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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풍경에 찍은 마음의 무늬 ‘자전거 여행 1’ ‘자전거 여행 2’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풍경에 찍은 마음의 무늬 ‘자전거 여행 1’ ‘자전거 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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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내부 구조와 원림(園林) 내의 공간 배치는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지도 않고,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 대하지도 않는다. 정자들은 저 밖의 세계와 격절한 조선 선비들이 마음에 드리운 불우의 그림자들을 달래기 위해 지은 낙원이다. 불우한 자들이 끝끝내 낙원을 만드는 것은 지옥을 견디기 위함이다.”

김훈의 문장에서 만경강 일대의 갯벌, 안면도, 화개의 쌍계사, 부석사, 영일만, 안동의 하회마을, 섬진강 상류의 아름다움은 새롭게 피어난다. 이 땅의 변화 많은 사계 속에 표표하게 저만의 아름다움으로 깊어지는 산천초목, 강과 산의 경계, 소리와 색, 빛과 그늘, 다채로운 기상 조건들이 마음에 들어와 만드는 무늬들에 대한 매혹과 찬탄을 되새긴다. 그러나 국토 풍경을 새롭게 발견한 자의 감격과 찬탄은 문면(文面)으로 밀고 나오지 못한 채 문장의 이면에 억제된다. 이를 억제하는 것은 “말을 걸 수 없는 자연을 향해 기어이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에서 나오는 힘이다.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

2000년에 나온 ‘자전거 여행 1’은 자연과 그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로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때 순결하다. 작가의 시선은 한결같이 그 순결성의 안쪽으로 향한다. 또 숲과 산에 대한 찬탄은 여러 번 되풀이된다. 나무들은 저마다 “개별적 존재의 존엄”이며 그 나무들이 밀생(密生)을 이루는 입지가 곧 숲이다. 저마다의 존엄으로 당당한 나무들은 소멸과 신생의 모둠살이를 반복하지만,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숲이 사람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기 위해서는 사람 가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숲이 정서적 위안을 주는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사람 손길을 덜 타야 한다. 그것이 숲의 숙명이다. 수목의 신생으로 울울창창한 5월의 지리산 숲이나 온통 가을빛으로 타오르는 태백산맥 미천골의 단풍든 숲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몸의 안쪽에 포섭된 아름다움이다.



4년 뒤에 나온 ‘자전거 여행 2’는 김포평야, 일산 신도시, 중부전선, 경기만의 등대들, 남한산성, 광주 얼굴박물관, 모란시장, 수원 화성, 안성 돌미륵과 같은 인공구조물을 찾아가는 여로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자연을 끌어들여 스스로 그 입지를 자연화한다. 세월은 인공구조물의 태생적 본질인 인공의 흔적을 지우며 자연의 풍경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럼에도 ‘자전거 여행 1’과 ‘자전거 여행 2’의 어조에는 작은 차이가 드러난다. ‘자전거 여행 1’에서 풍경의 안쪽으로 스미며 풍경과 하나가 되려는 열망으로 뜨겁던 눈길은 ‘자전거 여행 2’에 와서는 풍경의 바깥에서 미끄러진다. 필자의 개인적 소회를 말하자면 ‘자전거 여행 1’을 읽는 게 전문적 인문 지리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자전거 여행 2’를 읽을 때보다 확실히 더 즐겁다.

비애와 허무가 꿈틀거리는 문장

김훈의 문장은 감각의 명증성에서 매우 선명한 생동감을, 직관에 의지한 명석한 인문학적 분석에서 깊이를 함께 얻는다. 또 김훈의 견결(堅決)하고 밀도 높은 한글 문장에는 언제나 몸 된 자의 비애와 허무가 하나의 본능으로 꿈틀거린다. 때로 그 비애와 허무는 오래 숙성된 젓갈과 같이 곰삭아서 질적 전환을 이루기도 하는데, 비애와 허무가 하나로 뭉뚱그려져서 ‘불우하다’는 계통이 불분명한 형용사를 낳는다.



김훈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옥죄는 추상적인 불우함을 강조할 때 그의 문장은 대개 도저한 탐미주의로 경사된다. 탐미주의는 김훈에게 일정 부분 체질이 된 영역이다. 김훈은 형상의 강성함과 꿋꿋함으로 우뚝 선 것들의 양명함보다 바스러지는 것, 사라지는 것, 죽는 것에 드리운 그늘에 더 마음을 빼앗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최소한도의 도덕적 분별이나 가치의 위계를 세우지 못하고 한없는 관용으로 끌어안는 것도 앎다운 것들에 내장된 불우한 운명을 향한 측은지심 때문이리라.

신동아 200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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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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