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X맨’에 대한 고찰

독설, 배신, 맞짱, 싸가지…신세대 코드 넘쳐나는 권위 파괴의 현장

  • 이승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jda@donga.com

    입력2006-01-13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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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맨’을 아십니까? ‘X맨’은 원래 돌연변이 인간들의 존재적 고민을 담은 할리우드 SF 영화의 제목입니다. 뭔가 의미심장하고 어두운 느낌이 묻어나는 이름이죠. 하지만 요즘 신세대에게 ‘X맨’은 총천연색 단어입니다. 발칙한 장난 혹은 게임을 연상시키는 단어라고 볼 수 있죠. 도대체 ‘X맨’은 무엇일까요.
    #‘X맨’의 정체는?

    ‘X맨’에 대한 고찰
    ‘X맨’은 최근 신세대와 누리꾼(네티즌) 사이에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 오락 프로그램의 코너 이름입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SBS에서 방영되는 ‘일요일이 좋다’란 프로그램의 전반부에 해당하죠. ‘본격 심리추리극’이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이 코너는 ‘X맨’이란 이름으로 숨어 있는 스파이 한 명을 색출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16명의 남녀 연예인이 8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각종 댄스와 게임으로 승부를 가르는 ‘X맨’은 과거 연예인이 출현하는 게임 프로그램이던 ‘명랑운동회’ 형식에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강호동의 천생연분’(MBC)의 성공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을 이종 교배해 탄생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자신들 내부에 숨은 1명의 스파이를 찾아내는 ‘미스터리’의 서사적 장치를 끌어왔죠. ‘X맨’으로 지목된 연예인은 표 안 나게 게임에서 지거나 자기 편에 불리한 행동을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죠.

    당초 ‘X맨’은 2003년 11월 시작된 SBS 오락 프로그램 ‘실제상황 토요일’의 한 코너인 ‘X맨을 찾아라’로 출발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인기에 가속도가 붙자 ‘X맨’이라는 독립된 이름을 내걸고 2004년 10월부터 같은 방송사의 ‘일요일이 좋다’란 프로그램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죠. 하나의 인기 코너가 프로그램을 갈아타면서 확대 재생산되며 명맥을 이어가는 희한한 경우입니다.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이 코너의 인기에 힘입어 ‘일요일이 좋다’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MBC 간판 오락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누르고 20%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조사에선 ‘네티즌이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 1위에 오를 만큼 신세대 사이에선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중·고생들은 교실에서 이 코너의 형식을 장난스럽게 빌려온 ‘X맨 놀이’를 하느라 난리고, ‘X맨’은 인기를 얻고자 하는 연예인이라면 자신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프로그램이 되어버렸죠. 신세대로부터 ‘연예인 종합 선물세트’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이 코너는 다양한 유행어와 신조어의 진원지로 지목받을 만큼 신세대의 ‘언어세계’를 지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X맨’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돼버렸고 심지어 ‘사건’을 지나 이젠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큼 신세대와 기성세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면서 다양한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죠. 자, 그럼 ‘X맨’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메가톤급 말폭탄, ‘당연하지’

    ‘X맨’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게임은 단연 ‘당연하지’입니다. ‘당연하지’는 거두절미하고, ‘연예인 말싸움’입니다. 연예인 두 명이 서부의 총잡이처럼 마주보고 선 뒤 독설(毒舌)의 총알을 날리는 게임이죠.

    2004년 5월 ‘X맨’에 긴급 수혈된 이 게임은 1년6개월이 넘도록 롱런하면서 찬사와 비난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비수 같은 한마디를 던지면 상대는 어떤 모욕을 당하든 일단 “당연하지!”라고 수긍한 뒤 상대를 역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죠. 이 과정에서 상대의 시선을 피하거나, 대답을 못하거나, 질문을 하지 못하거나, 웃거나, 얼굴이 뜨거워지면 진행자(개그맨 유재석)로부터 가차 없이 패배를 선언당합니다. 여기서 ‘당연하지’ 첫 회를 다시 볼까요?

    유경미 아나운서 : “너, 바람둥이지?”

    개그맨 강호동 : “당연하지! 네 선배 중에 윤 아나운서라고 있지. 걔 성질 더럽지?”

    유경미 : “당연하지! 너, 하루에 열 끼 먹지?”

