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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동북아 구도

‘協中 用日 容韓 交北’으로 다자안보협력 틀 꿈꾼다

  •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국제관계연구센터장 joseon@riia.re.kr

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동북아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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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대사를 동아태 차관보로 승진시키면서 6자회담 미국측 대표로 임명한 라이스 장관은, 뒤이어 거물급 외교관인 알렉산더 버슈보를 공석 중인 주한 미대사에 임명함으로써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 재편작업에 의지를 보였다. 버슈보 대사는 나토와 러시아대사를 역임했으며, 미 국무부 소련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과정, 즉 동서 냉전구조의 해체를 직접 지켜보고 관리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對테러 전쟁’에서 ‘민주주의 확산’으로

이상의 ‘선수명단’은 힐 차관보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동북아 전략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구상은 아직 공식문서로 작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2기 부시 행정부의 변화된 대외전략과 4차 6자회담 과정에서 드러난 구상의 일단, ‘공동성명’의 내용 등을 추적하면 대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를 맞아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외교 독트린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무렵 라이스 장관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지목하며 새로운 독트린을 북한에 적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2기를 맞이한 부시 행정부가 1기 때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점차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전략 중점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였다.

‘테러와의 전쟁(GWOT·Global War on Terror)’이 단기적이고 전술적이며 군사적인 대처방법이라면, ‘폭력적 극단주의 대처전략(SAVE·Strategy Against Violent Extremism)’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전략은 장기적이고 전략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처방이다. 이러한 전략 수정의 배경은 무엇일가. 우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에서 무력사용의 한계를 겪었다는 점이다. 전쟁 수행과정에 유럽을 포함한 국제적인 지지와 도움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기존 동맹관계가 약화되는 부작용이 있었음을 일정부분 반성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지역에 한정해서 살펴보면, 1기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 전략은 전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과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Global Posture Review)으로 요약된다. 그 위에서 우선 한미 및 미일동맹 재조정 작업을 마친 뒤 쌍무동맹을 연결해 ‘한·중·일 3자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동맹 재편을 추진하는 형식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남북한 관계의 급진전과 한중관계의 긴밀화, 과거사 및 영토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한중 양국의 갈등양상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1기 부시 행정부의 정책으로는 역내(域內) 주도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2기 부시 행정부는 한미 및 미일 쌍무동맹을 바탕으로 하면서 여기에 덧붙여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틀’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2기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흐트러진 동맹관계를 재정비하며 악화된 한일관계를 되돌려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중국과 협력해 북한체제의 변환(regime transformation)을 촉진하고 동북아 다자안보틀을 형성하는 등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는 모습도 보인다.

동북아 전략변화의 구체적인 조짐이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해 7월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때 라이스 보좌관은 중국 당국자들과 미중 관계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 대만 문제 등을 폭넓게 협의했다. 그러나 당시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再選)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였고, 부시가 재선되더라도 라이스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될지 확실치 않았던 까닭에 이러한 협의내용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기용된 이후, 특히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등을 통해 전략변화의 조짐이 드러난 이후인 2005년 3월 라이스 장관의 중국 방문과 8월 졸릭 부장관의 중국 방문은 그 무게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2단계 4차 6자회담이 있기 수일 전, 부시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9월13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견제를 막고 미중 양국의 고위층 교류와 각종 전략대화 개최를 제안했다.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뿐 아니라 대만 문제에 관해서도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외정책과 관련해 2기 행정부가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고려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미국은 현실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이 가진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1996년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을 통해 ‘글로벌 파트너십’을 선언한 바 있지만, 미국은 한반도 문제나 동북아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대화 상대로 일본이 아닌 중국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미일동맹을 강화하겠지만 이는 대중 포위망 구축이나 지역 차원에서 패권의 대행자 역할로 활용한다는 것이지, 전략 차원에서 미국이 중국과 일본을 대등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미 국방부의 생각도 같다. 2003년 4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펜타곤 내에 회람시킨 ‘북한 정권교체 메모’ 내용 가운데 “중국과 협의를 통해”라는 대목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미국은 이미 이때부터 한반도 미래에 관해 중국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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