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산업 생태계 교란하는 지상파 DMB 무료 서비스

방송 3사·단말기업계 배불리고, 신규사업자·콘텐츠업계 쪽박차고

  • 박준석 이동통신 전문가 suminpapa@empal.com

    입력2006-02-01 1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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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2월부터 지상파 DMB 서비스가 실시됐다. 단말기만 구입하면 누구나 무료로 휴대이동방송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공짜라고 좋아만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중장기 수익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정책 시행, 비즈니스 모델의 편향성과 일방성으로 인한 폐해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 생태계 교란하는 지상파 DMB 무료 서비스
    지난해 6개월의 간격을 두고 출범한 위성 DMB와 지상파 DMB 서비스. 국내 이동통신업계와 지상파 방송업계, 휴대전화 제조업계의 대표 기업들이 모두 참여하는 ‘휴대이동방송’ 대회전이 임박하면서 관객의 반응도 열기를 띠고 있다.

    대다수는 “사실상 승부는 지상파 DMB로 기울었고 위성 DMB가 시장점유율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한다. 일각엔 재전송 위주의 안이한 편성전략, 수익모델상의 약점 때문에 지상파 DMB가 독주하기는 힘들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그리 힘이 실리지는 않는 형국이다. 결국 무료 서비스 전략을 앞세운 지상파 DMB가 유료 서비스인 위성 DMB와의 경쟁에서 월등한 우위를 차지할 것이란 다소 싱거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러한 시나리오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까.

    외국도 놀란 무료 서비스

    지난해 가을에 열린 한 DMB 전시회 현장. 컨퍼런스와 전시회를 겸한 이 행사에는 적잖은 외국인이 참가해 한국의 수준 높은 DMB 단말장비 제조능력과 서비스 기술력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지상파 DMB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안내자의 설명.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전세계 통신과 방송 서비스 부문을 통틀어 최첨단 신규 서비스라 할 만한 휴대이동방송을 단말기만 사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이 서비스를 위해서는 사업권 또는 주파수를 확보하고, 송출할 방송국을 짓고, 필요한 방송장비를 사들이고, 방송신호를 전국으로 중계할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지하 및 폐쇄공간에는 중계기를 따로 설치해야 하고, 콘텐츠도 구매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이 모든 일을 해낼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막대한 투자의 최종 결과물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게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닌가. 외국인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무료 서비스의 ‘비밀’을 말해달라고 조르던 광경이 기억에 생생하다.

    사실 지금도 단말기만 구입하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방송 서비스가 많다. 대표적으로 지상파 TV와 라디오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수신기를 구매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물론 월 2500원의 공영방송 수신료를 납부하고 프로그램 앞뒤로 붙는 광고방송을 봐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완전 무료’는 아니지만). 인터넷 보급과 함께 활성화된 인터넷 라디오 방송도 광고 및 협찬 덕분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애플 아이포드(iPod) 구매자들은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포드캐스팅(podcasting) 클립들을 이용할 수 있다.

    단말기와 수신장비 구매를 전제로 무료로 제공되다 점차 사라지는 방송 서비스도 있다. 대형 위성 안테나와 셋톱박스를 구매하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채널을 무료로 볼 수 있었던 초창기 위성방송이 대표적. 직접위성방송(DBS)의 출현으로 예전 같은 인기를 누리진 못하지만 지금도 국내에선 30∼40개의 채널을 무료 제공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

    유럽에서도 무료 방송 서비스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영국에선 저렴한 셋톱박스만 사면 30여 개의 디지털 지상파 채널을 무료로 즐기는 프리뷰(Freeview)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시작한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100만대 이상의 셋톱박스가 판매됐다고 한다. 영국이나 덴마크, 독일 등에 보급된 디지털 라디오 서비스(DAB)도 전용 수신기를 구매하면 일부 유료 채널을 제외한 대부분의 채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렇듯 무료 방송 서비스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서비스 모델이며, 광고판매를 통해 수입을 보전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국내 지상파 DMB도 광고수입을 기반으로 한 무료 방송 서비스의 계보를 잇는 셈이다. 지상파 DMB의 이런 선택에는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정통부·방송위·단말기업계 공조

    지상파 DMB 서비스의 무료화 결정이 있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중계망 구축 및 유지·보수를 맡기로 예정된 이동통신사들은 마지막까지 유료화를 주장했고, 위성 DMB 상용화에 자극받은 지상파 사업자들 사이에서도 유·무료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유료화로 가는 게 낫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지상파 DMB 사업의 주무기관인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무료 서비스를 주장, 그 뜻을 관철했다. 지난해 8월말의 일이다.

