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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탐험의 원조 알렉산더 폰 훔볼트

과학적 발견’으로 안데스, 잉카 제국의 문을 열다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남아메리카 탐험의 원조 알렉산더 폰 훔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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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탐험의 원조 알렉산더 폰 훔볼트

남아메리카 탐험에서 돌아온 직후인 1806년에 그려진 훔볼트 초상.

어렵사리 보고타에 도착한 그들은 많은 이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신부이자 과학자, 천문학자인 호세 무티스는 훔볼트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자신이 평생 수집한 2만점의 식물표본을 흔쾌히 보여줬다. 말라리아에 걸린 봉플랑이 회복되기까지 그곳에서 두 달을 보내게 된 훔볼트는 기압계로 해발고도를 측정하는 등 잠시도 쉬지 않았다.

1801년 9월, 그들은 에콰도르의 키토를 향해 남하했다. 안데스 산맥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킨디오 고개를 넘는 데만 12일이 걸렸다. 연일 내리는 비와 대나무로 덮인 습지, 울퉁불퉁한 길로 신발이 찢겨 맨발로 걸어야 했다.

1802년 새해 첫날 적도를 통과하면서 그곳의 식물과 암석을 채집했다. 그후 반년 가까이 해발 2700m에 자리잡은 도시 키토를 거점으로 주변 산의 위치와 고도, 화산지형과 암석 성분을 조사했다.

키토를 출발한 지 2주 후 훔볼트는 안데스 산맥의 최고봉 침보라소에 도전한다. 일행이 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5907m까지 오르자 지원병 노릇을 하던 인디헤나(남미의 인디언)들은 더는 오르지 못하겠다며 내려갔다. 그곳의 산소량은 산 아래의 20%에 채 미치지 못했다. 좀더 오르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에 눈까지 펑펑 내리기 시작해 결국 등정을 멈춰야 했다. 며칠 전 굴러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치고, 악천후까지 겹친 상황에서도 훔볼트는 고산병 증세를 연구하는 한편 침보라소의 표고를 측정했다. 그가 측정한 높이는 6367m. 그때까지 알려진 6270m보다 더 높은 수치였다(현재의 표준높이는 6267m).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럽 전역은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라며 떠들썩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8848m)의 높이가 알려지기 전이었기에 훔볼트는 세계 최고봉을 측정하고 가장 높이 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의 등산 기록은 이후 30년간 깨지지 않았다.



美 제퍼슨 대통령과의 인연

훔볼트는 침보라소에서 내려온 뒤 에콰도르의 성곽도시 쿠엥카와 말라리아 특효약의 원료가 되는 기나나무 서식지로 유명한 로하, 태평양 연안의 트루히요, 아마존 상류의 마라뇬 강, 잉카제국 제2의 왕도이던 카하마르카 등을 거쳐 1802년 10월23일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 리마에 닿았다. 이 코스는 오래 전 잉카인들이 다니던 행로로 훔볼트는 여러 차례 이 행로를 따라 고고학적 발굴을 시도했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인디헤나와 야마(낙타과의 짐승), 지진과 쓰나미, 광산, 천연두 백신, 잉카인이 비료로 사용하던 바다새의 배설물 등에 대해 적혀 있다.

훔볼트는 리마에서 300마일 정도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북상 루트를 택했다. 멕시코로 가기 위해서였다. 1802년 크리스마스 이브, 리마의 외항 카야오에서 배를 탄 훔볼트 일행은 에콰도르 과야킬까지 해수 온도와 해류의 이동을 관찰하면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훔볼트는 해류의 안쪽과 바깥쪽의 온도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그것이 페루 내륙지역을 건조하게 만드는 이유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이 지역의 해류를 ‘훔볼트 해류’라고 부른다.

누에바 에스파냐 왕국(지금의 멕시코) 서해안의 항구도시(지금은 휴양도시로 더 알려져 있다) 아카풀코에 도착한 훔볼트 일행은 노새 21마리를 끌고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거기서 다시 멕시코 만 연안의 베라크루스로 이동하면서 멕시코 지형 단면도와 멕시코 지도를 그렸다. 그 지도에는 312개의 광산과 원주민 거주지, 캘리포니아로 이르는 길 등이 자세히 표시돼 있다.

유럽의 여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멕시코시티에서 그는 멕시코 지식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멕시코를 방문한 그 어느 누구보다도 훔볼트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이때 훔볼트가 멕시코의 자연과 인구, 원주민 거주지, 농업, 광산업, 제조업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정리해놓은 것이 ‘누에바 에스파냐 왕국지’다.

훔볼트가 2차 남미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수집품을 남겨둔 쿠바 아바나로 되돌아간 것은 1804년 3월19일이다. 그곳에서 두 달 가까이 지체한 그는 곧바로 유럽으로 가지 않고 미국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배에 승선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그는 그곳 과학자들을 만난 후 곧바로 워싱턴으로 달려가 제퍼슨 대통령 관저를 방문했다. 제퍼슨은 그를 환영하면서 사저나 만찬에 자주 초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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