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이은영 기자의 공군 전투조종사 훈련 체험기

고도 2만5천피트에서 산소마스크 떼고 “구일은 구, 구이 십팔, 구삼은… 컥컥”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6-02-01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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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행 전 손톱, 머리카락 잘라 보관
    • 기절했다 깨어나 재도전한 가속도 내성훈련
    • 고도 높이니 뱃속에 축구공 집어넣은 듯한 고통
    • 부르르 튀어나가는 전투기, 물밀 듯 밀려오는 활주로…
    • 비행 전 전투기 뒤에서 오줌 누는 조종사들
    • “조종사에게 테크닉은 없다, 오직 원칙뿐”
    이은영 기자의 공군 전투조종사 훈련 체험기

    F-5 전투기에 탑승한 이은영 기자(뒷좌석). 앞좌석은 조일권 소령.

    “명찰에 적힌 알파벳이 뭘 뜻하죠?”(기자)

    “혈액형입니다. 이 기자님, AB형이신가 보네요.”(대위)

    “어깨엔 금속 계급장이 없네요?”(기자)

    “네. 조종복에는 없어요. 비행안전 때문입니다. 활주로에서는 조그만 돌덩이도 위험요소가 되죠. 혹시라도 떨어져 엔진으로 들어가면 큰일나거든요.”(대위)

    2005년 12월20일. 기자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공군 제8전투비행단을 찾았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 교육훈련을 체험하면서 조종사들의 생활을 밀착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공군 제8전투비행단(이하 ‘8전비’)은 국내 9개 전투비행단 중 최전방에 속하는 기지로 대한민국 영공(領空)방위의 최일선이다. 출격 후 7~8분이면 서울에 닿는 북한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출격시간이 빠른 전투기인 제공호(F-5)와 공격기 A-37B가 배치돼 있다. 특히 A-37B는 ‘8전비’의 자랑인 공군 곡예비행단 블랙 이글스(Black Eagles)가 운용하는 기종이기도 하다. 에어쇼로 유명한 블랙 이글스 팀은 비행시간 1000시간이 넘는 국내 최고 베테랑 조종사들로 구성돼 있다.

    기자의 2박3일 조종사 체험을 도와줄 장교는 이종섭(공사46기) 대위. 원주기지 238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조종사다. 공군복지단 재경공보실 소속인 이 대위는 원주기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기자의 계급은 대위. 비록 ‘이틀살이’ 대위지만 최전방 기지인 ‘8전비’의 207전투비행대대 3편대 소속 조종사로 배속됐다. 이 대위는 비행단에 도착한 기자가 공군 조종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는 기지 내 관사로 19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이 대위는 “남자 조종사는 BOQ(장교숙소)에서 생활하지만 여자 조종사는 미혼이라도 아파트에 산다”면서 “여기자라서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하게 됐다”고 했다.

    “선배님, 도착하셨어요?”

    관사 입구에서 환한 웃음으로 기자와 선배 조종사를 맞은 이는 박지연(공사49기) 대위다. 기자의 룸메이트를 자청한 박 대위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중 한 사람으로 남편은 공사 동기인 정준영 대위다. 두 사람은 ‘빨간마후라 부부 1호’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남편이 공지합동작전에 참여하느라 육군부대에 파견돼 있기 때문에 외박(?)할 수 있다”고 농담을 건넨 박 대위는 “대위급 전투조종사는 일정 기간 TACP (Tactical Air Control Party·전술항공통제반)에서 연락장교요원으로 지상근무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년간 전투기 15대 추락

    박 대위는 기자에게 조종복을 건네주면서 “상하의가 붙어 있는 원피스형인데 기다란 지퍼가 목부터 배꼽 위치까지 달린 점퍼라서 여자 조종사는 화장실에서 일보기가 불편하다”고 귀띔했다. 조종복의 질감이 독특했다. 군복인데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가벼웠다. 기내에 불이 났을 때 조종복에 불이 붙지 않도록 소방복처럼 고온에 견디는 아라미드 원단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라미드 원단은 철보다 강도가 5배 이상 높은 첨단소재로 탄성과 강도가 높고 내화학성이 뛰어나 우주복이나 방탄복으로 사용된다.

    박 대위는 빨간 머플러를 두르려는 기자에게 “머플러 대신 빨간색 목 폴라 티셔츠를 입어도 된다”고 했다. 영하 15℃의 강추위를 감안해 기자를 배려한 얘기였지만, 기자는 빨간 머플러를 선택했다. ‘빨간 마후라’야말로 전투조종사 최고의 상징물 아닌가.

    박 대위는 “조종복이 잘 어울린다”며 난데없이 이렇게 말했다.

    최근 5년간 F-4E, F-5E 사고

       2000년 11월, F-5E, 강원 강릉시 동해상공, 조종사 1명 사망
       2001년 4월, F-4E, 충남 금산군 부리면, 조종사 2명 탈출
       2001년 10월, F-4E, 강원 영월군 사격장, 조종사 2명 사망
       2002년 10월, F-4E, 전북 군산시 옥구읍, 조종사 2명 탈출
       2003년 5월, F-5E, 경북 예천군, 조종사 1명 사망
       2003년 9월, F-5E, 2대 덕유산 상공, 조종사 2명 사망
       2004년 3월, F-5E, 2대 서해 태안반도 상공, 조종사 2명 사망
       2005년 7월, F-5F, F-4E, 서남해안 상공, 조종사 4명 사망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제게 주세요.”

