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안규리 교수, 회한의 심경 토로

“그분은 모차르트, 나는 모차르트 음악 들려주는 일 맡았죠”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02-01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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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기세포 없다는 것, 누구보다도 내가 속상할 일”
    • “나는 황 교수팀 대변인이 아니었다”
    • “학문적 성과 속였다면 과학자로서 생명 끝난 것”
    • “유용한 난자가 몇 개라는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 “황 교수를 따르는 환자들에게 실망 줄까 두려워 말 못하겠다”
    •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할 것 같다”
    안규리 교수, 회한의 심경 토로
    “저를 믿으시는 건가요.”

    휴대전화로 연결된 안규리(安圭里·51) 서울대 의대 교수의 목소리는 여리디 여렸다. 봄날의 아지랑이같이 어지럼증이 이는 목소리였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절망과 회한이 한숨처럼 토해졌다. 그는 “너무 힘들다”고 무너지듯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희망의 속삭임에 기대고 싶은 듯, 혹은 스스로를 위안이라도 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 사건의 실체를 잘 모르잖아요….”

    1월초 안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곧바로 답신이 왔다. “지금은 인터뷰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며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가 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1월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발표가 있은 직후 다시 e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응답이 없었다. 1월12일 검찰은 그의 집과 서울대병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다음날 기자는 그가 근무하는 서울대 병원 임상의학연구소로 찾아갔다. 7층 사무실에서 만난 한 여성 연구원은 그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알려줬다. 이 연구원은 안 교수를 연결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어제 검찰이 교수님 연구실에 들이닥쳐 자료를 다 가져갔다”며 “한동안 교수님을 인터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가 “당분간 언론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기자가 안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사건의 실체를 모르잖아요”

    1월14일 아침 일찍 기자는 서울 혜화동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그가 미혼이라는 점을 감안해 집 밖에서 한동안 기다리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는데, ‘운 좋게’ 통화가 이뤄졌다. 그는 집이 아닌 모처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15분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그는 복잡한 심정을 스스럼없이 내비쳤다. 기자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대체로 듣기만 했다. 대면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설득’할 때를 빼고는. 통화가 끝난 후 그가 한 말을 주섬주섬 취재수첩에 적었다.

    그의 심경 고백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황우석 교수를 모차르트에 비유한 것이었다. 그는 “그분이 모차르트라면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환자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실망과 아쉬움, 쓸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비슷한 비유로 “그분이 옷을 만들면 그 옷을 (환자들에게) 입히는 게 내 역할이었다”고도 했다.

    황 교수는 언젠가 안 교수를 두고 “황우석 사단이 벌이는 생명공학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을 하고 있다”고 찬사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안 교수가 미국에서 면역학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였다. 한국에서는 ‘기초연구’를 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안 교수의 생각을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황 교수였다.

    신장내과 전문의로 말기 신부전증 환자 치료에 골몰하던 안 교수는 황 교수의 연구 분야가 자신의 영역과 겹친다는 것을 알고 나서 공동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바로 새로운 장기(臟器)이식 치료법 개발이었다. 2002년 황우석 사단에 합류한 안 교수는 황 교수의 여러 연구과제 중 이종(異種)간 장기이식 분야를 맡았다.

    황 교수가 불교 신자인 반면 안 교수는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에서는 인간 배아 복제를 반대한다. 하지만 안 교수는 환자를 위하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황 교수와 손을 잡았다.

    그는 지난해 12월29일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 제작진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황 교수팀에 합류하게 된 동기와 소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식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저는 난치병 치료를 위한 차세대 기술이 줄기세포와 이종장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세포치료가 이뤄질 다음 세대에는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체세포핵이식 줄기세포가 최선의 선택이 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연구팀 내에서 저는 체세포핵이식 줄기세포가 만들어진 다음에 이 줄기세포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자문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체세포핵이식 줄기세포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국내외 연구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세계줄기세포 허브 구축 TFT 일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황 교수가 동물복제의 세계적인 대가라면 안 교수는 국내 면역학 연구의 권위자다. 황 교수가 개발한 맞춤형 복제배아줄기세포가 실제로 환자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면역(조직)적합성 검사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제13저자로 안 교수의 이름이 오른 것은 줄기세포에 대한 HLA(조직적합성 항원) 검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줄기세포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속상할 일이 아니냐”면서 “(지난해) 12월초 줄기세포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정말 속상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끝까지 황우석 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 했던 것에 대해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제출 당시 그분들은 정말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들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 교수는 또 “나는 항간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대변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조연’이었을 뿐, 연구 내용의 본질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교수(서울대 산부인과,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의 관계가 틀어지는 바람에 사태가 더 악화됐다”며 줄기세포 연구팀 내 불화설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의 고백의 한켠에는 황 교수의 성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아직 사건의 실체를 모르지 않느냐”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 것만 봐도 그렇다. 희망의 ‘마지막 잎사귀’를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그는 간들간들한 희망의 끈을 쥐고 있는 것과 별개로 황 교수에 대한 분노도 드러냈다. 오래도록 안으로 삭이고 삭인 듯한, 덤덤한 목소리였다.

