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삼성의 벤치마크 스웨덴 ‘발렌베리家’

이윤보다 미래, 가족보다 사회…‘깔끔한 5대 세습경영’으로 국민적 존경

  • 조명진 EU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julgran@hanmail.net

    입력2005-12-30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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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어떻게 해서 150년에 걸친 세습경영에도 여전히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을까. 사민당(SDP)과 발렌베리의 ‘건전한 정경유착’은 스웨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 상속 및 증여과정의 투명성과 정치자금 문제로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유럽 최대의 가족재벌 발렌베리 그룹이 한국 재벌에 주는 교훈을 짚어본다.


    2003년 7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스웨덴을 방문했다. 이 회장의 해외출장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재용 상무와 이학수 본부장이 동행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당시 방문의 목적은 스웨덴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가(家) 연구. 이건희 회장 일행은 스웨덴 체류기간에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을 비롯해 발렌베리 그룹의 주요 임원들과 면담하며 새로운 경영 및 기업지배 시스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부터 삼성그룹은 공식·비공식적으로 삼성이 추구하는 이상형이 ‘스웨덴 모델(Swedish Model)’의 주역인 발렌베리 그룹이라고 지목해왔다. 1856년 창업 이래 5대에 걸쳐 오너경영을 유지해온 대표적 세습경영 가문이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받게 된 계기였다.

    시야를 나라 밖으로 넓혀 보면 발렌베리 그룹에 국제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시기는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 종식의 기운을 불어넣은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스웨덴 체제’를 모방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약 세인의 조명을 받았던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스웨덴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지나칠 수 없었던 한 축이 바로 발렌베리 그룹이었던 까닭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1938년 이래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DP)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복지사회 실현을 가능케 한 발판이 이 두 집단의 협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노동조합을 지지기반으로 장기집권해온 사민당과, 대를 물리며 전략산업에서 기업활동을 해온 발렌베리 가문의 안정된 공조체제야말로 스웨덴 모델의 핵심이다.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정경유착’이라고 비판할 만도 한데, 스웨덴의 국민여론은 오히려 발렌베리 가문에 경의를 표하는 쪽에 가깝다. 5대에 걸친 성공적인 세습, 그럼에도 계속되는 국민의 지지. 이쯤 되면 삼성이 왜 발렌베리를 부러워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발렌베리 가문이 이렇듯 독특한 방식으로 스웨덴을 이끌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며, 발렌베리 그룹의 정체는 무엇인가.

    발렌베리 가문의 탄생

    린셰핑(Link쉚ing)은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항공기 제작사 스웨덴항공주식회사(SAAB·Svenska Aeroplan Akie Bolaget)와 트럭 및 중장비 차량 회사 스카니아(Scania)가 있는 도시다. 이들 기업이 린셰핑에 본부를 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도시가 바로 이들 기업의 모태인 발렌베리 그룹의 창업주 안드레 오스카 발렌베리의 고향인 것이다.

    스웨덴 루터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카 발렌베리는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난 후 은행업에 뛰어들어 1856년 스톡홀름 엔실다 은행(SEB·Stockholm Enskilda Bank, 훗날 스칸디나비스카 엔실다 은행으로 개명)을 창업했다. 이것이 이후 150년을 이어온 발렌베리 그룹의 태동이다.

    창립 후 60년이 지난 1916년, 스웨덴에 새로 도입된 기업법은 은행이 제조업체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는 것을 억제하는 방침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SEB는 주식회사 인베스토(Investor AB)를 설립하게 된다. 인베스토는 설립목적에 맞게 초기부터 포트폴리오 기업으로서 아틀라스 콥코(Atlas Copco)와 스카니아의 핵심 지주회사가 됐다.



    20여 년이 지난 1938년 극심한 노사분규에 시달리던 스웨덴에서는 역사에 남을 노사정(勞社政) 3자 협약이 체결된다. 스웨덴경영자연합(SAF)과 스웨덴노동조합(LO)이 노사관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합의를 이룬 것이다. 협상이 진행된 휴양지 지명을 따서 살트셰바덴 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이라 하는 이 협정의 핵심은 기업 지배권을 인정받은 경영자연합이 회사 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는 데 동의한 것에 있다.

