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책이 많아요. 저런 건 가격도 만만찮지요. 저 책들은 내가 죽으면 부산대학교에 기증할 거예요. 부산대에서 강의 의뢰가 왔거든요. 내가 학력이 보잘것없지만 내 사진 평론책을 읽고 강의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나 봅니다. 이 책이에요(그가 ‘리얼리즘 사진의 사상’이란 책을 뽑아서 보여준다. 나는 나중에 집에 와서 그 책을 정독했다. 방대한 독서량과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각오와 정열과 기쁨이 넘치는 글이었다). 이전 같으면, 박사 아니고는 대학 강단에 어디 설 수 있었나요? 눈들이 밝아진 거예요.”
책 사이에 숨기듯 들어앉은 낡은 마란츠 앰프에서 소리 결이 생생한 슈베르트가 흘러나온다. 새삼 건너편 벽을 살피니 거기엔 오래된 엘피(LP)판이 잔뜩 꽂혀 있다.
“엘피판이 1000장쯤 되고 저쪽 방에 시디(CD)가 500장 정도 있어요. 책은 원래 한 1만권 됐는데 이사하면서 집이 좁아 어떤 학교에 반 넘게 기증했어요. 여기 남긴 건 내가 정말 아끼는 책들이에요.”
“베토벤이 예술의 모델”
이 아깝고 소중한 책들, 평생 어루만지고 얘기를 나눠온 그들의 미래 향방까지 그는 이미 결정해뒀다. 낡은 나무 서가 옆구리에 카라얀 사진이 붙어 있길래 “카라얀, 좋아하시나요” 무심코 물었더니 그는 정색하고 “기생오라비 같은 게 좋긴 뭐가 좋아. 내가 좋아하는 건 번스타인이지” 한다. 얼른 허리를 구부리고 옆방으로 건너가 거기 붙은 번스타인 사진 앞에 날 잠깐 세워둔다. 지휘자는 번스타인이 좋고 음악은 베토벤을 최상으로 친다.
“내게 베토벤 전기만 15권이 있어요. 여러 번 거듭 읽었지. 나는 시련과 좌절 속에서 자기 예술을 꽃피운 사람을 좋아하거든. 베토벤은 36세에 귀가 멀었는데 57세에 죽었어요. 그러나 베토벤은 아마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영원히 살아 있을 걸요. 불멸의 아홉 개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17개의 현악 사중주, 미사곡 등 해서 베토벤이 작곡한 게 전부 760곡인데 그중 85%가 귀먹은 이후에 만든 거예요. 음악가가 귀먹어서 작곡한다는 게 말이나 돼요? 그런데 했거든.
베토벤 음악은 강렬하고 웅대하고 힘이 넘쳐 흐르고 심각하고 높고 영웅적이에요. 음악을 어떻게 힘있는 예술로 만드는지를 알았고,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경험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았거든. 천재지. 그리고 그 천재는 고난 속에서 탄생한 거라고요.”
사진작가인 줄만 알았더니 못 말릴 독서가에 클래식 전문가에 웅변가이기도 하다. 음대에서 베토벤에 관한 특강을 한 적도 있다니 베토벤 연구자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아니겠다. 그의 열광을 길게 인용하는 이유는 베토벤이 바로 그의 예술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겨워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정부가 잡아 가둬도, 쌀과 연탄 살 돈이 똑 떨어져도, 초상권 침해로 사진의 주인공이 돈을 요구해 와도 그는 평생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베토벤을 떠올리면 언제나 힘이 났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힘을 찾는 사람들
이 자그만 세 겹 방은 최민식의 천국이다. 이 방에서 그는 완벽하고 충만하다. 책 읽고 음악 듣고 사진을 본다. 그리고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그걸 관객(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탐구하고 고민하고 모색한다. 책방 곁 화장실 문밖엔 반 평도 안 되는 암실이 있다. 평생 사진작업을 해왔고 25권의 사진집을 낸 대사진작가의 암실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비좁은 공간.
나는 화장실을 지나 담 틈에 억지로 만든 암실 안에 굳이 들어가봤다.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불편하지만 불을 켜고 필름을 들여다보자 따스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삶의 엄숙함과 거기 맞선 인간 본연의 가식 없는 표정들이 필름 안에 살아 있었다. 이런 사진들이 넓고 쾌적한 암실에서 만들어질 수야 없겠지. 그건 일종의 오락이거나 기만일 테지. 나는 새삼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난해 최민식은 시인 조은과 공저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사진집을 펴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삶을 살펴온 노사진가와 시인의 교감,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사진과 가장 아름다운 글이 만나 길어 올린 감동어린 사진이야기’라는 서브 타이틀이 붙은 책이다.
나는 시인 조은의 집에 두어 번 가본 적이 있다. 그 집도 최 선생이 지금 서 있는 암실과 똑같았다. 서울 사직동 골목 안 13평짜리 낡은 한옥 안에 조은은 정결하고 소박하고 자족적인 한 세계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창문에 광목 커튼을 달고 그 아래 자그만 책상을 놓고 거기 앉아 시 쓰고 책 읽던 조은. 그가 최민식 선생의 사진에 붙이는 아포리즘(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쓴 것이 그저 우연인 줄 알았는데, 최 선생의 집에 와보니 그게 아닌 것을 알겠다. 둘의 눈이 향한 방향이 공통되고 그러자니 삶의 태도가 공통되고 그래서 사는 집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관찰자의 자격으로 두 사람을 잇달아 만난 나는 사람을 대하는 둘의 태도가 유난히 따습다는 공통점을 또 발견했다. 어둡고 암울한 것들 속에 숨겨진 힘과 아름다움, 그걸 찾는 시인과 사진작가라는 일치점이 있으니 둘이 만나 공저를 낸 것은 예정된 필연이었겠다. 세상사 우연히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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