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돼지고기 전도사’ 최영열 대한양돈협회장

“양돈은 양손에 돈 거머쥐는 사업, 한국 농촌 견인차 될 것”

  •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 사진·정경택기자

    입력2005-10-25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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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고기 전도사’ 최영열 대한양돈협회장

    ●1955년 부산 출생<br>●동아대 농대 졸업<br>●1996년 ‘새 양축가 상’ 대통령 표창<br>●2001∼04년 대한양돈협회 부회장<br>●現 대한양돈협회장 및 양돈자조활동자금관리위원장,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부회장

    참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발암물질이 검출된 중국산 장어, 중금속에 오염된 중국산 김치와 차(茶), GMO(유전자변형) 콩을 사용한 국산 식용유, 식중독균이 득시글득시글한 김밥, 나트륨 성분이 넘치는 라면스프…. 발암물질이 든 국내 양식 향어·송어는 또 어떤가.

    건강에 직결되는 식품의 안전이 실종된 요즘, 밥상은 ‘공포의 시식대’나 다름없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유해성 먹을거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육류인 돼지고기는 사정이 어떨까.

    10월4일 현재 돼지고기 정육 500g의 시중가격은 6500원. 특히 가장 많이 소비되는 부위인 삼겹살의 경우 지난해부터 대형 할인점 가격이 1kg에 1만2000∼1만50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양돈업계가 ‘표정관리’를 할 법도 하다. 그러나 10월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열(崔營烈·50) (사)대한양돈협회 회장은 “최근 돈가(豚價)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양돈농가가 점점 줄고 있는 데다 국민의 삼겹살 편중이 심해 걱정이 많다”고 다른 소리를 했다.

    ‘돼지 문양 넥타이’

    맨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의 넥타이였다. 짙은 감색 바탕에 황금빛 돼지 여러 마리가 프린트돼 있다.



    -넥타이가 특이하네요.

    “1∼2년 전에 미국에서 열린 돼지박람회에 갔는데, 이게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미국 양돈인들이 이걸 홍보용으로 쓰나 보다 싶어 샀는데, 돌아와서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여서 더 반가웠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돼지는 행운의 상징이잖아요. ‘복덩이’를 목에 감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최근 중국산은 물론 국산 식품에서도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잇따라 검출되고 있는데, 돼지고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중국산 돼지고기는 수입되지 않습니다. 중국이 구제역 상재국이기 때문이죠. 현재 외국산 돼지고기는 연간 10만t 가량 수입돼요. 사실 소비자 처지에선 먹을거리에 인체 유해 성분이 들어 있는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죠. 얼마 전 장어 파동이 났을 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양돈농가가 아무리 국산 돼지를 잘 키워도 만에 하나 수입 돈육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국내산 소비까지 위축되고 말지요. 그래서 제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에게 수입 돈육 검역을 철저히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아직 수입 돈육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한 적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없어야겠죠.”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7.8kg. 가장 사랑받는 육류다. 지난해 국내 전체 소비량은 85만t으로, 75만t인 생산량을 훨씬 웃돌았다. 자급률은 88%. 모자라는 12%는 미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 16개국에서 수입한다. 수입량의 80∼90%가 삼겹살. 우리 국민의 유난한 ‘삼겹살 사랑’ 때문이다. 뒷다리살과 등심은 내수 부족으로 재고가 쌓이고 있다.

    생산액으로 따지면 양돈은 농축산물을 통틀어 미곡(쌀) 다음의 지위에 있다. 지난해 양돈업 생산액은 3조6600억원. 국내 축산물 전체 생산액의 30%(한우는 28%, 낙농은 17%, 닭은 15%)를 차지하는 축산업 대표주자다. 이 정도면 양돈농가의 자부심도 크지 않을까.

    양돈업은 ‘6차산업’

    “양돈업이 우리 농업경제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생산보다 환경논리가 늘 앞서요. 환경 관련 종사자들은 산이나 강 주위에 한두 채 있는 축사마저 오염덩어리로 봅니다. 상당수 국민도 양돈인을 ‘좋지 않은 냄새’만 풍기고 국토나 오염시키는 사람, 심지어 돼지 그 자체쯤으로 보는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 양돈인은 양돈업을 소중한 직업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돈 좀 벌고 기회만 닿으면 업종을 바꾸려 들죠. 소명의식을 갖고 싶어도 그런 문화가 형성돼 있지 못해요. 그렇지만 양돈인들은 그 누구보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내는 애국자입니다.”