    “왜요?”

    “(빙긋이 웃으면서) 전투조종사가 되셨잖아요.”

    박 대위는 “전투조종사들은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평소 머리카락 50가닥과 손톱을 잘라 보관해둔다”며 “조종사 체험인데 할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농담처럼 한 얘기였지만, 조종사에게는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사고가 나면 시신의 흔적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식표나 손톱, 살점 몇 점을 겨우 수거해 장례식을 치르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에 생전에 보관해둔 그것들이 유해 대신 묻히기도 한다.

    “사고가 나면 항공기 잔해도 못 건져요. 기체 일부만 발견되거든요. 저는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사고가 나면) 사람 모형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놓고 (현장에서) 수거한 것을 갖다 붙여요. 이때 머리카락과 손톱이 사용되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지난해 9월, 공군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4년부터 10년간 발생한 전투기 추락사고는 모두 31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추락한 전투기는 F-5E 8대, F-4E 4대, KF-16 3대 해서 모두 15대다. 4개월에 한 대씩 추락한 셈이다.

    그렇지만 공군측에 따르면 한국 공군의 사고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최근 10년간 비행 10만시간당 사고율을 비교하면 F-16의 경우 한국 공군이 2.26건인 데 비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미국 공군은 4.38건에 이른다는 것.

    그런데도 순직률은 다른 나라 공군에 비해 높은 편이다. 민간 피해를 막기 위해, 혹은 항공기를 살리려다가 비상탈출 시기를 놓쳐 항공기와 같이 산화(散華)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 비행과 사격을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고 과욕을 부리다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수당 받는 일’을 부부가 함께 하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박 대위는 “나라 지키는 일이라 서로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전투조종사라는 특별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전투기 조종사를 ‘파이터(fighter)’라고 한다. 단순히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pilot)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는 ‘전사’ ‘투사’답게 전투를 목적으로 고도의 특수 비행훈련을 받는 조종사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파이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종사임을 나타내는 조종흉장(Wing)을 받기까지는 마치 도자기가 뜨거운 불길 속에서 정성과 인내와 기술로 완성되듯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시간과 비용이 든다.

    기자는 원주기지에 오기 하루 전, 충북 청주시 공군사관학교 내 항공생리훈련장을 찾았다. 전투기 탑승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다. ‘지옥의 테스트장’이라 하는 이곳에서 낙하산 훈련을 포함한 비상탈출 훈련, 비행착각 훈련, 저압실 훈련, 가속도 훈련 등 항생(항공생리) 훈련을 받았다.

    블랙아웃·레드아웃 상태에서 기절

    조종사의 고통을 이해하는 첫 단추는 중력(重力). 이와 관련된 훈련이 바로 G(gravity)테스트다. 가속도 내성(耐性)훈련으로 불리는 G테스트는 일반인의 경우 훈련참가자의 반 정도밖에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강도가 높다. G는 전투기가 고속 기동할 때 조종사가 받는 중력가속도 하중의 수치를 말한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청룡열차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 느끼는 중력의 하중은 약 2G. 몸무게의 2배 중력에 눌린다는 뜻이다. 수직낙하 놀이기구 ‘자이로 드롭’의 경우 4G까지 받는다.

    G테스트를 ‘곤돌라’라는 모형전투기 조종석에서 받았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훈련이었다. 곤돌라가 원을 그리면서 고속회전을 하는데, 몸무게의 6배(6G)나 되는 300kg 이상의 하중을 30초 동안 의식을 잃지 않고 견뎌야 통과할 수 있었다. 곤돌라에 올라탄 기자에게 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윽’ 소리를 내 기도(氣道)를 막고 배에 힘을 준 뒤 ‘푸~’ 하고 숨 쉬세요. 자, 시작합니다.”

    이은영 기자의 공군 전투조종사 훈련 체험기

    원주기지에 있는 공군 제8전투비행단 207전투비행대대 조종사들과 함께.

    곤돌라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관의 지시대로 기자의 다리 사이에 있는 스틱을 양손으로 힘껏 당기자 수초 만에 고속회전했다. 한 바퀴 도는 데 1.3초가 걸린다니 30초간 23바퀴를 돈 셈이다.

    “으아아악-.”

    곤돌라가 움직이는 순간 비명이 절로 나왔다. 온몸이 자석에 끌리듯 의자 뒤로 철썩 달라붙었고 전신이 돌덩이처럼 뻣뻣해졌다. 교관이 가르쳐준 특수호흡(L-1기법·폐가 아닌 복부근육으로 호흡)은 소용이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고속회전 탓에 피가 뇌의 뒤쪽으로 몰려 시야가 컴컴해지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또 너무 어지럽고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렸더니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했고 앞이 온통 붉게 보였다. 피가 뇌의 앞쪽으로 몰려서 망막의 혈관이 팽창해 세상이 붉게 보이는 ‘레드아웃’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두 번째 도전에야 겨우 통과해 부축을 받으며 곤돌라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좀처럼 공포감이 가시지 않았다. 심한 현기증으로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훈련에 동행한 이종섭 대위는 “조종사들은 (전투기가) 급기동할 때 다반사로 겪는 고통”이라며 “가속도 내성훈련은 조종사들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라고 했다.

