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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 사상사 최대 이단아의 사상편력 ‘이탁오 평전’

  • 글: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 sim1223@korea.ac.kr

중국 사상사 최대 이단아의 사상편력 ‘이탁오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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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상사 최대 이단아의 사상편력 ‘이탁오 평전’

‘이탁오 평전’<br>옌리에산, 주젠궈 지음/홍승직옮김/돌베개/592쪽/2만2000원

충남서산의 마애삼존불은 깔깔 웃고 있다. 한 손을 올려 중생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다른 한 손을 내려 중생의 소원을 받아주는 이 부처님은 얼굴 윤곽이 부드럽고 입술이 두툼하다. 오른쪽의 미륵보살은 고개를 틀고 잔잔한 웃음을 띠고 있다. 생각에서 깨어나 조금은 뚱한 표정이다. 왼쪽의 자그마한 보살은 요염한 웃음을 헤프게 흘린다. 삼존불은 깔깔 웃고 잔잔하게 웃고 요염하게 웃으면서, 호오의 구별도 없고 선악의 차별도 없이 중생에게 자신을 개방한다.

문득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탁오(李卓吾, 1527∼1602)가 떠올랐다. 이탁오는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일념(一念)의 본심이다. 사회의 견문이 동심을 오염하면 연극을 직접 보지 못한 채 군중에게 떠밀려 저 뒤쪽에서 버둥거리는 난쟁이(장애인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왜소한 자를 뜻함)가 되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남의 평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버리기 일쑤다.

이탁오는 ‘분서(焚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견문과 도리를 자기 마음으로 삼으면 말하는 것은 모두 견문과 도리가 하는 말이지, 동심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어찌 거짓 사람이 거짓 말을 하고 거짓 일을 하며 거짓 글을 쓰는 것이 아니랴. 사람이 거짓되면 거짓 아닌 것이 없다. 돌아가는 판이 온통 거짓뿐이지만, 뒤로 떠밀리는 난쟁이가 어찌 거짓임을 판별하랴.”

또 지불상원에서 공자상을 공양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감히 눈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 역시 그저 대중을 따를 뿐”이라고 스스로를 비판했다.



이탁오는 교조화한 주자학에 저항해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다. 그는 아예 이단이기를 자처하여 칼로 머리를 밀었고, 혹세무민의 이단자로 몰려 감옥에 갇히자 칼로 제 목을 땄다. 섬뜩하리만큼 자기 사상에 충실했던 인물이다. 이런 그의 사상편력을 중국의 옌리에산(焉烈山)과 주젠궈(朱健國)가 ‘중국제일사상범 : 이지전’으로 엮었다. 그 책을 순천향대 중문과 홍승직 교수가 ‘이탁오 평전’이란 제목으로 고쳐 번역했다. 옌리에산은 현재 중국 ‘남방일보’ 그룹 최고 편집위원이며 시사평론가다. 주젠궈는 문학 및 사회문화 평론가이자 수필가다.

유교에 대한 공개적 비판

이탁오는 1527년(가정 6년)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부 진장(晉江)현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지(贄)이고 탁오는 호다. 26세 때 거인(擧人)에 합격해 하급 관료생활을 하다가 54세 되던 해 관직을 그만뒀다. 이미 40세 때 왕양명의 학문을 접하고 심학(心學)에 몰두한 그는 62세 때 삭발하고 불교에 심취했다. 76세 때 예과 도급사중 장문달(張問達)의 탄핵을 받고 ‘혹세무민’의 죄로 투옥된 뒤 옥중에서 자살했다.

이탁오의 생애를 복원하기 위해 두 저자는 그의 편지글, 시문, 학술저서와 동시대인 및 후대인들이 그에 관해 쓴 편지글과 시문 저술을 소개하고 해설했다. 그리고 이탁오를 ‘봉건 전제에 반대한 투사이자 사상 해방의 선구자’로 부각시켰다. 그래서 이탁오의 사상이 지닌 반체제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원 자료들을 많이 제시했기 때문에 ‘이탁오 평전’을 읽는 것만으로 이미 이탁오 저술의 상당량을 읽는 것이 된다.

중국은 20세기 초 일어난 ‘5·4 신문화 운동’을 계기로 이탁오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간 이탁오는 봉건사상을 철저하게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평전은 이탁오가 봉건체제를 근본적으로 반대한 ‘유교 반도(叛徒)’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문화의 전제를 반대한 사상 해방의 선구자였다고 밝힌다.

이탁오는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고 자아비판을 한 후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에 대해 갖가지 저술을 통해 비판했다.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조차 공자는커녕 주희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탁오의 사상은 급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예견하고 자신의 책을 ‘분서’ 곧 ‘태워버려야 할 책’이라고 이름짓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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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 sim122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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