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10년간 졸업생 취업률 100%’ 한국기술교육대 문형남 총장

“낭만이 없다고요? 철저히 준비해도 벅찬 세상 아닙니까”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2005-12-29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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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게 믿을 수 없었다. ‘4년제 대학 중 취업률 1위’도 대단한 일인데 10년 동안 졸업생 전원이 취직했다니, ‘청년실업 50만’의 시대에. 소문의 주인공은 충남 천안에 있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틀림없다는,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하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말을 거듭 확인하자 비결이 뭔지 궁금해졌다.
    ‘10년간 졸업생 취업률 100%’ 한국기술교육대 문형남 총장
    날이 추웠다. 먼길이 걱정스러웠다. 왠지 분주한 연말 분위기의 막히는 도로를 뚫고 경부고속도로 목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자 금세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이하 한기대)’ 표지판이 보인다. 서울 광화문에서 1시간30분. 생각보다는 가까운 길이어서 다행스러웠지만, 이번에는 대학가치고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가 낯설다. 주위에는 번잡한 유흥가도, 휘황한 네온사인도 보이지 않는다. ‘이 학교 학생들은 어디서 술을 마시나.’ 별걱정을 다한다.

    총장실에 들어서자 이 학교 문형남 총장이 환한 웃음으로 기자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가 건넨 명함 뒷면이 특이하다. 흔히 영어로 된 직함이 찍히는 자리에는 홍보문구만 가득하다. ‘행복한 입학, 보장된 미래’ ‘공학·경영학 특성화 대학교’ ‘정부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 “너무 직설적인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첫 질문에 “자랑할 게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몰라주니까 아쉬워서 그런다”는 대답 또한 직설적이다.

    궁금한 부분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야 했다. 정말 10년간 졸업생 전원이 취업했느냐고 묻자 “적당히 부풀린 걸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일반 대학들의 취업률 발표는 졸업생 설문조사를 취합한 것이지만, 한기대는 노동부 출연 대학이라 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보험 전산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해 취업률을 산정한다는 것. 졸업생이 취업한 기업이 납부한 고용보험 실적으로 검증하니 오차가 있을 수 없는 데이터라는 설명이다.

    “한기대는 1992년 노동부가 전액 출자해 능력교육개발 전문기관으로 설립한 학교입니다. 지금도 학교 전체 예산의 60~70%가 국고에서 나오지요. 덕분에 등록금도 국립대 수준이고요. 보통 대학의 공학교육이 주로 연구나 이론 중심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니 기업들은 똑똑한 학생들을 데려다 다시 6개월이고 1년이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낭비를 없애보겠다고 만든 학교입니다. 그러니 다른 곳에 비해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동석한 입학취업본부장 임경화 박사가 “100%도 그냥 100%가 아니다”라고 보탠다. 한기대 졸업생들이 대기업과 중견기업, 노동부 산하기관의 능력개발 훈련교사 등으로 고르게 취업하는데, 특히 메카트로닉스 공학부의 경우 2006년도 졸업정원의 30%가 넘는 25명이 삼성·LG 등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지방대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회사가 강의를 만든다?

    -기업마다 실무의 내용이 다르고 기술도 항상 바뀌는데 그걸 대학이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대학은 그래도 나름의 기능이 있는 게 아닐까요.

    “다른 학교 공학교육의 의미를 부정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외국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현실과 거리가 있는 ‘쏠림 현상’을 우리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유교 전통이 강해서인지 한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연구 중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 모델과는 거리가 있지요. 연구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공학분야에서는 당장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한 기능 아니겠어요? 다른 학교가 연구를 최우선에 놓는다면 우리는 기업에 필요한 실무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겠다는 거지요.

    물론 기업이나 현장에서 요구하는 프로그램은 계속 바뀝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교수님들이 3~5년마다 한 학기 이상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매년 열두 분의 교수가 강의를 쉬고 기업을 돌아다녀요. 가서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직접 두 눈으로 살펴보는 겁니다. 원래 기업체나 연구소에서 3년 이상 일한 경력자들로만 전임교수를 선발하기 때문에 흐름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 그렇게 보고 느낀 변화를 학교에 돌아와서는 강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지요.