    이후 협정은 국민화합 차원에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신뢰의 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고, 사민당과 노조 지도자들이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산업화를 가속화했으며, 결과적으로 스웨덴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 특히 협약에 규정한 해고 노동자의 재교육과 직장 알선을 주선하는 적극적 노무관리정책 추진은 스웨덴 노사관계 안정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발렌베리 가문이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한 사민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의지에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고, 노동쟁의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언제나 합의에 기반을 둔 선진 노사관계를 창출했다. 덕분에 사민당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일관되고 공고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민당과 발렌베리 가문의 만남은 스웨덴을 복지사회로 이끄는 견인차가 됐지만, 발렌베리 가문이나 그에 속하는 기업이 사민당에 선거자금을 대준 일은 없다. 스웨덴에서는 정치인이 기업에서 정치자금을 모으는 일 자체가 없다. 이른바 ‘건전한 정경유착’을 가능케 한 스웨덴의 풍토다.

    살트셰바덴 협약이 체결된 1938년 그 해에 발렌베리 가문은 사브를 설립한다. 스웨덴 정부는 사브에 전투기 생산을 주문함으로써 무장중립을 통한 자주국방의 토대를 만드는 방위산업을 발렌베리 가문에 맡기게 된다. 이후 1세대 전투기 란센(Lansen), 2세대 전투기 드라켄(Draken), 3세대 전투기 비겐(Viggen), 현재 생산 중인 4세대 전투기 그리펜(Gripen)에 이르기까지 사브는 전투기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 또한 스웨덴 정부와 발렌베리 그룹이 자국의 국방과 안보를 함께 고민하며 합의점을 찾았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중립을 위한 이중성

    따지고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에서 스웨덴이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발렌베리 그룹의 경영진이 기여한 바가 크다. 이 시기 창업주의 손자인 야콥 발렌베리 1세는 영국을, 형제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2세는 나치 독일을 맡아 사업관계로 맺어진 커넥션을 이용해 협상을 벌여 스웨덴을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했다.

    삼성의 벤치마크 스웨덴 ‘발렌베리家’

    발렌베리 그룹의 모체인 스칸디나비스카 엔실다 은행의 스톡홀름 본부. 창업주가 세운 첫 사업체로 그룹 전체의 자금줄이다.

    그 과정에서 1939년 4월 스웨덴 사민당은 독일의 침공을 피하기 위해 나치 독일의 리벤트로프 원수에게 스웨덴이 철강 공급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약한다. 이 약속의 막후에는 독일 보슈그룹(Bosch Group)과 친밀한 관계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2세가 있었다. 전쟁 후 발렌베리 가문은 나치 독일에 협조했다는 오명(汚名)을 피할 수 없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스웨덴을 건져낸 점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할말’이 있었던 셈이다.

    전쟁 이후에도 발렌베리 가문의 행적에는 비난받을 대목이 적지 않았다. 우선 SEB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보슈, 이게 파르벤(IG Farben), 크룹(Krupp) 같은 독일 기업들이 연합군에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도록 공모한 사실이 있다. 한편으로 발렌베리 가문은 나치 독일과의 커넥션을 이용해 중요한 정보를 연합군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립을 위한 스웨덴의 이중성은 주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로부터 맹공을 당하는 빌미가 된다.

    이후 냉전시기에도 발렌베리 그룹의 교묘한 행보는 지속됐다. 전투기에서 잠수함에 이르는 첨단무기를 자체 생산하는 방위산업 능력을 갖춘 스웨덴은 이를 바탕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과 소련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첨단 방산업체들은 앞서 살펴본 대로 모두 발렌베리 그룹 휘하에 있었다.