    유 아나운서의 승리로 끝난 이 대결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이어진 그룹 ‘쥬얼리’의 멤버 이지현과 유 아나운서의 대결은 시청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듭니다. 놀라지 마세요.

    ‘X맨’에 대한 고찰
    유 : “언니, 화장발이지?”

    이 : “당연하지! 너, 눈 수술했지?”

    유 : “당연하지! 언니는 코도 했지?”

    이 : “당연하지! 너, 무좀 있지?”

    유 : “당연하지! 언니는 치질 있지?”

    이 : “당연하지! 너, 속눈썹 떨어진 거 알지?”

    실로 ‘여자 잡는 게 여자’란 속설을 여지없이 증명해주는 흠집 내기 한판이었습니다. 종국엔 “너, 발냄새 나지?”라는 이지현의 송곳(?) 같은 한마디를 끝으로 팽팽하던 대결은 막을 내렸죠. 이때부터 이지현은 ‘당연하지’로 이름을 날리며 ‘퀸 오브 당연하지’란 별칭을 얻었죠. 그의 주특기는 상대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거나 상대의 약점을 정면으로 들춰내는 것입니다.

    “너, 화장실 변기 막힌 적 있다며?”(그룹 ‘베이비 복스’ 출신 윤은혜에게)

    “너, 여자만 보면 ‘전진’하지?”(그룹 ‘신화’ 멤버 전진에게)

    “너, 근육은 키웠는데 쓸 데가 없지?”(그룹 ‘터보’ 출신 김종국에게)

    이후 이지현은 “말발이 환상적이다” “언니, 싸가지 없는 모습이 진정 매력적이에요” 등의 각종 찬사(?)를 들으며 급부상했습니다. 이 코너에서 그녀가 보여준 ‘싸가지’ 없는 공격들은 모두 알알이 모아져 ‘퀸 오브 당연하지 어록’이란 간판을 달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죠. 특히 가수 윤은혜와의 대결은 마치 머리끄덩이를 잡고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벌이는 여자들의 모습이 포개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지현은 앞니가 유난히 크고 몸집이 큰 윤은혜의 외모를, 훤칠한 윤은혜는 키가 작은 이지현의 키를 ‘밥’으로 삼았습니다.

    이 : “너, 앞니 귀여워 보이려고 일부러 심은 거지?”

    윤 : “당연하지! 너, 놀이기구 탈 때 키 제한받지?”

    이 : “당연하지! 너, 수영장 가서 물에 떠보는 게 소원이지?”

    윤 : “당연하지! 너, 지프는 높아서 못 타지?”

    이 : “당연하지! 너, 얼마 전엔 이빨로 기차까지 끌었다며?”

    윤 : “당연하지! 넌 아직도 분유 먹는다며?”

    이 : “당연하지! 넌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도 밥 먹는다며?”

    결국 위태롭던 두 여자의 대결은 이지현의 승리로 끝났고 이지현은 ‘퀸 오브 당연하지’의 자리를 늠름하게 지켜냈죠.

    이런 인신공격이 점차 문젯거리가 되자 ‘당연하지’ 코너의 폐지를 주장하는 인터넷 카페 모임이 생길 정도로 안티 세력을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씨름 천하장사 출신으로 이 코너의 보조 MC를 맡고 있는 강호동에 대해 퍼부어진 ‘한마디’들은 적나라한 인신공격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너, 얼굴에 뽕 넣었지?”(김원희)

    “네 오줌보로 애들이 축구하지?” “너, 남 웃기려고 살찌지?”(공형진)

    얼마 전 ‘카지노바 도박사건’으로 연예활동을 중단한 그룹 ‘컨츄리 꼬꼬’ 출신의 신정환도 “너, 어깨가 점점 좁아진다며?” “너, 폴라티 입으면 목 부분이 어깨에 걸쳐진다며?” 하면서 어깨가 좁고 얼굴이 큰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들춰내는 독설을 웃음으로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 까무잡잡한 피부에 터프한 여성 이미지를 지닌 그룹 ‘샤크라’ 출신 황보는 “너, 흑설탕으로 팩했냐?” “너, 상반기 예비군 훈련 갔다 왔냐?” 같은 직격탄을 맞아야 했습니다.

    당장 상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모자랄 만큼 가슴을 찢어놓는 말들이 오가는, 이 보고 듣기에도 민망한 코너에 신세대는 왜 열광할까요.

    #싸가지 없는 건 너무 멋져!