    “어떠한 경우라도 학문적 성과를 속였다면, 과학자로서 생명이 끝난 것이라고 봐요.”

    황 교수의 ‘난자 발언’도 문제 삼았다. 황 교수는 1월12일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에서 논란이 된 난자 개수와 관련해 “2000여 개의 난자가 공급됐다는 것은 (서울대 조사위) 보고서를 받아보고 나서 알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의 난자는 독특한 성질이 있어서 어떤 난자는 세포질이나 핵 자체가 빠져 나오지 않는다. 가져온 난자 중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됐다. 2000개 난자 중 실제 사용된 난자는 논문에 나온 난자의 2~3배를 넘지 않을 것이다.”

    “돌봐야 할 환자가 너무 많다”

    안 교수는 이에 대해 “난자는 다 귀중한 것 아니냐”면서 “난자를 제공할 목적으로 힘들게 시술을 받은 사람들 심정을 고려한다면, ‘유용한 난자가 몇 개’라는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약간 화가 난 듯한 목소리였다. 아울러 황 교수의 연구 성과도 평가절하했다.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난자를 사용한 시험에서 그 정도로 낮은 성공률을 보였다면 의학적으로 연구가치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지요.”

    안 교수는 인터뷰 고사 이유에 대해 “아직 (사건의)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자칫 내 말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 교수의 팬클럽 회원들은 여전히 황 교수를 지지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면 나한테야 유리하겠지만, 황 교수를 여전히 믿고 있는 많은 환자에게 실망을 안길까 두려워요. 좀더 마음을 정리한 후 얘기하고 싶어요. 이번 사태에 대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글로 정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그는 다음주부터 병원에 정상 출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쉬고 있기에는 돌봐야 할 환자가 너무 많다고 했다.

    “당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인간의 질병을 획기적으로 고칠 수 있는 일인데… 의사로서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안 교수의 이름 ‘규리’는 그의 부친(고 (故)안동혁 박사·6대 상공부 장관 역임)이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 박사처럼 훌륭한 과학자가 되라는 뜻에서 붙여준 것이다.

    지난해 12월30일,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홈페이지 ‘소리마당’에는 안 교수 연구실의 연구원이 쓴 ‘줄기세포 조직적합성 결과에 대한 의견’이라는 글이 올랐다.

    “잘못이 있다면 동료 연구자의 연구결과를 의심하지 않은 죄밖에 없다”며 안 교수를 옹호하는 이 글에 대해 수많은 댓글이 붙었다. 그중에 다음의 글이 눈길을 끌었는데,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 글이 몇 개 더 있었다.

    “안 교수님은 환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애정과 정성이 많은 훌륭한 의사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과학자로서는 그다지 훌륭한 자세를 가지고 계시지 못한 듯합니다.”

    “진실보다 귀중한 것은 생명”

    안 교수와의 통화는 그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지는 바람에(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끊었다) 아쉽게 끝났다. 인터뷰라기보다는 통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심경을 내비친 것이었기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짬이 없었다. 앞서 언급한 ‘평화방송 편지’에는 그의 생각이 좀더 짜임새 있게 드러나 있다.

    “이제 한 해가 다 가려 하고 있습니다. 2005년 5월 시작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라는 허상이 제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가 돌이켜봅니다. 난치병 환자에게 꿈의 성배(聖杯)를 찾아줄 것으로 믿어왔던 이 기술에는 과학적 조작과,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 불신, 생명의 상업화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겪으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진실도 중요하지만 더 귀중한 것은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어우러질 때 진실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진실은 선후배, 동료의사들과 함께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제게 이와 같은 기회가 새해에도 주어진다면 앞으로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또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통화를 끝낸 후 그의 아파트를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한 층 위에는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복도에 휠체어가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줄기세포 연구에 매진해온 데는 어머니의 치료에 거는 희망과 기대도 있었으리라는 얘기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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