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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아티스트’ 진영근의 문신 이야기

“조폭·연예인·운동선수·공무원…‘짜증나는 아픔’ 견뎌내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대요”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 사진·김성남 기자

‘타투 아티스트’ 진영근의 문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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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영웅들의 용 문신

패션 문신에 밀려 일본 스타일 문신이 점점 빛을 잃고 있다지만, 일본은 아직까지 문신에 관한 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문신의 역사’에 따르면 음지에 갇혀 있던 문신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 이후다. 그 무렵 일본에선 중국 소설 ‘수호지’가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번역서 안의 삽화가 일본에서 문신이 부활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 삽화 속에서 유명한 사진·노지심·무송 같은 영웅들이 대부분 일본풍의 용 문신을 하고 있었고, 오늘날 야쿠자의 문신도 상당 부분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문신은 영국 해군과 미국 선원을 통해 확산된다. 그리고 조폭을 통해 한국에도 ‘야쿠자 문신’이 유입된다. 진씨는 “일본이 문신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데 반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신을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폭이나 건달들이 무작정 야쿠자 문신을 따라 한 거예요. 야쿠자들은 나름대로 예술적인 미를 중시했는데, 우리나라 조폭이나 건달은 그냥 흉내만 낸 거죠.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바람에 우리나라 문신은 오랜 세월 제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문하생 제도가 발달해 타투 아티스트들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혀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다.



진씨는 문신을 교도소에서 ‘학습’했다. 강도죄를 짓고 복역 중이던 1979년,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은 조직폭력배와 같은 방을 썼다. 그는 조폭의 몸에 새겨진 잉어 문신이 멋있어 보여 이불 꿰매는 바늘로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렸다. 그가 호기심 반, 과시욕 반으로 아픔을 참으며 다리에 처음 새긴 문양은 장미. “장미는 당시 문신을 새긴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을 뿐 아니라,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초보자’들이 선호하는 문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문신을 시작한 1979년 무렵엔 용·잉어·하트·장미·거미줄 문양의 문신이 유행했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직접 문신을 새겨 넣으며 기술을 익힌 진씨는 이후 다른 수감자에게도 문신을 해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문신을 업으로 삼은 건 1997년이다. 20대 중반에 교도소에서 나온 뒤 취미 삼아 바늘로 지인들에게 문신을 해주긴 했지만, 그는 횟집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외환위기 한파에 횟집 문을 닫게 되자 직업인으로서 문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수작업’으로 문신을 하던 그는 본격적인 영업에 앞서 의정부 미군부대를 통해 문신용 기계를 구입했다.

고통 뒤에 찾아오는 자신감

“우리나라 타투 아티스트들은 모두 가난해요. 최소한 밥은 먹고 살 수 있어야 차분히 앉아 가르치고, 또 배울 수도 있을 텐데, 그 정도의 경제력이 안 되니까 문하생으로 들어왔다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려요. 더 큰 문제는 겨우 며칠동안 눈동냥으로 배운 것을 밑천으로 문신 작업을 한다는 거죠. 그러니 발전은커녕 악순환만 거듭하게 되죠.”

문신은 고통을 수반한다. 진씨는 그 고통을 ‘짜증날 정도의 아픔’이라고 표현한다. 억지로 오래 참다 보면 구토를 하기도 하고, 더러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한 번에 2시간 이상 문신을 새기지 못하도록 하고, 미국에서는 3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손바닥만한 그림을 ‘원 포인트(one-point)’라고 하는데 보통 2∼3시간 안에 그릴 수 있어 한 번에 끝나지만, 그보다 큰 그림은 한 번에 2∼3시간만 작업하고 일주일 후, 상처가 아물면 다시 찾아와 새기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등 전체에 새기는 커다란 문신은 6개월 이상 걸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간이 지켜지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진씨의 귀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신이 불법이기 때문에 타투 아티스트와 고객이 서로 못 믿는 거죠. 타투 아티스트는 고객이 돈을 안 주고 도망갈까 봐 무리해서라도 한 번에 작업을 끝내려고 하고, 고객은 타투 아티스트가 돈만 받고, 문신을 다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망갈까 봐 장시간 고통을 참는 경우가 종종 있죠. 사실 실력이 달려서 문신을 새기다 엉망이 되는 바람에 줄행랑을 놓는 타투 아티스트도 있어요.”

진씨는 한국 사람들은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자’는 습성이 있어 7∼8시간까지 꾹 참고 몸에 문신을 새기는 사례도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신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프로이트 주의자들은 문신을 하는 이들이 얼마쯤은 마조히스트이고, 또 얼마쯤은 사디스트라고 했다. 진씨는 “일단 고통을 이겨내고 문신을 하면 앞으로 어떤 험난한 일이 있더라도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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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 사진·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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