    ‘X맨’에 대한 고찰

    ‘X맨’은 남녀 연예인이 편을 가르고 각종 게임과 댄스로 승패를 가르는 오락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연예인 짝짓기와 스파이를 찾아내는 미스터리가 더해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신세대는 연예인들의 ‘싸가지 없는’ 모습 자체를 아침 햇살처럼 신선하게 받아들입니다. 또 그 ‘싸가지 없음’을 즐겁게 소비합니다. 과거 연예인은 자랑거리만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멋있고 예쁜 왕자나 공주 같은 꿈과 환상의 이미지로 가꿔왔죠. 가수 서태지처럼 몇년 만에 한 번씩 얼굴을 ‘짠’하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신비주의를 구사하면서 대중 위에 ‘군림’하려 했던 스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런 수직적 관계보다는 내 친구 같고 오빠나 누나 같은 친근함에서 오는 일종의 수평적 관계에 신세대는 흥미를 느낍니다.

    그들은 마치 나와 같은 ‘민간인’에 속할 것 같은 ‘친근함’, 나 못지않게 많은 결점을 갖고 있을 것 같은 ‘결핍성’, 남의 흠도 잡고 비난할 줄도 아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연예인에게 심정적으로 기운다는 것입니다. ‘싸가지 없는’ 연예인의 모습은 그만큼 솔직담백한 인간의 냄새로 다가옵니다.

    (혹시 ‘올짱’을 아십니까. ‘모든 것’을 뜻하는 ‘올(All)’이란 단어와 ‘최고’란 뜻으로 ‘몸짱’ ‘얼굴짱’ 등으로 사용되는 ‘짱’이란 말이 합쳐진 신세대의 신조어입니다. 주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빈이나 영화 ‘B형 남자친구’의 이동건과 같은 남자 배우들을 지칭한다고 하네요. 신세대가 지칭하는 ‘올짱’이 뭐냐고요? 얼굴 잘생기고 몸도 좋고 키도 크고 학벌도 좋고 집안도 좋고 돈도 있는 그야말로 ‘모든 걸’ 갖춘 남자이지만, 단 하나는 꼭 없어야 한다네요. 그건 바로 ‘싸가지’입니다. 신세대는 잘나고 싸가지 없는 남자에게 진한 매력을 느낀다는 거죠, 믿거나 말거나!)

    신세대는 연예인들이 서로 험담하고 깎아내리면서 ‘별’이 공공연하게 가졌던 권위가 산산조각 나는 모습에서 일종의 쾌감을 얻습니다. 또 나이차가 얼마든 상대를 무조건 ‘너’라고 불러야 하는 ‘당연하지’ 코너의 규칙은 나이나 선후배 관계를 따지기 귀찮아하고 심지어 이를 고루하게 여기는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당연하지’에서는 ‘신화’나 ‘동방신기’ ‘쥬얼리’처럼 한 그룹을 이루는 멤버들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쥬얼리’의 멤버 박정아와 이지현은 상대의 외모나 나이를 정면으로 들먹이면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박 : “너 때문에 우리 팀 평균 신장이 낮아진 거 알지?”

    이 : “당연하지! 언니 때문에 우리 팀 평균 연령이 높아진 것도 알지?”

    신세대는 이런 자중지란을 보면서 ‘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 권위를 스스로 깨뜨려버리는 멤버들의 모습에 열광하죠. 역시 옛말 틀린 것 하나 없습니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다!

    #너 죽고 나 살기, 신세대 ‘배틀’ 문화

    사실 ‘당연하지’ 코너는 형식 면에서 볼 때 청소년층에 깊이 침투해 있는 흑인 힙합 문화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바로 ‘배틀(Battle) 문화’라고 할 수 있죠. 전세계 힙합계를 휩쓴 백인 래퍼 에미넴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 자신의 성장과 출세 과정을 그려낸 영화 ‘8마일’에는 ‘배틀’이라는 독특한 경쟁방식이 등장하죠. 무대에 나온 두 사람이 1대 1로 랩 대결을 펼칩니다. 서로 상대가 던진 랩을 이어받아 랩으로 반격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서바이벌 게임이죠. 이기지 못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배틀’의 대결 형식은 짜릿한 승부의 쾌감을 안겨줍니다.

