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英 보수당 170년 사상 최연소 당수 탄생, 그후

‘개혁보수’ 앞세운 ‘블레어 따라하기’ 노동당 4연승 저지할까?

  • 성기영 在英 자유기고가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5-12-27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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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우향우’ 노선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했다면 데이비드 캐머런이 이끄는 보수당은 ‘좌향좌’ 노선으로 정권 탈환을 노리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세대교체 주역으로 떠오른 스타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의 꿈과 야망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보수당의 미래는?
    지난 12월 6일 8년에 걸친 총선 3연패로 수렁에 빠진 영국 보수당을 구해낼 소방수로 39세의 신세대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현지에선 ‘데이빗 캠런’으로 발음) 의원이 선출됐다. 이로써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정치인을 배출해온 영국 보수당에서 사상 최초의 30대 당수가 탄생했다. 당원 우편투표 개표 결과, ‘신세대 기수’를 자처한 캐머런 의원은 13만4446표를 얻어 6만4398표를 얻은 57세의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을 배 이상의 표차로 눌렀다.

    이미 각종 사전 여론조사에서 캐머런 후보의 승리가 예상됐던 만큼 데이비스 의원 또한 개표 결과 발표장에서 자신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경쟁자 캐머런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것으로 보수당의 경선(競選) 레이스는 일단 보기 좋게 막을 내렸다.

    영국 보수당은 1997년 혜성처럼 나타난 노동당의 정치 신인 토니 블레어에게 내리 세 번이나 정권을 내주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블레어 총리가 3선에 성공하는 동안 보수당 당수가 다섯 번이나 바뀐 것을 보더라도 보수당의 내홍(內訌)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가 10년이 넘도록 정권을 되찾지 못하는 ‘불임(不姙) 정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안팎으로 팽배했다.

    물론 영국 정당사에서 보수당이건 노동당이건 세대교체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캐머런 의원에게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의 짧은 정치 경력 때문이다. 캐머런 의원은 보수당 예비 내각의 교육부 장관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치무대에 본격 데뷔한 지 이제 갓 4년에 불과하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캐머런보다 두 살 많은 나이(41세)에 노동당 당수 자리에 올랐지만 당시 블레어는 10년이 넘는 하원의원 경력을 갖고 있었다. 초선과 3선의 차이쯤이라고나 할까.

    캐머런 의원의 이력은 영국의 주류 계층을 상징하는 ‘정통 엘리트’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생인 그는 명문사학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렇다고 그가 모범생 노릇만으로 대학 시절을 마감한 것 같지는 않다. 선거 유세기간 중 옥스퍼드대 재학 당시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88년 보수당의 연구소에서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마거릿 대처 총리와 존 메이저 총리 시절에는 총리 연설문과 질의응답서 작성을 도왔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는 칼튼 커뮤니케이션스에서 일했고, 이어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이 시작된다.

    캐머런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시장기능과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정통 보수주의 철학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확대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의 철학을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보수당도 이제는 ‘뒷다리나 잡고 늘어지는’ 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노동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과감한 자세도 보여줬다. 캐머런 의원은 이번 투표 결과를 놓고서도 “보수당원들이 변화와 희망의 목소리에 호응했다”면서 “보수당을 국민의 희망과 꿈을 이해하는 21세기형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물론 보수당이 캐머런 의원의 주장처럼 중도화할 경우 이미 중도 노선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블레어의 노동당과 정책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오히려 지지자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보수당원들이 배 이상의 큰 표차로, 중량감 있는 이미지의 데이비스보다 참신하고 활기찬 캐머런을 선택한 것만 봐도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젊음’ 내세운 즉석 대중연설

    캐머런 의원 진영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욕구를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최대한 활용했다. 지하철 유세와 유아원 방문 등 젊은 부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선거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원고 없는 즉석 대중연설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대 위를 성큼성큼 걸어다니며 청중과 눈을 맞추고 보수당의 변화를 역설하는 서른아홉 살의 캐머런 의원과, 원고를 내려다보며 무미건조한 방식의 유세를 고집하는 쉰일곱 살의 데이비스 의원 중 변화를 갈망해온 보수당 유권자들에게 누가 더 큰 호소력을 발휘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수당 유권자들에게 그의 젊음을 보여주는 데 공헌한 또 한 명의 조연은 바로 그의 아내 사만다 캐머런(35)이다.