    항공생리훈련장 교관 박현경(공사52기) 중위는 가속도 내성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비행시엔 중력 때문에 판단능력이 지상에 있을 때의 6분의 1로 떨어집니다. 또 피가 머리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의식을 잃을 수도 있어요. 의식상실 상태를 G-LOC(G-induced Loss of Consciousness)라고 합니다. 혈액이 아래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특수호흡을 해야 해요. ‘윽’ 소리와 함께 아랫배에 복압을 형성해야 합니다. 또 근육 내 혈관을 최대한 수축시켜야 해요. 조종사들은 G-슈트를 착용합니다. G-슈트는 피가 하체로 몰리는 것을 막는 압박붕대가 되죠. 9G까지 견뎌야 하는 F-16 조종사들은 온몸에 실핏줄이 터져 붉은 반점이 생기는 게 다반사입니다.”

    조종사가 전투기에 탑승할 때는 몸을 의자에 딱 붙이고 목을 자라목처럼 집어넣고 온몸에 힘을 줘야 한다. 전투기가 급기동을 하면 엄청난 속도와 압력으로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또 내장과 허파 깊숙이 고통이 따른다.

    비행할 때 창공에서 자세를 바로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투기 안에서는 중력 때문에 몸이 천근만근이 돼 목과 허리를 좀처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이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간혹 영화에서 조종사가 비행 중 산소 마스크를 떼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고공에서는 기압 차이 때문에 산소 마스크를 떼면 입을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발음조차 불가능하다.

    “꼬르륵.”(뱃속에서 나는 소리)

    “피식.”(방귀 뀌는 소리)

    저압실. 산소가 부족한 고공환경을 모의 훈련장비로 재현해놓은 곳이다. 저압실 체험은 조종사만 하는 게 아니다. 산소가 부족한 고공환경에서 근무하는 공중근무요원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극복방법을 익혀야 한다. 기자는 육군 공중근무요원들과 함께 저압실 체험에 참여했다. 총 24명이 저압실에 탑승했는데 기자는 24번 훈련생이었다.

    공포의 저압실 훈련

    저압장비 해발 2만5000피트(7.6km) 상공으로 향했다. 저압탱크 안엔 수술용 장갑이 걸려 있었는데 1만피트(3km) 이상으로 올라가자 팽팽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자, 순서대로 산소 마스크를 벗어보세요.”(교관)

    “푸우….”(훈련생의 거친 숨소리)

    “구구단 9단과 8단을 써보세요.”(교관)

    기자는 저압실 안에 있는 교관으로부터 종이 한 장을 건네받아 구구단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20초가 지나자 구구단이 잘 외워지지 않았다. 30초쯤 지나자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현기증이 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교관이 기자에게 재빨리 산소마스크를 대줘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공중에서 저산소증에 노출되면 대뇌피질에 문제가 생겨 논리적인 사고가 힘들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저산소증은 1만피트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증세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현기증과 두통, 행동장애가 생기는데 더러는 술에 취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도 있다.

    저압실 훈련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복통. 기자도 해발고도가 높아지자 마치 뱃속에 축구공 하나를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전날 술을 마셨거나 소화가 안 될 경우 복통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훈련생 한 명이 배를 움켜잡더니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저압실 훈련을 받아 보니 공군조종사의 신체를 두고 ‘특KS’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항공생리훈련과 적성검사, 신체검사를 모두 통과하면 전투조종사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 공군의 최정예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한 여정은 험난하다. 공사를 졸업한 후 초·중·고등 비행훈련을 마치고 전투태세훈련(CRT·Combat Readiness Training)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를 수 있다.

    초등비행 훈련과정에서는 프로펠러 경비행기(T-41, T-103)로 기초를 익히고, 중등비행 훈련과정에서는 국산 훈련기 KT-1으로 본격적인 비행교육을 받는다. 고등비행훈련에서는 전투기에 가까운 제트훈련기(T-59, T-38, T-50)로 공중 특수기동과 이착륙훈련, 야간 단독비행 등을 검증받는다.

    초·중·고등 비행훈련을 마치면 가장 중요한 과정인 CRT가 기다린다. 이 과정에선 약 6개월 동안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공중전에서 적기(敵機)를 제압하는 공대공(空對空)과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는 공대지(空對地) 훈련 등 인체의 한계를 넘나들며 전투조종사가 될 수 있는 체력적 자질을 검증받는다.

    공군에 따르면 공사 졸업생 중 이 네 과정을 모두 통과해 전투조종사가 되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해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40~50%의 졸업생이 조종사가 된다. 한 해 평균 180명의 공사생도가 임관하는 점을 감안하면 80~90명이 빨간 머플러와 선글래스, 비행 재킷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수송기와 헬기를 제외한 전투조종사는 30~40명에 그친다고 한다.

