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8년에 걸친 총선 3연패로 수렁에 빠진 영국 보수당을 구해낼 소방수로 39세의 신세대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현지에선 ‘데이빗 캠런’으로 발음) 의원이 선출됐다. 이로써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정치인을 배출해온 영국 보수당에서 사상 최초의 30대 당수가 탄생했다. 당원 우편투표 개표 결과, ‘신세대 기수’를 자처한 캐머런 의원은 13만4446표를 얻어 6만4398표를 얻은 57세의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을 배 이상의 표차로 눌렀다.
이미 각종 사전 여론조사에서 캐머런 후보의 승리가 예상됐던 만큼 데이비스 의원 또한 개표 결과 발표장에서 자신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경쟁자 캐머런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것으로 보수당의 경선(競選) 레이스는 일단 보기 좋게 막을 내렸다.
영국 보수당은 1997년 혜성처럼 나타난 노동당의 정치 신인 토니 블레어에게 내리 세 번이나 정권을 내주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블레어 총리가 3선에 성공하는 동안 보수당 당수가 다섯 번이나 바뀐 것을 보더라도 보수당의 내홍(內訌)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가 10년이 넘도록 정권을 되찾지 못하는 ‘불임(不姙) 정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안팎으로 팽배했다.
물론 영국 정당사에서 보수당이건 노동당이건 세대교체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캐머런 의원에게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의 짧은 정치 경력 때문이다. 캐머런 의원은 보수당 예비 내각의 교육부 장관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치무대에 본격 데뷔한 지 이제 갓 4년에 불과하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캐머런보다 두 살 많은 나이(41세)에 노동당 당수 자리에 올랐지만 당시 블레어는 10년이 넘는 하원의원 경력을 갖고 있었다. 초선과 3선의 차이쯤이라고나 할까.
캐머런 의원의 이력은 영국의 주류 계층을 상징하는 ‘정통 엘리트’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생인 그는 명문사학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렇다고 그가 모범생 노릇만으로 대학 시절을 마감한 것 같지는 않다. 선거 유세기간 중 옥스퍼드대 재학 당시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88년 보수당의 연구소에서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마거릿 대처 총리와 존 메이저 총리 시절에는 총리 연설문과 질의응답서 작성을 도왔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는 칼튼 커뮤니케이션스에서 일했고, 이어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이 시작된다.
캐머런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시장기능과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정통 보수주의 철학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확대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의 철학을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보수당도 이제는 ‘뒷다리나 잡고 늘어지는’ 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노동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과감한 자세도 보여줬다. 캐머런 의원은 이번 투표 결과를 놓고서도 “보수당원들이 변화와 희망의 목소리에 호응했다”면서 “보수당을 국민의 희망과 꿈을 이해하는 21세기형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물론 보수당이 캐머런 의원의 주장처럼 중도화할 경우 이미 중도 노선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블레어의 노동당과 정책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오히려 지지자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보수당원들이 배 이상의 큰 표차로, 중량감 있는 이미지의 데이비스보다 참신하고 활기찬 캐머런을 선택한 것만 봐도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젊음’ 내세운 즉석 대중연설
캐머런 의원 진영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욕구를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최대한 활용했다. 지하철 유세와 유아원 방문 등 젊은 부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선거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원고 없는 즉석 대중연설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대 위를 성큼성큼 걸어다니며 청중과 눈을 맞추고 보수당의 변화를 역설하는 서른아홉 살의 캐머런 의원과, 원고를 내려다보며 무미건조한 방식의 유세를 고집하는 쉰일곱 살의 데이비스 의원 중 변화를 갈망해온 보수당 유권자들에게 누가 더 큰 호소력을 발휘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수당 유권자들에게 그의 젊음을 보여주는 데 공헌한 또 한 명의 조연은 바로 그의 아내 사만다 캐머런(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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