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추적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 代 이은 러시아 연해주 프로젝트 전모

‘광개토 사업’에서 ‘흥개호 계획’ 거쳐 ‘발해복권 플랜’ 지나 유전개발 사업으로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 代 이은 러시아 연해주 프로젝트 전모

2/5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소련과 관계를 맺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한국인들은 미국 선수단보다 소련 선수단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낼 만큼 소련을 환대했는데, 그것이 한소 관계를 진전시키는 큰 힘이 되었다. 1990년 2월22일 한국이 모스크바에 주소(駐蘇) 한국영사처를, 3월19일에는 소련이 서울에 주한 소련영사처를 개설함으로써 한소 양국은 45년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적인 외교관계로 진입했다. 그해 6월1일 미국을 방문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귀국 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 최초의 한소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1990년 7월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바르샤바조약군이라는 이름으로 동독에 주둔하던 소련군 37만명을 1994년까지 철수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때 서독은 동독에서 철수하는 소련군의 이동 비용은 물론이고 이들을 위해 소련이나 기타지역에 새로 기지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전부 부담하기로 했다.

독소 간의 이러한 합의는 한소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소련에 어떤 형태로든 경제지원을 하는 것이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한국에서 형성된 것이다. 더구나 이 무렵 한국경제는 서울올림픽 이후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므로 주머니 사정도 넉넉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해 12월14일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의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이때 노 대통령은 한소 수교의 대가로 30억달러의 차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경제가 아무리 잘 나가고 있다 해도 하루아침에 30억달러를 조달할 수는 없는 법. 당시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이 좋았으므로 비교적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소련에 제공하기로 한 차관의 이자율은 이보다 높았으므로 한국은 홍콩의 금융회사를 통해 차관 자금을 마련했다.

이렇게 마련된 돈이 절반 정도 소련에 흘러든 1991년 12월25일, 소련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그러자 한국에서는 소련에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문제가 됐다. 소련의 붕괴는 소련 영토에 속해 있던 작은 공화국들이 연이어 독립을 선포하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1992년 1월1일에는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가 소련에서 독립한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독립을 선포하기 직전 한국측은 러시아에 대해 그때까지 한국이 소련 정부에 지급한 14억7000만달러의 차관을 승계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측은 “한국이 준 14억7000만달러 중에서 러시아에서 사용된 것은 70% 정도이고 나머지 30%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벨로루시 지역에서 집행됐다”며 난색을 표했다. 논란 끝에 양국은 ‘14억7000만달러의 차관은 러시아가 심의해서 갚기로 노력한다’는 문구를 담은 문서에 서명했다(1991년 12월27일).

이로써 차관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이 차관이 유령처럼 배회하며 14년이 지난 지금 ‘유전 게이트’를 일으킨 원인 요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부터 그 맥락을 따라가보자.

노태우 정부의 ‘광개토 프로젝트’

한국이 대소련 차관을 대러시아 차관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고민을 거듭하자, 이 차관을 끌어왔다가 나라를 잃음으로써 갚지 못하게 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인간적으로 미안함’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고르바초프는 1992년 10월 중국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씨를 만나 “14억7000만달러의 상환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영향력을 발휘해 경상북도 크기만한 연해주 다르네고브스키 지역(약 54만ha)의 개발권을 한국에 주도록 하겠다”고 제의했다.

고르바초프가 이런 제의를 하기 직전인 9월17일 남북한은 총리급 회담을 열고 상호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한 상태였으므로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좋았다. 때문에 다르네고브스키 지역에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한 농산물을 식량난이 심각한 북한에 보낸다면 남한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철언씨 등을 중심으로 한 노태우 정부의 실세는 이 발상을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라 이름짓고 비밀리에 두 명의 농업관계자를 다르네고브스키 지역에 보내 조사하게 했다. 그러나 검토 결과 이 지역은 논농사에 부적당하다는 결론이 났다. 이것이 실수였다. 다르네고브스키 지역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비롯해 각종 지하자원이 많은 곳인데 한국은 농업에만 초점을 두고 조사한 것이다.

농업에 적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노태우 정부는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다르네고브스키 지역이 지하자원의 보고이며, 러시아가 이 지역 개발권을 준다고 한 것은 농업뿐 아니라 지하자원 개발권까지 준다는 뜻이었음을 알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2/5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목록 닫기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 代 이은 러시아 연해주 프로젝트 전모

댓글 창 닫기

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