    -자녀들이 가업을 물려받지 않으려 하겠군요.

    “그렇진 않아요. 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농업분야 중 자식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어하는 것이 양돈업이에요. 저도 아들이 둘인데 모두 축산을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군복무 중인데, 제대하고 본인들이 원하면 대물림할 생각입니다.”

    부산 동아대에서 축산을 전공한 최 회장은 졸업 후 양돈시설 제조회사에 취직한 것을 계기로 돼지와 인연을 맺었다. 1986년 경남 거창에서 양돈업을 시작해 지금은 2000여 두를 사육한다.

    -소비자는 ‘양돈업’ 하면 통상 지저분한 축사나 단순노동을 떠올리게 마련이죠.

    “그럼에도 양돈업은 6차산업입니다. 사실 ‘6차산업’이란 건 없죠? 그런데 왜 6차산업일까요? 우선 돼지 기르는 일은 1차산업입니다. 기른 돼지를 도축한 뒤 가공하는 일은 2차산업이죠. 가공된 고기를 유통·판매하는 건 3차산업입니다. 이 셋을 더하면 6차산업이 돼요. 과거처럼 음식찌꺼기나 농업 부산물을 먹여 잔치 때 한두 마리 잡아 먹기 위해 집에서 돼지를 키우는 건 1차산업이죠. 지금은 사정이 달라요. 돼지농사 지어 휴대전화도 사고 인터넷도 해야 하잖아요. 양돈업은 ‘사료 에너지’를 돼지에게 투입해 ‘고기 에너지’로 바꿔내는 에너지관리산업, 다시 말해 하이테크 산업입니다.

    왜냐하면 양돈업엔 물 관리, 온도 관리, 환경 관리, 인력 관리 등 모든 게 포함돼 있어요. 축사라는 일정 공간에서 양돈업자라는 일정한 관리자가 모돈(母豚·어미돼지)이란 일종의 기계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양돈업입니다. 우리 축산업이 경쟁력이 약한 데는 아직도 양돈업을 원시적 방식의 ‘돼지치기’로 보는 잘못된 인식 탓도 큽니다.”

    -현대의 양돈업에선 어떤 첨단기술이 활용됩니까.

    “예를 하나 들죠. 젖을 갓 뗀 새끼돼지에게 곧바로 마른 사료를 먹이면 새끼돼지가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일교차가 심하잖아요. 어미 뱃속에서 갓 나온 새끼 1마리의 원가가 3만원, 젖 떼면 5만원인데, 잘못 관리하면 그 돈이 허공으로 날아가요.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돼지의 생장에 최적 조건을 맞춰주는 인큐베이터 자돈사(仔豚舍)가 개발됐어요. 자돈(仔豚·새끼돼지) 피해가 적지 않아 국내에서 이런 기술을 자체 개발한 겁니다. 이 시설은 일명 ‘베이비 하우스’라고도 하는데, 생산성이 높아 필리핀 등지에서 수입해 갑니다.”

    종돈 1마리가 새끼 2만마리 퍼뜨려

    -요즘은 육류나 양식어류 사육과정에 항생제를 남용한다고 해서 이를 먹지 않으려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요.

    “인간이든 짐승이든 산 생명체엔 반드시 질병이 따릅니다. 오늘 아침뉴스를 보니 국내 축산농가들이 항생제를 과다하게 사용한다고 보도하던데, 이게 대체 검증된 자료를 보고 말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요. 질병에는 약으로 치료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 있습니다. 감기가 약으로 치료됩니까? 일정 시일이 흘러야 하고 환자 스스로 극복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돼지한테도 바이러스성 질병이 많아요. 한동안 떠들썩했던 구제역, 돼지 콜레라 같은 것은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에요.

