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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노력해야 헛고생, 차라리 다 같이 죽자…”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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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도 없는 목사 100차례 방화…소방관, “잡으면 죽여버리겠다” 분통
  • ●대구 母子 방화범, “쌀 한 가마 들여놓고 쳐다보는 게 소원이었다”
  • ●“‘마누라 속 썩이는 무능한 놈…’ 장모 비웃음에 휘발유 뿌렸다”
  • ●“범죄자 중 가장 못난 놈이 방화범”
  • ●인터넷에 빠져 대화할 줄 모르는 아이들, 방화광 될 가능성 높다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강원도 출신의 A씨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목사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 골목에서 그를 체포한 수사관에 따르면, 그는 “촌스럽고 어수룩해 보였다”고 한다. 그를 면담한 기록에는 ‘사기 칠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사를 할 스타일도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가 무려 100여 차례나 주택과 자동차, 교회에 불을 지른 방화광(放火狂)이란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아내조차 “남편이 자주 오전 11시쯤 나가 오후 3시면 들어와 의아해했지만, 선교하러 나갔으려니 생각했다”고 수사관에게 털어놓았다. 한창 햇볕이 쏟아지던 그 시간에 목사인 남편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닌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방화범의 표적이 될 것인가’

A씨는 자신의 중고차를 타고 하루에도 서너 차례 미친 듯이 불을 질렀다. 한 곳에서 불을 지르고, 다시 차를 몰고가 다른 곳에 불을 붙였다.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도 그는 불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몇 달째 방화범은 잡히지 않고 화재가 잇따르자, 한 소방관은 “잡히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주민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자신의 집과 자동차가 방화광의 표적이 될지 모르기에 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왜, 불을 질렀을까. 수도권에서 개척교회를 짓고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순박하지만 말 주변이 없는 탓에 그는 교인을 모으지 못했다. 불을 지르기 전까지 교인이라고는 그의 식구를 빼고 딱 한 명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겪는 시련의 시기로 여겼지만, 시간이 가도 신도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정체 모를 적개심이 그의 마음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골목을 걷다가 쓰레기더미에 눈길이 멈췄다. 그는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활활 타는 듯 묘한 해방감을 맛봤다. 이렇게 시작한 ‘불장난’은 자동차로, 다른 교회로, 주인이 없는 주택으로 타깃을 옮기면서 이어졌다.

경찰은 수개월째 이어진 화재의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범인이 일정한 동선(動線)을 그리며 오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예상되는 지점에 잠복했다. 6개월이 지나서야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그를 덮칠 수 있었다. 체포하는 순간에도 그는 멀쩡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증거를 은닉하기 위해 몰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떨어뜨리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사건은 미궁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A씨 사건은 한국에 본격적인 방화광이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단순 방화를 넘어서 습관처럼,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는 광인(狂人)이 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1974년 304건이던 방화 건수는 30년이 지난 2003년 1713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벌어진 살인이나 강도, 강간 같은 다른 강력범죄의 증가폭을 상회한다. 불이 사회 안전을 해치는 흉기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가 펴낸 ‘방화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는 대검찰청 통계보다 방화가 훨씬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예로 행정자치부가 집계한 화재통계연보는 2003년 3219건의 방화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확실하게 방화로 추정되는 경우’를 집계한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다는 것이 일선 경찰관들의 분석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전체 화재건수 중 35%를 방화로 추정한다. 이 추정대로라면 2003년 발생한 방화는 1만건이 넘는다.

이렇듯 방화가 증가하는 이유는 경제발전과 관련이 있다. 먹고살 만할수록 화재는 줄고, 방화는 는다고 한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화재 사고에서 방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두 건의 화재 중 한 건이 방화로 발생한 것이란 얘기다. 선진국일수록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확산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방화’가 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방화를 ‘선진국형 범죄’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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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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