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중국의 매개역할도 두드러졌다.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전력(電力) 200만kW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중대 제안’으로 4차 회담의 물꼬를 튼 한국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수시로 오가며 접점 찾기에 분주했고, 중국 역시 연거푸 합의문 초안을 내놓는 등 의장국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합의는 또다시 뒤로 미뤄졌다. 북한이 들고 나온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견해 차가 끝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칙적인 합의는 가능할 것”
이제까지 진행된 회담의 내용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린다. 긍정적인 시각은 북·미간에 처음으로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진 것에 의미를 둔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던 완고한 자세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의미 있는 출발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은 북한의 주장에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겉으로는 전에 없이 적극적인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 협상에서는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내세워 타결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4차 6자회담은 과연 북한 핵 문제가 해결의 궤도로 들어서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낙관과 비관의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금 상황에서, 어느 일방의 견해만을 내세우기란 그동안 북핵 문제를 추적해온 전문가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승주 고려대 교수를 인터뷰 대상자로 지목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1차 핵 위기 때 외무장관으로서 한국의 핵 외교를 진두지휘했고,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 의혹으로 불거진 2차 핵 위기 후에는 주미 대사로서 대미(對美) 창구 구실을 한 한 교수는 현 상황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분석해줄 적임자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8월12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북한 핵문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주된 업무인 저는 독자들이 매일 신문지면을 통해 보도되는 핵 관련 상황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신동아’처럼 긴 기사를 쓰는 매체에서 복잡한 사안의 핵심과 맥락을 짚어주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학자로서 외교 일선의 경험을 겸비한 한 교수의 말씀은 북핵 문제를 올바로 바라보는 데 유익한 척도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먼저 4차 6자회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알다시피 이번 회의가 1년여 만에 열렸는데 그동안 북한은 여러 이유를 들어 시간을 끌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사이에 북한은 나름대로 핵 능력도 키우고, 또 2월10일 핵 보유 선언까지 했으니까 시간을 활용한 셈이고, 그래서 이제는 ‘회의에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겠지요. ‘북한이 왜 이 시점에 회담에 나왔느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더는 시간을 끌기도 어렵고, 미국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으로 봅니다. 또 회담에 응함으로써 남측으로부터 식량 및 비료 지원을 받아낼 수 있고, 북한에 대한 높아지는 외부비판을 면해보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