한 책 ‘상어’를 펴내기도 했다. 백상아리에 의한 서해안 인명피해 사례들을 2001년 5월 세계의 상어 피해를 집계하는 미국 판새어류학회의 국제상어피해목록(ISAF)에 최초로 보고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 연안에 끊임없이 출몰

    백상아리는 끊임없이 한국 연안에 출몰하고 있다. 1996년 이후 포획 사실이 공식 확인된 개체만 14마리. 이번에 여수에서 잡힌 2마리를 포함한 수치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포획 사례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주목할 점은 백상아리가 해마다 5∼6월에 나타나는 서해안뿐 아니라 남해안은 물론 동해안에까지 출현한다는 사실. 이번에 여수에서 잡힌 2마리를 두고 언론매체들은 ‘서해안에만 출몰하던 백상아리가 남해안에도 출현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실상은 1998년 9월 경남 통영시 도산면 오륜리 고성만 해역에서 주민에 의해 포획된 몸길이 5m, 무게 2t인 대형 어류가 백상아리임을 경상대 해양과학대학 김무상 교수가 확인한 바 있다.



    일반의 고정관념과 달리, 백상아리는 동해안에도 연중 출몰한다. 2004년 3월25일 경북 포항시 송도해수욕장 앞 20여 m 해상에서 주민 5명에 의해 포획된 상어는 실물을 직접 관찰한 최윤 교수에 의해 백상아리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에 앞서 1997년 8월5일 강원도 양양군 정암해수욕장 앞 50여 m 해상에서 몸길이 1.5m의 백상어가 포획됐고, 1999년 11월19일에도 포항시 북구 월포리 월포 동방 8마일 해상에서 통발어선에 몸길이 3.3m인 백상아리가 잡힌 사실이 있다.

    “서해안과 같이 동해 남부 연안에서도 백상아리에 의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백상아리 포획 장소가 피서객의 출입이 빈번한 해수욕장 인근인 데다 포획시기 또한 서해안과 달리 연중에 걸치고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최윤 교수)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백상아리 대비책이라곤 그저 조심하는 것뿐이다. 보령과 군산처럼 백상아리에 의한 인명피해가 적잖은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잠수부의 신체를 백상아리의 공격으로부터 막을 수 있게 특별히 고안된 보호망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그와 같은 보호장비가 개발되지 못했다.

    열대 해역에 접해 백상아리 피해가 잦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샤크 포드(Sharkpod)’라는 상어 퇴치기가 개발돼 사용된다. 샤크 포드는 상어가 싫어하는 전파를 발생시켜 잠수부 주위에 상어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 하지만 성능이 100% 완벽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

    여수에서 백상아리를 포획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거 백상아리 때문에 참변을 겪었던 지역 주민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1995년 5월12일 전복을 채취하던 해녀 김모(44)씨가 백상아리에게 한쪽 다리를 물려 출혈과다로 숨진 사고가 있었던 충남 보령시 오천면의 경우도 마찬가지.

    오천면 장고도리 이장 편도진(36)씨는 “해마다 5∼6월이 되면 선상(船上)에서도 2∼3일간 열댓 마리의 백상아리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라며 “오천면 일대의 잠수어업 종사자는 거의 선불금을 주고 외지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이어서 백상아리 때문에 조업하지 못할 경우 금전적 피해가 커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과거 2명의 잠수부가 백상아리에게 피해를 당한 군산은 보령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 군산해양경찰서 박래진(50) 경비통신과장은 “현재 군산지역엔 잠수어업 종사자가 전혀 없어 타 지역에 비해 직접적인 인명피해 우려는 크지 않다. 하지만 상습 출현지역인 만큼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해마다 백상아리 출현시기가 되면 경비정을 동원해 바닷물에 돼지 생피를 뿌려 피냄새에 민감한 백상아리들을 먼 바다로 유인해 연안 쪽으로 접근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며 “특히 해녀들에겐 생리기간 중 물질을 하지 않도록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경도 잠수어업, 특히 야간조업을 당분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계도활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잠수어민들이 “굶어 죽든지, 백상아리에게 물려 죽든지 죽는 건 매한가지”라며 생업을 포기하지 않는 탓이다.

    어업에 종사하지 않는 대다수 사람 또한 백상아리에 대해 무감(無感)하다. 최근 백상아리를 잡은 어민 조선현씨의 집에서 가까운 여수 돌산도의 유명한 사찰 향일암(남해 금산 보리암 등과 함께 한국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 인근의 임포마을. 이곳에 즐비한 횟집 주인들조차 백상아리가 잡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임포마을엔 60여 가구가 살지만, 이중 어업 종사 가구는 10% 가량이고, 나머지 가구가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하는 것도 한 이유다.

