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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도청 녹취록

권 전 고문, “내가 한 말과 똑같다…충격이다”

  • 신동아 특별취재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도청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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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 의원도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결심하기에 앞서 2002년 1월30일 권 전 고문의 지원을 얻기 위해 회동을 했지만 그 결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당 대표 경선, 원내총무 경선 등에 출마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2002년 1월말에는 “경선을 준비하는 민주당 중진들이 권 전 고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는 이훈평 당시 의원의 인터뷰 기사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정풍운동을 주도한 민주당 소장파와 권 전 고문과의 대립이 계속되던 때였다. 2002년 1월29일 정동영 의원은 TV 토론에 나가 권 전 고문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녹취록에서 권 전 고문은 ‘영남후보론’과 관련, “허주하고 자민련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났는데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영남후보를 위해 비워달래. 바로 박근혜지, 박근혜”라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박근혜 의원을 여권 대선후보로 만들려는 김윤환 당시 민국당 대표의 구상이 권 전 고문에게도 전달됐다는 얘기다. 하루 전인 2002년 2월1일 박 의원은 ‘한나라당 탈당’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탈당할 거야”



그러나 녹취록에 따르면 권 전 고문은 “정계개편 안 돼”라며 김윤환 당시 대표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자꾸 질 거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자신 있어. 기다려보면 이인제가 뜰 거야”라며 이인제 의원을 민주당 후보로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권 전 고문은 자신을 일선에서 후퇴시킨 소장파에 대해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녹취록에 따르면 권 전 고문은 대통령을 찾아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동영이 등에 대해 다 말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이후 권 전 고문은 정동영 장관 등 쇄신파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며 반박하는 인터뷰를 몇차례 했다. 이런 권 전 고문의 주장에 대해 정 장관은 언론인터뷰에서 “나는 떳떳하다. 언제까지 3탕, 4탕, 5탕 할거냐”고 밝혔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권 전 고문은 참석자들에게 “대통령이 계기가 있으면 탈당할 거야. 기다려봐. 좋은 계기가 있겠지”라고도 했다. 그가 이 말을 한 지 3개월 뒤인 5월6일 김대중 대통령은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의 중립적 관리를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했다.

권 전 고문은 사흘 전인 2002년 1월30일 한화갑 민주당 의원과 만난 일화도 얘기했다. 그는 “이번에 화갑이한테 ‘양갑(兩甲)이라는 말 좀 안나오게 잘 좀 하그라’라고 얘기했고, 화갑이가 ‘알았소’ 했어”라고 말했다. 이어 권 전 고문은 “이제부터는 모든 걸 상의하기로 했으니까”라며 당내 경선을 앞두고 동교동계 두 좌장 사이에 교감을 형성할 뜻도 내비쳤다.

2000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는 자신이 지역별로 안배했다고 말했다. “정대철-김근태(서울), 이인제-안동선(충청), 한화갑-박상천(호남), 김중권-김기재(영남) 이런 식으로 말이지.” 이어 다가오는 민주당 대표 경선과 관련, “이번에는 그런데 호남에 너무 사람이 몰려서 큰일이야”라고 말했다.

도청당한 지 3개월 뒤 구속돼

2000년 4월 제16대 총선 및 2000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과 관련해서는 “내가 정말 도와준 사람들이 많아. 다 도와줬어. 돈도 주고”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김OO는 연신 나한테 와서 ‘형님 살려주쇼’했고. 정대철이도 안 나간다는 걸 ‘내가 다해줄게’ 하고 나가게 했고”라고 말했다.

권 전 고문은 “김근태가 2000만원 받았다고 했다며? 맞아. 2000만원 줬어”라는 말도 했다. 김근태 의원이 2000년 최고위원 경선 때 권 전 고문으로부터 경선자금 2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권 전 고문의 이날 발언 한달 뒤인 2002년 3월3일 김 의원이 이를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자리가 끝날때쯤 권 전 고문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분명히 역할을 하겠다”고 말해 여권 내 차기 대권구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상의 도청 녹취록에 담긴 권 전 고문의 발언들은 당시로선 ‘정보가치’가 매우 높은 내용이었다.

녹취록을 검토한 뒤 권 전 고문은 “2002년 2월2일 내가 한 발언이 어떻게 하나도 빠짐없이 녹취되어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정기관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을 수 있느냐”며 허탈해했다.

권 전 고문은 도청 당한 지 3개월 뒤인 5월4일 검찰에 의해 구속 수감됐다.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씨로부터 청탁 대가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그가 구속된 데는 국가정보원 김은성 전 차장의 증언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권 전 고문은 구속 직후 “억울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막강한 실세이던 권 전 고문은 ‘도청 대상’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비리 혐의를 뒤집어썼고 그가 ‘자신 있게’ 밀던 이인제 의원도 경선에서 낙선해 권 전 고문의 세력은 대선 정국에서 완전히 와해된 것이다.

이후 대법원은 “권 전 고문이 5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권 전 고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권노갑 전 고문에 대한 도청은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고위 관계자 간의 대화 도청 사건보다 훨씬 후의 일이다. 도청 대상자도 다름 아닌 당대 권력의 최고 실세였다. 또한 도청 내용은 현재의 여·야 정치권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도청 시점도 민주당 경선 대이변과 박근혜 탈당을 눈앞에 둔, 정치권이 요동치며 끓어오르던 2002년 대선정국 태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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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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