    팔메 수상을 필두로 독자적 중립외교정책을 추진해온 사민당 지도자들은 비동맹국가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횡포를 공개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방안을 지지했고,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과 소련의 체코 침공을 모두 비난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스웨덴 방산업체인 사브와 보포슈는 유럽과 인도로 전투기와 곡사포 수출 판로를 넓히는 데 열중했다. 발렌베리 그룹의 핵심기업 중 하나인 아틀라스 콥코의 굴착기는 1970년대 초반 북한에 수출된 적이 있다. 이들 기계는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남침용 땅굴을 파는 데 쓰였다는 게 정설이다. 1973년 스웨덴과 북한이 상대국에 대사급 공관을 설치한 배경에 발렌베리 가문이 있었다는 것은 외교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듯 발렌베리 그룹의 사업상 이해관계는 반핵, 반전, 비동맹 운동에 앞장선 스웨덴 정부의 공식적인 중립 외교정책과 부합하지 않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

    위기가 기회로

    정작 발렌베리 가문의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스웨덴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직접투자가 중단되고 스웨덴 기업조차 노동단가가 저렴한 해외로 눈을 돌릴 때였다. 발렌베리 그룹은 악화되는 경영여건에 맞서 스웨덴에 공장을 잔류시키기로 결정함으로써 국민의 위기의식을 잠재웠다. 당시 발렌베리 가문의 결정에 대해 스웨덴 언론은 “배당과 시세차익에만 집착하고 기업경영에는 무관심한 주식펀드, 연금펀드와는 달리 발렌베리가(家)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찬사는 수년 후 위기극복의 기회로 돌아온다. 1980년, 그리펜 전투기를 개발할 것인지 미국으로부터 F-16을 도입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던 스웨덴 정부는, 사브의 생산라인을 살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자국 내 전투기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발렌베리 그룹 또한 이를 지원하기 위해 사브 군사항공(Saab Military Aircraft)과 에릭손 마이크로웨이브 시스템(Ericsson Microwave Systems)사를 경쟁자이던 볼보 항공회사(Volvo Aero Corporation)와 묶어 컨소시엄인 인두스트리그루펜 야스 주식회사(Industrigruppen JAS AB)를 구성하는 데 선뜻 동의한다.

    1999년 양산에 들어간 이후 그리펜 전투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출판로를 개척하고 체코 및 헝가리 공군과 임대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성공적인 전투기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웨덴은 이미 드라켄 전투기를 덴마크, 핀란드, 오스트리아에 수출한 경험이 있고, 비겐 전투기 역시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를 대상으로 판촉활동을 벌인 바 있다. 이러한 전투기 수출의 막후에 발렌베리 가문의 국제 커넥션이 총동원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0년까지 스웨덴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경제 덕분에 노사관계가 안정됐지만 유럽 경제의 불황은 발렌베리 가문의 다국적 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은 유럽통합의 조류에 휩싸이면서 종전의 임금 공동협상 틀이 깨졌고 노동시장이 동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무렵부터 에릭손이 휴대전화 시장 경영실적에서 노키아와 삼성에 처지게 되는데 이것은 발렌베리 가문의 고민 가운데 하나다. 2000년대 초반 스웨덴을 IT국가로 자리매김한 성공적인 기업 에릭손은 이제 소니와의 협력을 통해 경영위기를 타개하려고 애쓰고 있다.

    ‘자금줄’ SEB, ‘브레인’ 인베스토

    발렌베리 그룹의 기업이나 상품에는 흥미롭게도 ‘발렌베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대신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토를 통해 유수한 다국적 기업을 거느린다. 2004년을 기준으로 인베스토의 총 자산가치는 1160억7400만 스웨덴크로나(한화 149조6353억원)로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과 월마트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뿐만 아니라 인베스토의 주식가치는 2004년 한 해 동안 전년보다 23% 이상 높아졌다. 이런 경이적인 성장률은 스웨덴의 가족경영 업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삼성의 벤치마크 스웨덴 ‘발렌베리家’

    발렌베리 그룹을 이끄는 사람들. 왼쪽부터 피터 발렌베리 인베스토 명예회장, 마르쿠스 발렌베리 인베스토 회장 겸 CEO,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토 사장.

