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21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 동방 0.5마일 해상. 18t급 정치망(定置網) 어선 ‘청해호’를 타고 삼치를 잡기 위해 쳐둔 그물을 살피던 선장 조선현(46·여수시 돌산읍 율림리)씨의 두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닥치는 대로 그물을 찢어발기며 삼치떼를 삼켜대고 있었다.
잿빛 등, 흰색이 유난스레 도드라진 배, 스포츠카처럼 탄탄하고 날렵한 몸체, 한껏 벌린 아가리, 그리고 그 주위를 빼곡히 둘러치며 돋아난 날카로운 삼각형 이빨. 놈은…백상아리였다.
서울과 전주에서 각기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 대학생 딸과 고3짜리 아들 생각도 짬짬이 해가며 오래간만에 만선의 기쁨을 누려보려던 어부의 소박한 꿈은 무자비한 침입자와 조우(遭遇)하는 순간 산산이 깨졌다.
벌건 대낮에 자행되는 백상아리의 ‘홀로코스트’. 하지만 조씨는 침착했다. 여수가 고향으로 25년간 줄곧 고기만 잡아온 노련한 어부답게 날뛰는 놈의 정체가 범상치 않은 상어란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이내 찾아온 건 ‘일용할 양식’을 완전히 망쳐버린 놈에 대한 분노.
일단 그물에 걸려든 이상, 천하의 백상아리라 해도 인간의 적수가 될 순 없는 법. 그럼에도 놈을 인양하려 그물을 거두던 조씨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솔직히 겁났지. 아, 생각해보쇼. 만약 그놈이 풀쩍 뛰어올라서 달려들면 어쩔 거여?”
먼저 잡혀간 동족을 못내 그리워한 걸까. 그로부터 사흘 뒤인 4월24일 낮 12시 또 한 마리의 백상아리가 조씨의 어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놈 역시 데릭(derrick·하역용 기중기)에 의해 뭍으로 끌어올려져 대롱대롱 매달리는 처지가 됐다. 숨이 끊어져가면서도 사력을 다해 요동치는 백상아리의 몸뚱이 위로 어민들의 몽둥이 세례가 날아들었다. 블랙홀 같던 백상아리의 입에서는 삼킨 삼치들이 주르륵 쏟아졌다.

1996년 6월 군산(①), 1997년 8월 양양(②), 1998년 5월 태안(③)에서 포획된 백상아리들.
“내 그물에 걸렸으니 어쩔 수 없이 잡은 거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생겨먹고 잡아도 처치곤란한 놈을 일부러 잡으려는 얼빠진 어민이 어디 있겠어? 어부 노릇하면서 참상어, 귀상어 같은 놈들은 곧잘 잡아봤지만, 백상아리는 처음이여. 여수에 놈들이 나타난 것도 그렇고. 지금까진 ‘식인상어’ 하면 다른 나라 얘긴 줄 알았지. 참내, 무슨 ‘고래사냥’도 아니고….”
동료 어민 이영학(48)씨가 거든다.
“이빨이 송곳이여, 송곳. 그놈이 물고기여? 괴물이지.”
말수 적은 조씨는 찢긴 그물을 손질해야 한다면서 “백상아리 얘긴 그만하자”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예언 같은 한 마디가 그의 발자국 끝에 남아 맴돌았다.
“또 와. 또 온다고. 예감이 그래.”
‘화이트 데스(White Death)’
백상아리(학명은 ‘Carcharodon carcharias’로 ‘톱과 같은 이빨’이란 뜻)의 영문 표기는 ‘Great white shark’. ‘백상어’로 직역되지만, 정확한 우리말 명칭은 ‘백상아리’다. 이는 1977년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를 펴낸 어류학자로, 한국 수산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정문기 박사가 명명(命名)한 것. 하지만 그가 작고한 터라 현재로선 왜 많고 많은 상어 가운데 유독 백상아리와 청상아리에만 ‘아리’라는 독특한 접미사를 붙였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두 종(種)이 우리 해역에서 볼 수 있는 난폭한 상어의 대표격이라 다른 상어와 구분하기 위해 그런 접미사를 붙인 게 아닌가 추측할 따름이다.
세계 각처의 바다엔 무려 400여 종의 상어가 돌아다닌다. 우리 연안에서 볼 수 있는 상어는 40종. 이중 12종 가량이 인간에게 위협적이다. 뱀상어, 청상아리, 귀상어 등이 그것이다. 청상아리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악전고투 끝에 잡은 청새치를 뼈만 남기고 모조리 먹어치운 얄미운 놈. 귀상어는 머리가 해머처럼 생긴 기이한 생김새의 상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