    또 다른 문제는 백상아리를 포획하더라도 현행법상 해경 등 관계당국에 신고할 의무가 없어 정확히 몇 마리나 잡혔는지 종잡기조차 힘든 데 있다. 조씨가 잡은 백상아리 2마리의 존재도 그의 배가 회항하는 임포항에 자리잡은 여수해양경찰서 임포출장소에서 포획 사실을 알아챈 뒤 어민 피해 방지를 위해 이를 언론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공표함으로써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잡은 백상아리를 신속히 차량으로 운반해 위판장에 팔아버리면 포획 사실은 고스란히 감춰진다. 게다가 백상아리 출몰지역이란 소문이 돌면 행여 잠수어업과 관광업이 위축될까봐 해당 주민들이 쉬쉬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3월에도 여수에서 백상아리 경매

    과연 여수에서 포획된 백상아리는 2마리뿐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조선현씨는 “내가 2마리를 잡은 며칠 뒤 우리 마을에서 5∼6km 떨어진 돌산읍 계동마을 앞바다에 설치된 다른 어민의 정치망에 백상아리 한 마리가 잡혔다고 들었다”고 했다. 여수에서 세 번째로 백상아리를 잡은 이 어민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조씨의 백상아리를 경매로 구입한 어류 수집상 최모(70)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40년 이상 상어 등 대형어류와 밍크고래를 주로 취급해왔다는 그는 “조씨가 잡은 백상아리 2마리 외에도 지난 3월 여수의 한 안강망 어선이 포획한 백상아리 한 마리를 경매로 구입해 되판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5∼6년 전쯤엔 백상아리를 1년에 2∼3마리씩 구경할 수 있었는데, 가격이 마리당 70만∼80만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요즘은 냉동처리된 수입산 상어고기가 나돌아 국내산 백상아리 가격이 30만원대로 떨어진 것”이라 귀띔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제로 우연히 그물에 걸려 포획되는 남해 연안의 백상아리 수는 결코 적지 않으며, 포획 시기 역시 5∼6월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살필 수 있다.

    ‘谷無虎先生兎’, 샌드타이거 샤크

    이번에 여수에 출현한 백상아리 2마리는 경매로 팔린 뒤 어떻게 처리됐을까. ‘사료용’으로 팔렸다는 한 매체의 보도가 있었지만, 기자가 앞서 언급한 수집상 최씨를 통해 확인한 결과 식용으로 팔려나갔다.

    어찌됐건 백상아리도 엄연한 바닷물고기. 제아무리 공포의 ‘해양동물’이라지만, 그 풍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상어고기를 다뤄온 수집상 최씨는 혹 백상아리를 먹어보지 않았을까.

    “상어고기? 제사상에 산적으로 올리거나 육회로 해서 먹지. 백상아리 살은 연분홍빛이 감돌아. 그런데 직접 먹어보진 않았어. 생김새만 봐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기자는 캐비어(caviar)로 유명한 카스피해산(産) 철갑상어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2002년 2월 몽골 출장에서 회로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맛은 뭐랄까,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육질이 꽤 좋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철갑상어는 상어가 아니다. 상어는 물렁뼈를 지닌 연골어류. 반면 철갑상어는 보통의 물고기같이 딱딱한 뼈를 지닌 경골어류다. 강철같이 단단한 비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철갑상어는 ‘무늬만 상어’인 셈이다.

    경주와 안동지방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일명 ‘돔베기’도 먹어봤다. 기름기가 적은 고등어 맛 같다고나 할까. 씹히는 육질은 고등어보다 조금 쫀득하면서도 한편으론 수분이 다소 많은 듯한 물렁한 느낌. 돔베기의 재료가 되는 상어는 청상아리, 무태상어, 귀상어 등 다양하다. 물론 이중엔 백상아리 고기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백상아리도 사육이 가능할까. 일반적으로 백상아리는 길들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레니 할린 감독의 1999년작 영화 ‘딥 블루 시(Deep Blue Sea)’만 봐도 그렇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상연구소 ‘아쿠아티카(Aquatica)’의 한 여성 박사가 동물 중 가장 빠르고 완벽한 살상어류인 상어를 이용해 인간의 손상된 뇌조직을 재생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지만, 결국 실패하지 않던가. 물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상어는 백상아리라기보다 청상아리에 더 가깝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 ‘오션 킹덤.’ 이곳엔 백상아리가 없다. 서열 1위는 샌드타이거 샤크. 놈은 2002년 오션 킹덤 수족관 내에서 까치상어를 물어 두 동강 내버린 난폭자다. 하지만 백상아리에 비하면 ‘넘버3’에 불과하다. 우선 몸길이가 3m 정도(3.6m까지 큰다)여서 크기에서 눌린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어류사육팀의 오태엽(36) 대리는 “아직 전세계적으로 백상아리를 사육하는 곳은 없다”며 “다만 올해 3월 미국 몬터레이베이 아쿠아리움에서 몸길이 1.5m짜리 백상아리를 수족관에 넣어 사육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상아리 없는 오션 킹덤에서 샌드타이거 샤크의 독주는 그야말로 ‘곡무호선생토(谷無虎先生兎·호랑이 없는 골에선 토끼가 스승)’인 셈이다.

    커져가는 ‘백상아리 공포’

    아쉽게도 지금까지 백상아리의 생태와 관련해 알려진 사실은 극히 일부분에 그친다. 연구 실적이 미미한 주된 원인은 연구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우선 연구를 위한 백상아리 채집 자체가 어렵다. 또한 용케 백상아리를 구한다 해도 덩치가 워낙 커서 연구하는 동안 보존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백상아리를 박제해버리면 생김새만 유지될 뿐 외부기관의 사이즈가 실물보다 줄어들어 실측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 따라서 백상아리 연구를 위한 전문기관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바다는 넓고 백상아리는 많다. 하지만 백상아리를 ‘아는’ 사람은 적다. 백상아리 피해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백상아리에 대한 정보수집과 자료분석은 필수적이다. 현실이 이를 따라주지 못하는 한 ‘백상아리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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