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출발부터 딱지 뗀 ‘초보운전’ 방위사업청, 브레이크 없는 ‘추돌사고’ 위험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06-02-01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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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참 자료, 평문(平文)으로 바꿔 민간 업자에 넘겨
    • 이용철 방사청 차장 적임자 논란
    • 경제성 고려 없이 몰아붙이는 KFX 사업
    • 패트리어트 도입 기피하는 이유는?
    • 10조원대 전략사업 독점…로비스트 입김 커질 수도
    출발부터 딱지 뗀 ‘초보운전’ 방위사업청, 브레이크 없는 ‘추돌사고’ 위험
    지난 1월4일 국방부 외청(外廳)으로 문을 연 방위사업청을 줄여서 ‘방사청’으로 부른다. 방사청은 개청하자마자 ‘열린 방사청’이란 별명을 얻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빗대어 만든 별명이다. 여당은 지난 연말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방사청 개청 내용을 담은 방위사업법을 다른 법안과 함께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군에서 외부로 나가는 자료는 모두 보안성 검토를 거친다. 그런데 방사청 홈페이지에는 1월1일부터(실제로는 지난해 12월31일부터) 5일까지 보안성 검토를 거치지 않은 256건의 군 전력증강계획이 떠 있었다. 그 가운데 3분의 2나 되는 170여 건이 외부에 밝혀서는 안 되는 기밀 사항이었다.

    실종된 보안의식

    국방부를 출입하는 ‘한국일보’ 김정곤 기자는 1월2일 우연히 이 자료를 캡처했다. 그는 ‘SSX’라는 이름으로 돼 있는 해군의 3000t급 중(重)잠수함 사업에 주목했다. 그가 해군에 “SSX가 어떤 사업이냐”고 묻자 깜짝 놀란 해군이 방사청에 이 사실을 통보하면서 이 자료는 홈페이지에서 내려지게 됐다.

    이렇듯 ‘열린’ 모습으로 언론에 데뷔한 방사청은 그후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하자 방사청의 공보관계자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자 ‘방사청이 비전문가들 위주로 구성된 기관이다 보니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방사청은 총리실 산하 국방획득제도개선추진단에서 태동했다. 추진단장은 민변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법률특보를 거쳐 노 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용철(李鎔喆·46) 변호사였다. 변호사로 잔뼈가 굵은 그는 ‘당연히’ 군 업무 중에서도 가장 전문성을 요하는 획득 업무에 정통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그는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연구원 출신인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으로부터 ‘JSOP(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가 무엇이냐’ ‘C4ISR(합동전술핵심체계)이 무엇이냐’는 등 전문성을 떠보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에 그는 모욕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맞섰는데, 얼마 후 방사청 개청준비단이 만들어지자 부단장으로 들어왔고, 방사청이 개청하자 차장을 맡게 됐다.

    비전문가임에도 방사청 관련 업무에는 항상 이용철이란 이름이 따라붙었다. 국방부와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이용철 변호사를 방사청장에 앉히려 했으나, 윤광웅 국방장관이 군 안팎의 반대와 군 문화의 특이성을 거론하며 만류하는 바람에 차장으로 낙점됐다고 한다.

    방사청의 주축은 조달본부다. 그런데 새로 창설된 방사청은 기존의 조달본부 조직을 쪼개 여러 군데로 흩어놓은 모양새를 갖췄다. 때문에 조직이 안정되지 않아 앞으로도 유사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홈페이지 사고는 지난해 10월 합참이 개청준비단에 넘겨준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공개함으로써 터져나왔다. 합참의 획득 관련 업무팀은 국방중기계획서를 근거로 이 자료를 만들었는데, 방사청 창설이 가까워진 지난해 10월 이 자료를 방사청 개청준비단에 보냈다. 개청준비단 정보화팀은 자료에 대한 보안성 검토는 하지 않고 ‘방사청이 필요하다’는 대(對)국민 홍보만 생각해 이를 평문(平文)으로 바꾼 뒤 홈페이지를 제작할 민간 용역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글자 그대로 ‘열린’ 방사청 시대를 열게 한 것.