    항생제는 사람도 먹고 돼지도 먹습니다. 가축이 먹는 항생제나 사람이 먹는 항생제는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도 사람이 그 가축의 고기를 먹으면 약 성분이 인체에 잔류해 항생제 내성이 생긴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기우입니다. 지금 국내 모든 도축장엔 도축 검사관이 있어요. 돼지 사육은 자돈-육성돈-비육돈 단계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의 항생제 관리수준은 미국·일본에 손색없을 만큼 엄격해요.

    국산 돈육의 대일(對日) 수출이 1998∼99년에 많이 이뤄졌는데 일본인의 위생관념에 맞추려 당시부터 철저히 관리해왔어요. 물론 일부 양돈농가가 항생제를 사서 직접 사료에 섞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도축단계의 항생제 잔류검사에서 적발되면 돼지 출하 자체가 금지돼요.

    양돈농가에선 돼지가 아프면 생산성을 높이려 주사도 놓고 항생제 처방도 합니다. 우리가 돼지의 행복을 추구하려 기릅니까? 깨끗한 고기를 생산해 수입을 얻으려 기르는 것 아닙니까. 진정으로 국민 건강이 걱정되면 국가가 예산을 좀더 들이더라도 소비 직전단계인 도축 때 더욱 철저히 검사하면 됩니다. 그 단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양돈농가는 완전히 퇴출시키면 돼요.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항생제 남용 운운하면 국민에게 불안감만 안겨줍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종(種)은 어떤 것들입니까.

    “랜드레이스, 대요크셔, 햄프셔, 듀록, 버크셔 등 5∼6종입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죠. 국산이냐 아니냐는 그 돼지가 우리 땅에서 자라냐 아니냐의 차이죠. 물론 합천 토종돼지, 지례 흑돼지 등 우리 고유의 토종이 있긴 하지만 많이 사라졌죠.”

    국내에서 도축되는 돼지는 월평균 110만두. 어미 뱃속에서 4개월을 보낸 뒤 태어나서 180일(6개월)이 지나면 도축한다. 이때 몸무게는 110kg. 시세는 마리당 23만원. 사육기술이 발달할수록 육돈의 일생은 짧아져 통상 6개월에 머문다.

    -경마 열풍 덕분에 종마(種馬)에 대해선 제법 알려져 있지만 종돈(種豚·씨돼지)은 그렇지 못해 궁금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종돈의 정액을 채취하는데, 1회 채취량으로 평균 암퇘지 12마리를 수정시킬 수 있어요. 암퇘지는 새끼를 평균 10마리쯤 낳죠. 종돈 1마리가 평생 퍼뜨릴 수 있는 종자 수는 무려 2만마리나 됩니다.

    요즘은 모두 인공수정을 시키지만, 예전엔 양돈농가 자체에서 종부(교배)를 했어요. 그때 수퇘지를 교미시키러 가면 이놈들이 자기가 뭘 하러 가는 줄 알아요. ‘주인님이 오늘 나를 또 즐겁게 해주는구나’ 싶어서 졸졸 따라와요. 암퇘지가 있는 번식사 문을 열어주면 기다렸다는 듯 딱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집에 돌아갈 때가 언제인지도 알죠. 종부를 시킬 땐 절대로 사료를 먼저 주지 않는데, 그렇게 하면 수퇘지들 머리에 ‘종부를 해야 밥을 먹을 수 있구나’ 하는 기억이 입력돼요. 그러면 돼지 주인이 딴 일을 하고 있어도 번식사에 들어간 수퇘지들은 그 사이에 스스로 알아서 종부를 하고 있어요. ‘일’을 끝내면 대기장소에서 기다리죠. 요즘 가장 고가로 경매되는 종돈은 마리당 1000만원이 넘습니다.”

    지난해 2월부터 임기 3년의 양돈협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같은 해 3월부터 임기 2년의 양돈자조활동자금관리위원회 초대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양돈자조금(이하 ‘자조금’)은 양돈인들이 자발적으로 일정액을 갹출해 운영하는 제도. 1만1000여 가구에 달하는 국내 양돈농가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관리위원 21명과 대의원 200여 명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양돈농가 스스로 자신의 업(業)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자립의지의 발현인 셈이다.