    현재 발렌베리 가문의 대부(代父)에 해당하는 이는 창업주의 증손자인 피터 발렌베리 1세다. 1997년 이래 인베스토의 명예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피터 발렌베리는 1926년 출생했으며, 1982년부터 1997년까지 인베스토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발렌베리 가문이 운영하는 두 개 재단 가운데 하나인 크누트 알리스 발렌베리재단 회장과 아틀라스 콥코(Atlas Copco AB)사의 명예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피터 발렌베리는 발렌베리 가족 중에 인베스토 주식의 대부분인 125만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대신 계열사의 지배권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토가 행사하는데, 인베스토는 발렌베리 가문의 2개 재단이 지배한다. 발렌베리 그룹의 중대결정은 인베스토와 두 재단 사이에서 이뤄진다. 두 재단은 스웨덴 국내의 과학기술 연구비를 집중 지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럽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를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며, 발렌베리 그룹의 제조업체들은 장기 연구개발의 결실로 국제 경쟁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다른 재벌기업처럼 시장점유율을 높임으로써 이윤확대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연구개발을 통한 재투자로 기술혁신을 꾀하는 데 주력하는 발렌베리 그룹의 성향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SEB가 발렌베리 그룹의 자금줄이라면 인베스토는 발렌베리 그룹의 브레인이다. 피터 발렌베리 1세의 조카이자 5세대에 해당하는 마르쿠스 발렌베리(1956년 생)가 인베스토 사장을 맡고 있으며, 피터의 아들이자 역시 5세대인 야콥 발렌베리(1956년생)는 그룹의 모(母)기업인 SEB 사장직에 있다가 인베스토 회장으로 취임했다. 동갑내기 사촌간에 회장과 사장을 맡아 권력암투가 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이에 대해 야콥 발렌베리 회장은 한 비즈니스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누가 상급자고 누가 하급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함께 일하면 훨씬 더 강해진다”고 답한 바 있다.

    경제분석가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물려받은 기업을 훨씬 더 키워놓지는 못했지만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발렌베리 그룹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사회 12명 가운데 인베스토 명예회장과 최고경영진 등 세 명이 발렌베리 가문의 일원인 셈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금융업에서 출발해 국가 전략산업인 전자, 엔지니어링, 원자력, 자동차, 항공, 정보산업에 이르는 11개 핵심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핵심기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스톡홀름에 있는 인베스토 본사. 본사에는 분석담당, 재무담당, 임원진이 근무한다. 계열사 대부분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인정받았다.

    발렌베리 그룹 산하 기업은 크게 네 분야로 나뉜다. 우선 기술집약 분야에는 에릭손과 사브, WM데이터가 있다. 의료 분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감브로, 엔지니어링 분야에는 아틀라스 콥코와 아베베(ABB), 스카니아, 엘렉트로룩스가 포진해 있다. 끝으로 금융분야에서는 SEB와 오엠엑스(OMX)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발렌베리 가문의 사업 중 하나인 호텔과 연회 부분이다. 1874년 개업한 스톡홀름의 그란드호텔은 건물 자체가 국가 문화재로 간주될 만큼 설계가 뛰어나다. 그란드호텔의 지명도는 이 호텔이 노벨상 수상자들이 묵는 곳이라는 사실로도 금방 알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이 호텔업을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명사들과 커넥션을 만드는 장으로 삼기 위해서다. 인맥 형성과 관리가 사업 성공의 주된 요소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간파해왔음을 알 수 있다.

    빌더버그 그룹과 ICC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기업가들과 친분을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국제적 역할이 있는 셈이다. 발렌베리 가문 또한 자국 외교에 직접 관여하는 이탈리아의 피아트 그룹처럼 사업 커넥션을 이용해 각국의 중요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가운데서도 발렌베리 그룹은 빌더버그 그룹과 국제상공회의소(ICC·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를 통해 각국 기업가나 정치인과의 대화채널을 열어놓는 일에 꾸준히 힘을 쏟고 있다.

    유럽통합, NATO의 미래, 러시아와 중국의 변화 등 세계 주요 이슈를 의제로 삼는 빌더버그 그룹은 서방의 정치인, 기업가, 주요 왕실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모임으로, 그 영향력은 세계 어떤 조직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빌더버그 그룹은 1954년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주요 국제 문제를 토론하고 그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빌더버그 그룹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를 하나의 정부로 모아 나가겠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빌더버그 그룹은 유럽통합을 가속화한 막후세력이기도 하다.

    빌더버그 그룹의 참석자는 회의 중 다른 참석자가 한 발언에 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소위 ‘채텀하우스 룰(Chatham House Rule)’을 준수한다. 회의 의제와 대략의 내용이 간단한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될 뿐이다. 회의가 열리기 전 주최국의 정보요원들은 회의장소에 도청방지 시스템을 가동하고 참석자들에 대해서는 국빈급 경호를 한다.