    무료 서비스 결정의 일등공신은 지하중계망 구축비용을 떠안기로 한 메이저 단말기 제조업자들이다. 지상파 DMB 단말기 개발에 적잖은 투자를 한 그들은 상용 서비스 지연에 따른 매출손실을 감내하느니 문제가 되고 있는 중계망 구축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이동통신 단말기 부가기능의 큰 흐름이 ‘사진촬영, 음악감상, TV시청’으로 갈 것이므로 지상파 DMB 서비스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관련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선 프리마켓(pre-market)이자 테스트베드(test bed)인 국내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무료화 결정의 산파역을 맡았다. 두 기관은 지상파 디지털TV(DTV) 전송방식 결정부터 방송통신 규제영역과 규제기구 통합방식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상파 DMB 서비스 무료화를 결정하는 데는 공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지상파 DMB 기술표준의 해외 진출에 대한 의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2004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휴대이동방송 표준 경쟁에서 지상파 DMB가 살아남으려면 국내 시장에서 반드시 상용화에 성공해야 하고, 더불어 서비스 보급 속도를 높이려면 저렴한 가격정책이 필수라 판단한 모양이다. 더구나 DMB는 ‘IT839’로 명명된 국가적 프로젝트에서 8대 신규 서비스 가운데 하나이며, 지상파 DTV와 더불어 가장 빠른 성과를 보여주던 사업이었다.

    2004년 7월 발표된, 지상파 DTV 전송방식에 관한 4인 대표의 합의문도 무료 서비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상파 사업자들이 이동수신이 불가능한 미국식 DTV표준을 수용하는 대신 휴대이동 환경의 보편적 방송 서비스로 지상파 DMB를 도입한다는 게 당시 합의문의 요지. 따라서 보편적 방송 서비스가 되려면 당연히 무료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또한 무료화 결정은 위성 DMB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이동통신사업자의 지상파 DMB 사업 주도권 확보를 경계한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사실 위성 DMB 사업자 TU미디어는 지상파 DMB 사업자뿐 아니라 KTF와 LGT로부터도 견제를 받고 있다. TU미디어의 최대주주가 SK텔레콤이기 때문이다.

    KTF와 LGT는 지상파 DMB에 적극 참여해 위성 DMB를 견제하려 했고, 지하중계망 구축의 대가로 망식별장치(NIS) 도입과 부분 유료화를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지상파사업자들은 이 제안마저 거부했다. 이동통신사들이 중계망 구축과 운영, 요금징수를 담당할 경우 지상파 DMB 사업의 주도권을 놓치게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주머니 두둑한 지상파 방송사

    정부와 지상파사업자의 바람대로 지상파 DMB 서비스는 무료화됐다. 지하중계망 구축 및 운영, 콘텐츠 공급에 투입될 재원은 4대 단말기 제조업체(삼성전자, LG전자, 팬택, 퍼스텔)의 단말기 판매 금액과 광고요금으로 충당하기로 했으며, 당장의 중계망 구축비용은 지상파 DMB사업자들이 금융권에서 차입하기로 했다.

    사업모델의 특성상 광고 수주를 위해서도, 중계망 구축비용에 대한 이자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해결방안은 ‘신속한 단말기 판매 확대’밖에는 없다. 특히 충당금 적립에 참여한 4대 단말기 제조업체의 단말기 판매가 순조롭지 못할 경우 지상파 DMB 사업은 위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위험에 대비한 정책적 지원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지난해 11월9일, 방송위원회는 지상파 TV의 낮방송 시간 연장(정오∼오후 4시)을 전격 결정했다. 이로 인해 방송 3사는 연간 최소 150억원에서 최대 360억원의 광고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방송 3사의 바람대로 2006년 상반기 중 심야방송 시간까지 연장이 허용될 경우 낮방송 연장과 비슷한 규모의 추가적인 광고수익 증대가 예상된다.