    근육질보다 호리호리한 체격이 유리

    원주기지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기지내 체력단련장. 폭설로 비행이 중지돼 조종사들은 대대별로 배구시합을 했다. 비행이 없는 날은 체력단련의 날이다.

    외부 사람들은 공군기지에 마련된 골프장을 몹시 부러워하지만 조종사에게 골프장은 ‘체력단련장’에 지나지 않는다. 휴일에도 비행단에 체류하며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지 내 골프장을 이용하는 것인 만큼 골프도 품위유지 운동이 아니라 체력단련운동이라는 것.

    체육관은 배구시합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난방이 안 돼 정비대대에서 빌려온 대형 난로를 켜놓았다. 1차 대대별 대항이 끝나자 2030세대 전투조종사와 4050세대 전투조종사가 맞붙게 됐다. 대표선수 중에는 비행단장인 강충순(공사 26기) 준장이 있었다. 그의 몸은 젊은 조종사와 다를 바 없이 날렵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207전투비행대대 한종호(공사34기) 대대장은 “조종사는 체력이 강해야 된다”며 “매년 지독한 체력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한 대대장은 “조종사가 되는 데는 우락부락한 근육질보다 호리호리한 체격이 유리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체육관에서 뛰고 있는 조종사 중에는 강퍅하고 끈질긴 근성이 느껴지는 호리호리한 사내가 많았다.

    “조종사가 배 나오고 둔해선 안 돼요. 비행을 하면 땀을 많이 흘려 체력소모가 많아요. 오전 오후, 두 번 비행하고 밤에 스크램블(비상출격)까지 걸리면 하루 세 번 비행을 하게 됩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매년 체력검증을 받는데, 국방부가 요구하는 장교 기준치보다 상위등급을 받아야 해요. 조종사 체력측정 평가기준이 국가대표 운동선수와 맞먹습니다. 기준에 미달하면 비행이 금지되거든요. 1.5km를 7분에 주파해야 하고, 윗몸일으키기 60회, 팔굽혀펴기 70회를 해야 합니다. 100m를 10.79초에 뛰는 40대도 있어요.”

    이은영 기자의 공군 전투조종사 훈련 체험기

    저압실 체험을 하고 있는 훈련생들. 오른쪽 맨끝이 이은영 기자.

    전투조종사는 인간 생리의 한계를 넘나드는 중력과 씨름하면서 전투기를 조종해 적기를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기류가 불안정하고 공기밀도가 높고 진동이 심한 전투기 안에서 장시간 저기압에 몸을 맡긴 채 중력과 사투를 벌이기 때문에 평소 철저하게 체력관리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토록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공군 조종사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F-16 전투기 10년차 조종사 한 명을 길러내는 데 드는 비용은 약 87억원(2003년 기준)이라고 한다. 조종사 한 명당 연평균 9억원 가까이 드는 셈이다. 미국에서 공군조종사를 ‘워킹 포천(Walking Fortune)’, 즉 ‘걸어다니는 돈덩어리’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 1명을 4년간 교육하는 데 2억1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어 소위 임관 후 약 2년간의 비행훈련에 27억9000만원이 들고, 이후 8년간 훈련 및 비행 경험을 통해 베테랑급 교관 조종사가 되는 데 약 57억원이 추가된다고 한다.

    조종사 몸값은 전투기 기종별로 차이가 있다. F-5는 약 42억원, F-4는 75억원, C-130 수송기는 79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207전투비행대대 유종락(공사 43기) 편대장은 “조종사 한 명이 1시간 비행하는 데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했다.

    “하루 임무를 수행하는 데 기름값만 500만원이 듭니다. 실무장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150만원에서 2200만원이 들어요. 여기에는 탄약비와 항공기연료비, 정비비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투기는 날개에도 연료를 넣을 수 있다. F-15K의 경우 한쪽 날개에만 약 500갤론(1878L)의 항공유가 들어간다. 양쪽 날개를 합치면 약 1000갤론으로, 1.5ℓ짜리 음료수병 2500여 개를 채울 기름이 들어가는 셈이다. F-4의 경우 한쪽 날개에 약 300갤론, F-16은 약 80갤론의 항공유가 들어간다.

    전투기는 고가의 장비다. F-16의 대당 가격은 400억원, F-15는 1000억원, F-5E는 도입 당시 35억원이었다. ‘팰컨(매)’의 눈매가 인상적인 김용희(공사39기) 소령은 “전투기 한 대보다 조종사 한 명이 더 소중하다”고 했다.

    “공군에는 탐색구조대(SAR·Search and Rescue)가 있어요. 말하자면 ‘공군 조종사 119’입니다. 산이나 바다에 떨어진 헬기조종사와 정비사, 전투조종사를 살려주는 구조대죠. 해군의 수중파괴반(UDT)이나 해난구조대(SSU), 육군의 특전사와 비슷해요. ‘내 목숨은 버려도 조종사는 구한다’는 필구인명(必求人命) 정신으로 훈련을 받아요. 그만큼 조종사 한 명의 가치가 큰 거죠.”