    히트한 ‘웰빙 삼총사’ 광고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국내 축산업계에선 최초로 자조금 제도를 운영 중인데, 그 도입 배경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양돈농가들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죠. 돼지값 파동이 몇 년을 주기로 반복되다 보니 농가들이 무척 힘들어해요. 그래서 매번 이런 파동을 되풀이해 겪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양돈인들의 절박함을 수렴해 협회 차원에서 파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려 십수년간 고민해왔어요. 처음엔 1990년대 초부터 임의자조금 제도를 운영했는데, 매번 돈 내는 사람만 내는 폐단이 있는 데다, 양돈농가가 소규모 부업농에서 전업농으로 재편되면서 무한경쟁 시대에 국산 돈육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양돈업을 확고한 식량산업으로 자리매김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돼 2003년 12월 자조금 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의무자조금 제도로 전환했습니다. 자조금 갹출은 2004년 4월부터 시작했고요.”

    자조금은 돼지 도축시 1두당 400원씩 갹출한다. 최 회장은 “2005년 상반기 갹출금이 25억원이며 납입률이 92%에 이르러, 올해 갹출 목표액인 60억원과 납입률 95% 달성을 낙관한다”고 밝힌다.

    -위원회의 사업성과는 어떻습니까.

    “위원회 사업은 크게 돼지고기에 관한 대(對)국민 소비홍보, 교육 및 정보 제공, 조사연구 세 가지예요. 국산 돈육 홍보 사이트인 ‘웰빙포크닷컴(www.wellbeingpork.com)’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웰빙 삼총사’ TV광고도 위원회의 ‘작품’이죠.”

    사실 ‘웰빙 삼총사’ 광고는 의외였다. ‘지방 적은 등심, 담백한 안심, 비타민B1이 많은 뒷다리살…우리 돼지 웰빙 삼총사로 골라 먹자’는 모토를 내건 이 광고는 ‘돼지’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날씬한 ‘미녀 삼총사’를 내세워 ‘돼지고기도 TV광고를 할 수 있다’는 신선한 발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올해 3월까지 방영된 1편에서는 황신혜·변정수·김세아씨가, 현재 방영 중인 2편에서는 황신혜씨 대신 현영씨가 합류했다.

    “운도 따랐어요. 모델 중 1명을 현영씨로 바꾼 직후 현씨가 여러 프로그램에서 뜨는 바람에 그 덕을 톡톡히 봅니다. 양돈협회로선 행운이죠. 미녀 연예인이 3명이나 나와 국산 돈육이 좋다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센세이셔널한 일이라 광고업계는 물론 양돈농가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어요. 자조금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린 거죠.”

    -현재 양돈농가가 겪는 어려움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선 환경규제가 양돈인의 의욕을 꺾고 있어요. 축사를 지으려 해도 민원 때문에 안 돼요. 그 내용이 뭐냐 하면 막연하게 ‘냄새난다’ ‘분뇨 오염이 우려된다’ ‘동네 땅값 떨어진다’는 식이에요. 축사를 옮길 때도 해당지역 주민의 동의서가 필요해요. 돼지를 관리할 수 있는 인력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 국민이 국산 돈육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양돈업 발전을 가로막는 악취방지법과 농지법 등 법률적 제약이 하루빨리 현실에 맞게 개선됐으면 합니다.

    양돈협회는 친환경 축산을 위한 자구책으로 돼지 분뇨를 토양에 섞어 퇴비로 활용하는 자원순환농업 연구팀을 정부와 함께 만들었어요. 이젠 축사도 농지에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들판 한가운데서 분뇨를 활용한 퇴비를 운반할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벼농사에 활용하면 물류비와 생산비를 낮추는 친환경 자원순환농업이 이뤄질 수 있어요.

    음식점에서도 원산지 표시해야

    ‘돼지고기 전도사’ 최영열 대한양돈협회장

    돼지 뒷다리살로 만든 요리를 시식하는 최영열 회장. 그는 뒷다리살, 안심, 등심 등 비선호 부위의 소비를 당부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농지에 축사를 허용하면 자칫 농지를 전용할 것이라 우려하는데, 양돈농가들이 농지를 투기 목적으로 쓰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만일 잘못되면 규제하면 될 것 아닙니까. 정부가 조금만 도와줘도 양돈농가가 우리 농촌 지키기에 앞장설 수 있어요.”

