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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춘향가는 안숙선이 부르고,돈은 프랑스 감독이 벌고…”

  • 김명곤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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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유랑민도 급증한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만 해도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전교에 한 명 정도, 그것도 공부 제일 못하는 ‘날라리 학생’이 ‘연극배우’라고 써냈다. 연극영화과는 대충 뒷문으로 들어가는 학과로 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등학생 절반이 게임 프로그래머, 영화감독, 패션디자이너를 꿈꾼다. 뒷문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던 연극영화과의 문턱은 엄청 높아져 요즘 들어가려면 꽤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학과에 들어가려면 서울대 입학 수준의 수능 점수가 필요하다.

유랑민처럼 살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이 어마어마하게 등장하고 유랑민을 꿈꾸는 학생도 폭증하지만, 학교 교사는 정착민 출신이다. 교사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학원을 다녀야 하며, 어떤 학과에 지원해야 하는지 모른다. 부모도 대부분 정착민 출신이라 자녀에게 길을 보여줄 수가 없다. 학교와 집에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아이들은 선배나 친구를 찾아가지만 엉터리 학원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잘못 배워 장래를 망치기도 한다. 게다가 유랑민에게 적합한 일이 정착민이 보기엔 불안하기 마련이어서 소외를 당하기도 한다. 수많은 아이가 유랑민의 삶을 지망하지만 실패자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좀더 큰 틀에서 한국 문화산업의 앞날에 대해 얘기해보자. ‘문화의 세계화’란 말이 있듯 세계화는 각 영역에서 중요한 이슈로 다뤄진다. 그러나 세계화 때문에 문화정책에 혼선이 빚어졌다. 우리 문화가 세계화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세계와 교류하면서 우리의 문화상품을 해외로 진출시켜 돈도 벌고 국가 이미지도 올려놓자는 데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세계화란 어떤 것이냐 하는 점에서 그동안 세계는 심각하게 충돌했다. 세계화 흐름을 타고 각국의 문화가 초강국인 미국의 문화에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에 반발해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제정한 것이 ‘문화 다양성 협약’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각 나라 혹은 각 민족이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하게 지원할 수 있고,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강제 조항을 만들 수 있다. 문화상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각국이 보호막을 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이 협약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섰다.

아리아 팬이 판소리 전문가로



협약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사례 중 하나는 스크린 쿼터 제도다. 이 제도는 모든 극장이 한국 영화를 연 146일 동안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극장을 무섭게 잠식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이 제도가 자유무역 정신에 위배된다며 폐지하거나 상영일수를 줄여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때로는 다른 무역협상과 연계해 보복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문화 다양성 협약의 정신에 비춰보면 스크린 쿼터는 정당하다. 어린이 프로그램 중 일부는 자국에서 제작한 것을 방송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강조하고 문화와 언어 그리고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지난 몇년간 이 문제를 놓고 여러 나라가 논쟁을 벌였다. 협약을 지지하는 나라는 프랑스·캐나다·중국·인도 등이고, 반대하는 나라는 미국·이스라엘·일본·호주·영국 등이다. 양 진영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는 가운데 2005년 10월21일 프랑스에서 유네스코 총회가 열렸다. 이곳에서 154개국 대표가 문화 다양성 협약 찬반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미국과 이스라엘만 반대, 기권한 네 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찬성이었다. 전세계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로 협약이 총회를 통과한 것이다. 한국은 어디에다 표를 던졌을까. 찬성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 눈치 보느라 공식 방침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그동안 정부는 스크린 쿼터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영화인과 문화예술인은 당연히 스크린 쿼터에 찬성했지만, 경제나 외교 관련 정부부처는 반대했다. 반대한 이유는 이렇다.

“지금 한국 영화는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국산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뭐가 무섭다고 보호를 해야 되는가. 모든 부분을 개방하고 자유경쟁체제로 바꾸고 있는데 왜 영화만 유독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가. 한류(韓流) 붐을 봐라. 우리 문화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 문화도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그와 같은 보조로 보호정책도 없애야 한다.”

나는 스크린 쿼터는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제도의 목적은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것이지, 국내 영화산업을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일국의 문화 정체성이 세계화라는 명분에 밀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론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철학적·문화적 관점이 너무나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나는 1973년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판소리를 들었다. 우연히 어느 시골 국악원에서 얼굴이 예쁜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열광적인 베토벤 숭배자여서 베토벤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음악은 사라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오페라 팬이었고, 누님들도 성가대 합창을 도맡아 한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모두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나도 이탈리아 민요, 오페라 아리아만 불렀다. 음악적으로 워낙 엄격한 집안이어서 한번은 셋째누님이 남진의 노래를 불렀다가 집안에서 쫓겨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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