    드디어 전투기 페달을 밟다

    12월21일 아침. 이틀째 내린 눈으로 비행 휴업상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 항공생리훈련을 힘들게 마쳤건만 눈이 내린 것이다. 아침부터 활주로에서 SE-88(일명 ‘마징가제트’)을 이용한 제설작업이 한창이다.

    오후가 되자 눈이 그쳤다. 비행일정이 부분적이나마 정상화돼 기자는 하이텍싱(고속지상활주점검)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하이텍싱은 전투기가 오랫동안 비행하지 못했을 경우 점검 차원에서 이륙 직전까지 시험비행을 해보는 과정이다.

    하이텍싱 전방석 조종사는 조일권(공사42기) 소령. 서글서글한 눈매와 다부진 몸을 가진 그에게선 전투조종사의 강인한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1995년부터 F-5 제공호를 타기 시작해 청주 초등비행 교육대대에서 3년간 교관생활을 거친 후 2004년 207대대에 배속됐다. 현재까지 비행시간은 1700시간으로 베테랑 A급에 속하는 전투조종사다.

    오후 3시. 207전투비행대대 장비실. 기자는 헬멧과 G-슈트를 입고 낙하산 장비를 짊어졌다. 헬멧은 조종사의 두상을 본떠 제작되기 때문에 다른 조종사의 헬멧을 쓰고 비행하면 심한 두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기자는 조 소령과 함께 전투기가 보관돼 있는 이글루(igloo·항공기 격납고)로 이동했다. 어깨에 짊어진 낙하산 장비가 무겁다고 씩씩대는 기자에게 조 소령은 “기초체력이 부족하다”며 핀잔을 줬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바람이 활주로를 에워쌌다. 이글루에 도착했다. 이글루는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인의 집처럼 돔형이다. 조 소령은 비행 전 점검을 위해 항공기를 한참 둘러보았다.

    “하이텍싱인데도 전투기를 점검하나요?”

    “그럼요. 하이텍싱 자체가 전투기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조종사들이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 ‘자나 깨나 안전’이다. 항공기 점검은 비행안전의 핵심이다. 전투기의 엔진결함이나 기체결함은 비행사고로 직결된다. 비행 전 조종사가 항공기 내부를 살피는 것은 빼놓을 없는 일이다.

    비행사고율이 교통사고율보다 확률적으로 낮다고 안이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비행사고가 나면 국고 손실이 훨씬 크고 공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다.

    “비행 전에 각종 무장 관련 스위치를 점검해야 해요. 또 점검을 해야 시동이 걸립니다. 전기 스위치를 작동하고 외부 공기가 적절히 유입된 후 조종사가 버튼을 눌러야 시동이 걸려요.”

    우리나라 공군 전투기 중 35%는 제작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항공기다. F-5는 22년, F-4 팬텀기는 35년이 됐는데 전투기 수명이 30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만저만 낡은 게 아니다. 공군측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완료되는 2008년까지는 노후 전투기를 폐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자가 탑승한 F-5에 시동이 걸렸다. 잠시 후 전투기가 이륙하기 위해 이글루에서 활주로 방향으로 이동했다. 활주로 끝에 이르러야 관제탑으로부터 텍싱 허락을 받아 달릴 수 있다.

    전투기는 아래에 있는 좌우의 페달로 롤(Roll)을 취한다. 롤과 턴(Turn)이 결합해 기동하는 셈이다. 조 소령은 기자에게 직접 밟아보라고 권했다. 너무 세게 밟지 말고 아이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살살 밟으라고 했다.

    조 소령의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가 헤드셋과 조종석 내부를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전투기 안은 한 평이 채 안 됐다. 다리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고 상체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실수를 범하면 으악 소리도 못 지르고 추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방석에 탑승한 조 소령이 항공기를 이동하면서 관제탑과 교신했다. 드디어 텍싱 허락이 떨어졌다. 조 소령은 관제탑과 교신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로틀(throttle·엔진추력조절레버)을 최대출력 상태로 만들었다. 순간, 전투기가 부르르 떨더니 아찔할 정도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전방의 활주로가 물밀듯이 시야로 달려들었다. 기자는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조종사들의 ‘영역표시’ 징크스

    안타깝게도 하늘에는 오를 수 없었다. 비록 하이텍싱밖에 할 수 없었지만, 전투기에 올라타 이륙 전 체험을 한다는 건 여간 설레는 일이 아니었다.

    기자는 하늘을 뒤로한 채 활주로를 걸어 나와야 하는 아쉬움에 한숨까지 나왔다. 이런 기자에게 조 소령은 다정하게 얘기했다.

    “비행하고 내려와 헬멧을 벗으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요. 7km 상공에서 중력가속도를 견디면서 기동했기 때문이죠. 고속 급선회를 할 땐 G-슈트를 입어도 피를 짜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져요.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의 하중 때문에 얼굴 피부가 최대한 뒤로 잡아당겨져요. 그래서 조종사는 나이보다 5년쯤 더 늙어 보여요.(웃음)”

    조 소령에 따르면 전투조종사들은 비행 전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항공기 뒤편에서 소변을 보는 조종사가 많아요.(웃음) 동물적 본능인데, 일종의 영역표시 같은 겁니다. 내 몸에서 나온 배설물을 땅에 두고 가야 살아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또 헬멧 안에 머리를 덮는 헝겊이 있는데, 이것을 절대로 안 쓴다거나, 비행 점퍼를 안 입고 타거나, 조종장갑을 거꾸로 착용하거나, 담배를 꼭 피우거나 안 피우거나… 제각각이에요.”