    ‘당연하지’에는 바로 이런 ‘배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1대 1 맞짱을 뜨는’ 형식이죠. 신세대에게 ‘리그전’이란 무의미합니다. 평균점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번이라도 지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게 현실인데 말입니다. ‘당연하지’는 아무리 평소 모의고사 성적이 우수해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단 한 번의 ‘배틀’에서 패배하면 그것으로 마지막인, 벼랑 끝 삶을 살고 있는 청소년의 뿌리깊은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이브리드 연예인’의 탄생

    ‘X맨’에 대한 고찰
    이 밖에도 ‘X맨’은 한국 연예계에 아주 뚜렷한 족적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건 바로 ‘하이브리드(hybrid) 형 연예인’을 탄생시켰다는 점입니다. 하이브리드 연예인, 한마디로 ‘잡탕 연예인’이란 뜻이죠.

    기존 연예인들은 일종의 프로페셔널이었습니다.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최고고,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인정받았으며, 코미디언은 남을 잘 웃겨야 살아남았죠. 하지만 ‘X맨’은 이런 연예인의 ‘전공’ 경계를 여실히 무너뜨렸습니다. 이른바 ‘방송인’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 혼합’ 연예인을 대거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컨츄리 꼬꼬’ 출신의 신정환, 그룹 ‘NRG’ 출신의 천명훈, 그룹 ‘코요테’ 출신의 김종민입니다. 이들은 모두 가수 출신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새로운 명함을 부여받았죠. 이들은 코미디언 뺨치는 재치 있는 입담과 순발력을 보여줬고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도대체 본업이 무엇인지 헷갈릴 만큼 노래를 잘 부르지 않거나 심지어 노래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그 이름도 애매모호한 ‘방송인’이란 이름으로 성가를 높이고 있죠. 하긴 요즘은 ‘전문가’보다는 ‘만능인’을 요구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깊이’보다는 ‘넓이’를 중요시하는 사회이니까 말이죠.

    특히 천명훈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삼체’라고 하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고 유통시켰습니다. 말끝마다 ‘∼하삼’ 하고 끝내는 말하기 방식이죠. 예를 들어 “너 공부했삼?” “한번만 살려주삼!” “너 너무 예쁘삼” 하는 식입니다. ‘하삼체’는 사실 어떤 논리적 근거나 개연성도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유포됐습니다. 그래서 ‘하삼체’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인기로 말미암은 ‘근영체’(말끝마다 “아, 그랬근영” 하며 ‘근영’으로 끝내는 방식)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한 ‘삼순체’(“뭐 하삼순?” 하면서 ‘삼순’으로 종결하는 방식), 그리고 대니얼 헤니의 인기로 비롯된 ‘대니얼체’(“어젠 뭐 했다니엘?” 하면서 ‘다니엘’로 끝마치는 방식)에 이어 2005년을 화려하게 빛낸 유행어로 기록됐습니다.

    #스타의 ‘밥벌이’ 필수 코스

    ‘X맨’은 스타 탄생의 메카이자, 스타 탄생의 고속도로입니다. ‘X맨’에 출연한 연예인은 대부분 가파른 인기 상승곡선을 그리며 벼락출세를 했습니다. 그룹 ‘점프’로 활동 중인 하하는 “넌 너무 순종적이야” “네 얼굴은 너무 이기적이야” 하는 ‘적이야체’를 대유행시키면서 이 프로그램을 장악했습니다. 신인배우 온주완도 상대의 가슴을 찌르는 독한 ‘말발’로 유명해졌죠.

    신인 여배우 장희진은 ‘미소 천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력을 한껏 발산했으며, 신세대에겐 ‘원로’나 다름없던 개그맨 지상렬과 박명수 또한 상대에게 호통을 치면서 웃기는 이른바 ‘호통 개그’를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쌍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박준규는 41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엽기적인’ 말발과 행동을 보여주면서 ‘젊은 오빠’로 새로이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리면 당장 인터넷 검색순위 1위로 오릅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검색순위 1위 연예인’이란 칭호는 (추문이나 범법행위 때문이 아니라면)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CF 출연을 제의받을 공산이 크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밥벌이’를 위해 ‘X맨’은 필수적이란 얘기죠. 연예기획사들은 주로 댄스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는 형식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소속 연예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별도의 안무가를 두고 춤 연습을 시키는가 하면, ‘당연하지’ 예행연습을 통해 순발력을 훈련하기도 합니다. 그룹 ‘HOT’ 해체 이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가던 장우혁은 이 프로그램에서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압도적인 춤 실력을 선보이면서 재기에 ‘완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X맨’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그룹 ‘베이비 복스’ 출신 윤은혜와 그룹 ‘터보’ 출신 가수 김종국입니다. 윤은혜는 이 프로그램에 1년 가까이 출연하면서 인생이 뒤바뀐 케이스입니다. 사실 ‘베이비 복스’의 활동이 시들해지면서 연예활동에 위기를 맞은 윤은혜는 ‘X맨’을 통해 최고 인기스타 자리에 등극하면서 ‘로또 당첨’ 뺨칠 만한 인생 역전을 이뤘습니다.