    12조원 들여 ‘구형 전투기’ 만든다?

    출발부터 딱지 뗀 ‘초보운전’ 방위사업청, 브레이크 없는 ‘추돌사고’ 위험

    모의 폭탄 투하시험을 하는 A-50. A-50을 개량하면 F-50 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

    국방 전문가들은 “이러한 실수를 피하기 위해 택한 지혜가 권력분립이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입법부에서 만들고 집행은 행정부에서 하도록 권력분립을 택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방사청은 기관을 만든 사람이 실세로 들어왔으니 아무도 방사청이 하는 일을 견제할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 무섭다는 기무사도 방사청 개청 과정에선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방사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256건의 군 전력증강계획 자료에도 문제가 많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군은 창군(創軍) 이래 최대 규모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사업을 벌이고 A-50 경(輕)공격기를 양산한다. 해군은 3000t급 중(重) 잠수함(KSS-Ⅲ)과 이지스 구축함(KDX-Ⅲ)을 세 척씩 건조하고, 차기 고속정(PKX)과 차기 호위함(FFX) 건조사업을 펼치며, 대형 수송함(LPX)을 추가 건조한다. 육군 사업으로는 무인정찰기(UAV) 및 130㎜와 227㎜ 다연장로켓(MLRS) 양산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자 일부 애국적인 시민은 환호했다. 특히 3000t급 중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 이들 중 일부는 ‘이 잠수함은 반드시 핵 추진함으로 건조돼야 한다’며 때아닌 핵추진 잠수함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일보 기자 역시 이 문제를 파고들다 방사청이 보안성 검토도 하지 않은 자료를 공개했다는 ‘월척’을 낚았다. 방사청도 이런 애국적 호응을 의식해 보안성 검토를 건너뛰는 실수를 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환호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이 계획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경제적인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행여 방사청은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검증되지 않은 장밋빛 미래를 나열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봐야 한다.

    먼저 규모가 12조원에 이른다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부터 따져보자.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 공군의 교과서’는 미국 공군이다. 미 공군은 F-15를 고급(high)으로, F-16을 저급(low)으로 삼아 전투기 전력을 운용하고 있는데, 고급과 저급의 비율은 대략 3.5대 6.5다. 이러한 비율은 온갖 전투를 치러본 미 공군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그들은 전투기 전력을 이런 비율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강한 전력’을 갖추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미 공군은 F-15와 F-16을 서서히 퇴역시키면서 F/A-22와 F-35로 그 뒤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F-15를 이을 차기 고급 전투기 F/A-22와, F-16을 이을 차기 저급 전투기 F-35의 개발을 완료해놓고 현재 시험비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 미 공군은 F/A-22와 F-35의 비율도 3.5대 6.5로 유지할 전망이다. 그리고 F/A-22와 F-35 다음 세대의 전투기는 조종사가 타지 않는 무인 전투기로 대체한다는 방침 아래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이 독자 개발하겠다는 한국형 전투기 KFX는 2020년쯤 개발이 완료될 계획이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미 공군이 F/A-22와 F-35를 양산해 일선에 배치하고 난 다음이다. F/A-22와 F-35가 세계 전투기 시장을 선도할 무렵 탄생할 KFX는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가진 전투기일까. F-35 정도의 성능은 갖고 있을까. 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KFX는1990년대에 생산된 F-16의 성능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한다.

    F-16은 지금도 미 공군에서 저급 전투기로 분류되는데, 한국은 15년이 지난 2020년에 이 정도 성능을 가진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며 KFX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갑이 얇은’ 한국 공군이 미 공군과 같은 수준으로 놀 수는 없다. 미 공군이 F/A-22와 F-35로 무장할 때 한국 공군이 한 세대 뒤진 F-15와 F-16 체제를 갖추는 것은 납득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성과 시장성 관점에서 살펴보면 적잖은 난관이 발견된다. 항공업계에선 “새로 개발된 전투기가 본전(개발비)을 건지려면 최소 300대 이상은 팔려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개발될 KFX는 과연 300대 이상 팔릴까.

