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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음법칙 폐지론자 려증동 교수의 열변

“말글살이 뒤흔든 두음법칙, 남북 형제 성씨도 갈라놨다”

  •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국문학

두음법칙 폐지론자 려증동 교수의 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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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자의 뜻과 음은 ‘오얏 리’다. 으뜸소리가 바로 ‘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 ‘李源根’은 ‘리원근’이라고 읽고, ‘行李’는 ‘행리’라고 읽고 쓴다. ‘李’자가 앞에 나오든 뒤에 나오든 상관없이 똑같이 ‘리’로 쓴다. 북한이 1992년 3월 발행한 ‘조선말 대사전’을 보면 일본말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한 우리말로만 정리돼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이처럼 옛 으뜸말과 으뜸소리를 그대로 지켜 나가는 프랑스식 말글살이를 따르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은 남한뿐이다. 남한의 말글살이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것은 두음법칙이다. 글자 첫소리에 ‘ㄹ’과 ‘녀·니’가 오면 이를 ‘ㅇ’과 ‘여·이’로 바꿔서 쓰고 읽도록 한 것.

한글학자인 리숭녕씨가 이를 처음 주장했고, 리희승씨와 최현배씨가 이에 동조하면서 정해진 법칙이다. 자신의 이름을 ‘리승만’으로 고집했던 대통령도 결국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녀석’은 되는데 ‘녀자’는 안 된다. ‘년놈’은 되는데, ‘년세’는 안 된다. ‘놈’을 ‘옴’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도대체 뭐가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게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적인 우리의 말글살이 규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말글살이를 만든 세종대왕이 ‘녀자’ ‘년세’라고 썼던 것을 굳이 바꿀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으뜸소리 무시한 오류



엄연히 존재하는 으뜸소리를 사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합리적이다. 단적인 예가 한글로 한자자전을 찾을 때다. 한자자전에서 ‘女’자를 찾으려면 ‘녀’자로 들어가야 한다. ‘여’자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할 때 사용된 ‘리’는 한자 ‘理’다. 한자 첫소리의 ‘ㄹ’은 ‘ㅇ’소리로 표기하라는 두음법칙은 이 대목에서 뒤틀리게 된다.

리숭녕씨는 두음법칙을 쓰는 이유에 대해 ‘첫소리에 ㄹ소리를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리~리~리 자로~ 끝나는 말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우리가 흔히 먹는 ‘라면’이 있는데도 ‘羅’씨를 ‘나’씨로 표기하라는 이유는 또 뭔가.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두음법칙과 비슷한 예가 ‘쇠고기’라는 단어의 변형이다. ‘牛’의 으뜸소리는 ‘소’다. 필자는 ‘쇠고기’는 ‘철사고기’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니 으뜸소리를 써서 ‘소고기’가 맞다는 견해를 오래 전부터 피력해왔다. 그런데 한글학자 리희승씨는 “내가 자랄 때 쇠고기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을 표준으로 한다”면서 ‘철자법’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글학회는 리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를 ‘맞춤법’이라며 ‘쇠고기’로 표기하도록 권장했다.

그렇다면 ‘염소+고기’는 ‘염쇠고기’여야 하는 것 아닌가. 리씨가 고인이 된 지금도 ‘쇠고기’라는 표기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소고기’와 병용되고 있다. 또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는 여전히 쇠고기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들 중에 정육점에 가서 “쇠고기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리희승씨라면 몰라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으뜸소리를 표기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그들은 ‘Descartes’라고 표기하고 ‘데카르트’로 읽는다. 발음하거나 들을 때 ‘s’소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표기에서는 으뜸소리 ‘s’를 굳게 지킨다. 발음은 자유지만 표기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통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에스프리’라고 발음하면서 ‘esprit’로 표기해 ‘t’를 버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몇 사람의 학자에 의해 표기가 좌우되고 있다. ‘님’은 그대로 쓰면서도 ‘님금’은 읽기 불편하다고 ‘임금’으로 바꿔버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두음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집현전 7학사 하옥사건

이들 학자는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관련한 ‘세종실록’ 기록 중 일부다.

‘癸亥 12月,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이를 직역하면 “1443년 세종 25년 12월, 이 달에 왕이 친히 28자를 만들어 알렸다”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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