    그는 주로 힘으로 승부하는 게임에서 동료 여자 연예인은 물론 남자 연예인까지 제압했습니다. 진행자들로부터 ‘소녀 장사’ ‘장딴지 소녀’ 혹은 ‘힘꾸러기’ 등의 별난 칭호를 얻었습니다. 내숭 떨면서 힘이 약한 체하는 ‘꼴불견’ 연예인들에 식상한 시청자들은 있는 힘을 다해 상대를 힘으로 밀어붙이고, 심지어 ‘성 대결’도 거뜬히 이겨내는 윤은혜에게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포스트 모던 연예인’의 탄생

    ‘X맨’에 대한 고찰

    ‘X맨’에선 출연자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반드시 춤을 춰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연예 기획사에선 소속 연예인에게 별도의 춤 연습을 시키기도 한다.

    이런 벼락 인기에 힘입어 윤은혜는 내년 초 방영예정인 MBC 드라마 ‘궁’에서 주인공인 왕세자비 역을 대번에 꿰찼습니다. 연기 경험이 일천한 그녀를 일거에 발탁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지만, 알고 보면 윤은혜는 이미 확고하게 굳은 스타 배출의 새로운 통로를 경유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윤은혜는 그룹 ‘신화’ 출신의 에릭, 김동완, 앤디나 그룹 ‘핑클’ 출신의 성유리처럼 ‘일단 노래로 뜬 뒤 가수로 시들해질 무렵 오락프로그램에 집중 출연해 각종 ‘개인기’를 보여줌으로써 인기의 외연을 넓힌 뒤 각종 CF에 출연해 수입을 챙기고 드라마나 영화로 옮겨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일종의 성장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동방신기’와 라이벌 격인 신세대 그룹 ‘SS501’의 미남 멤버 김현중 또한 ‘X맨’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잘생긴 얼굴을 알리면서 곧바로 KBS 2TV 시트콤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에 출연하게 됐죠(참, 김현중은 청소년들 사이에 ‘걸조 김현중’으로 불립니다. ‘걸조’는 ‘걸작 같은 조각’의 약자라고 하네요. 그리고 ‘SS501’은 ‘에스에스 오공일’이 아니라 ‘더블 에스 오공일’로 읽어야 합니다. ‘에스에스 오공일’로 읽는 순간 ‘구세대’로 찍힌다고 하는군요. 마치 1990년대에 ‘HOT’를 ‘에이치 오 티’로 읽지 않고 ‘핫’으로 읽으면 ‘아저씨’ 취급을 당했던 것처럼요).

    김종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X맨’을 통해 ‘신세대 근육맨’으로 확실하게 이미지를 새겼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그의 울퉁불퉁한 몸매와 무지막지한 체력은 건강하면서도 건전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죠. 그의 이런 인기에 힘입어 2005년 6월에 발매한 그의 3집 앨범은 ‘사랑스러워’ 등 여러 곡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윤은혜와 김종국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공교롭게도 노래실력이 아니라 ‘힘’인 셈이죠. 이 둘은 ‘X맨’에서 일종의 의사(擬似) 스캔들(실제로는 사귀는 게 아니지만 서로 마음이 있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방식)을 만들어내면서 ‘천하장사 커플’이란 이름까지 얻고 동반상승했습니다.

    #‘X맨’은 ‘무의미 시(詩)’?

    그런데 윤은혜와 김종국에게선 신세대가 열광하는 새로운 연예인상의 전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포스트 모던’형 연예인입니다. 상반된 이미지가 한데 모여 있는 기괴한 그들의 모습에 열광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윤은혜는 눈이 크고 몸매는 ‘쭉쭉빵빵’으로 ‘미녀’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죠.

