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가장 큰 호수인 윈더미어호의 여유로운 풍경.
영국 중서부에 자리잡은 호수지역은 윈더미어를 중심으로 반경 50km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호수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마을이 10여 곳 있는데, 그중 관문 노릇을 하는 곳이 유일하게 기차가 닿는 윈더미어 마을이다.
기차역이 있는 언덕에서 호수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느 마을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새로 지은 집을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모든 건축물이 그림엽서에서 보듯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주민들이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옛 건물을 보수해 사용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고장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발상지라는 것, 다른 하나는 방문객에게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19세기 영국의 여유를 주기 위한 배려다.
그림처럼 예쁜 윈더미어 마을의 주택. 주인의 세심한 정성이 엿보인다.
힐탑을 찾은 방문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30여 년간 머물며 수많은 명작을 저술했다는 옛집이다. 현재 기념관으로 사용되는 이 2층 건물의 아담한 작업실은 대부호의 딸이자 유명한 동화작가인 그녀가 사용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해, 평생 남을 위해 봉사했다는 포터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호수지역이 오늘날까지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도록 많은 예술가가 기여했지만, 포터는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지역 부호의 외동딸로 태어난 포터는 막대한 유산과 작품으로 벌어들인 인세를 모두 모아 이 지역의 토지와 농장, 보존가치가 있는 가옥 수십 곳을 매입했다. 그는 죽기 전 4000에이커에 이르는 토지를 내셔널 트러스트 협회에 기증하며 보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계기로 윈더미어 지방은 19세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해마다 2000만명의 방문객을 맞는 여행지로 거듭난 것이다.
기념관에서 다양한 식물과 꽃이 자라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건물은 포터와 가족이 함께 생활했던 2층집이다. 역시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건물도 내셔널 트러스트 협회에 기증됐고, 현재는 윈더미어 지방 회원들의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호수지역에 자리잡은 유서 깊은 교회 건축물. 이 지역의 내셔널 트러스트 협회가 소유하고 있다.
윈더미어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과 그림처럼 아름다운 농장, 나지막한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 한적하게 호수 위를 떠다니며 시간을 즐기는 백조의 모습은 ‘평화’라는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신작로와 마을 언덕에 자리잡은 민박집과 노천 카페,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경치 또한 뒤지지 않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도시의 여행객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온함이 숨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윈더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