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시대의 유럽 전쟁을 비롯해 19세기만 해도 전쟁 희생자의 90%는 군인이었다. 오늘날 현대전의 희생자 절대 다수는 비전투원인 민간인이다. 후방과 전방이 따로 없는 데다 공습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고 다친다. 분쟁 연구가인 댄 스미스(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가 펴낸 ‘전쟁과 평화 상황 지도’(1997)에 따르면, 1990년대 전반기에만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550만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75%가 비전투원이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과 어린이다. 전쟁이란 폭력적 상황은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과 어린이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전쟁의 혼란 속에서 성폭력에 희생당하는 일이 잦다. 그래서 전쟁 속의 여성은 ‘피해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1999년 국제적십자사는 제네바협정(1949) 체결 50주년을 맞아 ‘전쟁 중인 사람들’이란 제목의 특별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14개국에 걸쳐 2만명을 상대로 그들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조사했다. 그 가운데 12개국은 설문조사 당시 유혈충돌이 빚어지고 있던 국가였다. 이 조사를 통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여성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왔는지 다시금 확인됐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의 40%는 가족과 헤어져 괴로워한 경험이 있으며, 32%는 본인의 뜻과 달리 살던 집에서 쫓겨나 피란을 갔으며, 9%는 주변 사람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9%는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무장세력에게 얻어맞거나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소말리아는 응답자의 39%,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6%의 응답자가 주변의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당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전쟁이란 광풍에 휘말린 여성의 이미지는 ‘피해자’ 쪽이다.
현대전에서의 여성
과학기술의 진보는 더욱 가볍고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들을 만들어냈고, 여성이라도 그런 무기들을 쉽게 다룰 수 있게 됐다. 여성도 가해자로 나설 수 있는 것이 현대전이다. 전쟁에서 여성은 이제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허약한 존재가 아니다. 여성의 전투행위 참여는 성능이 개량된 소형 무기들이 널리 보급되면서 크게 늘어났다(소년병 숫자가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래서 전쟁에서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관념은 점차 바뀌고 있다.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지, 여자들이 끼어들 일은 아니다.”
미국 남북전쟁(1860∼64)을 무대로 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대사다. 국가가 지닌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총력전인 현대전에선 위의 대사가 이렇게 바뀐다.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지만, 여자들도 한몫 한다.”
더구나 현대전은 후방과 전선의 개념도 무너뜨렸다. 미사일이 날고 전폭기가 뜨는 공습 전술로 후방도 언제든 전선이 될 수 있다. 여성이 후방에서 뜨개질이나 하면서 안전하게 지내던 시대는 갔다.
‘가해자’ 이미지의 여군
현재 이라크엔 1만1000명의 미 여군이 근무 중이다. 전체 미 여군 13만9000명 가운데 8%가 이라크에 가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적어도 37명의 여군이 저항세력의 공격에 죽임을 당했고, 3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라크 주둔 미 여군은 직접적인 전투에는 동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선이 따로 없는 이라크 상황은 여군들로 하여금 적과 맞닥뜨려 총격전을 벌이게끔 몰아간다.
헌병대 소속의 일부 여군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이라크 포로들과 얼굴을 맞대고 신문작업을 벌이면서 학대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군 지휘부는 여자를 낮추보는 이슬람 사회의 특성을 이용, 여군을 신문실에 들여보내 포로를 학대함으로써 그들을 내부적으로 무너뜨리는 일종의 심리전을 폈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 여군이 군홧발로 수감자를 짓밟거나 여성의 생리혈로 더럽혀진 팬티를 수감자 얼굴에 씌우는 가혹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본보기들은 여성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깨뜨린다. 1994년 80만명이 불과 석 달 사이에 죽음을 맞았던 르완다 학살 당시, 일부 후투족 여인들도 소수민족인 투치족 학살에 적극 가담했다. 여성도 전쟁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뚜렷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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