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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여성

‘성폭력 피해자’ ‘잔혹한 전사’ ‘자살 테러범’의 세 얼굴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전쟁 속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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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여성

6·25전쟁 당시 좌익으로 몰려 살해당한 젊은이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가 시신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시에라리온이나 라이베리아 여성 반군의 경우에서 보듯, 아프리카 여성들이 반군의 일원으로 총을 들고 전투에 뛰어드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전쟁 중 흔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둘째, 전란 속에서 이렇다 할 생계수단이 없는 여성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다.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총을 지녔다는 것은 살육보다는 보호본능 개념이 앞선다.

전술적 수단으로서의 성폭력

전쟁은 비이성적인 유혈극이다. ‘이성적인 전쟁’ 또는 ‘이성적인 전사’란 ‘정직한 상인’이나 ‘정직한 정치인’이란 말처럼 모순된 어법이다. 삶과 죽음의 극한상황에서 정부군이나 반군, 민병대 가릴 것 없이 이성적인 존재로 남기 어렵다. 병사의 눈초리는 살벌해지고, 행동은 난폭해진다.

그런 혼란 속에 여성은 물리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지휘관들은 전술적 필요에 따라 부하들에게 여성을 강간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 경우 성폭력은 적군이 지배하는 지역에 공포 분위기를 퍼뜨리는 일종의 ‘테러전술’이다. 지구촌 여러 내전지역에서, 특히 아프리카의 콩고, 수단, 르완다, 그리고 발칸반도에서는 성폭력이 전술적 수단으로 널리 사용됐다.

많은 경우 가해자들은 강간한 피해자들의 목숨을 끊었다. 다행히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피해 여성은 심한 정신적 상처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더욱 운이 나쁜 여성들은 가해자의 성병이나 에이즈균에 전염되기도 한다. 그래서 전쟁 피해 여성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만의 전쟁’을 힘겹게 치러야 한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사회는 성폭력에 희생당한 여성을 감싸기보다는 배척하기 일쑤다. 그래서 피해 여성은 더욱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끌려갔던 ‘일본군위안부’들도 그러했다.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죽을 고생을 했지만, 전쟁이 끝나도 고향 땅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 냈다).

여성들은 대개 피란을 가지 않는다. 피란을 가기 어려운 노인들과 어린이들을 돌보고, 아울러 집과 땅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들은 ‘설마 비무장에다 연약한 우리들을 죽이겠냐’는 생각에서 피란 보따리를 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의 야만적인 속성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바로 그들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무장세력에게 공격을 당한다.

1990년대 전반기 발칸반도를 휩쓴 내전의 피바람 속에 갇힌 여성들이 그러했다. 보스니아 내전, 크로아티아 내전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 남성들은 일찌감치 몸을 피했지만, 많은 여성이 노약자와 어린이를 돌보고 집을 지키려고 피란을 가지 않았다.

이 여성들을 기다리는 것은 성적 학대였다. 유엔이 설정한 안전지대로 몸을 피한 여성들도 소수의 경무장 유엔군이 세르비아 세력에 밀려 물러난 뒤 성폭행을 당했다. 1990년대 중반,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에게 집단강간을 당한 끝에 임신한 보스니아 여성들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흐느끼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기억날 것이다.

좀처럼 불길이 꺼지지 않는 콩고 내전도 많은 여성을 울렸다. 정부군과 반군 가릴 것 없이 모든 무장세력이 젊은 여성들에게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 약칭 HRW)’는 ‘전쟁 속의 전쟁 : 동부 콩고에서의 성폭력’이란 보고서에서 르완다 정부군이 점령한 콩고 동부지역에서 때로는 체계적인, 때로는 무차별적인 성범죄가 저질러졌음을 밝혔다.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114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르완다 정부군과 그 동맹세력인 콩고무장조직 RCD, 그리고 이들에 맞서 싸우는 콩고 마이마이 반군조직이 모두 전쟁범죄자라고 고발한다. 이들은 지역을 무력순찰하면서 지역민들이 ‘적군’에게 협력적이라는 트집을 잡아 여성들을 붙들어 강간하곤 했다.

체첸 여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군과 경찰은 “테러용의자들을 잡으려 한다”는 구실로 체첸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있다. 집안을 약탈하고 심지어 불태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성폭력의 희생자로 눈물을 흘려야 한다. 체첸에서 벌어지는 자살폭탄 테러사건의 범인들 가운데 여성이 여럿 있다.

2003년 러시아군을 태운 버스를 자살폭탄 공격해 18명을 죽인 사건을 비롯해 지금껏 14건의 자폭테러가 여성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들은 러시아군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그 자신이 성폭력의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 희생자가 가해자로 나서는 모습은 지구촌 분쟁지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체첸, 팔레스타인, 스리랑카에서 벌어지는 자살폭탄테러가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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