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58회를 맞은 칸 영화제는 이런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최상의 기회를 스타에게 제공했고, 페스티벌 고유의 권위로 스타를 ‘진정한 스타’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물론 칸 역시 스타의 존재와 역할을 적절히 이용해 명성을 유지했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제사장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이후 줄곧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재림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열리는 칸 영화제에서는 만질 수 없는 스타들이 필름에서 나와 이내 사라져버릴 자신들의 한시적인 모습을 대중 앞에 잠깐이나마 직접 제공하기 때문에 스타가 탄생한다”고 했다.
어쨌든 칸은 스타와 하나가 되어 그때마다 고유한 우상을 탄생시켰다. 어찌 보면 칸은 그 어떤 영화제보다 스타를 길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심지어 매우 의도적으로 스타의 존재를 영화제 전면에 부각시켰다.
프랑스 영화사를 잠시 돌이켜보면 칸이 의도적으로 스타라는 존재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유를 알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한 지 10년쯤 지난 1910년대 프랑스 영화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당시 연극을 주업으로 삼던 배우들이 영화 출연을 가끔씩 즐기는 나들이 정도로 여긴 탓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유명세를 타게 되면 출연료가 급등할 것이라고 판단한 영화사측에서 이들이 스타로 부각되는 통로 자체를 고의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 영화인들의 ‘절약 정신’은 할리우드에 영화산업의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당시 프랑스 영화인들은 스타라는 존재가 고도의 상업적 능력을 갖춘 산업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지나치게 고지식했다.
스타에 대한 프랑스 영화의 적대적인 태도는 191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스타 시스템을 도입해 최대한 활용한 할리우드와 대조적인 양상을 띤다. 한 예로 당시 프랑스 연극계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던 사라 베르나르의 세계적인 명성을 이용해 스타 시스템에 박차를 가한 사람은 아돌프 주커라는 젊은 미국인이다. 스타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했던 주커는 이후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설립해 1960년대까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 배경에는 스타의 이미지를 대중의 가슴 깊이 각인시키면서 생겨나는 시너지 효과가 자리잡고 있었다. 영화산업이 도박의 성질을 띤다는 사실, 매번 펼쳐지는 도박판의 클라이맥스를 드라마틱하게 조절하는 매혹적인 딜러가 바로 스타라는 사실을 주커는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오늘날 칸 영화제에서 스타의 존재에 주목하고 나아가 스타를 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런 교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둔했던 선배들과 달리 칸 영화제 관계자들은 스타의 존재가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런 인식은 칸이 다른 영화제에 견주어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스타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키워낸 원동력이 됐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칸에서는 스타 대신 ‘인기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얼마 후 칸에는 반전과 혁명으로 물든 격정의 1970년대가 밀려온다. 그리고 격정과 낭만이 조용히 물러난 1980년대 ‘이성의 공간’에서는 인기인이라는 순진하고 소박한 허울을 벗어던지고 ‘구매자 시장’의 총아로 변모한 스타들이 나타난다. 칸은 이런 변화에 맞춰 오랜 시간 고수해온 엘리트주의와 예술주의의 전반적인 경향을 뒤엎고 만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스타들을 적극 감싸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