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 증류기와 소주 저장탱크.
무학소주는 마산시 봉암동에 본사가 있고 중리에 제2공장이 있다. 봉암동 공장문을 들어서니 지게차들이 분주하게 대형트럭 짐칸에 술 상자를 실어올리고 있었다. 지게차는 한 번에 1200병의 소주를 들어올리고, 5t 트럭 한 대엔 1만2000병의 소주가 실린다. 하루에 몇 병의 소주가 공장문을 나서냐고 물으니 70만병이란다. 하루에 70만병의 소주라, 실로 엄청난 양이다.
도대체 누가 그 많은 술을 마셔댈까 싶은데, 무학소주가 경남 소주시장의 90%가량을 장악하고 있다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마산시와 합작품 ‘가을국화’
무학소주 미래경영사업부의 박철우씨는 때마침 중리공장에서 약주인 국화주 ‘가을국화’가 처음 출시되는 날이라며 그쪽부터 안내했다.
대형 소주회사에서 국화주라? 그것도 약주라? 뜻밖이다. 소주를 만드는 대형 주류회사는 서울, 부산 그리고 8도에 한 개씩 해서 전국에 모두 10개가 있다. 그중 두산에서 ‘군주’를 만들고 금복주 계열사인 경주법주에서 ‘화랑’을 만들뿐, 약주는 대형 주류회사가 거들떠보지 않는 주종이다.
무학이 약주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은 ‘백세주’와 전통주가 넓혀온 약주시장이 이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리공장에서는 5월초 마산시민의 날을 앞두고 국화주를 시험 출시하는 중이었다. 흥미롭게도 무학은 마산시와 공동 출자해 국화주를 만들고 있었다. 마산시에서 17억원, 무학에서 17억원을 출자했다는 것. 대형 주류회사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합작은 매우 드문 일이다. 중리공장의 책임자 박중협씨의 설명이다.
“지난 3년 동안 네다섯 가지 발효주를 개발하기 위해 준비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산시가 마산의 특작물인 국화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국화주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지요. 국화주는 우리 조상들이 가을이면 즐겨 빚어 마시던 술이기도 하고, 지역기업으로서 지역산업에 보탬이 될 수 있겠다 싶어 흔쾌히 국화주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날 생산 예정된 국화주는 3만병. 소주 70만병에 견주면 미미한 숫자지만, 무학으로서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옥점조 상무는 “무학이 발효주를 만들었으니 비로소 종합주류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금빛 돌며 맑디 맑은 술
무학은 1929년 일본인이 세운 소화주류공업회사로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1965년에 지금의 회장 최위승씨가 기존의 양조장을 인수하면서 시작한 회사다. 1973년에 정부의 양조장 통폐합 조처 때에 경남의 36개 소주회사가 무학을 중심으로 통합,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그동안 무학의 주력 상품은 희석식 소주인 ‘화이트 소주’와 매실주인 ‘매실마을’이었다. 주정공장에서 구입한 주정(酒精·95% 에틸알코올)에 물을 타고 감미한 것이 ‘화이트 소주’이고, 매실을 침출시켜 만든 제품이 ‘매실마을’이다. 두 술 모두 발효시켜 빚은 게 아니다. 발효주는 ‘가을국화’가 처음이다. 주류회사 설립 40년 만에 알코올을 직접 생성해 빚은 발효주를 내놓았으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화주 ‘가을국화’는 찹쌀과 전분과 누룩과 감국을 재료로 쓴다. 찹쌀과 감국은 마산 농민이 생산한 것을 구매하기로 계약한 상태다. 박중협씨는 향을 맡아보라며 중국 감국과 마산 감국을 펼쳐보였다. 중국 감국은 빛깔이 탁하고 향도 흐릿한 데 반해 마산 감국은 향이 진하다.
알코올 13.5%의 국화주를 잔에 따르니 엷은 금빛이 도는 맑디맑은 술에 국화향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다. 말린 감국에서 느껴지는 은근하고 깊은 향에는 못 미치지만, 국화향은 충분히 느껴진다. 한 모금 마시니 혀에 신맛이 채이다가 차츰 입안에 쓴맛이 돈다. 목으로 넘기고 나서도 쓴맛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바로 국화의 쓴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