    김종국 역시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를 자랑하지만 ‘모기 목소리’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가늘고 높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김종국의 ‘한 남자’나 ‘사랑스러워’ 같은 히트곡은 여성이나 부를 법한 고음역을 자랑합니다). 울퉁불퉁한 가슴, 왕(王)자가 뚜렷이 새겨진 우람하고 마초적인 보디 라인을 가진 김종국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오오, 네가 나의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기다림이 즐겁고 이젠 공기마저 달콤해, 이렇게 너를 사랑해”라는, 100% 소녀 취향의 간드러진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10대 청소년들은 짜릿하고 유쾌하게 소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시 목소리 내는 근육맨’ 이미지에서 신세대는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죠.

    이처럼 극과 극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연예인이 인기를 주도하는 새로운 연예인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에는 참 기기묘묘한 일이 곧잘 벌어집니다. 포털 사이트 지식검색 난에는 “역대 X맨이 누구였는지 제발 알려주세요”라는 애원에 가까운 주문이 뜨고 곧이어 “30분 넘게 정리한 것입니다”란 자화자찬성 코멘트와 함께 ‘1기 X맨 윤현진, 2기 X맨 토니 안, 3기 X맨 이범수, 4기 X맨 이진, 5기 X맨 앤디, 6기 X맨 김종민… 47기 X맨 채연, 48기 X맨 장우혁, 49기 X맨 김정민…’ 식으로 깨알같이 적힌 정답이 댓글 형식으로 덧붙여지죠.

    사실 몇 기 X맨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거나 어쩌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신세대에게 일종의 ‘무의미 시(詩)’ 같은 것입니다. 당장은 무의미한 것 같지만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 말입니다.

    역대 X맨의 명단은 그들에겐 시간낭비가 아니라 일종의 유쾌한 놀이이며, 역대 X맨의 이름을 일일이 찾아서 인터넷에 올리는 수고로움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존재 증명을 하게 되는 것이죠.

    #못생기면 끝?

    ‘X맨’에 대한 고찰

    신세대들은 표 안나게 자기 편이 게임에서 지도록 만든 역대 ‘X맨’ 명단을 작성해 공유하기도 한다.

    ‘X맨’에 대해선 그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과도한 인신공격성 발언, 과격한 게임(‘호이짜’ 신드롬을 만들어낸 개그맨 김기욱은 이 프로그램의 ‘단결, 말타기’ 게임에 참여했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돼 활동을 중단했습니다)에 대한 비판은 물론, ‘연예인 자기 홍보의 장’이라든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 같은 핑크빛 연애전선도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혹 제기까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X맨’은 적어도 하나만큼은 솔직한 것 같습니다. 어떤 남자 연예인도 못생긴 여자 연예인을 ‘대놓고’ 선택하는 법은 없으니까요. 과거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스캔들이 날까봐 두렵거나 ‘외모만 밝힌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기 싫어서 부담없이 생겼거나 털털한 성격의 상대를 일부러 골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X맨’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매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시청자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하나같이 외면해 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섹시한 여자 연예인 1명에게 4, 5명의 남자연예인이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일까지 심심찮게 발생하니까요. 하지만 늘 그렇듯 솔직함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배신자’ 찾기

    따지고 보면, ‘X맨’은 요즘 신세대의 집단심리를 기막히게 반영하고 있는 듯도 싶습니다. 어느 한 명을 집단으로 따돌림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만큼은 안전함을 증명받고자 하는 두려움의 심리가 ‘왕따’란 사회문제로 표출됐다면, ‘X맨’은 또래 집단 속에 누군가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걱정하는 의심의 산물일 수 있으니까요.

    요즘 중·고교 교실에는 ‘X맨 놀이’라는 게 유행입니다. 반장이 한 친구의 휴대전화로 ‘당신은 오늘 X맨입니다’란 문자 메시지를 몰래 보내면, 그 친구는 하루 종일 ‘스파이’가 되어 교실을 관찰하면서 ‘유난히 떠든 사람’ ‘학교에 이상한 물건을 가져온 사람’ ‘수업시간에 책상 밑으로 몰래 불온한 짓을 한 사람’ 등의 명단을 뽑아 반장에게 ‘보고’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고자질’의 최첨단 버전이라고 볼 수 있죠. 어쩌면 ‘X맨’은 편 갈라 싸우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 안의 배신자’를 걱정하는 집단적 공포를 상징하는 단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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