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에 나온 테이프에서 자와히리는 이집트의 친미(親美) 무바라크 독재체제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그 바로 한 달 뒤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그런 까닭에 8월초에 나온 비디오테이프는 그 나름의 폭발력을 지닌다. 미영 양국은 주요 시설물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적어도 겉으론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부시는 “자와히리의 위협은 이라크전쟁이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임을 분명히 해준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침공이 과연 테러와의 전쟁이냐 아니냐는 논란거리다.
이와 관련, 런던 테러 뒤 달라진 점 하나. 부시 행정부와 블레어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표현 대신 ‘전세계 극단주의와의 투쟁(struggle against global extremism)’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테러전쟁이란 용어가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므로 범위가 좁아 현실을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8월 들어 블레어 총리는 새로운 테러 방지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일부 무슬림 극단론자(과격파)들을 영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의 전투적 무슬림과 연합전선
영국 정보기관 MI5는 런던 테러에 알 카에다가 관련됐는지를 캐내려 했다. 현재까지 내려진 잠정 결론은 “알 카에다를 비롯한 여러 저항조직과 (반미라는 잣대로 보면) 이념적으로는 서로 일치하지만, 직접적인 연결을 갖진 않았다”는 것. 런던 테러는 반미(反美)-반영(反英) 지하드라는 이념적 공감대를 지닌 몇몇 무슬림 청년이 한 짓으로 여겨진다.
현재 알 카에다 조직은 잠행 중이다. 아프간 근거지는 없어졌고, 주요 간부들이 죽거나 체포돼 갇힌 상황이다. 빈 라덴과 2인자인 자와히리는 잠행하느라 활동다운 활동을 펴기 어렵다. 생존이 1차적 과제이지만, 그래도 알 카에다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은 대단히 크다. 반미 글로벌 지하드의 이념적 중심축으로서 ‘알 카에다주의’는 여전히 큰 힘을 갖는다.
그렇다면 자와히리는 테이프를 통해 무엇을 노린 것일까. 빈 라덴과 자와히리는 미디어 전쟁의 중요성을 훤히 꿰고 있는 인물들이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은 런던 테러를 알 카에다가 다시 한번 그 지도력을 전세계 동조자들에게 각인시키고 “투쟁을 계속하라!”는 지침을 내린 미디어 선전전으로 이해한다. 알 카에다의 직계조직은 거의 궤멸됐지만, 빈 라덴은 지금도 ‘지하드 닷컴(jihad.com)’의 회장이다. 결국 자와히리의 테이프는 빈 라덴의 존재를 전세계 추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전투적 이슬람 조직의 장기적 목표는 이슬람 신성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집트의 무바라크 같은 세속적인(이슬람 종교의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는) 친미 독재자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부패한 친미 왕조를 권좌에서 쫓아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히 빈 라덴의 전략적 공격목표다. 친미 노선을 걷는 사우디 왕조가 석유자원으로 생겨나는 부(富)를 미국 기업들과 함께 독식하면서 아랍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동 땅에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것도 장기적 목표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