    사만다는 출산을 앞둔 임신부의 몸으로 선거 유세장을 누볐다. 보수당 경선 유세 과정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영국 국민은 종종 유권자들 앞에서 부인과 포옹하는 모습을 연출해온 캐머런이 아내의 배 위에 손을 얹고 있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캐머런의 이런 행동이 유권자의 눈을 의식한 선거 전략의 하나인지, 아니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만다의 존재 자체가 또 하나의 득표 요인으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력한 차기 총릿감 부인이 된 사만다에게 관심이 쏠린 것은 그의 임신 사실보다 총리 부인이라는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자유분방한 이력 탓일 가능성이 크다.

    사만다가 캐머런과 처음 만난 것은 아직 10대 티를 벗지 못한 대학 재학 시절이다. 옥스퍼드대 정치경제학과에 수석 입학한 캐머런과 예술을 전공한 자유분방한 여학생의 만남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국의 대중지들은 사만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경력은 물론이고, 17세기 후반 스튜어트 왕조의 3대 왕으로 재임했던 찰스 2세의 정부(情婦)로 유명한 세계적 여배우 넬 그윈이 사만다의 ‘증조할머니의 시할머니의 시할머니의 시할머니’쯤 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만다가 대학 재학 시절 유명 힙합 가수 트리키와 ‘우정(?)’을 나눈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만다의 발목에 돌고래 문신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까지 화제에 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입방아에도 불구하고 사만다가 다른 정치인 부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일을 즐기던 직업여성인 데다가 정치적 야심이 별로 없는 스타일이라는 점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영국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10번지의 안주인 행세를 톡톡히 하면서 걸핏하면 튀는 언행으로 남편을 궁지에 몰아넣는 셰리 블레어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여하튼 앞으로는 사만다를 공개석상에서 자주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출산을 앞둔 데다 보수당 경선이 끝나자마자 영국 국민의 관심은 캐머런이 선보일 ‘개혁보수 노선’의 실체가 도대체 뭐냐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보도에 따르면 선거 유세 기간 중 캐머런 의원이 유력 언론사 중역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블레어의 상속자”라는 말까지 했다는 걸 보면 당분간 보수당은 노동당 정책과 코드가 맞는 부분에는 보조를 맞추면서 정책 주도권 경쟁을 펼칠 것 같다.

    보수당은 ‘좌향좌’, 노동당은 ‘우향우’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듯 보수당 당수로 선출된 직후 의사당에 나온 캐머런 의원과 블레어 총리는 서로의 정책 노선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과거지향적’이라는 가시 박힌 말을 주고받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보수당으로서는 노동당의 ‘우향우’가 블레어의 3선을 가능하게 한 데서 보듯 ‘좌향좌’를 통한 보수당 집권 가능성을 시험해봐야 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특히 보수당의 ‘좌향좌’ 움직임은 이라크전 상황 악화와 반(反)테러리즘 법안 부결 등으로 인해 블레어 총리가 꾸준히 추진해온 ‘우향우’ 정책이 영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과 동시에 전개되고 있어 더욱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캐머런 의원은 이미 경선 유세 과정에서 경제 성장이 보수당 정책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속적 성장과 빈곤의 심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수당은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 빈곤 계층에 대한 배려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건 보수 노선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단골로 내세워 재미를 보는 감세(減稅) 공약과 관련해서도 캐머런 의원은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왔다. 감세 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원칙적 신념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공공 지출과 세금 감면이라는 방법론 사이에서 섣부른 양자택일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캐머런 의원은 노동당 차기 총리후보가 확실시되는 고든 브라운(54) 재무장관이 최근 내놓은 팽창 재정에 대해 비판의 각을 세웠지만, 한편으로는 부자들에 부과하는 소득세를 인상해 저소득층 지원에 나설 수 있다고 암시하기도 했다.

    보수당 예비내각의 교육부 장관으로 활동한 경력을 보여주듯 캐머런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역시 교육개혁이다. 그는 이미 영국식 공교육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블레어 총리의 교육개혁안을 적극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블레어 정부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킨 대학 등록금 인상안(top-up fee)에 대해 보수당이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분명히 함으로써 블레어 정부의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에도 힘을 실어줬다.

    이런 공약을 확인해주듯 당선 확정 이후 캐머런 의원의 첫 방문지는 흔히 ‘이스트 엔드(East End)’라고 하는 런던 빈민 밀집 지역의 한 학교였다. 노타이 차림으로 이스트 엔드를 찾은 캐머런은 이곳 청소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수당 당수로서의 첫 외부 일정을 시작했다.

