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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터리

시반(屍班) 없는 사체로 발견된 목사 부인…의혹투성이 남편은 1심 무기징역, 3심 무죄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한국판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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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목사 부인의 처참한 최후

40kg들이 조곡용 1호 포대에 덮인 김씨는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체크무늬 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하의와 팬티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왼발은 신발이 벗겨진 채였고, 오른발은 신발 끈과 덮개 사이에 살짝 끼워져 있었는데, 신발바닥은 흙이 묻어 있지 않고 깨끗했다. 목 앞쪽 7군데에 손이나 손가락에 의해 형성된 듯한 액흔(縊痕)이 발견됐으며, 눈 언저리에는 안경 테두리에 눌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K목사 일행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 조사 결과 김씨의 몸에서 강간이나 추행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직장(直腸) 온도는 오전 7시54분에 30.1℃, 8시54분에 29.6℃, 9시54분에 29℃로 측정됐다. 직장 온도는 사망 직후부터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사망시각 추정에 중요하다는 게 법의학자들의 의견이다. 1시간 간격으로 3회 이상 잰 다음 온도 하강률을 구해 역산하는 방식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한다.

시신에서 시반(屍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시반은 시신에 생기는 반점이다. 사람이 죽으면 혈액순환이 멎고, 중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피가 가라앉아 고이게 된다. 이때 피가 몰려 있는 피부가 적혈구 때문에 암적갈색을 띠는데, 이것을 시반이라고 한다. 시반은 대체로 사망 후 30분이 지나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시체가 누운 상태로 발견됐다면 등이나 엉덩이, 허벅지 아래쪽, 종아리 등에 시반이 있을 것이고,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발견됐다면 가슴, 배, 허벅지 위쪽, 무릎 등에 시반이 있게 된다. 김씨의 사체에 시반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부검 결과 사인은 액살(縊殺·목 졸라 죽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부압박 질식사. 김씨의 위에는 참깨, 참외씨 같은 음식물의 일부가 그대로 식별되는 상태로 가득 차 있었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 깔끔하고 정숙하며 자존심이 강했던 목사 부인이 누구에 의해 어떤 연유로 이처럼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됐을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부 중 한 사람이 변사자로 발견되면 수사 관례상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는 사람이 그 배우자다. K목사는 사건 발생 직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컴퓨터로 성서 번역작업을 하던 중, 8시10분경 아내가 텃밭에 들렀다가 기도를 하고 오겠다면서 집을 나간 후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자 염려되어 찾아다니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일 뿐 살해하거나 사체를 유기한 바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부인 김씨를 집에서 살해하고, 강간범에 의해 살해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사체를 인근 풀밭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2003년 2월5일 목사 K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그해 4월17일 서울 모처에서 체포했다. 검찰이 K목사를 범인으로 확신하는 데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황 증거와 간접 증거만 있을 뿐이다.

흙이 묻지 않은 신발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풀밭에서 발견된 김씨가 집 안에서 살해됐다고 검찰이 단정하는 근거는 첫째, 풀밭에서 사체가 있던 곳만 풀이 누워 있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살해됐다면 김씨가 반항하며 움직여 주변의 풀까지 짓눌렸을 텐데, 사체가 놓인 곳만 풀이 누워 있었다는 것은 누군가 숨진 김씨를 풀밭에 가만히 내려놓았음을 의미한다는 것.

둘째 근거는 사체가 비교적 깨끗하다는 점이다. 만약 현장에서 반항했다면 가로 방향의 불규칙한 찰과상이 남아야 하는데, 김씨의 사체에는 등 부위에 선상의 찰과상 7개만 확인됐다. 셋째 근거는 신발이다. 김씨의 사체가 발견됐을 당시 맨발인 상태에서 왼발은 신발이 벗겨지고, 오른발은 신발 끈과 덮개 사이에 살짝 끼워져 있었다. 신발바닥엔 흙이 묻어 있지 않았다. 검찰은 피해자가 제 발로 걸어왔다면 신발에 흙이 묻지 않을 수 없는데다, 오른발이 신발 끈과 덮개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것은 범인이 어둠 속에서 억지로 신발을 사체의 발에 끼워 넣으려 한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근거는 사체의 얼굴에 남은, 안경에 눌린 자국이다. K목사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평소 안경을 착용하고 다니지 않으며, 작은 글씨를 보거나 강의를 들을 때만 안경을 사용한다. 따라서 실내에서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가 살해당한 것이라는 추정이다. 사체가 있던 현장에서 안경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섯째 근거는 사체의 옷차림이다. 숨진 김씨와 같은 교회를 다닌 교인 2명과 김씨의 여동생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기도하러 다닐 때 늘 치마를 입은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사체 발견 당시 김씨는 반팔 티셔츠에 바지 차림,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런 점들로 미뤄보아 김씨는 실내에서 살해당한 후 사체가 발견된 장소로 옮겨졌으며 범인이 마치 강간범이 그곳으로 끌고 가 살해한 것처럼 위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런데 김씨가 외출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로지 K목사의 진술뿐인 상황에서 몇 가지 정황이 김씨가 외출했다고 하는 K목사의 진술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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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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