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명의 남녀 연예인이 8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각종 댄스와 게임으로 승부를 가르는 ‘X맨’은 과거 연예인이 출현하는 게임 프로그램이던 ‘명랑운동회’ 형식에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강호동의 천생연분’(MBC)의 성공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을 이종 교배해 탄생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자신들 내부에 숨은 1명의 스파이를 찾아내는 ‘미스터리’의 서사적 장치를 끌어왔죠. ‘X맨’으로 지목된 연예인은 표 안 나게 게임에서 지거나 자기 편에 불리한 행동을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죠.
당초 ‘X맨’은 2003년 11월 시작된 SBS 오락 프로그램 ‘실제상황 토요일’의 한 코너인 ‘X맨을 찾아라’로 출발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인기에 가속도가 붙자 ‘X맨’이라는 독립된 이름을 내걸고 2004년 10월부터 같은 방송사의 ‘일요일이 좋다’란 프로그램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죠. 하나의 인기 코너가 프로그램을 갈아타면서 확대 재생산되며 명맥을 이어가는 희한한 경우입니다.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이 코너의 인기에 힘입어 ‘일요일이 좋다’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MBC 간판 오락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누르고 20%에 달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조사에선 ‘네티즌이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 1위에 오를 만큼 신세대 사이에선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중·고생들은 교실에서 이 코너의 형식을 장난스럽게 빌려온 ‘X맨 놀이’를 하느라 난리고, ‘X맨’은 인기를 얻고자 하는 연예인이라면 자신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프로그램이 되어버렸죠. 신세대로부터 ‘연예인 종합 선물세트’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이 코너는 다양한 유행어와 신조어의 진원지로 지목받을 만큼 신세대의 ‘언어세계’를 지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X맨’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돼버렸고 심지어 ‘사건’을 지나 이젠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큼 신세대와 기성세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면서 다양한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죠. 자, 그럼 ‘X맨’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메가톤급 말폭탄, ‘당연하지’
‘X맨’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게임은 단연 ‘당연하지’입니다. ‘당연하지’는 거두절미하고, ‘연예인 말싸움’입니다. 연예인 두 명이 서부의 총잡이처럼 마주보고 선 뒤 독설(毒舌)의 총알을 날리는 게임이죠.
2004년 5월 ‘X맨’에 긴급 수혈된 이 게임은 1년6개월이 넘도록 롱런하면서 찬사와 비난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비수 같은 한마디를 던지면 상대는 어떤 모욕을 당하든 일단 “당연하지!”라고 수긍한 뒤 상대를 역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죠. 이 과정에서 상대의 시선을 피하거나, 대답을 못하거나, 질문을 하지 못하거나, 웃거나, 얼굴이 뜨거워지면 진행자(개그맨 유재석)로부터 가차 없이 패배를 선언당합니다. 여기서 ‘당연하지’ 첫 회를 다시 볼까요?
유경미 아나운서 : “너, 바람둥이지?”
개그맨 강호동 : “당연하지! 네 선배 중에 윤 아나운서라고 있지. 걔 성질 더럽지?”
유경미 : “당연하지! 너, 하루에 열 끼 먹지?”
유 아나운서의 승리로 끝난 이 대결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이어진 그룹 ‘쥬얼리’의 멤버 이지현과 유 아나운서의 대결은 시청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듭니다. 놀라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