    조종사는 또 꿈에 민감하다. 본인이 꾸든 동기 혹은 선후배가 꾸든 ‘꿈을 꿨다’는 얘기를 대대에 전하면 비행일정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그만큼 비행안전을 중요시한다는 얘기다.

    조종사가 받는 훈련에는 야간전술요격과 공중사격 등의 공대공 훈련, 정밀폭격훈련 실무장폭격훈련 등의 공대지훈련이 있다. 그밖에도 여러 굵직굵직한 훈련과 작전에 투입된다.

    또 육·해군과의 합동훈련, 을지훈련, 포얼 이글(Foal Eagle) 같은 한미연합작전, 보라매 공중사격대회(탑건 선발) 등을 위해 일년 내내 시험치고 평가받아야 한다. 베테랑 조종사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약 10년. 30대 중반 편대장급 소령이 돼야 비로소 적기와 공중전을 펼칠 수 있는 조종사가 된다.

    “일반인은 탑건(Top Gun)과 최우수 조종사를 혼동해요. 탑건은 사격왕으로 명사수를, 최우수 조종사는 MVP에 해당하는 팔방미인을 얘기하는 겁니다. 탑건은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사격수입니다. 최우수 조종사는 기종별로 보라매 공중사격대회 성적을 포함해 한 해 동안 비행경력, 작전참가 횟수, 사격기량 등 10개 분야 23개 항목에서 최고의 점수를 얻은 조종사입니다.”

    전투조종사의 계급은 군인 계급과 조종사 계급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군인 계급. 전투비행대대는 중령 계급이 대대장을 맡는다. 소령 최고참이 비행대장, 소령급이 편대장(보통 4개 편대), 그 밑에 대위·중위·소위 계급의 편대원이 있다.

    비행시간과 경력을 감안한 비행자격별 계급으로는 요기(Wingman), 분대장, 편대장, 교관급이 있다. 요기는 ‘초짜’ 조종사로 대위, 중위가 여기에 속한다. 분대장이 돼야 2기 비행시 리더가 될 수 있다. 4기를 지휘하는 조종사를 편대장이라고 하는데, 대개 교관을 거친 숙달된 조종사가 맡는다.

    원주 공군기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조종사 5명이 실전 배치돼 있다. 특히 238대대의 편보라(공사 49기) 대위는 2004년 11월, 지상 150m를 날며 목표물을 정확하게 사격하는 저고도 사격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자조종사는 지금까지 모두 13명이 배출됐다.

    여성은 인체생리학적으로 공중근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홍승호(공사34기) 238전투비행대대장은 이런 얘기를 했다.

    “지난 2년 동안 검증을 다 했어요. 인체생리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기량이 남자조종사와 다를 바 없어요. F-16으로 기종전환도 가능해요. 그런데 문제가… 결혼입니다. 그래서 여조종사는 결혼을 망설여요. 일반인과 결혼할 경우 남편이 아내의 비행일정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조종사와 결혼한다고 해도 전투기 기종(機種)이 다르면 집에서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죠. (남편이 속한) 기지에 가려면 기종 전환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거든요. 여성 조종사에 대한 배려가 시급해요.”

    비행 전엔 부부관계도 피해

    조종사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비행대대 출근과 얼러트실(비상대기실) 근무, 숙소 취침, 장교식당 식사 등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교관급 조종사(소령, 중령)는 첫 비행 2시간 전인 아침 6시30분까지 대대에 출근해 비행 브리핑을 해야 하고 야간비행까지 마치면 밤 10시나 돼야 퇴근한다.

    또 조종사라고 해서 지상업무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각종 행정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일과가 빡빡하다. 기상악화로 비행이 없는 날에는 1시간 동안 시뮬레이터(CPT)에 탑승해야 한다. 실제 비행할 때와 똑같은 상황을 경험하게 만든 최첨단 비행훈련장비다.

    만약 아침 7시에 비행이 있다면 적어도 새벽 4시30분에는 아침식사를 해야 한다. 위가 비어 있으면 비행중 중력가속도로 내성과 두뇌 회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침 금식은 금물이다. 또한 비행 전 금기 사항도 많다. 이를테면 술과 불면은 절대 금물. 부부관계를 자제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마디로 비행을 위해 도 닦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조종사는 또 ‘항시(恒時) 전장(戰場)’ 개념으로 ‘대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무엇에 얽매여 산다는 것이 미혼 장교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다. 늘 비상대기 임무를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 미혼 조종사인 이종섭 대위는 이런 얘기를 했다.