    ‘대마불사’와 ‘도마뱀 꼬리 자르기’

    한국은 이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이므로 100대쯤 사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200대를 사줄 나라는 어디인가.

    F-16급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는 많다. F-16에 견줄 만한 ‘토네이도’를 개발한 영국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과 함께 F-16을 능가하는 ‘유러파이터 타이푼’을 공동 개발했다. F-16에 견줄 만한 ‘미라쥐’ 생산국가 프랑스도 ‘라팔’이라고 명명된 최신 전투기를 개발했다. 스웨덴의 JAS와 일본의 F-2도 F-16 정도의 성능을 갖고 있다. 대만이 개발한 IDF(일명 ‘經國號’)는 다소 성능이 처지지만 역시 F-16에 근접하는 전투력을 갖췄다. 이스라엘도 ‘라비’라는 이름으로 F-16급 전투기를 개발한 바 있다.

    눈여겨볼 것은 이렇게 경쟁자가 많은데도 F-16이 가장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나머지 전투기들은 F-16이 구축한 시장을 뚫지 못하고 줄줄이 퇴출되거나 퇴출 일보직전에 몰렸다는 얘기다.

    F-16급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가 이렇게 많은데 어느 나라가 KFX를 사줄 것인가. 더구나 KFX는 늦게 개발됐기에 상대적으로 값이 비쌀 것이 분명하다. 결국 한국 공군만 울며 겨자 먹기로 값비싼 KFX를 사주는 사태가 벌어진다. 독자 개발이라는 미명과 애국심 때문에 아까운 세금을 펑펑 날리게 되는 것이다. 일본과 대만이 이미 이런 경험을 했다.

    1995년 일본은 F-16보다 성능이 좋은 F-2를 개발했지만 그 가격이 최근 한국이 도입한 F-15K보다 비쌌다. 일본은 무기를 수출하지 못하므로 이 값비싼 전투기는 결국 일본 항공자위대가 구입할 수밖에 없다. F-2 사업 초기만 해도 항공자위대는 이 전투기를 최소한 130대 도입하겠다고 했으나, 개발이 완료되자 워낙 가격이 비싸 최대 96대만 구입하는 단계에서 F-2 구매를 중단했다. 이로써 일본의 F-2 개발사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대만도 유사한 방식으로 IDF 전투기를 개발했으나 제3국에는 전혀 수출하지 못했다. 대만 공군만 비싼 값에 이 전투기를 도입했는데, 마찬가지로 가격압박 때문에 애초 도입하려던 계획(256대)보다 적은 130대를 도입하고 구매를 중단했다. 일본과 대만은 자력으로 전투기를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얻는 덴 성공했으나 속은 ‘골병’이 든 채 사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1985년 F-16급 성능을 지닌 라비 전투기를 개발한 이스라엘은 F-16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상황에서 라비를 사줄 나라는 이스라엘 공군밖에 없음을 간파했다. 그런데 새로운 경쟁자의 도전을 염려한 미국이 “라비 생산을 중단하면 F-16을 싸게 공급해줄 뿐만 아니라 F-15도 공급하겠다”고 하자 이스라엘은 재빨리 라비 생산을 중단했다.

    일본과 대만은 본전을 찾기 위해 더욱 과감하게 투자하는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 작전’을 펴다 정말로 대마를 죽였고, 이스라엘은 손해가 더 커지기 전에 잘라야 한다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작전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를 통해 항공기 개발은 경제성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쌓게 됐다. 그후 이스라엘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초강대국이 겨루는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기보다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수송기를 공중조기경보기로 개조하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KFX 사업, F-50으로 확 바꾸자”

    F/A-22나 F-35는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가진 전투기다. 이 전투기가 배치되면 영국과 프랑스도 스텔스 성능이 강한 전투기를 개발할 터인데, 이때 스텔스 성능이 떨어지는 전투기로 개발된 KFX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F-16급 전투기 개발을 목표로 하는 KFX 사업의 성격을 ‘확’ 바꾸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현재 개발이 완료돼 양산에 들어간 T-50과 A-50을 토대로 F-50 전투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은 “2조원 정도면 F-50을 개발할 수 있다”며 “F-50이야말로 세계 시장을 뚫고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거의 유일한 전투기”라고 말한다.

