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붕 막바지 작업.패널 강판만 씌우면 시간에서 자유다.
그러다가 지난해 큰아이 자연(18)이가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더니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달리 자연이가 집을 원하니 내 마음이 순식간에 돌아섰다. 살림집을 작게 지으면서 ‘아이들이 크면 그때 가서 또 짓자’고 했는데 벌써 때가 온 것인가. 아래채 짓기가 갑자기 설렘으로 다가온다. 자연이가 어느 새 많이 크기는 컸나 보다. 부모로부터 조금씩 독립을 준비하려나!
그렇다고 그냥 지어줄 수는 없다. 이를 아이들 산교육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집을 지을 힘이 생긴다면 많은 게 해결되지 않을까. 우선 내가 편하고 좋을 것이다. 이 다음에 아이들이 독립하더라도 아이들 집 마련하느라 내 허리가 휠 일은 없을 테니까. 아이들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다면 자신감도 커지리라.
집 짓는 기술을 가르쳐주마!
게다가 시골집은 살다가 장마나 태풍으로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집집마다 집 주인의 개성이 달라 다른 사람을 부르기가 쉽지 않다. 마음 고생, 돈 고생이 많다. 그러니 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하면서 집을 알아두면 살면서 집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연이에게 조건을 달았다.
“남들처럼 아파트는 못 사줘도 집 짓는 기술은 가르쳐줄 테니까 ‘집 짓기 공부’로 한다면 좋겠다.”
자연이는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식구회의를 했다.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나는 농사 틈틈이 하되 집 짓기의 큰 흐름을 잡아가기로, 자연이는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집 짓는 과정에서 겪는 일을 일기로 기록하기로 합의했다. 자연이는 자연이대로, 나는 나대로 일기를 쓰기로 했다. 무위(11)는 아직 어리니 그때그때 놀이삼아 하고 싶은 일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한테 내 품값으로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설계는 간단했다. 한 칸은 자연이 방으로 구들방, 또 한 칸은 사무실 겸 손님맞이 마루방. 다 합해야 6평 남짓이다. 하지만 공사 일정은 여유 있게 1년을 잡았다. 3월에 시작해 장마 전에 지붕을 씌우고, 벽체는 여름에 비올 때나 무더운 날, 구들은 가을에 놓아 겨울이 오기 전에 입주 예정. 겨울에는 마루방 마루 놓기와 툇마루 놓기.
“식구가 함께 하는 집 짓기예요!”
내가 집을 전문으로 짓는 목수는 아니지만 믿는 구석은 있다. 몇 해 전에 우리집을 여러 사람이랑 지어보았다. 뒷간과 광을 혼자 지으면서 집 짓기의 큰 줄기에 대해서 감은 잡고 있었다. 정농회 큰어른이신 김영원 선생은 “손수 집 짓기는 세 가지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수평과 수직을 볼 줄 알고, 벽이 지붕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만 고려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집을 짓기로 하니 마음이 바쁘다. 식구들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나는 결정하고 판단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을 몇 번 지어본 목수들도 고민하는데 하물며 선목수니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꿈도 야무지게 자연이에게 집 짓기를 가르치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제대로 알아도 남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늘, 이래저래 공부해야 했다.
우선 책부터 보았다. 전에 보던 책들은 주로 심벽집(집의 뼈대인 기둥과 도리, 보를 나무로 짜 맞추고 벽을 흙으로 채우는 방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 사는 살림집을 심벽집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채까지 심벽집으로 짓고 싶지 않았다.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쉽게 지을 수 있고,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며, 내 자신에게도 공부가 되는 집, 그게 뭘까.
집 짓기 책을 구해 읽어보니 귀틀집(나무를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쌓아가는 우리나라 전통 통나무집)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한번은 지어보고 싶은 집이었다. 귀틀집을 다룬 책을 알아보니 ‘흙과 통나무로 짓는 생태건축’이 있었다. 공정 하나 잘못 판단하면 몇십만원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집 짓기다. 당장 책을 샀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집과 관련된 책을 잔뜩 빌렸다. 인터넷 카페에도 두 군데 가입해 정보를 수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