    “북한의 당진, 곡산기지에서 (적기가) 뜨면 (거리가) 1000km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약 6분이면 서울에 도착해요. 공군은 5분, 8분, 15분, 30분 대기로 움직입니다. 기종과 비행대대별로 대기개념이 달라요. 대기 편조가 365일 편성돼 있기 때문에 꼼짝달싹할 수 없어요. 반년 이상 집에 못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종사는 한달에 6~7회 육군의 최전방 GP와 같은 비상대기실에서 언제라도 출격할 수 있는 전투기와 함께 5분대기해야 한다. 지상의 국경인 방공식별구역(KADIZ)에 항적(航跡)이 탐지되거나 적기가 진입하면 바로 비상출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상출격시에는 교전에 대비해 호신용 권총을 차고 나간다. 한종호 대대장은 “북한이 뜨면 우리도 뜬다”면서 최근 사례를 얘기했다.

    “요즘 북한은 연료난 때문에 비행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요. 얼러트실에 있는 ATDDS(공중항적정보시현기)에 한반도 인근 항적이 다 보입니다. 지난 11월, 우리 대대가 인천쪽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는데 북한기가 해주 백령도 북상해상에 근접비행을 해왔습니다. 간혹 그렇게 우리나라 전투비행단 대비태세를 점검이라도 하듯이 근접비행을 해요. 그럼 우리는 즉각 대응비행을 하죠. 약 25마일(40km) 떨어져 있지만 1초에 700m를 날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1분이면 정면에서 맞서게 돼요. 조종사로서는 등줄기에 땀나는 상황입니다.”

    “동해안 오징어배가 아름다워요”

    반면 전투조종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하늘이 주는 감동이다. 좁은 공간에서 편대기와 관제사의 교신음만 들으며 죽음을 무릅쓰고 훈련을 받으면서도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비행이 최대의 스트레스이자 행복”이라는 것.

    “구름 속에서 비행하는데 구름에 구멍이 나서 그 사이로 빛이 내려와요. 마치 천국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 같아요.”

    “도시의 야경은 너무 환해서 별로예요. 동해안 오징어배들이 정말 아름다워요.”

    “동해안에서 러시아 정찰기를 요격하러 가는데 구름 위에서 비행을 했어요. 햇살을 받으면서 낭만을 느꼈어요. 교전의 긴장 속에 묘한 스릴에 빠졌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고속도로에 차가 밀려 있는 광경이 정말 아름다워요. 복잡한 도시, 시장, 고기잡이배 등 아등바등 사는 모습이 위에서는 아름답게 보이니 아이러니죠.”

    “우리나라는 온통 산밖에 안 보여요. 울퉁불퉁한 산맥들이 근육과 힘줄 같아 보여요.”

    “비행하면서 집에 갔다 오기도 해요. 비록 하늘에서나마 부모님이 편안히 주무시는 것을 보고 오면 기분이 좋죠.”

    “새벽비행을 하면 일출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요. 한쪽은 어둡고 한쪽은 해가 뜹니다. 땅에서는 어둠 그 자체지만 하늘에선 다 보여요. 동해에서 불덩이가 솟구쳐요. 가슴이 뜨거워져요.”

    전투조종사의 최대 희생자는 아내다. 노심초사의 세월이 워낙 길다. 날씨가 좋은데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불안하다. 사고가 나면 비행이 전면 중단되기 때문에 ‘혹시 내 남편이…’ 하는 공포에 휩싸인다고 한다.

    한종호 대대장의 부인 이미혜(43)씨는 “조종사는 아내의 희생을 딛고 비행한다”며 “조종사 아내라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남편의 힘든 비행일정을 고려해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일 일이 있어도 자제한다는 얘기였다. 요즘엔 ‘비행 안전’ ‘나라 지키기’에 얽매인 남편의 삶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고도 했다.

    조종사 아내들은 이구동성으로 “결혼하기 전 조종사의 생활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결혼을) 재고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이제는 가족에게 봉사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전역을 신청하는 조종사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종사의 보금자리는 어떤 곳일까. 비행단 여건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소령까지는 19평 아파트에 살다가 중령이 되면 25평 아파트로 옮기게 된다.

    한종호 대대장은 안타까운 사연 하나를 소개했다.

    “젊은 조종사 중에 외아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자식이 여럿이기 때문에 굳이 조종사 아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됐는데 요즘은 외동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이런 이유로 아끼는 후배 하나가 전투조종사의 길을 접었어요.”

    최근 결혼한 조종사 부부들 중엔 맞벌이 부부가 많다고 한다. 이 경우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고역이다. 공복비행이 금물이니만큼 장교식당에서 해결하거나 대대 휴게실에서 김밥으로 때운다고.

    “온돌에서 자고 싶어요”

    홍승호 238전투비행대대장은 “장교식당의 식단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홍 대대장의 말대로 상당수 조종사가 “병사 식단이 장교 식단보다 낫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잠시 사병 식단을 살펴봤다. 햄패티, 햄감자볶음, 짜장밥, 생선가스, 샐러드, 치킨버거, 스파게티, 오삼불고기 등이 나열돼 있다. 반면 장교식당의 식단은 국을 제외하면 3찬(饌)인데, 주로 달걀프라이, 어묵볶음, 김, 김치 등 고전적인 메뉴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아침식단은 일주일 내내 국과 마른반찬류, 달걀프라이, 김치, 김, 우유가 나왔을 뿐이다.

