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평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아찔한 소통의 즐거움

  • 손유경 아주대 강사·국문학 ogong326@dreamwiz.com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2/2
자기기만이라는 인간 특유의 본성에 대한 두 대담자의 지적도 흥미롭다. 인간의 뇌 발달 과정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가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있다는 최재천의 말에 도정일은 수호천사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자기와 세계가 마치 특별한 우호관계에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인다는 내용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불안정한 삶을 그래도 버텨내게 하는 건 바로 그 수호천사에 대한 자기 나름의 믿음 덕택일지 모른다. 나만은 영원히 병들지 않으리라는. 나만은 죽지 않으리라는. 이 대목에 이르면, 이 시대의 ‘행복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인간의 자기기만, 또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호천사 이야기의 마술적 변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무통문명’이라는 책에서 도래할 고통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현대인은 생의 기쁨까지 온통 고통의 예방에 저당잡히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통을 예방하는 일은 나에게서 고통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능성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의 말 그대로 가축의 안락함과 비애를 한몸에 짊어지게 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혹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철학자 강유원에게서 ‘두꺼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얇은 한지나 신문지라도 그걸 수십 장 붙여보세요. 그게 뚫리나.”

인류가 정치 사회 예술 등의 분야에 남겨놓은 여러 흔적을 DNA의 명령으로 볼 것이냐 문화적 명령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요약되는 생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립은 근원적인 문제에 가깝기 때문에 해답이 없다. 예컨대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두 대담자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쪽은 ‘방법론’ 자체의 비과학성을, 다른 한쪽은 비논리 고유의 ‘통찰’과 ‘설명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에서는 결국 유전자가 부처님 손바닥 아니냐?”라거나 “신화는 ‘구라’죠?”와 같은 불꽃 튀는 질문들은, 단순히 편견을 재확인하는 절차가 아닌 선입견을 깨 나가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또한 여러 개의 접점 때문일 것이다. 해답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수한 ‘설(說)’-도정일의 말대로 근원적인 질문에는 대답이 아닌 ‘설’만이 있을 뿐이다-을 여러 장 겹쳐놓은 종이는 웬만한 충격에도 잘 찢어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똑같아지면 다 죽는다”

공학적 우생학과 부시의 대(對)테러 전쟁의 공통점은 ‘두터운 세계’를 더는 가능하지 않게 한다는 점에 있다. “투명해서 좋은 것은 회계장부뿐”이라는 도정일의 말 속에 집약되어 있는 이 ‘두터운 세계’란, 다양성과 불균형과 모순을 모조리 걷어내기보다는 그것을 공존케 하는 세계, 신조차 들여다볼 수 없는 심연을 갖는 그런 세계를 뜻한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최재천이 소개하는 생태학의 ‘은신처 이론’ 또한 대단히 시사적이다. 생태학적 다양성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잡아먹히는 개체들에게 바로 숨을 곳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숨었다가 또 나오고 숨었다가 또 나오고 하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없앨 수가 없다는 것. 숨을 곳을 없애면 궁극에는 하나가 되고 그건 곧 도정일이 말하듯 “똑같아지면 다 죽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곧바로 생존의 문제가 된다.

‘대담’은 행복이 아닌 고통을, 하나가 아닌 여럿을,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얄팍함보다는 두터움을 자원화하는 방안에 관한 지혜를 모아본 책이다. 생물학과 인문학이, 과학과 신화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모순 속에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그 속에서 ‘두텁게’ 살아가는 일일 터이다. 종(種)의 획일화는 공멸의 지름길이라는 생태학의 경고는,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인문학적 지지로 통한다.

신동아 2006년 1월호

2/2
손유경 아주대 강사·국문학 ogong326@dreamwiz.com
목록 닫기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