    “블레어 교육개혁 지지”

    교육개혁을 기치로 들고 나온 보수당에 대한 기대는 각종 여론조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BBC 라디오 인기 시사프로그램인 ‘투데이’가 보수당 경선 직전인 지난 12월2~5일 벌인 전화 여론조사에서도 교육 분야에서 보수당 정책의 신뢰도(55%)는 노동당 정책의 신뢰도를 훨씬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보수당이 처음 내세운 구호가 아니라 이미 블레어 정부가 추진해온 대표적 정책 어젠더라는 점에서 보수당 교육정책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액면 그대로 보수당에 대한 지지로 이해했다가는 오판을 범할 가능성이 크다. 캐머런 의원이 자신의 교육개혁 공약을 내세워 이슈 선점 효과를 노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번 BBC 여론조사에서는 경제(41%), 환경(46%), 보건(45%) 등 전 분야에서 보수당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노동당에 비해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정치 경력이 일천한 캐머런 의원이 이끄는 보수당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따라서 캐머런 의원이 이끄는 보수당은 당분간 기존 보수당의 정체된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캐머런 의원이 가장 먼저 꺼내든 화두는 그동안 진보세력의 단골 메뉴나 다름없던 ‘사회정의’라는 구호다. 캐머런 의원은 보수당 당수로 당선되자마자 범죄와 마약, 가족 해체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사회정의정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는 “그동안 시행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대부분 단기적인 대증(對症)요법에 그쳤다”고 주장하며 “중장기적 정책 개발을 위해 사회정의정책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위원회 운영을 전 보수당 당수 이안 던컨 스미스에게 맡김으로써 정치적 무게를 실어줬다.

    ‘개혁’ 보수당을 이끌어갈 캐머런 의원의 정책 노선과 그의 행보가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차기 총선에서 그가 승리할 경우 1997년 총선에서 44세의 나이로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를 제치고 영국 최연소 총리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 경선에서 캐머런 의원의 당선이 최종 확정되기 전부터 이미 브라운 장관과 캐머런 의원의 맞대결을 예상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수당 경선 직전에 실시된 스카이 뉴스의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총릿감을 묻는 질문에 영국 국민의 38%가 캐머런을 선택해 캐머런이 브라운 장관(43%)의 뒤를 바짝 쫓는 강력한 경쟁자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특히 이 설문조사 결과가 보수당 경선의 패배자인 데이비스까지 설문대상에 포함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당 표가 한곳에 모아질 경우 고든 브라운의 다우닝가 입성에 비상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대 초반 vs 50대 중반

    이러다 보니 영국의 차기 총선은 이미 캐머런 의원과, 차기 총리 밀약설이 나올 정도로 블레어 총리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는 50대 중반의 브라운 재무장관의 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자연스레 차기 총선은 세대간 대결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데일리 메일’ 같은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는 캐머런 의원의 당선이 최종 확정되자마자 ‘차기 총리로 가장 적당한 나이는 몇 살인가’라는 주제로 인터넷 여론조사를 벌이는 민첩성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는 캐머런 의원으로서는 브라운 장관의 정책노선을 견제할 만한 적절한 카드를 미리 내놓아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1997년 선거전을 앞두고 판세가 크게 불리했던 토니 블레어 노동당 후보가 보수적인 감세정책을 제시한 것은 당시 보수당 정권의 허를 찌른 전략이었다. 세금을 많이 거둬 노동자의 복지에 쓰는 것이 노동당의 기본 정책이라고만 믿었던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40대 초반의 블레어 후보를 노동당의 스타로 만든 것도 이러한 ‘보수당 따라 하기’였다. 오죽하면 1997년 당시 선거에서 패한 메이저 전 총리가 노동당 정부를 가리켜 “내가 보수당에 몸담은 20년 동안 시도하고자 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넋두리를 늘어놓기까지 했을까.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보수당의 정권 회복을 외치며 30대 당수 자리에 오른 캐머런은 반대로 ‘노동당 흉내내기’를 통해 보수당을 떠난 민심을 잡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사실 캐머런 의원에게 반대표를 던진 보수당원뿐만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조차 캐머런 의원이 어떤 정책노선을 선보일지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당의 변화를 역설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변화가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떠나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캐머런 의원의 개혁노선이 막연한 ‘블레어 따라하기’에 그치거나 구체적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말잔치’에 그친다면 그의 인기에서 거품이 빠지는 것 또한 시간문제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3선을 가능하게 했던 ‘제3의 길’이 과연 보수당의 스타로 떠오른 캐머런 의원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인가. 170년 역사를 가진 영국 보수당이 39세 젊은 당수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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