    이렇게 변화하는 강의 프로그램에 맞춰 예산도 첨단 실험실습장비 구매에 최우선으로 할당합니다. 2004년의 경우 총 367억원의 예산 중에서 52억원을 시설과 장비 교체비로 썼습니다. 안정적인 재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다른 학교는 쉽게 따라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한기대에는 10개의 학부와 학과가 있다(기계정보공학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정보기술공학부, 인터넷미디어공학부, 디자인공학과, 건축공학부, 신소재공학과, 응용화학공학과, 산업경영학부, 교양학부). 학부·학과별로 평균 100명 남짓, 2006학년도에는 총 1000명 내외의 신입생을 뽑는다. 이 가운데서 전통적으로 강세인 자동차 분야와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 IT분야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저희는 일반 기업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맞춤형 교육’이지요. 휴대전화와 LCD 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에버테크노라는 회사는 지난 7월 저희와 협정을 맺었습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을 학교에 주문하면, 학교는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원하는 학생에게 강의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에버테크노에서 인턴 실습을 마친 아이들에 대해 회사가 취업을 보장하는 거지요. 대신 회사는 장학금이나 프로그램 개설에 필요한 실습비, 장비구입비 등을 별도로 출연하고요.

    어차피 신입직원 뽑는 거 그렇게 돈들일 이유가 뭐 있냐 싶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신입직원을 뽑으면 회사가 1년 가까이 월급 줘가며 교육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교육을 학교가 미리, 대신 하는 거지요. 기업은 월급으로 나갈 돈을 학교에 출연하는 거고요. 프로그램 강의를 듣고 인턴까지 마친 아이들은 짧은 시간 안에 생산현장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냅니다. 회사로서도 훨씬 이득이지요.”

    “왜 지방공장엔 인사권이 없나”

    ‘산학협력’이라는 말은 이 학교의 고정 레퍼토리인 모양이다. 또 다른 자랑거리라는 ‘졸업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도 어김없이 같은 말이 나온다. 보통 5~7명의 학생이 지도교수의 세부 연구분야와 밀접한 주제를 졸업 프로젝트로 정해 2년간 설계에서 재료구매, 제품제작, 평가까지 전 과정에 걸쳐 주목할 만한 연구를 완성하면,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는 기업 관계자들이 발표회에 참석했다가 자연스레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을 스카우트한다는 것이다. 2005년에는 이런 방식으로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졸업생 세 명이 한꺼번에 삼성전자에 취업했다고 한다.

    “학부생이 구체적인 실습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교는 KAIST와 우리 학교밖에 없어요. 말 그대로 산학협력이지요. 제가 청주에서 평택까지 주변에 있는 공장이란 공장, 회사란 회사는 모두 찾아 다녔습니다. 이번에 짓는 제2캠퍼스도 그걸 고려한 겁니다. 현재 캠퍼스는 외곽에 있지만 2캠퍼스는 시내 한복판에 지어서 인근 산업단지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문 총장은 아쉬운 부분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주요 기업들의 인사·채용권이 대부분 서울 본사에 집중돼 있어 아무리 지역 생산단지와 협력을 강화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빨리 바꾸지 않으면 고등학생들이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선호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말로만 지역 균형발전을 되뇔 게 아니라 덩치 큰 기업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지방에 있는 학교다 보니 아직까지는 인근 충청권 출신 아이들의 입학 비율이 높습니다. 지역 내 국립대학 일반 학과보다는 입학성적도 높은 편이고요. 정부 예산을 쓰는 학교이다 보니 사립대처럼 엄청난 물량을 쏟아붓는 홍보를 못하는 까닭에 ‘입소문’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점차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학생이나 다른 지방출신 학생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한기대 신입생에겐 100% 캠퍼스 내 산 모퉁이에 자리잡은 기숙사가 제공된다. 전체 재학생을 기준으로 65%의 입사(入舍)율이다. 연구실습실은 24시간 개방된다. 전체 교과과정의 50% 이상이 실습 교육이고 다른 대학 공학부보다 10점 정도 많은 16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현장실습 2주 이상,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토익 성적 600점 이상 획득도 졸업자격 요건이다. 캠퍼스는 12만평이지만 대학원까지 전교생이 4000명 정도로 많지 않아서인지 학기 중 평일 오후인데도 오가는 학생이 별로 없어 한적할 정도다. “학생들이 실습이나 졸업 준비에 바빠서 학교가 항상 이렇게 조용하다”는 임경화 본부장의 보충설명이다.