    현재 한국은 고등훈련기인 T-50과 이 비행기에 레이더와 기총을 단 경공격기 A-50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A-50에 각종 폭탄을 달아 투하하는 시험을 하고 있는데, 이 시험이 끝나면 지금의 A-50보다 공격력이 훨씬 더 강한 새로운 A-50이 탄생한다. 둘을 구분하기 위해 각각 A-50-Ⅰ, A-50-Ⅱ라고 부른다. T-50과 A-50-Ⅰ, A-50-Ⅱ는 모두 두 명의 조종사가 타는 복좌기다.

    전투기에서 레이더는 전투기의 맨앞 부분에 탑재된다. 공격기인 A-50이 전투기가 되려면 레이더의 성능을 크게 개선해야 하는데, 전투기급 레이더는 공격기에 사용되는 레이더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크다. 그래서 F-50 제작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A-50-Ⅱ에서 앞쪽 조종사 좌석을 들어내고 그곳을 활용해 전투기용 레이더를 넣자고 주장한다.

    출발부터 딱지 뗀 ‘초보운전’ 방위사업청, 브레이크 없는 ‘추돌사고’ 위험

    김정일 초대 방위사업청장(왼쪽)과 이용철 차장.

    전투기는 공격기보다 파워가 훨씬 세야 한다. A-50-Ⅱ는 F-404 엔진을 탑재하는데, 최근 이보다 힘이 강한 F-414 엔진이 나왔으므로 F-50 전투기에는 F-414 엔진을 탑재하자는 게 이들의 아이디어다. 한국은 조만간 EX 사업을 통해 경보기를 도입하는데, 전투기가 경보기로부터 정보를 받으려면 대용량의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A-50-Ⅱ에서 앞좌석을 들어낸 공간에 대용량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다고 본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주목을 끈 투하 폭탄이 JDAM(‘제이담’으로 읽고 ‘합동직격탄’으로 번역한다)이다. JDAM은 컴퓨터와 GPS를 정교하게 결합, 항공기에서 투하된 후 제 스스로 날개 각도를 수정해가며 목표물까지 정확히 날아가는 폭탄이다. 자유 투하탄이지만 미사일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무기로, JDAM을 운용하려면 역시 이에 필요한 장치를 전투기에 탑재해야 한다. 이 장비도 앞좌석을 들어낸 공간에 삽입할 수 있다.

    F-50 전투기엔 공대공(空對空) 무기의 대표격인 AIM-9 미사일과 발사장치, 야간 저고도 침투장비인 랜턴(LANTIRN)도 탑재할 수 있다. 기동력에서는 T-50이 F-16보다 오히려 나은 부분이 있으므로 F-50의 기동력에 대해서는 염려할 것이 없다. F-16보다 못한 것은 덩치가 작다 보니(F-16에 비해 부피는 89%, 중량은 77%) 탑재할 수 있는 연료가 적어 비행거리가 짧고, 탑재무장 총량이 적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연료량 문제는 공중급유기 도입으로 풀어갈 수 있다.

