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가수 강원래 주치의 윤도흠 박사의 분노

“환자 고통 못 덜어줄 망정 더는 눈물 흘리게 하지 말라”

  • 윤도흠 연세대 의대 교수·신경외과학 ydoheum@yumc.yonsei.ac.kr

    입력2006-02-01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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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에 대한 서울대 진상조사위 발표 다음날 황 교수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를 지켜본 신경외과학 권위자 윤도흠 박사가 “반성보다는 책임회피와 또 다른 거짓말로 일관하는 것을 보며 울분이 터졌다”며 황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 글을 보내왔다. 윤 박사는 황 교수가 걸을 수 있게 하겠다고 자신하던 가수 강원래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가수 강원래 주치의 윤도흠 박사의 분노

    황우석 교수는 교통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어 걸을 수 없는 강원래에게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걸을 수 있게 하겠다고 자신했었다.

    황우석 교수가 또 살아나는 듯하다. 비정상적인 부활이지만, 끈질긴 생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1월12일, 황 교수가 전날 서울대 진상조사위 발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기자회견을 연 후 의외로 많은 네티즌이 황 교수를 지지하고 서울대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황 교수가 비록 논문조작과 같은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줄기세포 기술을 보유한 데다 난치병 치료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이들 무조건적인 황 교수 지지자 중에는 불치병 환자와 그 가족이 많다. 이들은 황 교수의 사기극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도 촛불시위를 하며 황 교수를 응원했다.

    이들 가운데는 필자의 환자들도 있다. 인기 남성 듀오 ‘클론’의 멤버 강원래도 그중 한 사람이다. 필자는 비록 황 교수처럼 강원래의 손을 부여잡고 ‘장밋빛 희망’을 주지는 못해도, 그가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쿵따리 샤바라’를 멋진 율동과 함께 부르는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낮다. 줄기세포 치료법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수많은 환자가 신기루를 보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된 데는 누구보다 황 교수의 책임이 크다. 그는 수많은 거짓말을 도미노식으로 만들어내며 환자들에게 허상을 심어줬고,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나는 순간에도 깊은 반성보다는 책임회피와 또 다른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필자는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며 늘 환자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고 있는 의사로서, 그리고 교수로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편 가르기, 책임 떠넘기기



    첫째, 황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팀은 배반포 수립만 책임지고 줄기세포의 확립에 대해서는 애당초 배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는 다른 쪽의 책임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황 교수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으로 온 국민이 열광했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사람이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 ‘줄기세포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자 줄기세포 배양은 자신의 연구 분야가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그렇다면 줄기세포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같이 연구하던 연구원들을 소속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하고, 한편으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차한 짓을 하고 있다. 국민은 이러한 편 가르기 과정에서 그들의 소속을 알게 됐지, 그 전에는 이들이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연구를 진행한 식구들로만 알았다.

    파견 나온 연구원이든, 자신의 제자든 이들 모두의 책임자는 황 교수였다. 진정한 보스는 일이 성공했을 때 동료나 부하직원의 업적을 치켜세워 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실패했을 때는 혼자 책임지고 가겠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황 교수는 이와 정반대로 행동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삼류 배신 스토리를 보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둘째, 황 교수는 무균돼지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했다느니 특수 동물을 복제했다느니 하면서 논문 조작 사실을 흐리고 있다. 이 세기적인 사기 사건에 대해 사과한다며 시작한 인터뷰에서 그의 말과 내용은 사과에 걸맞은 것이 아니었다. 논문 조작은 사소한 것이고, 지금도 엄청난 연구를 하고 있고, 나를 사장(死藏)시키면 이러한 연구도 사장된다는 식으로 국민을 상대로 협박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자로서 논문을 조작하는 것은 학문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는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한두 사람의 천재가 혁명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협력과 비판으로 오류를 제거해가는 영역이다. 한두 사람의 거짓말이 전체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논문 조작은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황 교수는 지금껏 실토한 내용만으로도 학자로서 생명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 업은 무책임한 선동

    가수 강원래 주치의 윤도흠 박사의 분노

    윤도흠 박사는 “황 교수가 기자회견장에 연구원을 배석시킨 것은 이들을 ‘볼모’로 국민을 협박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논문 조작 문제는 덜 중요하게 여기고, 황 교수가 실제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조작은 했지만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황 교수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확실히 짚고 가야 할 것은 황 교수에게 과연 앞으로 그러한 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많은 국민이 황 교수가 동물의 완벽한 복제에 성공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척수손상처럼 우리 몸의 일부가 손상된 환자들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어한다.

