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은 김을 매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살 것 같았다. 그 자세로 손에 닿는 풀을 뽑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쓰였다. 누구 보는 사람이 없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둘레를 살폈다. 멀리서 차 엔진 소리만 들려도 얼른 자세를 고쳐 쪼그리고 앉는다. 차가 지나가면 다시 무릎을 꿇는다. 앉은 자리의 풀을 뽑고는 앞으로 나아갈 때는 기어간다. 두 손으로는 땅을 짚고 개미처럼 긴다. 가끔 작은 돌멩이라도 바닥에 있으면 무릎이 아프지만 허리에는 좋은 자세다.
몇 해를 그렇게 하다 보니 바지의 무릎 자리가 자주 해어졌다. 그럼, 잘 됐다 싶어 재봉틀로 바지 무릎에 천을 덧댄다. 여러 겹으로. 그야말로 누더기다. 그러고 나서 땅바닥을 기어다니니 거지는 저리 가라다. 바지는 푸른색인데 광목으로 덧댄 곳은 누런색이다. 김매다 보면 무릎이 닿은 자리만 흙빛이 된다. 그래도 허리가 든든한 게 어딘가.
무릎 꿇고 김맨 지가 어느덧 세 해째인데 아직도 지나가는 사람이 볼까 마음이 쓰인다. 무릎을 꿇는 게 몸은 편한데 마음은 왜 불편한가. 남에게 피해 주는 일도 아닌데 왜 자꾸 눈치를 보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 날의 경험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 아마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교실에서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동무들 몇 명이랑 선생님 앞으로 불려나가 무릎을 꿇어야 했다. 물론 두 손도 들고 벌을 섰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선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들을 발가벗겨 운동장을 돌게 했다. 그때 모멸감이 내 뼛골 깊이 배었나 보다.
또 다른 기억 속에서 무릎을 꿇는 건 패배나 항복이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가끔 보았다. 대학 시절의 운동가요인 ‘훌라송’도 단단히 한몫했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훌라훌라. 같이 죽고 같이 산다 훌라훌라.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내 의식 깊숙한 곳에서 몸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무릎 꿇고 일한다는 건 내게 혁명에 가까운 사건이다. 억눌린 잠재의식을 치유하는 혁명이요,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마음이 열리는 또 다른 혁명의 시작이기도 하다. 농사 내내 풀 뽑을 일이 있으면 무릎을 꿇는다. 이제는 쪼그리고 김매는 건 5분도 못 견딘다.
한번은 한 방송작가가 취재차 와서, 이것저것 물어본 적이 있다.
“김맬 때 힘들지 않으세요?”
“무릎 꿇고 하니까 할 만합니다.”
그랬더니 그 작가는 당장 생각을 앞질러 내가 땅을 공경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나는 허리 편하자고 하는 자세일 뿐인데. 그런데 하다 보니 땅에서 느끼는 것이 많기는 많다. 우선 곡식이나 풀 그리고 벌레를 더 잘 알게 된다. 자세가 잘못되어 일이 힘들 때는 얼른 일을 끝내는 게 목표다. 김매는 풀이 무슨 풀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풀은 그 종류를 떠나 ‘처치해야 할 일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무릎을 꿇어 허리가 든든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똑같은 눈이지만 보이는 게 다르다. 풀도 알고 보니 풀마다 참 다르다. 한 해 농사가 끝나면 새로 이름을 아는 풀이 부쩍 늘어난다. 먹을 수 있는 풀을 먼저 알게 된다. 영하 20℃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푸르게 나는 풀을 볼 때는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곡식도 그렇다. 거두기만 하면 되지, 곡식의 꽃이 언제 어떻게 피는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콩꽃을 처음으로 보았다. 우거진 콩잎 사이 조그마한 보랏빛 꽃. 네가 콩꽃이구나! 모양이 자그마한 나비 같아 귀엽고 앙증맞다. 엎드린 바로 코앞에 꽃이 피어 있다. 그 꽃이 지고 꼬투리가 생기고 자라나는 과정이 동영상처럼 내 뇌리에 또렷이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