    전투기 틈새시장 파고들기

    이렇게 되면 F-50은 작은 F-16이 된다. ‘큰 F-16’을 개발하는 데는 12조원이 필요하지만 ‘작은 F-16’은 2조원 정도로 개발할 수가 있다. 물론 F-50 개발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장비를 탑재하기 위해선 외형 변화가 불가피해 F-50은 A-50-Ⅱ보다 덩치가 10% 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개조는 제로 상태가 아니라 A-50-Ⅱ라는 틀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개발된 F-50은 F-16급 KFX와 달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 공군은 수명이 다한 F-5 전투기를 퇴역시켰다. 한국은 F-5급 전투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인데 전세계에 보급된 F-5급 전투기는 모두 1768대이다(F-5의 원형인 T-38을 포함한 숫자. F-5도 훈련기인 T-38을 개조·개량해서 만들었다). F-5급 전투기는 조만간 수명이 다해 퇴역하는데 문제는 그 후속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주머니가 두둑한 나라는 F-16을 후속기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F-5를 보유한 나라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 F-16을 후속기로 선택하면 도입 대수를 크게 줄여야 한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도입하는 전투기를 줄이면 조종사와 정비사를 비롯한 전체 공군 정원을 줄여야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한 이 딜레마를 한국이 F-16보다 싼 F-50을 개발해 제공함으로써 해결해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F-50 크기의 전투기는 어떤 나라도 개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최첨단 전투기 개발에만 관심을 기울여왔다. 몇몇 국가는 고등훈련기를 개발했지만, 초음속 비행이 불가능해 현대적인 전투기로 개조할 수가 없다. 그래서 F-5급 전투기 후속기 시장은 틈새시장(niche market)으로 남아 있는데, 한국은 이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이런 틈새 전략을 펴면 한국은 T-50과 A-50, F-50 시리즈로 세계 고등훈련기와 경공격기, 그리고 중저가 전투기 시장을 잇달아 석권할 수 있다. 이를 통해 300대라는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어선다면 그 다음 세대의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 F-50 개발에 성공한다면 F-16급을 넘어 스텔스 성능을 갖춘 F-35급 전투기 개발을 다음 목표로 설정할 수도 있다.

    항공기는 한번 개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조·개량한다.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1975년에 처음 나온 F-16과 1990년대 한국이 도입한 KF-16, 그리고 최근 아랍에미리트가 도입한 F-16은 성능 차이가 크다. 미국이 30년에 걸쳐 F-16을 개량해온 것처럼 한국도 근 30년에 걸쳐 F-50을 개조하면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현실론에 기반을 두고 전문가들은 A-50-Ⅱ를 토대로 F-50을 개발하는 것이 KFX 사업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덕꾸러기 된 SAM-X 사업

    방사청 개청 후 주목받는 것 중의 하나가 안보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무기를 도입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정치논리란 한미동맹을 중시해 미국제 일변도로 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과의 화합을 염두에 두고 무기를 도입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 적기(敵機)나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공 미사일 도입사업인 SAM-X이다. SAM-X 사업은 한마디로 ‘미국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도입할 것이냐’란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시민단체가 미국이 주도하는 MD(미사일 방어체제)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공격자는 북한일 수도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일 수도 있다. 정보수집 능력이 뛰어나다면 한국은 이들이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은 이 나라의 공격무기를 선제 파괴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선제공격으로 이들의 공격무기를 파괴한다면 작전 면에서 한국은 효과적인 선택을 한 셈이 된다. 하지만 외교적인 면에서 본다면 먼저 공격한 ‘침략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리고 이 나라들이 “선제공격을 받았으니 응징하겠다”며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 등 다른 나라는 한국을 지원하기 힘들어진다. 국제적으로 완전 고립돼 초강대국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부담을 피하려면 차라리 선제공격을 당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한국은 영토가 좁은데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선제공격을 받는 순간 가공할 혼돈에 빠지게 된다. 총력을 다해 반격한다고 해도 상당수의 전력은 선제공격을 받을 때 이미 파괴돼버렸기 때문에 반격의 강도는 그만큼 약해진다.

    선제공격을 할 수도, 당할 수도 없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 해답은 패트리어트와 같은 방공 미사일에서 찾아야 한다. 거의 모든 전쟁은 미사일과 전투기로 시작한다. 미사일과 전투기로 ‘충격과 공포’를 준 후 지상군이 진격하는 것이다.

    패트리어트는 주요 선제공격 수단인 미사일과 전투기를 잡는 무기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적기와 미사일을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로 요격한다면 한국은 별 피해를 보지 않고 응징보복전에 나설 수 있다.

