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을 숙성 중인 옹기항아리. ‘화요’는 옹기항아리에서 3개월 간 숙성시켜 만든다.
술병을 들어 상표를 보니 ‘순미주(純米酒)’와 ‘소(燒)’자가 적혀 있었다. 알코올 함량 25%의 증류식 소주(소주는 크게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구분한다. 희석식 소주는 연속 증류하여 만든 주정(酒精, 95% 순도의 에틸알코올)에 물을 희석해 도수를 조절하고 감미한 것으로 ‘진로소주’ ‘산소주’ ‘참소주’ ‘잎새주’ 따위가 대표적이다. 증류식 소주는 한 차례 단식 증류해 원료향이 그대로 스며 있는 소주로 ‘안동소주’ ‘문배주’ ‘진도홍주’가 대표적이다)였다. 희석식 소주가 석권한 한국 땅에서 증류식 소주라니⑦ 맹랑했다. 그것도 여주와 이천 쌀을 원료로 한다고 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술 이름은 ‘소(燒)’가 아니라, 소(燒)자를 둘로 쪼갠 ‘화요(火堯)’다. 지난 설 무렵에 출시됐다니 신참내기 술인 셈이다. 좀 연륜을 더해 시장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겠다 싶을 때 맛을 평해보자는 생각에 지나치려는데, ‘광주요(廣州窯)’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광주요는 한국도자기, 행남자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도자기업체 중 하나다. 도자기 회사에서 술을 만들다니! 이 또한 맹랑한 일이다. 우리 주류업계엔 이런 이력을 지닌 곳이 아직 없다. 아마 도자기를 만들다가 그 안에 내용물을 채우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 일 아닌가.
어찌 됐든 우리 현실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술을, 그것도 하필 도수 높은 소주를 만든 것일까. 그 의문은 더욱 깊어갔고, 결국 ‘신참내기 술’을 찾아 나서게 했다.
화요 공장은 경기도 여주군에, 본사는 서울 삼성동 광주요 빌딩에 있다. 대표는 문상목씨다. 그는 진로소주의 일본 창구인 진로재팬 초대 사장을 했고, 카스맥주 사장을 지낸 전문경영인이다. 그에게 화요가 태어난 배경과 과정에 대해 직접 들었다.
-언제 시작한 겁니까.
“2003년 말에 회사를 설립해서 2004년에 공장을 짓고, 2005년 1월에 41도, 3월에 25도 쌀소주를 냈습니다.”
-웰빙 바람에 저도주가 강세인데 왜 처음부터 도수 높고 값도 비싼 증류식 소주를 만들었습니까
“비즈니스 차원보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시작한 사업입니다. 한국 술의 정통성은 소주에 있다고 봤습니다. 전통적으로 소주는 청주, 약주, 막걸리에서 업그레이드된 술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요. 그동안 몇몇 회사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소비자 대부분이 희석식 소주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중 15% 정도는 ‘뭔가 부족하지 않냐’ ‘좀더 업그레이드된 게 없냐’는 불만을 나타내왔습니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시작했죠.”
-증류식 소주에도 향긋한 보리 소주, 수수로 만든 고량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구마 소주 해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왜 굳이 쌀 소주입니까.
“우리 식문화의 기본이 쌀이고, 전통적으로 고급이라고 여기는 곡식이 쌀입니다. 막걸리나 약주도 쌀로 만든 것을 고급으로 치잖아요. 그래서 역시 출발은 우리 국민이 익숙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쌀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인은 새로운 술에 대해 호기심보다 거부감이 강한 편인데요.
“과거 새롭게 출시된 술들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술이 나와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희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광주요는 보통 고집으로 키운 회사가 아닙니다. 40여 년 동안 사막에 물 붓듯이 브랜드를 키워왔습니다. 장인정신이 있습니다. 명품 술이 나오려면 장인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하루아침에 평가받으려 욕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좋은 품질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