    지상파 방송사를 위한, 결과적으로 지상파 DMB 무료 서비스를 위한 정책지원은 올 상반기 광고단가(單價) 인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증권가의 분석과 전망에 따르면 이미 10% 수준의 광고단가 인상이 결정됐으며 발표시기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광고 단가 인상은 연간 1570억원대의 TV 광고 수익 확대로 이어질 것이고, 그중 상당부분은 지상파 TV 3사의 몫이 될 것이다.

    그밖에도 중간광고와 스포츠 가상광고를 허용하고, 간접광고 허용범위를 확대하며, 광고총량제마저 도입한다면 지상파 TV의 광고관련 규제는 일거에 해소된다. 이로 인한 광고수익 증대효과는 연간 8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상파 DMB 무료 서비스로 인한 수익구조 악화에 대응할 수 있는 완벽한 체계를 확보해놓았다. 만에 하나 지상파 DMB 광고수익이 예상대로 확보되지 않거나 지하중계망 구축비용 상환이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방송시간 연장과 단가인상 등에 힘입어 늘어난 광고매출로 위기 요인을 분산할 수 있게 됐다.

    외국에선 철저한 자체 수익모델 마련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가 휴대이동방송 서비스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DVB-H(EU), FLO(미국 퀄컴), ISDB-T OneSeg(일본) 등이다. 위성 DMB와 지상파 DMB 외에도 여러 가지 서비스가 2006∼2007년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상황이다. 2001년 시작되어 900만 유료가입자를 확보한 위성 라디오와 2006년 상용화 예정인 퀄컴의 FLO 서비스는 경매를 통한 주파수 확보와 자체 네트워크 구축, 그리고 유료 서비스 제공을 통한 투자비용 회수를 기본 모델로 삼고 있다. 주파수 경매도 거치지 않으며 주파수 사용대가도 징수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반면 EU 각국에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논란이 목격된다. 즉, 휴대이동방송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전용 네트워크 구축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를 놓고 사업자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EU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상파 방송국 운영과 전송 네트워크 운영이 분리되어 있으며, 전국적 방송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전송망업체는 이동통신사의 네트워크 운영도 일부 분담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휴대이동방송 전용망 구축의 적임자는 지상파 방송사가 아니라 전송망사업자와 이동통신사업자인 셈이다.

    비록 네트워크 구축 책임에 관한 논란이 지속되고는 있지만 투자비용의 회수방안은 서비스 유료화 외에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 EU의 지상파·콘텐츠사업자, 이동통신사업자, 전송망사업자, 단말장비사업자들은 필드테스트 단계부터 각자의 역할에 맞는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패턴과 대가 지급 의향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즈니스 모델의 성립에 대해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핀란드의 예를 들어보자.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의 24% 이상을 담당하는 핀란드 경제의 핵심기업이다. 핀란드에서도 지금 DVB-H 기반의 휴대이동방송 사업자선정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다르게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DVB-H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단말기 판매 수입과 로열티 수입을 동시에 얻는 노키아지만, 노키아에 네트워크 구축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기존 지배력을 무리하게 확대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을 떼어 어디로 옮겨 붙이려는 정책도 발견되지 않는다. 휴대이동방송이라는 신규 서비스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방송 및 통신산업 생태계에 불필요한 파급효과가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핀란드의 예는 철저하게 자체 비즈니스 모델 성립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따지고, 그것에 대한 관련사업자들의 확신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확보된 후에야 사업자를 선정하고 투자를 단행하는, 바로 이러한 자세가 기업경영과 정책집행의 기본이 돼야 함을 보여준다.