    한국은 침략을 당한 처지이므로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우방국들로부터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 다국적군을 구성, 침략국을 응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패트리어트로 대표되는 SAM-X 사업은 그 어떤 사업보다도 먼저 추진돼야 하는데 방사청은 이 사업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고 있다.

    과거 공군은 ‘첨단 전투기를 도입해 한국을 공격하려는 나라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현실성 없는 논리로 SAM-X 사업보다 FX 사업을 먼저 추진한 바 있다. 그런데 공군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어야 하는 방사청은 북한과 미국의 MD 등을 의식한 ‘이상한 논리’로 이 사업을 뒤로 미루고 있다.

    티코와 에쿠우스가 똑같다?

    공중조기경보기를 도입하는 EX 사업에 대한 방사청의 논리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1월9일 김정일 방사청장은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제시한 E-737을 에쿠우스, 이스라엘이 내놓은 G-550을 티코에 비유하며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하는데, (두 차 모두 이 조건을 충족한다면) 값이 싼 차를 골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청장의 발언은 작전요구성능(ROC)만 만족하면 값이 싼 것을 사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이스라엘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략무기는 경제논리만으로 도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다소 값이 비싼 데도 미국제 무기를 사는 것은 유사시 미국의 도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는 다른 나라 무기는 도입할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한 분야에서 허점을 지닌 경우가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은 이 무기에 들어갈 부속 등을 대량으로 도입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국방비를 가장 많이 쓰는 군대를 갖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재고품도 많이 보유한다. 그러나 여타 국가는 창고비용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재고만 보관한다. 전쟁 중인 한국이 부속품 제공을 요청하면 새로 공장을 돌리거나 아니면 자국용을 미리 빼줘야 하므로 매우 비싼 값에 부속을 수출하게 된다. 반면 미국은 여유가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 무기를 도입할 때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닫힌 방사청

    미국제 무기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노선을 걷겠다는 방사청의 의지는 과연 한국의 안보와 통일에 도움을 줄 것인가.

    국방부는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을 매우 중시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용철 방사청 차장을 위시한 참여정부의 실세는 이러한 국방부에서 무기 획득 기관을 뽑아내 별도로 방사청을 만들었다.

    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사용할 방사청은 독자적인 예산 편성권과 인사권을 가진 조직이다. 국방부는 방사청에 대해 통제권을 거의 행사할 수 없다. 국방부는 ‘한미동맹’이란 코드로 방사청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해까지 주요 무기 도입 사업권은 각군과 합참, 국방부 내의 획득과 조달 등 여러 기관과 부서에 나뉘어 있었다.

    가령 육군에서 지대지(地對地)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구입신청을 했다고 치자. 미사일이 하는 일은 전투기로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육해공군을 아우르는 합참은 공군의 전투기 전력을 고려해 육군이 요구한 미사일 전력이 과연 필요한지 검토하고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국방부에 구입을 요청한다. 그리고 국방부 획득 부서가 국내외 업체로부터 자료를 받아 적절한 기종을 선정해주면, 조달 파트가 나서서 가장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는 식이었다.

    무기 도입 과정이 여러 기관과 부서에 나뉘어 있어 로비스트들은 ‘돈질’로 뚫으려 해도 ‘돈질’을 할 곳이 많다 보니 로비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방사청이 창설됨으로써 이 업무가 방사청으로 집중되게 됐다. 로비스트 처지에서는 로비할 대상이 급격히 줄어들게 됐으니 ‘다른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렇게 된다면 국방 개혁(改革)의 상징인 방사청은 국방 개악(改惡)의 표본이 될 수 있다.

    개청 초기 방사청은 보안의식이 결여됐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열린 방사청’이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 자기식 논리만 고집하며 연 10조원대의 전략사업을 독점해간다면 또다른 부정적 의미로 ‘닫힌 방사청’이 될 수 있다.

    열린 방사청이냐 닫힌 방사청이냐, 노무현 정부가 펼친 대표적 국방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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