    -그래도 지난해와 올해 돼지고기 가격이 초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덕분에 양돈농가들이 부채를 꽤 갚을 수 있었죠. 정부로부터 경쟁력 제고사업 명목으로 얻은 부채가 1조6000억원, 사료업계 등 민간 부채가 3조원 가까이 됐는데, 올해는 가격상승 덕을 봤죠. 양돈업은 잘만 하면 ‘양’손에 ‘돈’을 거머쥐는 사업입니다, 하하.”

    -돼지고기값 상승의 원인이 뭐라고 봅니까.

    “국민이 많이 드셔준 덕분이죠. 지난해부터 돼지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인구가 점점 줄어드니 먹는 양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요.

    “돈육 가격 상승의 원인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2002∼03년에 양돈 불황이 왔는데, 당시 양돈업 총매출이 2조6000억원밖에 안 됐어요. 매출이 생산비를 밑도는 현상이 9개월이나 이어졌습니다. 많은 양돈농가가 도산했죠. 도산의 영향은 1년 뒤쯤 나타나는데, 그것이 지금의 가격상승으로 연결된 거죠. 또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캐나다산 쇠고기가 수입 금지되면서 음식점들이 주메뉴를 돼지고기로 바꿨지요. 조류독감으로 인한 닭고기 피해의 반사적 이익도 좀 봤고.”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질문인데, 국산 돼지고기와 수입산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사실은 없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돼지 품종은 세계 공통으로 5∼6종뿐입니다. 돼지가 먹는 곡류도 옥수수, 소맥 등으로 어느 나라나 비슷해요. 그런데 돈육 성분의 75%는 물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물을 마시고 자란 돼지의 고기 맛이 좋겠지요. 국산 돈육과 외국산을 차별화하기 위해선 생산이력제를 반드시 시행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적어도 이 고기를 누가 생산했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야 신뢰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일본은 생산이력제를 광범위하게 시행합니다. 우리의 경우 정육단계에선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지만 식당에선 안 하죠. 음식점에도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수입 돈육은 냉동상태로 들어오니 육즙이 빠져 신선하지 않죠. 당연히 값도 싸야 합니다. 그런데도 식당에선 가격차가 없죠. 국민이 수입 돈육 먹으면서 국산 돈육 값을 치르면 국산 돈육의 품질에 대한 불신만 커져요. 음식점에서 수입 돈육을 팔 때는 가격을 낮춰야 합니다.”

    -막창이나 껍데기 등 특수부위를 선호하는 미식가도 많은데, 왜 이런 부위는 해당 음식점이 아닌 일반 매장에선 구할 수 없는지 모르겠어요.

    “아쉽게도 부산물 유통문화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못해요. 부산물 판매는 도매시장에서 경매로 이뤄지는데, 어느 누가 ‘나도 입찰에 참여해야지’ 하고 달려들어 낙찰을 봐도 물건을 팔 경로가 없어요. 부산물 취급 도매상과 요식업주 사이에 일종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어 신규 업자가 끼어들기가 무척 어렵게 돼 있어요. 소비자가 구하기 힘든 건 당연하죠.”

    돼지고기 패스트푸드 개발 중

    -삼겹살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기형적인 돼지고기 소비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양돈협회 차원의 개선책이 있습니까.

    “하나의 문화를 바꾸는 데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봅니다. 삼겹살 선호현상도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겠죠. 사실 1970년대만 해도 농촌에서 잔치를 하면 뒷다리살이 가장 맛있는 부위로 꼽혀 서로 가져가려 했어요.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돈육의 부위별 명칭이 생기고 나들이 문화가 정착되면서 어디서나 간편하게 조리해 먹기 좋은 삼겹살이 각광받기 시작했죠. 주부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조리법이 간단해서 좋다’고 합니다. 그만큼 ‘삼겹살 문화’는 뿌리깊습니다. 최근 갖가지 홍보활동으로 부위별 소비불균형이 약간 해소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더욱 적극적이고 다양한 계도활동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다른 부위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조리법이 다양하지 못해서 아닌가요?

    “그렇죠. 저지방 부위인 등심이나 안심, 뒷다리살의 품질이 우수하고 건강에 좋은데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 결국 삼겹살로 손이 가는 경우가 많죠. 조리법을 모르면 주부로선 성가실 수도 있고. 그래서 협회 차원에서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휴대하며 간식처럼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패스트푸드를 개발 중입니다.”

