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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부국장 sun@donga.com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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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마 교수가 직접 만든 ‘러시안수프’를 친구와 제자들의 그릇에 담아주고 있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보면 ‘러시안수프’가 자주 나오는데 보통 ‘배춧국’이라고 번역하더군요.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야채수프와는 달라요. 원래 러시아 농민은 고기를 안 넣었지만 고기가 좀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가난한 대학시절에는 고기가 비싸서 시레이션(미군 전투식량)으로 대용하기도 했죠. 집에 한솥 끓여놓고, 출출할 때 빵을 적셔 먹거나 밥을 말아 먹으면 좋아요. 만들기도 쉽고, 맛도 그만이죠.”

음식의 중심재료는 채소와 고기다. 먼저 양배추와 브로콜리, 셀러리, 당근, 양파, 피망, 감자 따위를 잘 씻은 후 적당한 크기로 썬다. 센 불에 푹 익히기 때문에 너무 잘게 썰지 않고 ‘숭덩숭덩’ 자른다. 고기도 마찬가지. 고기는 쇠고기 양지머리 부위가 적당하다.

그 다음 냄비에 채소와 고기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버터로 볶는데, 이때 버터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버터가 음식 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채소와 고기가 적당히 볶아졌으면, 냄비에 담긴 재료가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감자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푹 끓인다.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본 다음, 케첩이나 잘 익은 빨간 토마토를 넣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이때 브라운소스가루(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를 넣으면 수프가 걸쭉해지는데, 마 교수는 요즘 넣지 않는다. 그래야 맛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먹어보니 양배추 등 채소에서 우러나온 단맛과 버터의 고소한 맛 고기의 육수가 어우러진 맛은 환상적이다. 여기에 빵과 밥을 더하면 그 나름의 맛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사람은 먹는 만큼 배설욕구를 느낀다. 배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섹스를 통한 배설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마 교수는 아내와 이혼한 1990년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배설’을 하지 못했다”는 게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의 전언이다.

마 교수에게 글은 성적 욕구불만의 배출구다. 그가 진정 쓰고 싶어 하는 글은 ‘혼음’처럼 일탈을 소재로 한 무라카미 류의 소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없다. 또다시 들이댈 검열과 윤리적 비판의 칼날이 두렵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의 원뜻은 ‘설사’입니다. 배설이나 같은 뜻이죠. 우리는 그걸 ‘정화’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에게 글은 카타르시스고, 문학은 설사이자 배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원하게 배설하지 못하고 있어요. 무서워서.”
작가  마광수 러시안수프

예수가 말했다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은 좀 이상해.
성의 억압이나 도덕적 테러리즘이 모두 ‘진리’의 이름으로 행해졌지.
이젠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가 돼야 해.
어쩌면 진리 자체가 없는 건지도 몰라. 이렇게 고치는 게 좋겠군.
“자유가 너희를 진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리라.”

-마광수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의 서시 중-






신동아 200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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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부국장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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