    발렌베리 가문에서는 SEB의 야콥 발렌베리 회장이 빌더버그 그룹의 멤버다. 스웨덴이 빌더버그 그룹의 주된 모임장소인 것만 봐도 빌더버그 그룹에서 발렌베리 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차세대 정치 엘리트를 발굴, 후원하는 것도 빌더버그 모임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인 예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취임 전 이 모임에 초청연사로 참석한 적이 있다. 또한 유럽연합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로마노 프로디, 전 NATO 사무총장 조지 로버트슨, 유럽은행 총재 빔 뒤센버그가 모두 빌더버그 그룹의 일원이었다. 이렇듯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빌더버그 그룹의 비밀모임은 음모와 신자본주의의 기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빌더버그 그룹과 함께 발렌베리 가문이 힘을 쏟는 모임으로는 ICC가 있다. ICC는 유엔 및 각국 정부조직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어 막강한 국제적 압력단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뿐만 아니라 ICC를 통한 커넥션은 어떤 커넥션보다 공신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빌더버그 그룹이 극소수의 제한된 국제 저명인사들의 사조직이라면, ICC는 정상적 국제통상을 저해하는 해상범죄, 상업범죄 등을 없애는 데 주력하며, 기업경영을 뛰어넘은 영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ICC 부회장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인베스토 사장은 2007~08년에 회장직을 맡을 예정이다.

    이미 발렌베리 일가는 ICC 회장을 두 차례 맡았다. 마르쿠스 발렌베리의 할아버지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1세와 현재 인베스토의 명예회장인 피터 발렌베리 1세가 1965~67년과 1989~90년에 각각 ICC 회장을 역임했다. 한 재벌가에서 ICC 회장을 세 번 배출한 것은 발렌베리 집안뿐이다.

    이유 있는 차등의결권

    발렌베리 가문이 여러 명의 외교관을 배출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창업자의 아들인 크누트 발렌베리는 스웨덴의 외무장관을 역임했고, 4세대인 라오울 발렌베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헝가리 내 유대인을 스웨덴으로 탈출시키는 공을 세웠다. 라오울 발렌베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및 연합군 권력핵심과 막후협상을 벌였던 야콥 발렌베리 1세와 마르쿠스 발렌베리 2세의 5촌 조카다.

    삼촌인 야콥의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라오울은 헝가리계 유대인 사업가 콜로만 라우어를 만나 친분을 쌓고, 1944년 집단수용소로 압송될 처지에 놓인 유대인 2만여 명을 스웨덴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라오울은 전쟁 말기 소련군에 체포됐다 행방불명된 상태. 그러나 라오울의 인도주의적 무용담은, 훗날 야콥 1세와 마르쿠스 2세가 수용소에서 학살된 네덜란드 유대인으로부터 나치가 빼앗은 재산을 처분하는 데 SEB를 통해 협력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퇴색했다.

    마크쿠스 발렌베리 현 인베스토 사장의 고문을 맡고 있는 에릭 벨프라게가 전통 외교가문 출신인 것을 제외하면, 현재 발렌베리 가문 인사 가운데 외교관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외교관을 둘 필요가 없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빌더버그 그룹과 ICC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가문의 일원을 직업외교관으로 키울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발렌베리 가문의 막강한 영향력은 세계 정치의 막후 조종세력인 빌더버그 그룹과 전세계 기업가들의 모임인 ICC를 통해 형성된다. 두 조직은 공식 외교채널보다 효과적으로 스웨덴의 국익을 대변할 뿐 아니라 발렌베리 그룹의 사업에 유리한 인맥 형성의 장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발렌베리 가문은 인구가 1000만 남짓에 불과한 자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발렌베리 가문의 이러한 외교적 역량은 삼성의 대선(大選) 자금 문제로 낙마한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정치 무대에 진출하려 했던 것과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어 시선을 끈다.

