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되는 국민의 대표는 아닌 것 같다. ‘대권(大權)’이라는 말부터 마치 왕조시대의 ‘나랏님’을 연상케 한다. 이런 심리는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새 대통령의 생가가 성지(聖地)처럼 국민 관광지가 된다.
대통령제의 원조라는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 생가에 도서관을 만들어 기념관으로 삼은 경우는 있지만, 임기가 시작되는 대통령의 생가를 성지처럼 다루지는 않는다. 이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된 사람의 조상 묘가 어디이고, 어떤 명당인지가 관심사가 되는 나라에서 무엇을 더 이야기하랴.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우리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자마자 마치 폐위된 왕처럼 된다는 것. 이런 현상은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 또는 정치 지도자를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엇갈린 심리에 기인한다.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는 ‘지지도’ 또는 ‘인기’라는 현상으로 표현된다. 대중정치에서 지지도나 인기는 정치 지도자의 능력의 지표처럼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는 바로 이런 이미지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최근의 예로 2004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가장 호감이 가는 차기 대권주자’에 관한 조사결과를 들어보자. 그 결과를 보면 정치활동을 접은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한 지지도와 선호도가 가장 높다.
‘고건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기대욕구가 달라진 것으로 해석한다. 젊음과 패기보다 중용(中庸)과 경륜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 이와 달리 ‘고건 현상’은 현재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단기적인 반영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의 대통령 이미지가 달라진다면 고건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다양한 분석과 평가는 고 전 총리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현재의 대통령이 갖지 못한 또는 보여주지 못한 이미지에 대한 반사 작용(보완됐으면 하는 기대)이다.
무엇이 실체이고, 이미지인가
이미지와 실체, 이 구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의 정치 지도자를 파악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무엇이 이미지이고, 무엇이 실체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연세대 ‘인간발달 소비자 광고심리 연구실 연구팀’은 지난 수년 동안 다양한 자료 탐색과 대통령에 대한 일반인의 표현 분석을 통해 한국인이 지닌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나라의 아버지이던 사람, 구국의 영웅이라고 자처하던 사람, 스스로 보통 사람이라고 한 대통령, 개혁을 주장하던 사람, 국민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사람, 국민 참여 대통령…. 이런 이미지가 바로 한국인이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