    “BOQ가 춥다”고 호소하는 조종사도 적지 않았다.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는데, 온돌이면 좋겠어요. 비행하고 내려오면 따뜻한 온돌방에서 푹 자고 싶거든요. 그나마 따뜻하게 자려면 침대에 옥돌매트나 전기장판을 까는 수밖에요. 요즘 병사들이 자는 곳은 온돌이라 뜨끈뜨끈해요.”

    최근 총각 조종사들에게는 말못할 고민이 생겼다. 여자친구에게 전투조종사라는 직업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 10년 전만 해도 ‘공군조종사’ 하면 ‘멋지다’ ‘남자 중에 남자’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요즘 20대 여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은영 기자의 공군 전투조종사 훈련 체험기
    이은영 기자의 공군 전투조종사 훈련 체험기

    이은영 기자가 공군사관학교 항공생리훈련장에서 비상탈출훈련(왼쪽)과 가속도 내성훈련(오른쪽)을 받고 있다.



    기자는 일과를 마치고 BOQ를 방문했다. 20대 미혼 조종사들은 귀공자를 연상케 하는 외모 때문인지 조종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규원(공사51기) 중위는 이런 하소연을 했다.

    “(밖에 나가서) ‘명예’에 대해 얘기하면 호응이 없어요. 심지어 ‘조종사는 좋은데 군인은 싫다’고 해요. 국민을 위해 나라를 지키는데 인정해주지 않아요. 친구들 중에는 국가를, 자기가 원하면 선택하는 기업쯤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요. 월드컵 때 응원한 건 승부욕 때문이었고, ‘대한민국 국민이기 싫으면 떠나면 된다’고 말해요.”

    아직 총각이라 그런지 돈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조종사는 비행수당 덕분에 같은 계급의 육군장교보다 월급을 80만~100만원 더 받는다. 공사를 졸업한 5년차 조종사의 월 수령액은 약 250만원, 8년차 조종사는 약 280만원이라고 했다.

    자신을 서른세 살의 ‘총각장’이라 소개한 한호명(공사46기) 대위는 “급여보다 더 시급한 게 있다”면서 언론에 대한 바람을 털어놓았다.

    “‘제한’이나 ‘속박’은 생도 때부터 내성이 길러졌기 때문에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민간인들이 군을 ‘필요없는 존재’로 얘기할 때마다 속상합니다. 언론의 기능이 참 중요해요. KBS TV ‘인간극장’에서 조종사 생활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몇 달 동안은 조종사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조종사 사기가 올라가야 합니다.”

    조종사만의 낭만 가운데 비어콜(Beer-Call)이 있다. 비행을 마치고 한잔의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조종사 고유의 문화다. 하지만 언제나 ‘가볍게 딱 두어 잔’. 다음날 비행일정을 의식해서다.

    ‘하늘은 고향이요 무덤’

    기자가 떠나기 전날 밤, 한종호 대대장이 비어콜을 선언했다. 장소는 기지 내 호프집. 기자는 야간비행을 마치고 내려온 조종사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세상은 온통 황우석 박사 얘기로 떠들썩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화제로 삼지 않았다. 한 대대장은 “밖이 아무리 소란해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비행하다 보면 비행착각(Vertigo)에 빠질 때가 있어요. 하늘과 땅이 헷갈리는 겁니다. (전투기가) 급선회를 하고 배면비행을 하는 탓에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지는 거죠. 간혹 하늘의 별빛과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을 혼동하는 바람에 바다로 돌진하는 대형사고도 일어납니다. 비행착각에 빠지면, 빨리 자신의 감각을 버리고 계기를 100% 믿어야 합니다. 인생에도 ‘비행착각’처럼 ‘착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기판에 준하는 ‘원칙’을 따라야 하는데….”

    그에게 어떤 성격이 조종사에 적합한지 물어봤다.

    “무엇보다도 침착해야 해요. 쉽게 흥분하면 안 돼요. 항공기가 빠르게 움직이니 빠릿빠릿한 사람이 적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여유롭고 안정감이 있어야 해요. 또한 외향적인 성격이어야 해요. 조종사는 항상 편대로 무리 지어서 생활하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해야 하거든요.”

    전투조종사들의 또 다른 독특한 문화는 편대문화다. 편대는 전투기 4대로 구성된다. 조종사들은 사관학교 시절부터 편대생활을 해왔다. 비행시 편대원들은 서로 목숨을 지켜주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조종사에게는 ‘최우수 개인’보다 ‘최우수 편대’가 더 유효하다.

    북미대륙의 물소를 상징하는 ‘버펄로’는 207전투비행대대의 마크다. 한 대대장은 비어콜을 마치면서 “버펄로는 거친 들판에서도 반드시 승리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후배 조종사들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마크를 주시하면서 “버펄로”를 외치자 10명의 조종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일제히 “정신” 하고 받았다.

    ‘하늘은 우리의 고향이요 또 무덤’이라는 공군가 노랫말이 떠올랐다. 불현듯 기자의 뇌리에 조종사 출신 노(老)장교의 충고가 떠올랐다.

    “조종사는 첫째도 원칙, 둘째도 원칙, 셋째도 원칙이다. 능력을 과신하면 죽는다. 조종사에게 테크닉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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