    이는 척수손상 환자를 현장에서 치료하는 우리 임상의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황 교수도 이러한 점을 노려 국민의 정서에 호소하고 마지막 반전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황 교수는 가수 강원래를 걷게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척수손상에 대해 약간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포퓰리즘에 바탕을 둔 무책임한 선동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원천 기술이 있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치료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환자들이 이러한 오해를 품게 된 데는 그동안 줄기세포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 줄기세포는 온갖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세포이고 이러한 세포가 충분히 확보된다면 바로 치료에 들어가서 모든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척수손상 환자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한번 척수의 신경이 완전히 손상되면 그 아래의 모든 신경도 퇴행돼 파괴된다. 현재 줄기세포를 비롯한 어떤 치료법으로도 손상된 중추신경은 극히 일부만 재생할 수 있으며 신경 기능 자체의 회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실제로 동물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일부 줄기세포가 손상 부위에서 생존해 호르몬의 분비와 같은 제한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를 보고 치료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크게 진척되어 줄기세포가 성공적으로 이식됐다고 해도 이것이 팔, 다리를 움직이는 근육세포로 자라나려면 최소한 1∼2년이 걸린다. 게다가 말초의 신경근육 접합부는 신경의 전달이 끊어진 뒤, 즉 척수손상을 당한 뒤 1∼2년이 지나면 이미 퇴행해버려 설령 신경이 다시 자란다 하더라도 근육이 움직이는 것은 현재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일반인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현실이다.

    물론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기존의 약물치료나 다른 이식치료 방법들에 비해 최선의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모든 연구가 이 점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첩첩산중이다. 예를 들어 이식된 줄기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도 전혀 연구된 것이 없는 실정이다.

    줄기세포 이식해도 근육 못 움직여

    세계의 여러 과학자가 척수손상의 치료법으로 줄기세포 이식에 대해 실험한 결과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인간의 치료 가능성에 대해서는 함부로 예측하는 발표를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전까지만’ 안다고 실토한 ‘줄기세포 대가’ 황 교수는 환자의 기대심리를 이용해 치료의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동물복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난치병 치료라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 문맹인 사람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그저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나칠 수 있겠지만,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 해왔다는 과학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또한 사기가 밝혀진 지금까지도 새로운 동물 복제를 들고 나와 국민에게 난치병 치료에는 자신의 연구만이 최선일 것이라는 최면을 걸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과학자가 밤을 새워가며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연구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결과를 차분히 지켜봐야 할 시점이지 순수성과 정직성이 결여된 황 교수에게 무작정 매달릴 수만은 없다.

    셋째, 황 교수가 기자회견장에 배석시킨 연구원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황 교수가 본인의 업적을 발표하던 과거 인터뷰에서 같이 일하던 연구원들을 동석시켜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면 이날 그들을 배석시킨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논문 조작이 밝혀진 시점에 젊은 연구원들을 자신의 뒤에 서게 하고 해명 기자회견을 연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적어도 과학자의 눈에는 황 교수가 이들을 볼모로 ‘이렇게 젊고 유능한 연구원들이 있는데 나를 매장시킬 수 있느냐’고 국민을 협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 난치병 환자를 볼모로 세계 줄기세포허브를 만들 때처럼이나 비정상적인 방법이다.

    넷째, 황 교수는 자신이 연구에 몰두하느라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의학자나 기초 연구자는 누구라도 젊은 시절, 연구에 몰두하거나 환자 진료를 위해 하루 3∼4시간씩밖에 잠을 못 자면서 결혼 초기를 보낸 경험이 있다. 필자도 전공의 때 석 달에 한 번밖에 귀가하지 못하면서 신혼생활을 했다.

    연구 몰두하느라 이혼?

    그러면 이러한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던가. 한국의 여성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남편이 환자를 위해 밤을 새우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인가. 물론 개인의 사생활에 따라 사정은 다 다르겠지만, 이혼한 사실조차 본인이 열심히 연구한 증거로 제시하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수 강원래 주치의 윤도흠 박사의 분노
    尹道欽
    ● 1956년 출생
    ● 연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의학), 미국 뉴욕대메디컬센터 연구원
    ● 現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교수
    ● 대한신경외과학회 및 대한척수신경외과학회 학술위원, 신경손상학회 총무이사
    ● 2003년 ‘동아일보’ 선정 척수분야 Best Doctor 1위 선정


    우리가 좀더 냉정하게 경계해야 할 것은 이번 사태를 ‘진실 게임’으로 몰고가는 일부 언론의 비정상적 보도행태다. 매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언론의 발표를 보면서 국민은 정말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나 하나의 발표에 현혹되지 말고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이번 사태를 가장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이들은 누가 뭐래도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이다. 그들의 절망이 얼마나 크겠는가. 맹목적 애국주의와 동정심 때문에 환자들이 또다시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진 못할지언정 또다시 비탄의 울음을 터뜨리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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