    이처럼 5세대에 걸쳐 확고한 경영세습을 해온 발렌베리 가문이지만, 한국의 재벌과는 경영방침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우선 능력 있는 인사를 그룹 전체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997년 인베스토 회장에 취임한 퍼시 바네빅과 2002년 취임한 클라에스 달벡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삼성의 벤치마크 스웨덴 ‘발렌베리家’

    1954년 네덜란드 오스터베크의 빌더버그 호텔에서 열린 빌더버그 그룹의 첫 회의. 그룹의 명칭은 호텔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이 국제정치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통로다.

    노동조합 대표를 중역회의 멤버로 임명하는 등 노조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경영에 참여토록 하는 면모도 삼성 등 한국의 재벌그룹과는 다르다. 발렌베리 그룹은 신규사업 진출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국민경제를 고려해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는 채널을 유지해왔다. 민주적 의사결정체계 속에서 진행되는 경영을 통해 국민경제에 공헌하고 있기 때문에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오너 일가에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발렌베리 가문의 지배권을 보장하고 있다. 차등의결권 주식이란 다른 주식에 비해 의결권은 높되 배당 등 경제적 이득은 제한하는 주식이다. 삼성이 발렌베리 가문을 벤치마크하려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 차등의결권에 있다. 발렌베리 가문 소유의 주식 1주가 일반 주식 1000주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갖는 이른바 ‘황금주’ 제도에 삼성은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설명했듯 발렌베리 그룹은 가족 소유의 재단과 인베스토를 통해 계열사 지배권을 행사한다. 2개 재단이 인베스토 전체 지분의 21%, 의결권 45.2%를 갖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자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는 장치로 차등의결권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엘렉트로룩스에 대한 인베스토의 지분은 5.3%에 불과하지만 실제 의결권은 22.4%에 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증여·상속 문제 한번도 없어

    시대적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업을 이끌어온 발렌베리 그룹의 150년 경영사는 단순한 기업 성공담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업에서 시작해 국가 기간산업을 주도하고 성공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발렌베리 그룹은 일반 기업처럼 이윤 추구에만 연연하지 않았다. 자국의 운명을 걱정해 발벗고 나서는 애국심과 노동자의 복지를 생각하는 건전한 경영철학, 그 뿌리가 되는 합리주의가 오늘날 건전한 가족경영의 표본을 만들어낸 것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인베스토를 통해 제조부문으로 사업을 다변화하고 장기적 투자를 통해 이익을 창출했다. 한국의 재벌처럼 유통업이든 식품이든 수익성이 보이면 어디든 투자하는 문어발식 투자를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중공업과 첨단제조 부문에 주력하는 특징 있는 포트폴리오를 펼쳐왔기 때문에 5개 계열사(에릭손, 엘렉트로룩스, 사브, ABB, 스카니아)가 모두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 발렌베리 가문의 독보적 국제 커넥션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발렌베리 그룹이 높이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단일그룹으로서 스웨덴 경제에 높은 집중도를 갖고 있음에도 증여나 상속에서 법률적인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제도적 감독과 감시장치가 철저해서가 아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발렌베리 가문의 사회적 책임감과 투명한 경영윤리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단면이 아니라 뿌리를 봐야

    근본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스웨덴의 깨끗한 정치풍토다. 정당은 선거자금을 모으려 기업주를 찾아다니지 않으며, 기업은 국책사업처럼 이윤이 보장되는 눈먼 사업권을 따기 위해 로비를 벌이는 불공정한 거래를 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재벌가는 지속되어온 반면 정당은 쿠데타와 같은 변혁을 거치며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함으로써 세습 재벌기업과 일관된 대화채널을 구축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재벌에 대한 태도와 정책이 변한 점도 스웨덴과 차이가 있다.



    스웨덴의 기업주들은 회사 이익금에 부과되는 높은 법인세를 마다하지 않는다.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부(富)의 사회환원’이라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복지사회를 지탱해온 것이다. 게다가 발렌베리 가문이 건전하게 기업활동을 해온 데에는 기업인이든 정치인이든 간에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의 특권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스웨덴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 했다.

    앞서 살펴본 모든 측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 발렌베리 그룹을 벤치마크하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이나 외교적 역량 같은 단면보다는 발렌베리 그룹의 위상과 명성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유지돼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와 함께 스웨덴 기업과 정당이 건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국내 정당들에도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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