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물탐구

‘튀는 법관’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

“판사는 민주주의 수호자 아닌 법치주의 실현자,‘법대로!’만 외쳐도 세상이 바뀝니다”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튀는 법관’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

2/8
숨죽이던 소수자가 환호한 한편에서 반작용도 대단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청산가리가 배달됐고, 심지어 이 판사 개인을 겨냥한 시위대까지 조직됐다. 법조계와 학계 일부에서는 그의 판결을 놓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극단적 옹호’라는 심층적 코드를 읽어냈지만, 대세는 여전히 ‘튀기 좋아하는 이상한 판사’다.

법조계의 보수적인 시각이 반영된 탓인지 내기골프 사건 직후 그는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그 열정을 합의와 조정에 쏟으라”는 권고를 받고 민사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세파에 지친 때문일까. 그는 오는 7월 1년간 휴직계를 내고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미국 연수를 떠나는 아내(서울남부지법 이수영 판사)의 내조자를 자처하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는 엄청난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다. 그 심판의 근거에 대한 해석이 아집이나 독선이 아닌 논리와 담론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면서 인터뷰를 청했다.

6월4일 토요일, 서울 목동에 자리잡은 남부지법. 그는 이날 점심식사를 서강대 동문회관에서 열리는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서 해결할 예정이었다. 그와 구면인 기자는 자연스레 그의 일정에 동행할 수 있었다.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목동과 여의도, 그리고 마포로 이어진 오밀조밀한 서울의 서쪽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내기인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마포에서 태어나 마포중·광성고를 거쳐 1987년 서울대 법대 입학. 현재 목동에 거주하는 부부판사. 한마디로 모범생의 길을 걸었을 법한 서울깍쟁이의 이력이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남보다 잔머리가 좋았을 뿐이죠.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선생님 출신 어머니 덕분인지도 몰라요.”



-겉보기엔 딱 모범생 스타일인데…. ‘대한민국 판사’라는 말에는 체제순응적인 이미지가 배어 있잖아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그렇죠. 그래도 범생이는 아니었죠. 중·고교 시절 1등과 반장을 도맡긴 했지만, 친구들과 사고도 많이 치고 많이 ‘개기면서’ 살았어요.”

‘잔머리’ ‘개기다’…. 그의 입에서 기대와는 딴판인 걸쭉한 비속어가 속사포처럼 튀어나온다. 권위적인 판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유형임엔 틀림없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입이 거친 이유는 범생 이미지를 벗기 위한 의식적인 도발이다. 그렇긴 해도 그의 청소년기에는 유약한 모범생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전두환 체포 결사대로 활동

-법대에 진학한 계기부터 들어보죠.
“어릴 적에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이후에는 식민사관을 뛰어넘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민족적 자긍심에 고취된 애국·애족주의자였죠. 그런데 학력고사 성적이 너무 좋았어요(웃음). 전국 219등. 아버지의 서울대에 대한 집착과 ‘후진국에선 공무원이 최고’라는 권유가 큰 영향을 끼쳤죠. 나름대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과 권력의지, 그리고 정의에 대한 꿈도 있었고….”

-1980년대 중반에 고등학생이 품은 권력에 대한 욕구는 뭡니까.
“고2 때(1985)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사고체계가 흔들렸어요. 전교조의 모태가 된 단체가 발행하는 잡지였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돌려본 것이 문제가 됐죠. 충격에 빠진 선생님은 ‘이게 맞긴 한데, 절대 이런 세상은 안 올 테니 관심을 끄라’고 했지만, 학생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정학당할 위기에 몰렸어요. 그런데 학교는 ‘서울 법대 갈 놈을 정학시킬 수는 없다’고 결정했죠. 한번은 친구들과 술 먹다가 학생부에 끌려간 적이 있는데, 학생주임이 ‘술 먹고 서울대 가는 놈 못 봤다’고 경멸하면서 전원 훈방(?)했어요. 그것도 ‘전교 1등’이기 때문이었겠죠. 속으로는 ‘제기랄 서울대 가면 될 것 아냐’ 하는 오기와 함께 ‘권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980년대에 집 근처인 신촌에서 시국사건을 자주 접했을 텐데 어떤 관점에서 바라봤습니까.
“한마디로 민족과 정의의 관점에서 한번 제대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저렇게 데모나 해서 세상이 바뀔까 하는 의문도 품었고요. 당시만 해도 정권이 큰 잘못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때였으니까요.”

2/8
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목록 닫기

‘튀는 법관’ 이정렬 서울남부지법 판사

댓글 창 닫기

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