    정책 파급효과 살펴야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의 산업과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경쟁하며, 기술표준 제정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간 제휴관계는 생존의 선결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차세대 DVD 표준을 둘러싼 경쟁에서 드러나듯 기업간 역학관계에다 산업 간 대립이 더해져 표준제정을 둘러싼 복잡성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CDMA 상용화 이후 독창적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기술표준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의 중요성이 누누이 강조되어왔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의 한가운데서 우리 정부가 표준 확산에 따른 로열티 수입을 기대할 수 있으며 해외 특허료 지급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지상파 DMB의 기술 수출과 국내 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핀란드 정부 또한 노키아가 주도하는 DVB-H 서비스 확산을 위해 핀란드 내 관련 주파수를 서둘러 확보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 셈이다. DVB-H는 600MHz 후반의 UHF 대역에서 최적의 주파수 효율을 나타내지만, EU 각국에서 그 주파수 대역을 온전히 확보하려면 7∼8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 한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를 위해 최소한의 정책적 배려는 한 셈이다.

    핀란드의 이웃나라 스웨덴은 대조적인 방법으로 자국 대표기업을 지원한다. 스웨덴의 경우 DVB-H와 같은 전용 방송망을 이용한 휴대이동방송 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3세대 이동통신기술 기반의 멀티미디어 스트리밍 표준인 MBMS를 이용한 방송 서비스에 대한 고민은 여타 국가보다 진전된 상황이다. 역시 세계 최대의 GSM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에릭슨의 나라, 스웨덴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비단 정보통신 단말기나 장비제조업 분야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첨단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정부와 기업의 상부상조는 보편적 흐름이다. 하지만 국익을 위한 정책집행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정책의 집행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산업분야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 예상된다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의도를 담은 정책이라 해도 기술 융합이 활발한 시장환경에선 예상치 못한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지상파 DMB 서비스의 무료화는 IT 강국, 이동통신 강국인 한국이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발달한 내수 통신시장을 바탕으로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의 4분의 1 이상을 공급하며, 지난해에만 약 250억달러에 달하는 휴대전화 수출실적을 올렸고, 4000만 가입자와 80%의 보급률, 세계 5위권의 휴대전화 통화량(MOU)을 자랑하는 성숙한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을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수익자와 피해자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한국이 지상파 방송, 공영방송 강국이기에 지상파 DMB 무료 서비스가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몇몇 지상파 방송사가 여론형성의 핵심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존재하면서 방송광고시장과 프로그램 제작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나라, 양대 공영방송사가 프로그램 재전송을 효과적인 카드로 활용하며 신규 미디어의 발전 속도를 조절하고 생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나라다. 그들을 빼놓고는 한국의 방송산업을 논할 수 없다.

    이런 조건 속에서 지상파 DMB는 ‘무료 서비스 전략’으로 방향을 잡고 항해를 시작했다. 결국 무료화한 형태의 지상파 DMB 서비스는 단말장비 제조업체와 지상파 방송 3사에 가장 큰 혜택을 몰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들이 업계 선두기업으로 기술 및 서비스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결코 그 부분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상파 DMB 사업 비즈니스 모델의 일방성 또는 편향성에 대해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상파 DMB 서비스 무료화 결정과 발맞춰 방송시간, 방송광고와 관련된 제반 규제가 일제히 완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늘어난 광고수익은 대부분 지상파 방송사로 귀속될 전망이다. 광고시장을 놓고 지상파 방송사와 경쟁관계에 있던 유료 방송사업자나 채널 제공사업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은 불문가지.

    또한 지상파 DMB 사업자로 신규 참여한 기업과 임대 채널을 운영할 채널 제공사업자 역시 무료 비즈니스 모델로 인한 부담을 나눠가져야 할 처지다. 기존 방송사업 기반이 부재한 신규 사업자로서는 광고수익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까지 투자를 계속해야 할 형편이다.

    또한 광고수익을 논할 만큼 단말기 보급이 확대된 시점이 되어서도 이들 신규 사업자나 임대 채널 운영업자들이 지상파 출신의 DMB 사업자들만큼 광고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내외 각종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휴대이동방송의 광고효과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측정방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이 분야에 대한 광고집행에 신중하겠다는 것이 광고주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기존 지상파 채널에다 경쟁력 있는 케이블·위성채널까지 보유한 방송3사가 자사의 광고영업 능력을 지렛대 삼아 지상파 DMB 광고시장마저 석권할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위성 DMB 사업을 개시한 TU미디어, 그리고 위성 DMB와 연관된 모든 기업도 지상파 DMB 무료화의 거센 여파를 피할 수 없다. 위성체 제작 및 발사와 전국 중계망 구축, 프로그램 수급에 투입된 대규모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매달 부과되는 서비스 요금. 이 요금을 짊어지고 지상파 재전송과 무료 서비스로 무장한 지상파 DMB에 대응하기란 버거워 보인다.

