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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⑧

빨고 씻고 버무리다 보니 잊힌 내 반쪽이 꿈틀대네!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빨고 씻고 버무리다 보니 잊힌 내 반쪽이 꿈틀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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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헹구기는 ‘온몸운동’이다. 바지는 헹구다가 바지 위를 잡고 번쩍 들고 일어선다. 다시 돌리다 번쩍 치켜들기를 서너 번. 한결 허리가 부드러워진다. 허리뿐 아니라 배 가슴 목 양손을 다 쓰니 온몸운동이다.

빨래를 짜는 것은 근력운동. 먼저 빨래를 높은 곳에 걸쳐둔다. 웬만큼 물기가 빠지면 물이 있는 부분만 두 손으로 비틀며 짠다. 보디빌딩 하는 것처럼 자세를 잡아본다. 몸놀림이 부족하기 쉬운 겨울, 손빨래로 근력을 다진다. 보디빌더가 무대 위에 올라선 것마냥 한껏 잔뜩 자세를 잡는다. 한번 힘을 주고는 잠시 그대로 멈췄다. 마지막으로 배에 힘을 주며 짠다. 누가 보는 사람 없나.

겨울밤이라 밖은 춥다. 빨래집게로 줄에 매단다. 손발이 얼얼하다. 다 널고 집 안으로 돌아오며 올려다보는 밤하늘. 무수한 별. 집 안으로 들어오니 긴장된 몸이 풀리며, 그제야 가슴으로 찬 기운이 느껴진다.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는 옷. 누군가를 따스하게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건 행복이리라. 옷을 빨며 옷 같은 삶, 옷 같은 사람을 생각해본다.

위의 글은 일기라 삶의 한순간일 뿐이다. 빨래하는 건 어느 정도 되지만 다 마른 빨래를 개어 제자리에 넣어두는 일은 아직 엉망이다. 대충 넣어두니 막상 꺼내 입으려고 찾을 때 고생한다. 온 서랍장을 다 뒤지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내 옷에서 이따금 홀아비 냄새가 난다 한다.



설거지 할 힘은 남겨둔다

빨래는 살림살이 가운데 한부분이다. 살림의 근본은 누가 뭐라 해도 먹고 치우는 일이다. 그런데 겪어보니 이 일은 보통이 아니다. 살림과 삶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니 달리 보면 삶의 근본이 안 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머리로는 안다. 집안일을 함께 하는 게 좋다는 걸. 내가 힘들면 아내도 힘들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돈을 중심에 놓고 사는 삶이 아니라면 살림살이에 대한 역할 분담은 달라져야 했다. 아내가 요리를 하면 설거지는 내가 하는 식으로.

하지만 설거지가 몸에 배는 데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했다. 먼저 주문(呪文)을 만들고 외워야 했다. ‘밥 먹고 나서 바로 힘쓰는 일을 하지 마라. 가볍게 산책하듯 설거지하는 게 내 몸에도 좋으니라.’

그런데 더 큰 장애물은 다른 데 있었다. 설거지라는 게 한두 번 하고 말 일이 아닌 것이다. 사는 날까지 날마다 해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서너 번씩. 이게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이다. 대신 안 하면 바로 표가 나는 일이기도 하다. 날마다 하는 일치고는 보람이 너무 없다.

설거지가 지겨우니 별의별 궁리를 다 했다. 우선 아내에게 부탁해서 요리하는 중간에 나오는 설거지거리는 되도록 쌓아두지 말고, 요리하는 자리에서 바로 해달라고 했다. 칼도마며 큰 그릇은 요리하는 틈틈이 설거지가 가능하니까. 그 다음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먹은 밥그릇과 숟가락은 스스로 닦자고 했다. 한동안 잘 되다가 아이들이 요리에 재미를 붙이면서 설거지를 안 한다. 누군가 요리를 하면, 치우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하길 바란다. 그게 우리 식구 사이의 예의이기도 하다.

설거지도 자꾸 하다 보니 요령이 붙고, 꾀가 난다. 수세미를 왼손에, 그릇은 오른손으로 바꾸어 잡는다. 덜 지겹다. 수저통을 멀리 놓고 옆구리 근육의 움직임을 천천히 느끼면서도 해본다. 기분에 따라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씻는다.

설거지를 몇 해 하다 보니, 몇 가지 정리되는 게 있다. 우선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래도 시간 확보다. 일이 바쁘다 보면 솔직히 개수대에 설거지거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사실 설거지 시간이야 기껏 5분 남짓이다. 알게 모르게 삶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집 밖의 일을 너무 힘들게 하면 설거지는 고사하고 꼼짝도 하기 싫다. 그러니 하루 일을 마칠 때쯤에도 ‘설거지 할 힘’은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은 너무 잘 먹는 것도 문제다. 배부르게 먹으면 설거지하기가 싫다. 밥상과 내가 분리되면서 밥상을 돌아보는 것조차 싫다. 그 틈을 게으름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럴 때는 대부분 한상 잘 차린 뒤끝이라 설거지거리도 보통 때보다 더 많다. 그러니 더 하기 싫다. 설거지를 힘들지 않게 하려면 알맞게 먹어, 몸을 가볍게 해두어야 한다.

두부는 사치스러운 음식?

설거지하면서 아내 요리법에 대해 가끔 시비를 건다. ‘꼭 불에다가 익혀야 하나. 너무 복잡하지 않나. 음식이 남았다. 음식을 버리는 것도 일이잖아.’ 남이 한 요리에 평을 하고 잔소리하기는 쉬워도 손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한두 가지 요리야 하겠지만 늘 밥상을 책임진다는 건 두려운 일에 가깝다. 설거지가 ‘단순 노동’에 가깝다면 요리는 생명 그 자체다. 영양이 있어야 하고, 맛이 좋아야 하며, 제철에 나는 신선한 것들로 상을 차려야 한다. ‘집안의 큰아들’로서 받아먹는 건 쉽지만 막상 하려면 전문분야라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해오던 일상이 있기 때문에 요리에 다가가는 데는 긴 호흡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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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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