    -삼겹살을 제외한 국산 돈육의 남는 부위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국내 돈육의 자급률이 88%이니 전체적으론 모자라죠. 따라서 남는 부위의 값은 떨어져도 양이 남아돌아 버려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일례로 2003년에 뒷다리살 1kg 값이 1300원까지 내려갔어요. 담배 한 갑보다 못한 가격이었죠. 정육 기준으로 생산비는 1700원인데, 그 이하로 팔아야 하니 가슴이 아팠죠. 사실 삼겹살이나 뒷다리살이나 등이나 배에 붙은 고기나 영양소엔 별 차이가 없어요. 단지 우리 식문화가 삼겹살 위주로 고착된 까닭에 뒷다리살이 1kg에 4000원 한다면 삼겹살은 1만2000원 정도로 서너 배 비싼 형편이죠.”

    속설대로 돼지껍질엔 다이어트 효과가 있을까. 서울 마포에 사는 기자가 평소부터 궁금하던 대목이다. 마포에선 밤마다 항정살, 갈매기살, 껍질을 굽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돈피(豚皮·돼지껍질)는 필리핀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죠. 튀겨놓으면 바삭바삭한 데다 단백질이 풍부하니까.”

    -지난해 12월 일본 돈육 유통현장을 돌아보고 온 것으로 압니다.

    “일본은 자급률 50%로 돈육 수입국이 돼버렸어요. 워낙 일본 국민이 환경을 깨끗이 하다 보니 양돈업 자체가 위축된 거죠. 그런데도 특기할 점은 돈육을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먹는다는 거예요. 수육을 가장 많이 먹는데, 라면에 얹어 먹기도 합니다. 소량 포장도 많이 해요. 더욱이 생산이력을 확실히 공개하는 브랜드화가 이뤄져 있습니다. 양돈업은 우리가 일본만큼 선진화돼 있지만, 유통 면에선 일본에서 배울 점이 많아요.”

    ‘삶은 돼지고기 문화’ 확산됐으면

    -돼지고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성인병에 좋지 않다는 비계 때문인데, 괜찮나요?

    “돈육은 삶으면 지방이 쏙 빠져 영양학적으로 아주 우수한 식품이 됩니다. 양돈협회에서 고민하는 것도 삼겹살 대신 삶은 돼지고기 문화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브랜드육이 일반육과 다른 점이라면?

    “큰 차이는 없어요. ‘보성 녹돈’이다 ‘제주도 흑돼지’다 하면 마치 대단한 맛을 지닌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돈육은 어디까지나 돈육일 뿐입니다. 돼지고기에서 꿀맛 나는 것 봤습니까? 다만 브랜드육은 소비자가 언제나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고기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소비자단체도 인정할 만큼, 생산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안전한 것으로 판명된 고기라는 점이 중요하죠. 수입육은 대개 보쌈집으로 많이 가요.”

    -양돈협회장은 돼지고기를 특별히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한 끼 굶어야겠죠? 하하. 수육에 우리 고유의 발효식품인 김치와 신선한 채소를 곁들이면 가장 맛있습니다. 소주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죠. 지방이 적당히 든 돼지고기를 안주로 술을 마시면 빨리 취하지 않아 건강에도 좋아요.”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국내 양돈업은 생산액이 3조6600억원에 이르는 ‘거대한 주식회사’입니다.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30조원에 이르는 식량 근간산업이고요. 누군가는 이 산업에 종사해야 국민이 믿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생길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양돈농가를 좀더 긍정적으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짐승 키우면 어차피 냄새는 나게 돼 있어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도 돼지 똥냄새가 풍깁니다. 냄새나서 귀찮다고 생각지 말고 저들(양돈인)이 있기에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구나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내 양돈인을 대변하는 중책을 맡은 최 회장이 ‘맵게(烈) 경영한다(營)’는 뜻풀이를 지닌 그의 이름대로 ‘매운 경영능력’을 발휘해 양돈농가가 처한 고충과 삼겹살 편중현상의 겹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그가 오래지 않아 ‘돼지꿈’을 꿀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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