    방송·통신 융합의 불안한 미래

    방송·통신 기술과 서비스 간의 융합, 결합단말기의 보급 확대, 사업자간의 제휴나 인수합병(M&A)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해 상용화된 DMB는 이러한 방송·통신 융합 흐름을 반영한 서비스로서 큰 기대를 모았던 것이 사실이다. 방송·통신 융합이란 이용자에게 더 큰 편익과 정보, 즐거움을 제공하고, 참여 사업자들은 적정한 대가를 나눠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투자한 만큼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융합은 의미가 없으며 진전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상파 DMB의 무료화 결정과 뒤이어 쏟아진 정책결정들을 두고 융합의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비스의 대가를 적정하게 분배할 시스템인 비즈니스 모델의 디자인 과정에서 결함이 생겨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러한 애초의 잘못을 보정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자원배분의 왜곡마저 발생하는 양상이다.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맞아 한 분야의 빠른 발전을 위해 다른 분야를 희생시키는 식의 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단순한 정책으로 대응하기엔 우리의 방송산업, 방송 서비스 환경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 방송 역사에서 사업자들간의 역학관계를 임시방편으로 조정하려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했던가.

    더불어 지상파 방송사업자 위주의 정책 또한 수정돼야 하며, 콘텐츠나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대가 지급 의향을 증진시키려는 사업자들의 노력은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무료 서비스 또는 저가 서비스 정책만으로는 방송통신 융합의 미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중계유선사업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채 출범한 종합유선방송사업이 저가경쟁의 악순환에 갇혀 10년이나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은 지속되고 있다. 뒤이어 출범한 위성방송사업은 어떤가. 케이블SO와 지역방송사의 반발로 지상파 재전송이 좌절된 데다, 중계유선·케이블방송과의 저가경쟁에 휘말리면서 상호간의 하향평준화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위성 DMB, 지상파 DMB가 차례로 등장했고, 논란 속에 IPTV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생태계’ 전반에 대한 고민 없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새로운 방송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으나, 정책상의 시행착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요소기술의 발달로 ‘매체’ 하나를 뚝딱 빚어내기가 그만큼 수월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제 정책과 규제 차원의 준비가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책 당국의 어려움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기존 정책과 시장경쟁의 결과로 굳어져버린 사업자간 경쟁구도는 새로운 정책집행의 폭을 좁혀놓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근본적으로 미디어 정책결정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부족하고, 거시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의 정책수립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상파 재전송과 지역방송은 방송정책의 묵은 숙제로 남겨진 채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 환경의 개선, 콘텐츠 수급을 담당하는 채널 제공사업자들의 경쟁력 강화도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지상파 DMB 무료화 결정은 우리 방송, 통신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국내 시장만이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까지 고려한 국익 차원의 결정이었으며, 지상파 DTV 전송표준에 이어 단말기사업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정이었고, 아울러 방송·통신 융합의 시대를 열어젖힌 서비스 모델에 관한 최초의 결정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 방송산업의 리더인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해준 결정이었으며, 무료 서비스의 신화는 방송·통신 융합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란 걸 암시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결정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지상파 DMB 무료화 결정은 내려졌다. 번복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요구되며, 무료 서비스 결정의 폐해로 인정되는 부분은 교정돼야 한다. 여러 힘이 부딪치며 찾아낸 완충점이라지만, 지상파 DMB 무료화 결정은 방송, 콘텐츠, 엔터테인먼트산업 전체의 시각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결정이다. 눈앞의 국면을 돌파하기에는 적절한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산업 생태계 전반의 중장기적 발전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결정이었다.

    2006년은 휴대이동방송 표준 확산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동시에 자국시장에서 다양한 휴대이동방송의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받는 해가 될 것이다. 부디 올해가 내실 있는 휴대이동방송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해 나가는 기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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