    ‘학생들’이 아니라 ‘아이들’

    -공부를 많이 시키고 취업도 안정적이라니 부모님들은 좋아하시겠습니다만, 학생들 처지에서는 좀 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쭙잖은 질문입니다만, 들어오면서 보니 대학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썰렁하던걸요.

    “장사가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술집이 생겼다가도 금방 사라지거든요. 솔직히 지역사회에서는 약간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대학이 들어왔으니 지역경기에 도움이 되겠거니 했는데 별다를 게 없다는 거지요. 제가 보기에도 낭만이랄까, 그런 게 조금 부족해 보이기는 해요. 고등학교 내내 수능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이들이 대학 와서도 늘상 기숙사와 실습실만 오가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세상이 워낙 험하다 보니 낭만 갖고는 발붙이기 어려운 시절이니까요. 힘껏 준비하고 실력 쌓아서 나가도 판판이 깨지는 세상 아닙니까. 당장은 조금 힘들어도 4년 뒤 웃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라고 할 수밖에요. (웃음) 학교 밖에 나가서 술 먹는 재미는 적어도, 기숙사나 동아리에서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문화는 만만치 않아요. 신입생 때는 모두 어울려 살다 보니 아이들끼리 사이가 좋은 편인 것 같고요. 우리 아이들이 참 착해요.”

    ‘10년간 졸업생 취업률 100%’ 한국기술교육대 문형남 총장

    한기대의 강점은 강도 높은 실습교육이다. 기업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때그때 파악해 강의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설이나 장비 보강에 전체 예산의 15% 가까이를 쓰고 있다.

    이어지는 말에서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온다. 그는 학생들을 언급할 때 늘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듯했다. ‘제자들’도, ‘학생들’도 아닌 ‘아이들’이다. 흡사 아들딸이나 손자손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왠지 무언가 의미가 있는 듯했다. 그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니 비로소 알 것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문형남 총장은 노동부 관료 출신이다. 1975년 행정고시로 관가에 발을 들여놓은 후 노동부와 관련기관에서만 사반세기를 보냈다. 특히 노동 문제가 우리 사회 초미의 쟁점으로 떠오른 1980년대 후반, 노동부 담당관료로 현장에서 노사관계를 다뤘다. ‘노동조합 노동쟁의’ ‘노동조합법상해’ 등 저서도 대부분 관련 분야다. 그 시절 배운 ‘소통의 중요성’을 대학에서도 써먹고 있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취미는 ‘부처님 웃기기’

    “노동부에 있을 때도 사람을 다루는 게 주업무였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나 신뢰, 믿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달고 살았지요. 학교에 와서 보니까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나 직원들과 함께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게시판을 들락거리며 관심을 기울이면 다들 금세 그 마음을 알아줘요. 총장이라고 ‘폼 잡기’보다는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거지요.”

    그러면서 문 총장은 지난 가을 기숙사 축제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생들끼리 팀을 짜서 장기를 겨루는 행사였는데, 한 노래팀의 이름이 ‘문형남의 아이들’이었단다. 뭐 대단한 일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부임 3년 반을 넘겨 막 ‘안착기’에 접어든 총장님으로서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동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매주 전교생과 직원들에게 에세이를 e메일로 보내고 답신이 오면 그 또한 함께 돌려본다는 섬세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 듯도 했다.

    -인물정보에서 찾아보니 취미가 특이합니다, ‘등산과 부처님 얼굴 보기.’ 등산은 알겠는데, 부처님 얼굴 보기는 뭡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부처님 얼굴 보기’가 아니라 ‘부처님 웃기기’예요. 불상은 대개 입술이 일자예요. 언뜻 보면 무서울 정도로 근엄하거든요. 경주 석굴암 불상만 봐도 그렇지요.

    그런데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부처님 한번만 웃어주세요’ 하고 계속 속으로 조르면 어느 순간 부처님이 웃는 걸 본 듯한 느낌이 들어요. 한번 해보세요. 그러다 보면 조르는 동안 나도 웃고 있지요. 아침에 산에 올라 그렇게 부처님이 웃는 걸 보고 나면 마음이 즐겁고, 출근해서 맨먼저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웃게 되거든요. 그 웃음으로 하루를 사는 거예요. 그걸 이십몇 년을 하다 보니 취미 비슷하게 된 거죠, 아침에 부처님을 웃기지 못하면 종일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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